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시작된 교회 안의 우상숭배

2005년 5월, 홍콩에서 로잔 지도자 모임이 열렸다. 로잔 운동(Lausanne Movement)은 빌리 그레이엄과 존 스토트 등이 시작한 복음주의 선교 운동으로, 필자는 2004년 태국 파타야에서 열린 로잔 포럼에서 동아시아 지역 총무로 선임돼 이 모임에 참석한 터였다. 5년 뒤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릴 2010년 제3차 로잔 대회를 준비하는 첫 모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일주일간 함께 숙소를 쓴 분이 로잔 신학위원장으로 갓 선임된 크리스토퍼 라이트였다.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 <하나님의 선교>(IVP)가 2006년에 출간됐으니, 당시에는 책을 편집하는 단계였을 것이다. 사실 그때 나는 그에 관해 잘 알지 못했다. 2000년 미국 애즈베리 선교대학원에서 학위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2년 동안 신학교에서 가르치다가 케냐 나이로비에서 선교 사역을 마치고 학교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임 선교학자였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J. H. Wright). 존더반 유튜브 채널 갈무리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J. H. Wright). 존더반 유튜브 채널 갈무리

회의 일정을 소화하느라 분주한 중에도, 저녁 모임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라이트 박사와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가 인도와 영국에서 사역했던 이야기들이 인상 깊었다. 당시 나는 레슬리 뉴비긴의 서구 기독교 위기에 관한 담론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라이트 박사가 <하나님의 선교> 출판을 언급하며 서구 기독교의 우상숭배와 제자도에 관해 강조했고, 그 이래로 우리는 선교학적 공통분모를 형성했다. 특히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에 관한 그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그는 구약성서학자답게 치밀한 성경 해석을 토대로 그 해석을 하나님의 선교와 접목했는데, 이러한 그의 신학적·선교학적 지향점은 탁월하고 신선했다.

그후 또 다른 로잔 회의에서 라이트 박사는 내게 갓 출판된 <하나님의 선교> 원서를 선물하며 홍콩에서의 만남을 상기하게 해 줬고, 제3차 로잔 대회 준비 모임에서 만났을 때는 <하나님의 선교>의 후속편인 <하나님 백성의 선교>(IVP) 열 권을 건네며, 한국교회는 서구 교회가 저지른 과오를 밟지 않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그러나 그때 이미 한국교회에 내재하거나 스며든 교묘한 우상들은 교회 생태계를 파괴하며 미묘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었고,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너희는 누구인가?
너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러한 우리 현실에서,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이것이 너희 신이다 - 우상숭배 시대에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길>(IVP)는 그가 전 세계 교회에 던지는 진지한 도전이다. 더욱이 이 책은 한국교회가 지금껏 추구해 온 핵심 가치와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다른 말로 하면, "너희는 누구인가? 너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즉, 이 책은 우상숭배의 본질과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지 규명한다.

<이것이 너희 신이다 - 우상숭배 시대에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길> / 크리스토퍼 라이트 지음 / 한화룡 옮김 / IVP 펴냄 / 256쪽 / 1만 5000원
<이것이 너희 신이다 - 우상숭배 시대에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길> / 크리스토퍼 라이트 지음 / 한화룡 옮김 / IVP 펴냄 / 256쪽 / 1만 5000원

이 책 1부는 다종교 국가와 민족들에게 둘러싸인 외로운 섬 같은 이스라엘이 유일하신 야웨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려는 고투와 좌절 그리고 실패의 이야기를 담았다. 또한, 라이트는 하나님을 열방에 알리는 과업을 부여받은 이스라엘과 신약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선교적 백성으로서 살아야 하는지 목회적‧윤리적 관점에서 피력한다. 우상들이 "야웨와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것을 숭배하는 자들과 관련해서는 그 무엇"이라는 라이트의 주장은, 인간의 삶과 연관된 실재(reality)의 문제를 가리킨다(23~24쪽). 바로 "그 무엇"이 인간이 고안한 산물, 즉 마음으로 새기고 손으로 주조한 "만들어진 신"(God Delusion)이 아닌가? 문제는 인간이 그 무엇인가에 집착하고 그것을 섬기는 일이다. 그것을 섬길 때 모든 창조질서의 붕괴라는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32쪽).

라이트는 <하나님의 선교>에서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선교적 현상임을 역설했는데, 그의 이런 주장은 '선교적 성경 해석학'의 근간을 형성하고, 로잔 케이프타운 서약의 기조를 이룬다. 그는 제3차 로잔 대회에서 신학위원장으로서 대회 문서인 <케이프타운 서약>(IVP)의 입안을 주도했다. 이 서약 2부 5장(그리스도의 교회가 겸손과 정직과 단순성을 회복하기)은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가 하나님의 새로운 인류로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주장의 핵심은 성적 우상, 권력의 우상, 성공의 우상, 탐욕의 우상이라는 하나님 백성의 우상숭배다. 이 네 가지 우상숭배의 형태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 준다. 본래 우상과 싸워 유일신 하나님만을 섬기며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이라면, 하나님 백성의 순결한 삶은 성경적 선교를 추진하는 동력이다. "성경적 윤리(삶)가 없다면, 성경적 선교도 없다." 성경적 관점에서, 한국교회가 위기에 처한 원인이 바로 이 부분과 연결된다. 한국교회가 자랑해 온 교회 성장 방법, 전도 프로그램, 새벽 기도, 해외 선교 등 이 모든 것은 교회와 교파 확장을 위해 동원된 기제들이었고, 정작 하나님의 이름을 열방에 알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르는 제자도와는 무관하게 우리 안에 내재하는 욕망을 충족하는 도구였다.

