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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뉴스앤조이-박요셉 간사] 20대 사회 초년생 이야기를 그린 웹툰 '미생'에서 오상식 과장이 조기 퇴직한 선배에게 듣는 말입니다. 이 말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씩 힘들 때 마음을 붙잡는 격언이 됐지요.

그런데 이런 말을 들으면 오기가 생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전쟁터가 지옥보다 나은 걸까' 하고 말이죠. 장시간 지옥철과 만원 버스를 타며 전선으로 투입되는 출근길, 따발총 같은 상사의 잔소리와 괴롭힘,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에 짜게 식은 인간성, 예기치 못한 순간에 날아오는 실적 압박과 경쟁의 포화 속에서, 당장이라도 심장이 멈출 것 같은데 말입니다.

레이지버드F&B 장윤갑 대표(34)는 잘나가던 회사를 갑자기 관뒀습니다. 그날따라 유독 빌딩 사이로 내리쬐는 노을이 따뜻했는지, 업무차 방문한 서울역에서 여행객 모습이 유난히 행복해 보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출장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그는 말없이 사직서를 썼다고 합니다. 

계획에도 없던 음식점을 열 때, 사람들은 그가 지옥 같은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호기롭게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코로나19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그의 모험은 시작도 못 하고 꺾이는 듯했습니다. 불안한 상황을 보내던 그때 심정을 묻자, 장 대표는 "그래도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낭만 어린 말을 내뱉습니다. 

저는 지난달 도시공동체연구소(성석환 소장)가 주최한 '교회와 공공성 컨퍼런스'에서 장 대표를 떠올렸습니다. 발제자로 나온 엠와이소셜컴퍼니(MYSC) 김정태 대표는 '에브리데이 보팅(everyday voting)'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는데, 그는 기독교인들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매번 소비할 때 올바른 선택(voting)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는 회사, 임금을 정당하게 지급하고 정직한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의 제품을 쓰라는 것입니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선택', 아니 '손해'는 장윤갑 대표가 지금까지 보인 경영 철학 중 하나였습니다. 코로나19 속에서 그의 선택은 늘 '손해'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오히려 아르바이트생을 정직원으로 채용했습니다. 휴게 시간 보장과 초과근무 수당, 연차 등 외식업계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 '기본'을 지켜 왔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그야말로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장윤갑 대표는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남들도 행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정의하는 행복은 별게 아닙니다. 정당한 권리를 제대로 보장해 주는 것. 일한 만큼 보상을 챙겨 주는 것. 1월 25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 위치한 젊은이들의 명소 '밤리단길'의 한 카페에서 장 대표를 만났습니다.

장윤갑 대표(사진 오른쪽)는 서른 살이 되던 해, 7년간 다닌 회사를 관두고 창업을 했습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장윤갑 대표(사진 오른쪽)는 서른 살이 되던 해, 7년간 다닌 회사를 관두고 창업을 했습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직장·결혼·집
행복의 필요조건인가요

- 직장을 갑자기 관뒀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7년 정도 회사를 다녔어요. 이런 말씀을 드리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지만, 사는 게 점점 각박해졌던 것 같아요. 정신이 없었죠. 세상에는 어느 정도 사람들이 정해 놓은 성공 모델이 있잖아요. 번듯한 직장을 얻고, 돈을 모아 결혼하고, 집을 사고. 그때는 이런 정형화된 루트를 쫓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 일밖에 모르고 살았군요.

"거의 쉬지 않고 일만 했던 것 같아요. 군대를 늦게 가서 전역한 다음 날부터 출근했거든요. 회사가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는 스타트업이었어요. 새벽이나 주말에도 출근했고 휴가도 거의 쓰지 못했죠. 사무실에서 먹고 자는 날도 많았고요.

그래서인지 일찍부터 인정받고 꽤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까지 승진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자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나는 지금 행복한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지?' 하는 생각이요.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도 미래는 계속 불투명해 보였거든요."

-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날부터 선배들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지금 그분들이 10년 후 제 모습일 텐데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았거든요. 집값도 너무 올라서 아무리 월급을 많이 받고 열심히 저축해도 직장인이 몇 억씩 오르는 집을 마련한다는 게 엄두도 안 나더라고요. 그때부터 '행복'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정해 준 어떤 요건을 채울 때 얻게 되는 그런 개념으로서의 행복이 아니라,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를요."

