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1일, 독일 칼스루에에 전 세계 사람 3500여 명이 모였다.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1차 총회에 참가하기 위해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서 모인 사람들이었다. 칼스루에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있는 도시다. 나는 이런 도시에서 총회가 열린 걸 보고, WCC 총회가 그만큼 독일의 지지를 얻은 모임일 거라고 해석했다. 2013년 부산에서 열린 제10차 총회에서 한국 기독교인들이 반대 시위를 벌였다는 것을 알았기에 혹시나 이곳에도 반대하는 여론이 있을까 불안했고, 그렇게라도 나 자신을 위로한 것이다. 총회가 열리는 동안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WCC 총회가 독일에 이바지하는 점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걱정이 무색할 만큼 따뜻하고 찬란한 시간이었다.

첫날, 우리는 WCC 총회에 대한 설렘과 영어에 대한 걱정을 가지고 회장에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는 이미 거의 모든 자리가 차 있어서, 일행이 흩어져 좌석 중간중간 하나씩 남아 있는 자리에 앉아야 했다. 운 좋게 앞자리를 찾아 앉자마자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었고, 곧 아그네스 아붐(Agnes Abuom) 총회장의 개회 발언으로 박수와 함께 WCC 제11차 총회가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총회는 아그네스 아붐 총회장과 사무총장대행 요안 사우카(Ioan Sauca)의 보고로 이어졌다. 총회장은 그 자리에 참가한 모든 회원 교회와 우크라이나에서 온 게스트들에게 환영 인사를 전하고, 지난 7년의 발걸음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우리에게 설명했다. 총회장과 사무총장대행의 보고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기후 위기와 창조 세계 회복에 대한 부분을 의미 있게 다뤘다는 것이다. 아붐 총회장은 보고서에 "기후 위기와 창조에 대한 관심"을 비롯한 네 가지 제도적 문제에 집중해 정의와 평화의 순례 여행을 시작했다고 전했고, 요안 사무총장대행은 우리 시대의 도전 과제로 가장 먼저 '기후 정의'를 언급했다. 총회의 시작부터 기후 위기가 언급됐으니, 총회가 끝날 때는 어떤 중요한 결단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화해와 일치에 대한 두 사람의 발표 후 우리는 놀랍게도 독일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다.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Frank-Walter Steinmeier)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WCC 총회의 로고를 설명하며 총회에 기대하는 바를 전했다. 이번 총회의 로고는 원, 길, 십자가, 비둘기 등 4가지 상징으로 구성돼 있다. 그는 각 상징이 의미하는 바를 통해 평화를 향한 강한 열망을 밝히면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환경,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의로운 결단과 행동을 촉구했다. 러시아 동방정교회가 총회에 참가했으니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발언이 적을 수도 있겠다고 추측했던 나는, 독일 대통령의 발언에 놀라는 동시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침묵할 수도 있었던 의제를 드러냈으니 회피하는 것은 어렵겠다 싶었기 때문이다(물론 내 생각이 무색하게도 이후 총회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는 억압과 고통의 현장을 뭉뚱그려 넘어가지 않고 자세히 다뤘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라"는 말로 기조연설을 마쳤다. 그의 연설이 끝나고도 유독 "최선"이라는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1차 총회 포스터. WCC 제11차 총회 한국준비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1차 총회 포스터. WCC 제11차 총회 한국준비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이후 칼스루에가 속한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총리 빈프리트 크레치만(Winfried Kretschmann)의 연설이 이어졌고, 총회에 대한 안내와 성명으로 오리엔테이션이 끝났다. 이번 총회는 8월 31일부터 9월 8일까지 진행됐다. 그 열흘 동안 아침·저녁 기도회와 성경 공부, 여러 회의와 브루넨 워크숍 등으로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처음 참가하는 WCC 총회라 모든 것이 새롭고 인상 깊었지만,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세 가지를 꼽으면 '개회 예배'와 '기후 행진', '한국 에큐메니컬 모임'이다.