하나님 백성의 거룩하고 구별된 삶이 하나님의 선교와 연관된 것이라는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주장은 그의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그래서 그는 "우상숭배의 위험에 대해 가장 많은 경고가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 백성이다"라고 통렬하게 지적한다(107쪽).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필요한 것은 교회의 크기와 숫자, 그리고 사람들을 유인하는 다양하고 효율적인 통제 프로그램이 아니다. 하나님 백성이 열방에게 보여 줘야 할 시범적인 거룩한 삶이 필요하다. 라이트는 구약 예언자적 전통에 서서 기독교 역사를 반성하며, 오늘날 공적 영역의 중심인 정치적·경제적 분야에서 자행되는 우상숭배의 양상들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구약의 국가적 우상숭배는 서구 "기독교 왕국"의 유산과 유사한 양상을 띤다. 그것은 교회 밖의 우상숭배라기보다 교회 안에 내재한 요인들인 혼합주의와 세속 권력과의 타협이었다. 구약성경이 묘사하는 제도적 폭력, 빈곤과 불평등, 국수주의와 전체주의, 성적 혼란과 가족 해체, 창조 세계의 황폐화, 진실을 은폐하는 상대주의의 허구적 날조는 오늘날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철저하게 파괴한다.

우상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

이 책은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불편하고 읽기 꺼림칙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예언자적이고 대항문화적이며 대조 사회적인 차원을 담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 선교의 영역은 '사도'와 '예언자', '복음 전도자'와 '목사'와 '교사'라고 바울은 말한다(엡 4:11-12). 슬프게도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영역은 주로 '목사'와 '교사' 직역에 국한했다. 복음 전도자의 기능은 주로 선교 단체들과 선교사들 혹은 지역 교회 전도 전문가들이 담당했다. 한국교회가 상실한 기독교 신앙의 핵심 영역과 소명은 세상으로 보냄받은 하나님 백성이라는 '사도적 차원'과, 깨지고 분열된 세상의 지배 문화적인 우상의 정체를 폭로하고 변혁하는 '예언자적 차원'이다. 신앙과 삶이 분리되고 영성 형성과 성경적 형성이 분리돼 '번영 복음'이라는 반쪽 복음이 한국교회의 삶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라이트는 서양 문명이 빠르게 붕괴하는 이유를 서양 기독교가 "혼합주의적이고 우상숭배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데다가 우리 주위 문화의 우상숭배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148~149쪽). 구약을 통해 본 서양의 우상숭배적인 양상은 "번영의 우상, 국가적 자부심의 우상, 자기 예찬의 우상"이라고 폭로하는 라이트의 분석은 한국교회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실로 한국 기독교는 바벨론 포로기로 들어가는 진입점이나 포로 상태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우상숭배에 탐닉하는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의 선택이며 책임이다. 이 책의 3부인 '우상숭배하는 세상 속의 하나님 백성'은 '형성'(formation)과 '개혁'(reformation), 그리고 '변혁'(transformation)을 지향하는 제자도를 언급한다. 이 점에서 교회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불변하는 복음과의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지속적인 회심'(continuing conversion)의 자리로 나아가는 선교적 백성으로서의 위치를 확인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선교적 성경 해석학의 관점에서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성경을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의 거대 서사(이야기와 드라마)로 읽는다. 그 이야기가 우리의 삶을 형성하고 개혁하며 변혁하는 근거가 되므로, 우리는 하나님나라를 구하고 맛보며 궁극적으로 개인과 사회와 창조 세계를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주장 역시, 복음 전도와 가르침, 동정(긍휼)과 정의, 그리고 창조 세계 돌봄이라는 총체적 차원과 연관해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그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손으로 만든 우상과 우리의 헛되고 덧없는 욕망이 구성한 우상과 싸움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길이다.

제4차 로잔 대회를 준비하며 한국로잔위원회는 2021년 10월 로잔 목회자 콘퍼런스에 크리스토퍼 라이트를 기조 강연자로 초청하여 이 책 3부의 내용을 경청했다. 그의 선교적 해석학은 "십자가 중심의 선교"로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선교의 불가피한 대가"라는 그의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따라서 이 책의 결론에서 라이트가 언급한 대로, 깨어지고 분열돼 상처로 가득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 백성의 예언자적 애통함이 세상을 향한 사랑으로 승화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케 하시는"(고후 5:19) 유일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원한 소망의 닻을 내리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우리 모두 소망해야 할 것이다.

2024년은 로잔 운동 5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서, 한국에서 열리는 제4차 로잔 대회는 한국교회의 영적 갱신과 성경적 갱신을 위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공통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로잔 운동의 비전과 로잔 신학의 큰 축을 형성한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신학적 견해, 특히 우상숭배에 대한 그의 탁월한 분석과 평가와 전망은 우리에게 큰 도전과 회심의 자리로 나아가게 만들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최형근 / 서울신학대학교 선교학 교수, 한국로잔위원회 총무, 제4차 로잔대회 준비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선교사멤버케어네트워크(KMCN) 대표, 하트스트림선교사멤버케어센터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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