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적 바울은 누구인가

'역사적 바울'은 누구인가? 우리는 신약성서를 통해 그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고,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를 꽤 열정적으로 여행했으며, 곳곳에서 예수의 부활과 복음을 전했고, 덕분에 감옥살이를 꽤 많이 해 봤다는 것 등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바울의 신상 정보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 게다가 현대인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으로는 그 의미를 포착하기도 쉽지 않다. 고대인과 현대인은 결코 같은 사람일 수 없지만, 우리는 너무도 쉽게 그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바울을 제대로 구성하려면 스텐달의 말대로 "현대의 사고방식을 해석의 전제로 삼으면 안 된다". 스텐달 이래로 바울 연구자들은 이러한 대명제 아래 바울을 해석해 왔고, 이는 어느 정도 성공했으며 또 어느 정도는 앞서 말한 실수에 빠지기를 반복했다.

파울라 프레드릭슨은 <바울, 이교도의 사도>(학영)에서 스텐달의 명제를 철저하게 따르며 역사적 바울을 재구성하고 있다. 바울이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울이 감옥 생활을 자주 했다는 것에서 우리는 무엇을 포착해 내야 하는가? 프레드릭슨은 '박해'와 '묵시 종말(파루시아)'라는 키워드로 이 질문에 답한다.

<바울, 이교도의 사도> / 파울라 프레드릭슨 지음 / 정동현 옮김 / 학영 펴냄 / 480쪽 / 3만 2000원
<바울, 이교도의 사도> / 파울라 프레드릭슨 지음 / 정동현 옮김 / 학영 펴냄 / 480쪽 / 3만 2000원
2. 현대인은 이해하기 힘든 고대인의 종교 생활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제목부터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바울 이교도의 사도(Paul The Pagans' Apostle)'라니, 왜 '이방인(Gentiles)'이 아니고 '이교도(Pagans)'인가? 프레드릭슨은 내가 이 두 단어를 구분하는 시점에서 이미 지극히 현대적인 시선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할 것이다. 프레드릭슨이 재구성하는 역사적 바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어째서 바울을 '이교도'의 사도로 묘사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는 이방인의 사도인가? 이교도의 사도인가? 아니면 그 둘 모두를 향한 사도인가?

고대, 특별히 로마 시대에는 종교(특정한 가치·신앙이 아닌 제의 체계를 포함한 실천)와 민족(더 작게는 혈족 혹은 가족)과 도시(삶의 터전이 지닌 어떤 사회질서)가 하나의 개념이었다. 당대 아테네 시민은 '당연히' 아테나를 모셨고, 아프로디시아스 시민은 아프로디테에게 경외를 표현하는 것이 마땅했다. 아마 로마인들은 시조의 아버지인 마르스에게 존경과 헌신을 바쳤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대인이라면 아무리 고국을 떠나 이국에서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라고 해도 매우 유대적인 신 야훼(그는 안식일을 제정하고 지킬 정도로 유대적이다)를 섬기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즉 민족-종교-도시가 개념적으로 엉켜 한 덩어리를 이뤘던 고대 로마 사회에서 이교도(Pagans)와 이방인(Gentiles)은 사실상 동의어였다.

그렇다면 고대인들의 종교성은 배타적이었을까? 하나의 민족은 오직 하나의 신만 섬겼을까? 이를테면 로마에 사는 귀족 후예는 시리아 신비 종교의 신이나 이집트 오시리스는 섬기지 않았을까? 프레드릭슨은 꼭 그렇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고대인들은 자신의 '주신'에게 마땅히 돌려야 할 의무를 다한다면, 그 외 다른 신들에게도 경외감을 표할 수 있었다. 이는 유대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프레드릭슨은 당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이웃 민족의 만신전에 어느 정도 존중을 표했을 뿐만 아니라 그 행위를 옹호했다고 말한다(102쪽). 그렇다고 그들이 '배교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주신에게 바쳐야 할 의무를 충분히 다하지 않았음에도 다른 신을 섬긴다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행위로 여겨졌다.

이러한 고대 지중해 세계의 특징을 명확하게 관찰할 수 있는 최전선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회당이었다. 당대 회당에는 많은 이교도-이방인이 유대인의 종교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신-경외자들'이라고 불린 이들은, 회당에 후원금을 내거나 유대 전통·관습을 생활양식으로 채택하는 등 유대인-유다이즘에 매우 호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개중에는 황제 숭배 종교의 성직자도 있었고, 제우스 라라시오스의 성직자를 남편으로 둔 여성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이교도이자 이방인이었다. 따라서 신-경외자들은 율법의 지도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전통을 존중하고 회당 행사에 참여하면서도 그들의 민족적 특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3. 저 불순분자의 입을 막아라

바울의 편지들을 보면 그가 이교도-이방인들에게 "너희들이 주신들에게 바쳤던 경배를 중지하되, 그럼에도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으로서 배타적으로 예수 운동에만 헌신하라"고 선포해 왔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큰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우리에는 이를 익숙한 개념인 '개종'으로 치환하기 쉽지만, 당대 로마 사회에서 '개종'은 애초에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어색한 개념이었다(191쪽).

