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를 향한 퀴어한 질문' 큐앤에이(Q&A)가 독일 칼스루에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제 11차 총회에 방문했다. 사진 제공 큐앤에이
'한국교회를 향한 퀴어한 질문' 큐앤에이(Q&A)가 독일 칼스루에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1차 총회에 방문했다. 사진 제공 큐앤에이

지난 8월 29일부터 9월 8일까지, 독일 칼스루에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1차 총회에 참석했다. '한국교회를 향한 퀴어한 질문' 큐앤에이(Q&A·이동환 사무국장)는 WCC 총회에서 열린 다양한 워크숍·예배 모임 중에서도, 기독교 내 성소수자 운동과 관련한 모임들에 주로 참여했다. 그 많은 모임을 주관한 단체는 '신앙의 무지개 순례(Rainbow Pilgrims of Faith)'라는 곳이다.

'신앙의 무지개 순례'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놀랍게도 한국이 있다. 한국이 주축이 되어 모임을 만든 것이라면 참 좋았으련만, 2013년 부산에서 열린 제10차 WCC 총회가 LGBT 기독교 그룹의 유럽포럼이 준비한 워크숍 신청을 '불허'했기 때문에 '신앙의 무지개 순례'가 만들어졌다. 부산 총회의 불허는 명백한 '퇴보'였다. 당시 WCC는 이미 1998년 짐바브웨 하라레 총회를 시작으로, 2006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 총회, 2011년 자메이카 킹스턴 국제 에큐메니컬 평화 소집 회의에 이르기까지 성소수자 의제에 대한 논의를 이어 가고 있었다. 부산 총회는 보수 개신교인들의 '거센 저항'으로 유럽포럼의 워크숍 신청을 무산시키면서 이러한 흐름에 역행했다. 그러나 이렇게 무산된 논의에 대한 반발로 5대륙 350여 교회가 모이는 새로운 국제 모임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 그대로 부산 총회가 세계 기독교 내 성소수자 운동에 판 한번 제대로 깔아 준 셈이 됐다.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이다.

매 워크숍마다 '성소수자 축복기도'로 교단 재판을 받고 있는 이동환 목사의 사례나 '무지개 행동'으로 학교로부터 징계를 받은 장로회신학대학교 학생들의 사례를 전할 때면 그들은 놀라면서도, 내가 2013년 총회가 열린 '그 나라'에서 왔노라고 말하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로서는 짧은 영어 실력으로 어떤 말을 더할 필요 없이 '한국'이라는 단어 하나로 우리 상황을 전할 수 있었으니 기쁜(?) 일이었다마는, 이야기를 전하는 내내 '앞으로 8년 후인 제12차 총회에서는 국내 피해 사례를 늘어놓는 것 말고 무슨 이야기를 더 전하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궁금증이라기보다는 책임감이었다. '다음 총회에서 나는 얼마만큼 변화된 한국교회를 전할 수 있을까.'

9월 1일 열린 '성과 성서 다시 살펴보기(revisiting Human sexuality and the Bible)' 워크숍에서는 각자의 자리에서 경험한 신앙 여정에 대한 발표를 듣고 참가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조별로 나누는 기회가 있었다.

캐나다연합교회 사무총장 마이클 블레어 목사(사진 오른쪽)가 워크숍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제공 큐앤에이
캐나다연합교회 사무총장 마이클 블레어 목사(사진 오른쪽)가 워크숍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제공 큐앤에이

워크숍 발표자였던 마이클 블레어 목사(캐나다연합교회 사무총장)는 보수적인 교회에서 게이 당사자로서 성경을 읽는 경험이 자신을 해방케 하는 여정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우리가 실수하지 않는 창조주와 관계 맺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며 기뻐하십니다"라고 말하면서, 밥 말리(Bob Marley)의 'Redemption Song' 가사처럼 자유의 노래, 구원의 노래를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독일의 청년 조슈아 사우어바인(Joshua Sauerwein)은 신앙인으로서 자신을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었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이 자신의 손을 놓지 않았음을 깨달았다는 고백을 나눴다.

