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은 이웃 주민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저는 서울에서도 외곽에 위치한 동네의 청년 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주변 시세보다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임대를 주는 주택인데, 입주자들은 출신지도, 성별도, 직업도 다양합니다.

저는 이곳에 살며 처음으로 '이웃 주민'들을 만났습니다. 주택 운영 주체인 협동조합에서는 '강력한 보안장치보다 서로의 이름과 얼굴을 아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는 취지로, 한 달에 한 번씩 입주자 모임을 열었는데요. 처음에는 이름과 얼굴도 모르던 윗집·옆집 거주자들과 동네 식당 탐방도 하고, 옥상 파티도 열면서 서로를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입주자 모임은 주춤했지만, 느슨한 유대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가스 검침원을 가장한 판매원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을 때 곧바로 톡방에 알려 위험한 일을 방지하기도 했고, 한겨울 수도관이 얼어 베란다에 물이 가득 차거나 벽에서 원인 모를 소음이 들릴 때 함께 머리를 맞대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집을 비울 때 반려동물을 대신 돌봐 주고, 양이 많은 배달 음식이나 생필품을 공유했습니다.

이웃 주민이 있다는 건 혼자 사는 삶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의 질을 높여 주더군요.

이제 저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새로 이사하는 곳이 어떤 공간인지만 생각했다면, 이번에는 집과 연결된 관계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도 많이 남습니다.

같은 지역,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에게 얼굴을 드러내기보다 되도록 마주치지 않는 게 더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낯설기도 합니다. 좋은 이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를 과연 새로운 곳에서도 가꿀 수 있을까요. 쉽게 그려지지는 않지만, 또 바라게 됩니다.

편집국 수진

처치독 리포트

오늘은 참담한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이 일은 어느 목사라도 누군가 눈을 부라리고 바라보면 다 걸릴 수 있는 일이다."

"이미 우리 창피당할 거 다 당했으니까 조금만 더 참아 주셔서 최 목사님이 (감옥) 나와서 후임자 세울 때까지 유예를 해 달라."

"최 목사 본인도 죽을 대로 다 죽었다. 이왕 죽은 분, 우리가 아무리 불효자라도 죽을 때 유언은 그 자녀들이 받아들여서 행한다."

10월 11일 있었던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경기북노회 정기회에서 나온 말들입니다.

교단이 교회 성폭력 사건에 둔감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가해자 편을 드는 말을 현장에서 듣고 있자니 정신이 아찔하더군요. 사건을 제대로 알고 저런 말을 하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어요. 알았어도 문제, 몰랐어도 문제이긴 합니다만. 

ㅍ교회 최 아무개 목사는 여성 청년 5명을 추행해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됐습니다. 피해자들이 사회 법으로 고소하기 전부터 최 목사는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교회를 사임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노회는 사임서를 반려하고 최 목사를 적극 옹호했죠. 1심 판결이 나와도, 2심 판결이 나와도 계속 징계를 미뤘습니다.

이번 정기노회는 최 목사의 유죄판결이 확정된 후 처음 열리는 회의였습니다.

저는 '확정판결이 나왔으니 이제는 징계하지 않을 핑곗거리가 없겠지'라고 생각하고 내심 기대했는데요. 현장은 외려 '치리'라는 말을 꺼내면 매장당할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피해자의 자리는 없었다

노회 목사·장로 30~40명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가해자를 옹호하는 말은 많이 나왔는데, 피해자의 입장을 언급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아무 말이나 뱉어 낸 사람들도 문제지만, 그 말에 침묵으로 동조한 사람들도 똑같아 보이더군요. '저 사람들 중에 피해자를 대변해 줄 사람이 한 명도 없나'라는 생각에 서글펐습니다.

군중심리가 무섭다고, 그 자리에서는 피해자를 생각하는 저 자신이 이상해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쏟아지는 충격적인 말들 사이에서, 불현듯 지난번 취재 때 봤던 피해자들의 민사소송장이 떠올랐습니다. 피해자 2명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 적은 부분입니다.

"원고1은 현재까지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과 함께 자살 충동에 시달릴 정도로 극도의 자기모멸감을 가지며 심각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원고2는 현재까지도 터널이나 지하, 밀폐된 공간에 대한 공포증 증세를 보이고, 악몽에 시달려서 인지 치료를 받으며 하루하루 힘든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정기노회에 모인 목사·장로 중 이러한 피해자들의 처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요? 알았다면 저런 말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겠죠.

피해자의 말을 듣지 않고 그들의 처지에 관심이 없는 것, 가해자의 처지만 불쌍해하고 그를 대변하는 것, 이것이 교회·교단이 성폭력 대응에 실패하는 근본 원인일 것입니다.

교회를 살리는 일이라고?

가해자 최 목사를 옹호하는 목사·장로들의 논리 중 하나는 이랬습니다. '이제 최 목사보다는 ㅍ교회에 초점을 맞춰서 교회를 살리는 결정을 해야 한다.'

현재 ㅍ교회는 피해자들과 그들의 가족, 지지자들은 다 떠난 상태라고 합니다. 최 목사에게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남아 있습니다. 노회는 그들을 위해 최 목사의 당회장권을 지켜 줬습니다.

교회를 살리는 일이랍니다. 한때 같이 신앙생활했던 피해자들과 가족들, 지지자들이 내쫓기듯 떠난 교회, 성범죄자 목사를 맹신하는 신도만 모인 교회, 그런 교회를 살려서 뭘 하고자 하는 걸까요

노회가 교인들을 옳은 방향으로 지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 질문까지 가기가 너무 멀어 보였습니다. 경기북노회 정기회는 한국교회가 너무나 근본적으로 망가져 버렸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 같았습니다.

경기북노회 소식을 전할 때마다 괜히 제가 피해자들에게 미안해집니다. 이번에도 징계하지 않았다고, 노회 결정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느냐고 물어보는 것도 이제 민망한 일입니다. 피해자들에게는 잔인한 일이겠죠. 지난번 인터뷰에서 한 피해자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이 말을 귀담아듣는 것이야말로 진정 교회를 살리는 일일 겁니다.

"실망하거나 슬픈 마음이 들기보다는 역시 경기북노회구나 싶었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지 궁금했습니다.
 

다만 교회가 이렇게까지 부패했다는 것이 세상에 낱낱이 밝혀져 하나님이 아닌 목사를 섬기는 자들이 정신 차리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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