이교도-이방인이 유대인이 되겠다고 할례를 받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동안 자신이 소속돼 있던 가족과 민족 공동체를 떠나 '배반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는 자신이 대대로 물려받았던 주신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면서 그 신의 분노를 사는 일이기도 했다. 때문에 할례를 받은 이방인은 다른 이교도들에게 강도 높은 비판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주신을 저버리지 않아도 회당에 참여하고 야훼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는데 왜 굳이 할례를 받느냐?" 하고 말이다. 그래도 이것은 당시 관습에 따라 그래도 납득 가능한 일이었다. 할례받은 이방인들의 존재는 불쾌하고 기이했지만, 민족과 종교를 일치시키는 당시 관습에 따라 그들을 더 이상 이교도-이방인이 아닌 좀 특수한 형태의 유대인으로 여기면 그만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바울이 전하는 메시지에 담긴 분란의 씨앗은 더 심각했다. 바울은 예수 운동에 참여하려는 이교도들에게 그들의 주신들에게 바치는 제의를 금지한다. 아마 여기까지는 이교도-이방인이나 유대인들도 이해 가능한 영역이었을 것이다. 바울이 이들에게 할례만 줬다면 말이다. 그러나 바울은 할례를 받지 말라고 했다. 자기 민족의 주신을 떠나 유대 민족 신만을 배타적으로 섬기면서도 유대인이 되지는 말라(할례를 받지 말라)는 이 이율배반적인 명령은,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사회에 혼란을 초래하는 정체불명의 불순분자들을 양산하는 일이었다.

그들의 존재는 민족과 민족, 도시와 도시로 나뉘어 서로 공존하던 사회질서를 무너뜨릴 것이다. 또한 신들은 자신들의 몫인 경배를 받지 못해 매우 분노할 것이다. 신들의 분노로 나일강이 범람하지 않거나 티베르강이 범람할 것이다(217쪽). 따라서 당시 로마 사회 입장에서는 프레드릭슨이 '탈이교적 이교도'라 부르는 '예수 운동에 투신한 이교도들'을 잡아서 어떻게든 다시 그들의 주신에게 경배를 하게 하든지, 아니면 아예 할례를 받고 유대인이 '되게' 하든지 해야 했다. 탈이교적 이교도들을 자꾸 생산(?)하는 바울의 입을 막아야 했다.

나아가 유대인 회당들도 바울의 분탕질 때문에 자신들이 도매급으로 취급받게 됐으니 어서 바울의 활동을 중지시키고 유대인 회당이 사회질서에 부합하는 곳임을 입증해야 했다. 모두가 바울의 입을 막고 싶어 했다. 로마 세계의 많은 이교도들, 같은 유대인들, 숱한 이교의 신들이 모두 분노했으며, 할례를 받지 않고 예수를 따르라고 선언하는 바울의 입을 막기 위해 그를 박해했다. 프레드릭슨이 밝히는 박해의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예수를 따름은 세상에서 단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존재로 탈바꿈하는 일이다. 예수를 따르는 이들은 그로 인해 세상의 미움을 산다.

4. 할례를 멈춰야 '그날'이 속히 온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바울은 어째서 이러한 반사회적 메시지를 긴급하고 강력하게 전파해야 할 필요를 느꼈을까? 그를 추동하는 힘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프레드릭슨은 바울이 가진 '묵시 종말'의 비전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울은 묵시 종말의 희망을 품은 사람이며, 그가 가진 세계관이야말로 역사적 바울이 누구인가를 설명할 수 있는 큰 특징 중 하나다.

바울의 세계관인 묵시 종말론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구약성서를 살펴봐야 한다. 구약성서 속 세상에는 야훼가 특별히 사랑하는 '이스라엘'과 다른 엘로힘들을 섬기는 '열방'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모두 노아의 후손으로 사실상 하나의 조상을 공유하는 한 민족인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리고 각자의 신들에 따라 분열되어 지금의 열두지파 이스라엘 및 열방이 됐다. 이런 분열은 왕국의 멸망과 유배로 더욱 가속화했는데, 이스라엘과 열방이 분열된 것을 넘어 이스라엘 내 열두지파마저 시온과 예루살렘 바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러한 유배 경험은 유대인들에게 고난과 징계으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위로로 인식되기도 했다. 분열과 고난은 곧 이스라엘이 야훼에게 선택받았다는 징표다(73쪽). 지금은 이스라엘이 야훼에게 충실하지 못해 징벌을 받았지만, 이 징벌은 이스라엘이 다시 야훼에게 돌아와 헌신하도록 만들 것이다. 이사야 전승은 이스라엘이 다시 야훼에게 돌아오는 날에 벌어질 일들을 구체적으로 전달한다(사 11:10-16, 25:6, 25:8, 26:19, 66:18). 야훼는 이스라엘을 다시 불러모아 규합하실 것이다. '그날'이 오면 이스라엘 열두지파가 규합될 뿐만 아니라 같은 노아의 후손인 모든 '열방'도 시온에 모여 야훼를 경배하게 될 것이다. 이날에는 야훼의 영이 모든 육체에 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에는 죽은 자들도 부활한다. 야훼가 사망을 완전히 굴복시키고 승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열방들이 시온에 모여 이스라엘과 함께 야훼를 경배한다는 '그날'의 대목을 살펴봐야 한다. '그날'이야말로 묵시 종말적 비전이 희망하는 종말의 날이다. 여기서 이 열방들은 어디까지나 노아의 후손으로써 이스라엘은 아닌 '이방인' 신분으로 야훼를 경배한다. 이 이교도들은 각자의 신들을 섬기고 있었으나 그 신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야훼의 산을 찾아온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이방인'으로서다. 이러한 확신과 비전을 갖게 되자, 바울은 그동안 자신이 봐 왔던 디아스포라 회당에 찾아오는 수많은 이교도-이방인을 떠올렸다. 이교도-이방인들이 야훼를 경외하고자 회당에 찾아오는 그 장면에서 바울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강한 확신이 스쳤을 것이 분명하다. "그날이 이제 정말 곧 오겠구나!"

