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특이한 이력을 가진 신학생이 있다. 서울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이 아닌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진학해 영상문화이론을 공부한 이모세 씨(30)다. 어려서부터 줄곧 교회에서만 자라와 신학교까지 졸업한 그가 돌연 영화를 공부하겠다고 나섰던 이유는 '세상'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는, 세상의 모순과 참혹한 현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얻기 위해서였다. 올해 초 석사 학위를 받고 영상원을 졸업한 그는 개인 블로그와 소셜미디어는 물론, 언론 매체, 전문 영화 잡지에 영화 평론을 기고했고, 최근 무지개신학교에서 강의하기도 했다.

그가 <뉴스앤조이>에 영화 평론을 연재한다. 연재 제목은 '궐위闕位의 시간, 믿음과 영화'. 이모세 씨는 교회가 코로나19와 기후 위기, 시장 자본주의의 횡행 속에서 모든 믿음이 파산한 '궐위의 시간'에 처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영화야말로 교회가 여러 병적 징후를 드러내고 있는 이때를 잘 지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매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연재는, 교회가 추구해 온 믿음이 여전히 유효한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영화' 이야기를 통해 풀어 보겠다는 포부다. 이 기사에서는 7월 중순부터 격주로 연재될 이모세 씨의 영화 평론 이야기를 인터뷰를 통해 미리 엿본다. 6월 29일 서울 중구 희년평화빌딩에서 만난 이 씨와의 대화 내용을 정리했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영상문화이론 석사학위를 받은 이모세 씨가 <뉴스앤조이>에 영화 평론 연재를 진행한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신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영상문화이론 석사 학위를 받은 이모세 씨가 <뉴스앤조이>에 영화 평론 연재를 진행한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들꽃향린교회에서 청소년부 전도사로 일하고 있는 이모세라고 합니다. 2017년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했고, 올해 초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문화이론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영화 관련 강의도 하고 글도 쓰는 자유 기고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 신학교를 졸업하고 한예종 영상원 입학이라니 특이한 이력이네요. 계기가 뭔가요?

어렸을 때 교회에서 신앙심이 깊은 편에 속했고, 어쩌다 보니 신학교까지 가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교회에서만 사는 게 아니니 세상과도 어우러져야 하는데, 너무 기독교 문화 속에서만 쳇바퀴 돌듯 사는 느낌이 들었어요. 여러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고, 제가 인식할 수 있는 세상의 한계가 명확해지는 것 같아서 이걸 어떻게 넓혀 갈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영상 문화를 매개로 세상을 배워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영상원에 진학하게 됐어요.

- 원래 영화를 좋아했던 건가요? 

사실 영화에 매료된 건 대학 진학 이후 군대에 갈 무렵이었어요. 어렸을 때는 영화를 자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거든요. 보수적인 교회를 다니기도 했고, 부모님께서도 영화 보는 걸 탐탁지 않아 하셨어요.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소위 말하는 '세상 문화'를 나쁘게 보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그래서 학창 시절엔 영화보다는 문학을 즐겨 읽었어요. 책 읽는 건 뭐라고 안 하더라고요.(웃음) 원래 이야기가 담긴 작품들을 좋아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부터는 영화가 가진 시각적인 힘에 압도됐던 것 같아요.

- 신학교에서 했던 공부가 영상원 공부에 영향 준 점도 있었나요? 이를테면 남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보게 됐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개인적인 의견인데, 사실 저는 둘이 되게 비슷하다고 느꼈거든요. 신학이나 예술·영화의 공통점은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전제하는 거죠. 영화 이론 중에 이 세상에 있는 실체, 역사 속에 있는 참혹한 현실과 모순은 그 스스로를 직접 드러내지 못한다는 말이 있어요. 왜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더 참혹하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래서 세상의 진면목은 영화 같은 문화·미디어를 매개로 해서 급진적으로 드러난다고 봐요.

저는 이것이 신학이 말하는 '하나님나라', 보이는 현실이 중단되고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는 하나님나라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영화 이론과 신학이 모두 '보이지 않는 세상'과 '그걸 드러내는 매개'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영화 이론을 배울 때도 메시아닉한 신학적 색채를 띠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 같은 사상가에게 많이 공감하게 됐던 것 같아요. 물론 벤야민은 유대교이기 때문에 기독교랑은 다르지만요. 그런데 말하고 보니,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웃음)

- 소셜미디어와 언론·잡지 등에 꾸준히 영화 평론을 쓰기도 하셨죠.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어요. 제가 되게 외진 시골에서 출퇴근하며 군 복무를 했는데요. 말 통하는 친구 하나 없고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아서 정말 외로웠어요. 그때 지금은 아내가 된 애인에게 고민을 토로했더니, 소셜미디어에 글을 써서 사람들과 공유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소통하면 덜 외롭지 않겠냐면서요. 제가 아무도 안 보는 블로그에 기록용으로 글을 써 오긴 했거든요.

그 이후로 글을 블로그가 아닌 페이스북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공유해 주시고 댓글도 달아 주시더라고요. 한번은 제가 윤종빈 감독님('용서받지 못한 자', '범죄와의 전쟁', '베를린', '공작' 등 -기자 주)  영화를 흥미롭게 봐서 리뷰를 올렸는데, 윤 감독님이 그 글에 '좋아요'를 눌러 주시기도 했어요. 그때 어린 마음에 엄청 기뻤어요. 사실 소셜미디어에 썼던 글들은 지금 읽어 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지우고 싶은 글도 많은데, 추억이라서 다 남겨 두고 있어요. 그렇게 지내면서 기고 요청도 받게 됐어요. 지금까지 <슬로우뉴스>·<허핑턴포스트(현 허프포스트)>·<에큐메니안> 등에 글을 기고했어요. 올해 초에는 <프리즘오브>라는 영화 잡지에 비평문을 실었고, 무지개신학교에서 '영화와 가족 이데올로기 톺아보기'라는 주제로 4주간 강의하기도 했어요.