조별 나눔 시간에는 한국에서 기독교 내 성소수자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나의 여정을 전했다. 목회자를 꿈꾸는 신학생으로서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일이 솔직히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1~2년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문득문득 '나는 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까', '나는 정말 한국에서 목회자가 될 수 있을까' 스스로 묻게 된다는 고민을 꺼내 놓았다. 시간이 길지 않아 말을 끝맺지 못하고 고민 토로에 그쳤던 것이 내심 아쉬웠는데, 자리를 옮기려 하니 나와 같은 조에 있던 러시아정교회 사제가 나를 붙잡았다. 그는 조별 모임 내내 솔직히 자신의 신앙 여정에서 오늘의 논의는 쉽지 않은 문제고, 정리가 되지 않는다고 했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나를 붙잡고 좋은 목회자가 될 수 있을 거라며 격려의 말을 전하고는 짧게 기도를 해 줬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한국 개신교 안에서 성소수자 운동을 하는 신학생에게 축복기도를 하는 러시아정교회 사제. WCC 총회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그림이기에 이 장면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실은 내가 원하는 것이, 곳곳에 있을 퀴어 크리스천들이 원하는 것이, 큰 게 아니라 이런 인정과 존중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쉽지 않다 말하면서도 워크숍에 찾아온 마음, 정리되지 않는다 말하면서도 내게 축복을 전해 준 그 마음을 곱씹으면서, 목회자가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해, 신앙인이 지녀야 할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이번 WCC 총회 주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세상을 화해와 일치로 이끄신다'였다. 그리스도의 사랑. 그 사랑이 무엇이며 어떤 모양과 색깔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들 저마다의 고백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무슨 모양의 어떤 색깔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리든, 우리가 그리스도가 마련한 잔칫상에 둘러앉아 맛있고 든든한 식사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게 전부라는 생각이 든다.

무슨 모양의 어떤 색깔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리든, 우리가 그리스도가 마련한 잔칫상에 둘러앉아 맛있고 든든한 식사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게 전부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 제공 큐앤에이
무슨 모양의 어떤 색깔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리든, 우리가 그리스도가 마련한 잔칫상에 둘러앉아 맛있고 든든한 식사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게 전부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 제공 큐앤에이

워크숍 끝에 한 청중은 '교회의 더딘 변화를 우리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교회에 힘 쏟는 일을 포기하는 게 더 낫지 않은지' 물었다. 그의 질문을 들으며,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여전히 커다란 막막함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워크숍 사회자였던 주디스 코체(Judith Kotzé) 목사는 질문자의 막막함에 동의하면서도 "우리는 순례의 길을 걸으며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기에 발을 맞춰 걸을 필요가 있지만, 침묵은 폭력"이라는 점을 강조해 말했다. 그러니 힘들어도 이 순례의 길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주디스 목사의 이 말이 WCC 총회에 참가하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성소수자 의제는 WCC의 주된 의제는 아니다. 대표 의제로 선정된 적도 없으며, 선언문에 해당 내용이 들어간 적도 없다. 여전히 많은 나라, 많은 교단의 법에는 성소수자 차별 조항이 수록돼 있다. 그러니 아직 갈 길이 멀다. 여느 순례길이 그러하듯 멀고 험하다. 8년 후 내가 WCC 총회에 참여하게 된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그곳에 참여하게 될까.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내가 들고 갈 한국의 이야기는 또 어떤 것일까. 그것도 잘 모르겠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늘 내가 예상할 수 없는 방식이어서 불안하고 막막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가 기가 막히게 일하신다는 것과 내가 그 속에서 즐거움을 느껴 왔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바라기는 제12차 WCC 총회에서는 '신앙의 무지개 순례'에 동참하는 이가 더 늘어나 '자유의 노래', '구원의 노래'가 더 크게 더 오래 울려 퍼질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노래가 믿음으로 가는 무지개 순례길을 더욱 흥겹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Won't you help to sing these songs of freedom?
'Cause all I ever have Redemption songs"
- 밥 말리(Bob Marley), 'Redemption song(구원의 노래)'

김유미 / '한국교회를 향한 퀴어한 질문' 큐앤에이(Q&A) 간사.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