이러한 확신은 바울이 예수의 부활을 경험하고 나서 더욱 강해졌다. 예수의 부활은 종말의 날 벌어지는 사망의 패퇴와 죽은 자의 부활의 모본이다. 예수의 부활이야말로 곧 예언자 전승이 말해 온 종말의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다. 예수의 파루시아를 기다리는 지금, 많은 이교도-이방인이 회당으로 찾아와 야훼를 섬기기를 원하고 있으며,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듣고 예수 운동에 참여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이 종말의 때가 아니라면 언제란 말인가? 이런 강한 확신 속에서 바울은 종말의 마지막을 완성할 예수의 파루시아를 오매불망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오늘 내일이면 올 줄 알았던 예수의 파루시아가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었다. 바울은 이상함을 느꼈다. 예수는 왜 재림하지 않는가? 도대체 예수는 언제 재림하는가? 그가 찾아낸 파루시아 지연의 원인은 바로 '이방인이 이방인으로서' 야훼를 섬기지 않고 할례를 받아 '유대인'이 된다는 데 있었다. 예언자들은 이방인이 이방인으로서 유대인들의 회복에 참여하고 야훼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종말의 때에 이방인의 몫은 야훼의 영을 받아 야훼를 섬기고 이스라엘의 회복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인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는 일은 불필요하다. 그것은 유대인의 몫이다. 할례를 받는 것도, 율법을 지키는 것도 모두 유대인 고유의 몫이다. 따라서 바울로서는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받지 말라고 강력하게 지시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루빨리 쓸데없는 할례를 멈추고 이방인들이 이방인으로서 예수의 부활 소식에 참여해 충만한 수에 이르러야 예수의 파루시아가 더 앞당겨질 테니 말이다. 이런 이유에서 바울은 이방신들의 분노와 로마 사회 및 동료 유대인들의 지탄에도 불구하고 '탈이교적 이교도'를 생산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5.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유다이즘에 헌신한 결과

파울라 프레드릭슨이 그리는 바울은 이처럼 '묵시 종말론'적 비전을 가진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예수 운동에 투신하며 숱한 '박해'를 받은 인물이다. 이방인은 이교도여야만 하고 유대인만이 유다이즘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사회에서, 바울의 예수 운동은 이교도임을 포기한 이방인이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으로서 하나의 유다이즘인 예수 운동에 헌신하도록 이끌었다. 이러한 바울의 노력은 순전히 그리스-로마 세계의 특성만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바울이 그토록 탈이교적 이교도 생산이 끈질겼던 이유는 그가 유다이즘 내에서 발전해 온 묵시적 종말의 비전을 강력하게 희망했기 때문이다. 그의 사역은 그가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참여했던 그리스-로마 세계와 유대인 세계 양쪽 모두에서 도출되는 결과였다.

우리는 바울이 제공하는 정보와 그것이 가진 의미에 대해서 대체로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어쩌면 파울라 프레드릭슨이 제공하는 바울의 신상 정보 그 자체는 우리에게 아무 감흥도 주지 못할지 모른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치부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 지식은 자세히 살펴보면 대체로 실제와 다른 경우가 부지기수다. 프레드릭슨이 제공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사료와 근거 자료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실이 갖고 있는 전혀 다른 의미들을 꺼내 보이면서 경각심을 준다. 우리가 바울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과연 어떤 자료와 근거에 기초하고 있는가? 단지 적당한 현대인의 상상은 아니었는가?

신약학의 풍월을 조금이라도 읊는다면, 신약학자들이 스스로를 '역사가'로 여긴다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지켜 내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프레드릭슨의 저서는 그런 이들에게 역사로서 신약학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확실하게 보여 주는 책이다. 신약학에서 '역사적 ○○'를 운운하려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보여 주는 사료 검토 방식과 논증에서의 2차 자료 탐색 방법을 모범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권우진 / 틈을 내는 사유의 실천, '짓:다' 에디터. 학부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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