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적·가부장적 문화에 저항하는 교회 여성 네트워크 '움트다(WUMTDA)' 활동가들이 '여성주의 예배'를 주제로 글을 연재합니다. 여성주의 예배 이론을 비롯해 교회 안팎의 다양한 현장 경험, 여성들의 연대 이야기를 나눕니다. '예배, 여성과 움트다'는 격주에 한 편씩 발행됩니다. - 편집자 주
에큐메니컬이 뭐냐고 묻는 당신에게

신학대학원 1학년 여름 성폭력을 겪고, 다음 해 도망치듯 떠난 미국 교환학생 시절 처음으로 '에큐메니컬'을 접했다. GIT 프로그램으로 코스타리카에서 한 달, Face to Face 프로그램으로 인도에서 보낸 두 달은 삶의 여정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는 경험이었다. 번역되지 않는 낯선 단어 '에큐메니컬'이 아니었다면 과연 지금까지 신학하는 여성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여성이 신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가늠하지 않고 덤벙덤벙 시작했던 일이었기에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에큐메니컬 네트워크를 통해 만난 전 세계 여성 신학자·목회자들은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이미 가장 큰 위로다. 길고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때면, 언어를 뛰어넘어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계가 얼마나 여성들을 고단하게 하는지, 그리고 왜 아직도 상황이 여전한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한다. 나에게 에큐메니컬은 함께 분노하고, 함께 웃고 울다가, 결국 서로를 부둥켜안는 잔치와도 같다.

GIT 에큐메니컬 모임 당시 '한국의 여성신학'에 대해 발표한 재이움(사진 위), GIT 에큐메니컬 예배 당시 모습(사진 아래). 사진 제공 재이움
GIT 에큐메니컬 모임 당시 '한국의 여성신학'에 대해 발표한 재이움(사진 위), GIT 에큐메니컬 예배 당시 모습(사진 아래). 사진 제공 재이움
정의로운 여남 공동체 사전 대회

제11차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가 8월 31일부터 9월 9일까지 독일 칼스루에에서 열리고 있다. 총회에 앞서 자주 소외당해 온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한 네 가지 주제로 사전 대회가 열렸다. 청년, 장애인, 원(선)주민, 여성과 남성. 그중 하나인 여남 사전 대회는 지난 WCC 부산 총회부터 남성과 함께하는 사전 대회로 열렸다. 작년 겨울부터 시작된 사전 대회 준비 모임은 해를 바꾸고 계절을 바꾸면서 온라인으로 계속 이어졌다. 사전 대회 개막을 앞두고 몇 주간은 하루에도 수십 통씩 오고 가는 메일과 연달아 이어지는 온라인 모임 때문에 여념이 없었다. 준비팀에 들어오면서, 늘 참석만 했던 에큐메니컬 모임들이 얼마나 보이지 않는 수많은 수고들로 이루어졌는지를 처음 깨닫고 정말 놀랐다. 모든 것이 제한적이고 불투명한 상황에서 여러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준비했지만, 정작 사전 대회를 시작하고 보니 역시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에큐메니컬 여성주의 예배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예배가 아니라 의외로 가장 기본적인 성경 공부에서 나왔다. 남아공 출신의 신약학자 사라지니와 브라질 출신의 성서학자 파울로, 그리고 조직신학자 조나단이 함께 인도한 성경 공부는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아주 새로운 방식이었다. 빌립과 에티오피아 내시의 이야기를 담은 사도행전 8장 26~39절이 본문 말씀이었다. 먼저, 앉아 있는 자리에서 2~3명씩 짝을 지어 소그룹을 이루고 가장 기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했다. 성경이 각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점심 식사 후 바로 시작된 성경 공부였기에 식곤증에 졸만도 한데, 소그룹 자체가 주는 역동성 때문인지 그 누구도 딴청을 부리지 못했다. 소그룹별 이야기가 길어질 때면 파울로가 선창을 해서 "Take oh take me as I am"1)로 마무리했다. 성경 본문도 아프리카 한 지역의 방언으로 읽고, 그 뒤에 영어로 읽었다. 본문을 읽고 난 뒤 소그룹별로 본문을 읽으며 떠오르는 주제들을 나눴다. 가장 놀라웠던 언급은 익명으로 언급된 내시만큼이나 이름을 갖고 있는 여성 왕이었던 간다게에 대한 우리들의 무시였다. 그리고 남성성의 거세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내시에 대한 재발견이었다.