개회 예배와 에큐메니컬

앞으로 나에게 에큐메니컬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이가 있다면, WCC 개회 예배에 참석해 보라고 답할 것이다. 이제 다음 총회에 참가하려면 7년을 기다려야 하니, 기록된 영상으로라도 보여 줄 것이다. 개회 예배는 WCC 찬양단의 합창으로 시작됐는데, 첫 곡은 한국 민요 '주께서 왕이시라'였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이 찬양단은 멋진 목소리로 예배를 풍성하게 채웠다. 그야말로 에큐메니컬 한 찬양단이었다. 곧 다른 나라의 찬양도 이어졌고 우리는 더듬더듬, 그러나 신나는 목소리로 함께 찬양했다.

개회 예배는 어느 특정 나라만의 문화와 전통을 따르지 않고, 다양한 나라의 문화와 전통이 비빔밥처럼 어우러져 있었다. 인종·성별·교단·국가를 막론하고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예배를 드리고자 노력한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수어 기도'가 유독 잊히지 않는다. 예배가 워낙 다양한 언어로 진행된 터라, 나는 순서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방송 사고인가 싶었고, 나중에는 내가 순서지를 잘못 봐서 어느새 묵상 시간이 됐나 싶었다. 그러나 고개를 들자 수어로 기도를 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용히 기도를 드렸다. 소리 없는 기도를 마친 이의 눈시울이 붉었다. 기도를 보며 울컥했던 나도 조용히 눈가를 훔쳤다. 첫 노래로 한국 민요를 불렀을 때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한국인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고 환영해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 다른 이들도 예배에서 모국어를 들었을 때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수어 기도를 봤을 때, 장애인도 이 예배에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들도 자신의 언어로 드리는 기도를 보며 내가 느꼈던 편안함과 환대를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회 예배에서 수어 기도를 드리는 맡은 이. 사진 제공 이정규
개회 예배에서 수어 기도를 드리는 맡은 이. 사진 제공 이정규

그 순간 한국의 예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수어는 둘째 치고, 휠체어가 들어올 환경도 안 되는 교회가 대부분이다. 올해 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장애인 이동권 시위로 한차례 나라가 떠들썩했을 때 교회는 어떤 행동을 취했던가. 일부 교회는 지지했으나 대부분 교회가 침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구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다. 또한 누구나 그렇게 되도록 먼저 믿은 자들이 노력해야 한다. 그러므로 누구나 들어올 수 있도록 교회의 문턱을 낮출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소리 없는 기도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영어 수어였을 이날의 기도가 한국어 수어로 우리 예배당에서도 드려질 날을 소망하게 됐다.

개회 예배 설교는 안티오키아그리스정교회 총대주교 요한 10세가 전했다. 그는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과 우물가에서 대화한 본문(요한복음 4장 5~26절)을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후 미국 감리교 청년 앤 제이콥의 고백이 이어졌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 함께 찬양했다. 이때는 마치 축제 같았다. 운 좋게 만난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청년들과 흥겹게 찬양을 부르고, 좁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기쁨과 설렘을 표출했다. 이제 막 시작한 총회가 내내 즐거울 것이라 예감한 순간이었다.

청년들의 당찬 외침, 기후 행진

WCC 총회의 잊지 못할 한 장면으로는 9월 2일 금요일에 진행된 '기후 행진'도 빼놓을 수 없다. 오후 1시 청년들이 모여 시작한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 for future)' 기후 행진은 아래 두 구호에 공감한다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What we want?) 기후 정의!(Climate justice!)"
"언제?(When do you want?) 지금!(Now!)"

