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의를 다시 생각하다 - 새 관점에 대한 전통적 관점의 응답> / 스티븐 웨스터홈 지음 / 박장훈 옮김 / IVP 펴냄 / 168쪽 /1만 원  
<칭의를 다시 생각하다 - 새 관점에 대한 전통적 관점의 응답> / 스티븐 웨스터홈 지음 / 박장훈 옮김 / IVP 펴냄 / 168쪽 /1만 원

[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국내에 소개된 뒤로 한때 유행처럼 번지며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바울에 관한 새 관점(NPP)'의 주장은, 이제 신학 공부깨나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거의 '반박할 수 없는 학계의 정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전통적 관점을 옹호하는 이는, 으레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간단히 결론을 내 버려도 좋을까.

스티븐 웨스터홈은 <칭의를 다시 생각하다>(IVP)에서 이와 같은 통념에 도전한다. 전통적 관점에서 NPP 계통의 학자들과 대화해 온 저자는, 이 책에서 크리스터 스텐달, E. P. 샌더스, 헤이키 라이자넨, N. T. 라이트, 제임스 던, 더글러스 캠벨 등의 논지를 명료하게 정리하면서 건설적인 비판을 가한다. 특히 NPP가 몰고 온 주요 논쟁 중 하나인 '칭의 논쟁', 즉 '바울의 의(칭의) 언어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뜻으로 사용됐는가'에 초점을 맞추면서, 칭의는 본질상 공동체 내 이방인 문제에 대한 '교회론적' 해결책이 아닌, 모든 인간의 죄에 대한 '구원론적' 답이라는 전통적 입장을 확실히한다.

1장에서는 전통적 관점이 바울을 현대적으로 읽어 왔다는 스텐달의 논지를 논박하며, 오히려 스텐달이야말로 인간의 근원적 딜레마(죄와 구원의 문제)를 무시하고 지극히 현대적인 관심사에 빠져 바울을 읽은 것이라고 응수한다. 2장에서는 바울이 "인간의 본질적 죄성"(64쪽)에 천착했음을 보여 주면서, '유대교는 본질상 은혜의 종교'라는 샌더스의 주장이 겉보기와는 달리 전통적 칭의 이해의 논지를 전혀 약화시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3장에서는 바울의 인간 이해가 전통적 해석의 옹호자인 아우구스티누스·칼뱅 등과 마찬가지로 '죄의 심각성'에 단단히 뿌리 박고 있음을 보여 주면서 논지를 강화한다. 4장에서는 라이트의 주장과 달리, '의'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과 '언약 공동체의 일원이 됨'을 내포하는 언약적·선언적 의미를 띌 수 없으며, 오히려 '옳고 그름'·'의롭고 악함'이라는 도덕적·일상적 의미로 사용됐다는 점을 강조한다. 5장에서는 '율법의 행위'를 일종의 문화적·민족적 '경계 표지'로 이해한 던의 견해를 반박하며, 이를 '율법 체제 아래서는 의로움에 이를 수 없다'고 강조하기 위한 바울의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옳다고 주장한다. 6장은 묵시적 해석의 대표 격인 캠벨의 주장을 반박하는 데 할애하고, 7장에서 자신의 견해를 간단히 요약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저자는 '의(칭의)'에 대한 바울의 논지를 전통적 의미로(혹은 그에 가깝게) 해석할 때 가장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NPP가 일궈 낸 학문적 성과를 인정하며 공정하게 평가하려고 노력한다. 독자가 전통적 입장에 서 있든지 NPP를 옹호하든지와 관계없이, 그동안의 쟁점을 한 번에 정리하고 새로운 통찰을 제공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떤 경우든 결과적으로 바울 해석에서 활기를 되찾게 될 것이다."(101~102쪽) 추천사를 쓴 김선용 박사의 말처럼 "책의 논지에 동의하기 어려움에도 추천"할 수 있는 이유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책임과 모든 인간이 당면한 딜레마에 관한 (여전히 더 근본적인) 고민을 간과하고 있으며 그저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에 속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만 신경 쓰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현대적인 근시안을 가졌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중략)
 

죄인이 어떻게 은혜로운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현대 서양에 한정된 질문이 아니다. 바울의 메시지는 어디서든 이 질문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바울이 받은 사명은 위기를 조명하는 게 아니라 심판 아래에 있는 세상에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데살로니가서에서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지만 본질적으로, 고린도서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지만 용어로, 갈라디아서에서는 주제로 나타나고 그 뒤로 규칙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처럼, 바울의 답은 이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는 선언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1장 '바울을 현대화하는 일이 빠지는 위험', 41, 46쪽)

"앞서 보았듯, 라이트는 갈라디아서 2장의 맥락이 우리로 하여금 2:16 상반절을 상당히 다르게 해석하도록 '강요한다고' 생각한다. 논의되는 문제가 이방인이 유대인 신자와 함께 식사하려면 할례를 받아야 하는가이기 때문에, 여기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옳다고 인정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가족의 참된 일원이라고 하나님께 인정받고 그럼으로써 식탁 교제의 권한을 공유한다'는 뜻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대한 가장 간단한 대답은 '의롭다 하다'라는 단어가 라이트가 원하는 뜻을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갈라디아 교인도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가족 식탁에 앉을 수 있는 권리를 얻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다른 곳에서 '디카이오-' 용어를 일상적 의미로 사용하는) 바울이 그런 의미를 말하기 원하기 원했다면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4장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음', 113~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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