공동체? 하나님나라?
도전받는 교회의 가치
계속 믿고 소망할 수 있을까

- 본격적으로 연재 얘기를 해 볼까요. 제목이 '궐위의 시간, 믿음과 영화'예요. 엄청 심오한데요. '궐위의 시간'이 무슨 뜻일까요?

'궐위의 시간'은 이탈리아 정치학자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1937)가 '지도자의 부재 상태'를 두고 말한 개념이에요. 어떤 지도자가 죽었는데 아직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은 상태인 거죠. 그러니까 옛날 방식이 낡아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데, 새로운 방식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공백의 시간을 '궐위의 시간'이라고 했어요.

그람시는 궐위의 시간에 다양한 병적인 징후가 나타난다고 했는데요. 저는 이걸 기독교가 처한 현 상황에 비춰 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코로나19와 기후 위기가 옛 상태의 정지를 선언했지만 아직 새로운 상태에 대한 준비는 잘 안돼 있는 것 같고요. 역으로는 이제 다들 온라인 환경에 적응을 해 버렸거든요. 교회의 근간을 이루던, 교회만이 갖고 있던 '공동체성에 대한 믿음' 자체가 도전받고 있는 상황이에요.

또 한 가지는 시장 자본주의 속 하나님나라의 위기인데요. 기독교인들은 모두 하나님나라가 제일 크다고 말하지만, 사실 교회의 현실을 보면 하나님 나라가 '시장'보다 작아요. 기독교 복음의 역할이 자유 시장 질서 속에서 개인이 탈락하지 않도록 축복하는 것에 한정된 지 오래고요. 가상 화폐 열풍, 지극히 개인적인 경제적 성공 신화의 유행에 기독교적 가치가 매몰돼 버렸어요. 시장 질서나 경제 논리보다 더 큰 하나님나라를 상상하는 게 어려워졌고요. 그러니까 공동체로 모여서 함께 신을 찾고 기독교적 가치를 공유하고 이웃을 돌보는 것이 여전히 가능한지, 그게 의미가 있는지 응답해야 하는데 아직 뚜렷한 답이 없는 상황인 거죠. 저는 이런 현상들이 궐위의 시간에 나타나는 기독교의 병적 징후라고 생각해요.

이모세 씨는 교회가 그동안 추구해 왔던 가치들이 도전을 받는 '궐위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이모세 씨는 교회가 그동안 추구해 왔던 가치들이 도전을 받는 '궐위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이제 무슨 의미로 그 뒤에 '믿음과 영화'를 덧붙였는지 설명해 주실 차례인 것 같네요.

저는 신학과 영화의 공통적인 전제가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이라고 생각해요.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면 신학도 영화도 필요 없어요. 기독교적 맥락을 떠나서 얘기해도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자체가 '궐위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는 영화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러한 시대상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화적 텍스트라고 생각해요. 요즘 영화들을 보면 대부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옛 방식은 낡아서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는데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상황에서 무엇을 믿고 소망할 수 있나'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는 거죠.

영화라는 텍스트를 통해 드러나는 우리 시대의 모순과 현실을 잘 이해해 낼 수 있다면, 교회가 궐위의 시간을 어떻게 지날 수 있을지에 대한 소중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이번 연재를 통해서도 '기존 질서가 중단된 공백의 시간에 나타나는 믿음'에 관한 주제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영화들을 몇 편 골라서 소개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어떤 영화를 소개해 드릴지는 비밀입니다.(웃음)

- '믿음과 문화'도 잘 알겠습니다. 단어의 쓰임새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 '믿음'을 내세우는 기독교인이 문화를 대하는 자세는 단편적일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기독교적·비기독교적·반기독교적' 딱지를 붙여 가면서 말이죠. 동시에 그 문화를 가장 지독하게 우려먹는 곳도 교회거든요.(웃음) 기독교인으로서 영화·미디어를 대하는 자세는 어때야 할까요?

저는 기독교인들이 '믿음'을 갖고 영화를 보면 좋겠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흔히 '경건함·거룩함'의 차원을 말하는 게 아니라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이에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나라가 현행 질서의 급진적 중단과 재편이라고 한다면, 현실을 전혀 다른 각도로 보게 한다는 점에서 '영화적 경험'도 이것과 비슷하거든요. 보이는 세상에 편승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을 갖고 봐야만 더 잘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기독교가 가진 힘이기도 하고요.

또 하나님나라는 죽으면 영혼이 나비처럼 날아가는 곳이 아니라 이 땅 위에서 이뤄지는 곳이니, 기독교인들이 영화를 볼 때도 기독교적·비기독교적·반기독교적 딱지를 붙이기보다는, 영화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어떻게 그리는지 살펴보고, 거기서 드러나는 문화적인 징후를 좀 더 섬세하게 붙잡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잊혀져 가는 고난받은 사람들의 기억이라든지, 이 세상에 어떤 억압이 있는지 이런 문화적 징후들을 영화에서 잘 읽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마지막으로 연재를 기대하실 독자분들에게 한마디 해 주세요.

<뉴스앤조이>를 보는 독자분들이라면, 아마 교회와 사회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굉장히 깊을 거라고 생각해요. 독자분들이 갖고 계실 만한 고민들을 영화 이야기를 통해서 함께 나누는 의미 있는 연재가 됐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제가 쓸 글을 많은 분이 읽어 주시고, 진행할 강의에도 찾아 주시면 좋겠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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