정말 쉽고 간단한 구호. 그러나 이 구호의 실천을 위해 들어가는 노력과 고민은 결단코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행진에서는 청년들이 주를 이뤄 외치고, 단상에 올라와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들이 단상 위에서 힘찬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연대의 말을 전하기까지 각자의 현장에서 얼마나 분투했을까 생각하면 고개를 들 수 없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행진이 끝난 뒤에 각자 총대에게, 교회 목사님에게, 누구에게든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고 전하자고 다짐했다. 이 말을 지키지 못한 것이 지금에 와서 후회된다. 이때 곧바로 말하고 한국에 와서도 계속 목소리를 높였다면 올해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총회에 '기후정의위원회'가 생길 수 있었을까. 기장 107회 총회에서 기후정의위원회 신설이 기각됐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WCC에서 공감과 지지를 얻어 성명서도 나왔던 기후 위기 의제가 한국에서는 예산 문제에 밀리는 사안이라는 것을 보며,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기후 행진에 모인 청년들은 '우리는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을 부르며 함께 걸었다. 비록 지금은 우리의 목소리가 크지 않으나 언젠가 이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담긴 선곡이었다. 참가자들은 "그날에(someday)"를 "오늘(today)"로 개사해 부르며 의지를 다졌다. 기후 위기는 세계적이고 복잡한 문제이기에 혼자서는 그 거대함 앞에서 지치기 마련이다. 나 역시도 그럴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행진에 참가하며 든든함을 느꼈다. 같은 목표 아래 뛰는 사람들이 전 세계 도처에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됐다. '언젠가'가 아니라 '오늘' 승리할 수 있도록, 청년 기독교인이자 창조 세계의 일원으로서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후 행진 주최 측에서 나눠 준 피켓을 들고 행진에 참가했다. 사진 제공 이정규
기후 행진 주최 측에서 나눠 준 피켓을 들고 행진에 참가했다. 사진 제공 이정규
독일에서 이뤄진 한국 에큐메니컬 모임

독일에서 이뤄진 한국 에큐메니컬 모임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번 WCC 총회에는 한국인이 약 200명 참가했다고 들었다. 적지 않은 수가 참가한 만큼 총회 곳곳에서 한국인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며칠 동안 우리는 서로를 봐도 못 본 척하거나 슬쩍 눈인사만 하고 지나갔다. 심지어 같은 숙소에 머무는 한국인분들과도 그랬다. 총회에 참가한 다른 외국인 참가자들과는 눈만 마주쳐도 "Where are you from? I'm from South Korea" 하고 말했던 것을 생각하면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아마 다른 교단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서 오히려 말을 걸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아닐까.

그러던 참가자들 사이에 드디어 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대화의 바람은 9월 6일 한국 청년 보세이 에큐메니컬 대학원 설명회를 비롯해, 그날 저녁에 있었던 청년 모임을 통해 시작됐다. 오전에 보세이대학원에 관심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감리회, 기장 청년들이 모여 설명을 듣고 교수님의 인도하에 조별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 일주일 넘게 알지 못했던 서로의 이름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저녁에는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K) 주도로 총회에 참가한 거의 모든 한국 청년이 모여 인사를 나눴다. 우리는 그렇게 총회가 끝나기 이틀 전에야 비로소 한국인 청년이라는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후 나는 한국 여성들 저녁 식사에 참가했다. 이 모임도 교단을 뛰어넘는 연대의 자리였다. 우리는 아는 사람들과만 이야기 나누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섞여 앉았다. 그리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 나누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자리에서 나는 많은 응원과 지지를 받았다. 곧 돌아갈 한국에서의 생활이 든든해지는 느낌이었다.

귀국한 후 주변에서 WCC 총회가 어땠냐고 많이들 물어본다. 그럴 때면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번 총회 경험을 통해 한국교회에 필요한 실천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됐고, 에큐메니컬 유학의 꿈도 꾸게 됐다.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총회 첫날 들은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맴돈다. 둘째 날 주제 회의에서 들은 "신자로서 행하라(Act as a Believer)"는 문장도 잊히지 않는다. 한국에 돌아온 나에게 주어진 일은 '어떻게 최선을 다해 기독교인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다.

이정규 / 도시 빈곤, 젠더, 생태에 관심이 많은 청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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