진짜 행복을 찾는 장윤갑 대표의 고민은, 다르게 표현하면 자신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어떤 상황을 즐거워하는지, 어릴 때부터 어떤 꿈을 꿔 왔는지 스스로 묻고 또 물을 때 행복의 그림자를 조금씩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 그래서 원하는 답은 찾으셨나요?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제가 사실 수직적이고 경직된 조직 문화를 싫어해요. 자유롭고 수평적인 관계를 좋아하거든요. 이런 점 때문에 스타트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죠. 그리고 먹는 걸 되게 좋아했어요. 새로운 식당, 유명한 가게가 있으면 꼭 찾아가고, 지인들을 집에 초대해 자체 개발한 요리를 대접하기도 했으니까요."

장윤갑 대표는 3년 전 그렇게 전쟁터 같은 회사를 떠났습니다. 30세였고, 결혼도 했습니다. 부부 모두 고정 수입이 없는 상황이었죠. 뚜렷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조금 쉬었다가 이직 자리를 알아볼까도 생각했지만, 장 대표는 모험을 선택합니다. 2019년 5월, 같은 교회를 다니고 있는 친구와 '정발휴게소'라는 식당을 개업했습니다.

장윤갑 대표가 처음 문을 연 '정발휴게소'. 간판과 메뉴판이 없는 식당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사진 제공 장윤갑
장윤갑 대표가 처음 문을 연 식당 '정발휴게소'. 간판과 메뉴판이 없다는 점이 특이하다. 사진 제공 장윤갑
직원들과 '동업'하는 사장

정발휴게소는 여느 식당과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먼저, 간판이 없습니다. 겉에서 보면 이곳이 식당인지 카페인지 가정집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죠. 그리고 음식이 한식·중식·양식 같은 특정 범주에 속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메뉴도 없고요. 단골들은 이곳을 '무국적 술집'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 이런 컨셉을 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장르에 갇히기 싫었던 것 같아요. 고추장 파스타처럼 틀 안에 갇히지 않는 요리를 개발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평소 좋아하는 음식과 음료를 소개하며 손님과 즐길 수 있는 식당을 구상했어요.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가게요. 그러자 언제부턴가 '여긴 좀 무국적이다'라는 평을 받기 시작했어요."

- 개업하고 얼마 안 돼 코로나19가 심해졌어요. 매출에도 큰 타격이 있었을 것 같아요.

"개업하고 6개월 동안 제 급여를 하나도 챙기지 못했어요. 직원들 월급 챙겨 주면 남는 게 없었죠. 오히려 제 돈이 추가로 계속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계속되는 매출 하락에 장윤갑 대표는 돌파구가 필요했다고 했습니다. 정발휴게소를 운영하는 와중에 2010년 '레이지버드'라는 버거 가게를 열게 된 이유입니다. 수제 버거는 장 대표가 좋아하는 만큼 자신 있는 음식이었고, 정발휴게소 단골들에게도 반응이 제일 좋은 메뉴였습니다. 정발휴게소가 프라이빗한 공간이었다면 레이지버드는 좀 더 대중 친화적인 곳이었죠. 

"레이지버드 오픈은 '외식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야겠다'는 결심을 의미했어요. 이전까지는 언제까지 식당을 운영해야 할지, 도중에 다른 회사에 취업할지 완전히 결단을 못 내린 상태였거든요." 

- 어려운 상황에서도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셨다면서요. 

"아르바이트도 모집을 하는데요. 그중 성실한 친구들을 정직원으로 채용했어요. 사실 외식업계 근무 환경이 안 좋다고들 하잖아요. 계약직이 많고 퇴직금도 못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제 입장에서는 직원들에게 최소한의 것들을 보장해 주고 싶었어요."

- 최소한의 것이요? 

"근로기준법에 나와 있는 것들이요. 법정 연차나 휴게 시간, 주휴 수당, 4대 보험을 보장하고, 급여도 업계 수준 이상으로 지급했어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일반 외식업계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거든요. 그리고 입사하는 직원들에게는 '동업 계약서'를 쓰게 해요."

- 동업 계약서가 뭔가요?

"일종의 근로계약서인데요. 대표와 직원이 일방적인 고용주와 피고용인 관계가 아니라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동료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 '동업 계약서'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실제로 동업이라고 생각하고요.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고 자리를 잡은 직원들에게는 지분을 나눠 주기도 해요."