WCC 여남 사전 대회 당시 모습. 사진 제공 재이움
WCC 여남 사전 대회 당시 모습. 사진 제공 재이움

마지막은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포용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정말 많은 답변이 쏟아져 나와 진행팀이 마이크를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신체의 온전성이 없다는 이유로 배제되거나, 교단·국적·종교·인종·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내쳐지는 상황. 아프지만 곱씹어 봐야 할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졌다.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찬에서 거절당하는 상황을 나누던 중, 남편이 목사인 소그룹 멤버 한 명은 세례받지 않았던 방문객에게도 남편이 성찬의 떡과 잔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누구라도 주님의 식탁에 초대받은 사람을 돌려보내면 안 된다고 설명을 덧붙이더라는 얘기를 전해 줬다. 분명히 초기 교회에서는 즐거운 잔치였고 동시에 엄숙한 기념이었을 성찬의 자리가 누군가에게는 세례라는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을 접하는 자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여성 안수 문제에 있어서도 이미 안수라는 벽이 사라졌으니 차별도 없지 않냐고 반문하는 목사님들이 오버랩됐다. 성찬과 세례를 집례할 수 있는 부서가 아닌 교육부에 배정해 놓고, 여성 사역자들이 제대로 훈련받지 못하고 준비되지 않았다고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지. 두 손, 두 발을 다 묶어 놓고 당신들은 왜 우리에게 뛰지 못하느냐고 묻는가.

'로멜라 칼라'와 움트다

총회가 공식적으로 개막된 8월 마지막 날. 등록처에 오고 가는 수많은 교단과 교파의 사람들 속에서 대부분의 남성 목회자들이 클러지 셔츠와 예복을 입고 등장했다. 인생 한 컷을 위해 의상을 차려입고 카메라 앞에 서는 수많은 사람 속에 움트다 멤버들이 '로멜라 칼라'를 하고서 살아 움직이는 예배 그 자체가 됐다. '로멜라 칼라'는, 파키스탄 장로교회에서 두 번째로 안수받은 여성이지만 강단에서 설교는 할 수 없었던 로멜라가 처음 만든 칼라. 기존의 '로만 칼라'가 대부분 셔츠와 일체형인 반면, 로멜라 칼라는 목만 가볍게 감싸는 형태로 만들어져 회중 가운데서도 본인이 안수받은 여성임을 인지할 수 있도록 했다. 연대와 자매애의 의미로, 움트다의 여성 목회자들이 총회가 열리는 칼스루에 행사장을 하루 종일 누볐다.

독일 칼스루에에서 열린 WCC 총회에서 '로멜라 칼라'를 착용한 재이움(사진 가운데). 사진 제공 재이움
독일 칼스루에에서 열린 WCC 총회에서 '로멜라 칼라'를 착용한 재이움(사진 가운데). 사진 제공 재이움

정말 놀랍게도 여성뿐만 아니라 수많은 남성 목회자가 우리를 찾아와서 물었다. 난생 처음 보는 그 실용적인 칼라는 어디에서 살 수 있느냐고. 로멜라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속으로 되뇌었다. 하나님이 주신 여성 안의 창조성은 그 어디에서도 살 수 없을 거라고. 꽉 막힌 클러지 셔츠를 여시고, 그 작은 틈새로 서로의 다름을 놀랍게 이어 붙이는 하나님의 방식에 감탄을 했다. 정의로운 여남 공동체, 찾았다!

재이움 / 독일에서 뜨개질을, 한국에서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운 '들을 귀 있는 자'.

1) 이 찬양의 전체 가사는 다음과 같다. Take oh take me as I am / Summon up what I shall be / Set your seal upon my heart / And live i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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