레이지버드F&B가 운영하는 매장은 정발휴게소를 포함해 총 4곳입니다. 정직원 11명이 근무하고, 아르바이트생까지 더하면 총 20여 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장 대표가 정발휴게소에서 함께 일했던 아르바이트생은 어느덧 레이지버드 본점 점장으로 성장했습니다. 발주부터 재고, 판매, 직원 관리까지 매장 운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고 합니다. 

레이지버드 본점과 매장 직원들. 사진 제공 장윤갑
레이지버드 본점과 매장 직원들. 사진 제공 장윤갑
행복은 공공재

-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 긴축이 우선일 것 같은데요. 정규직 고용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주변 사장님들이 그래요. 외식업계는 인건비와의 싸움이 중요한데 이렇게 하면 얼마나 남느냐고요. 그런데 제가 회사를 관두고 사업을 시작한 건 행복하기 위해서였잖아요. 저는 제가 행복하려면 함께 일하는 동료도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많은 보상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기본적인 것은 꼭 챙겨 주려고 했어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흔들릴 때가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장 대표는 자영업자들이 유혹에 취약하다고 했습니다. 눈 한번 딱 감고 초과근무 수당이나 주휴 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면, 그만큼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직원들을 '소모품'으로 보는지 '동료'로 보는지 관점에 달려 있는 것 같아요. 동업자로 본다면 대표 혼자 그렇게 많이 가져가기 어렵죠. (대표가) 일정 수준의 급여를 포기해야 하고요. 하지만 그건 어떻게 보면 손해가 아니에요. 장기 비전을 갖고 사람에게 투자하는 거예요."

- '가족', '공동체'를 표방하는 회사가 많아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구직자들 사이에서는 '가족 같은 회사'를 내세우는 곳은 피하라는 말이 나돌죠. 직원들도 대표님처럼 '동업자' 마인드를 갖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지난해 코로나19로 매출이 ⅓도 안 나왔던 시기가 있었어요. 재정이 많이 부족해서 회사 사정을 직원들에게 공유했어요. 그러고 나서 대출을 좀 알아보고 있는데, 중견급 직원들이 찾아와 증자를 제안하더라고요. 각자 몇백만 원씩 돈을 모을 테니, 회사가 신주를 발행해 지분을 나눠 달라는 이야기였어요. 회사에서 먼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먼저 나서 주니 무척 고맙더라고요. 직원들 역시 회사를 향한 애정이 적지 않다고 생각해요."

-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됐고 함께할 사람도 얻었습니다. 행복하신가요? 

"그런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이 제가 많이 바뀌었대요. 이전에 매일 스트레스받으며 힘들어하는 모습만 봤는데 지금은 얼굴이 좋아졌대요. 물론 제가 받는 급여는 이전 회사에서 받은 월급의 절반도 안 돼요. 그럼에도 저는 지금 삶에 만족해요." 

- 대표님과 직원들 중에는 기독교인들이 많잖아요. 같은 교회 친구들과 창업을 하기도 했고요. 예배는 어떻게 하나요?

"처음에는 일요일에 쉬었어요. 영업을 하면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니까요. 그런데 매출이 너무 떨어지니까 결국 일요일에도 가게 문을 열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목요일마다 휴게 시간을 활용해서 예배를 열고 있어요. 제가 출석하는 주날개그늘교회 남오성 목사님이 매주 인도해 주시는데, 우리끼리는 '레이지 채플'이라고 불러요.

예배는 누구에게나 다 열려 있어요. 저희뿐 아니라 코로나19 이후 여러 사정 때문에 주일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채플에 참여하고 있거든요. 밤리단길에는 카페와 식당이 정말 많아요. 저희처럼 예배 문제로 고민하는 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개인적으로 레이지 채플이 이분들의 필요와 고민을 해결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 기독교인으로서 이 사업을 통해 이루고 싶은 바가 있나요?

"저는 비즈니스 영역 자체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선한 도구라고 생각해요. 고용을 창출하고 커뮤니티를 이루는 데 이보다 효과적인 게 없거든요. 제가 사는 일산에는 기업이 많지 않아요. 많은 청년이 서울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있죠. 저 역시 그랬고요. 레이지버드F&B가 청년들이 행복하게 일하는 지역 대표 기업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진격의 교인'들을 소개합니다. 성서가 강조하는 가치와 뜻을 실천하기 위해 일상에서 진격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기독교의 역할과 모습을 찾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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