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에 막 입학했던 신입생 시절, 필수로 교양 과목 중 '철학 입문'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이 수업은 학생들 사이에서 어렵기로 악명이 높았는데, 대학에 첫 발을 디딘 신입생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난해한 수업이기 때문이었다. 그 수업의 첫 번째 시간, 존재론에 대해 이야기하시던 교수님은 뜬금없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있다는 것은, 잇는 것이다." 이 말을 판서도 없이 듣던 학생들은 모두 멍해졌다. '있다'와 '잇다'. 일종의 말놀이(word-play)였을까. 분명히 부연 설명이 뒤따랐던 것 같지만, 많은 학생이 교수님의 말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잇다'는 것은 연결한다는 것이자, 두 끝을 맞대어 붙인다는 뜻이다. 두 대상을 서로 이어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잇다'의 결과물이다. 학교를 졸업한 지금은 마르틴 부버의 개념을 빌려 저 문장을 이해해 보곤 한다. "나의 '있음'는 것은 너의 '잇음'이 있기에 가능하다"라고.

구약과 복음서를 잇다

리처드 B. 헤이스(Rechard B. Hays)의 <복음서에 나타난 구약의 반향>(감은사)은 구약과 복음서를 '잇는' 책이다. 저자가 책의 서론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네 복음서의 저자는 "이스라엘 성경(구약)을 다시 읽는 방식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정경 복음서에 나타나는 이스라엘과 예수, 교회의 내러티브 서술을 설명한다(35쪽)."

<복음서에 나타난 구약의 반향> / 리처드 B. 헤이스 지음 / 이영욱 옮김 / 감은사 펴냄 / 728쪽 / 4만 6800원
<복음서에 나타난 구약의 반향> / 리처드 B. 헤이스 지음 / 이영욱 옮김 / 감은사 펴냄 / 728쪽 / 4만 6800원

헤이스는 구약과 복음서를 잇기 위해 "네 정경 복음서 모두 구약에 의해 형성된 상징 세계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39쪽)는 전제를 상정한다. 이 전제는 자연스럽게 구약과 복음서를 잇는다. 구약에 의해 만들어진 상징 세계가 복음서 안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복음서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와 이어진 구약의 상징 세계를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복음서에 깊숙하게 뿌리박힌 구약의 상징 세계는 세 가지 방향으로 나타난다. 구약에서 나타나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인용', 구약에 나타나는 표현을 통해 연관성을 발견하게끔 신호를 보내는 '암시·인유', 하나의 단어나 구를 통해서 연상을 만들어 내는 '반향(echoes)'. 복음서의 저자들은 이 세 가지 방식을 통해 구약과 복음서를 잇는다(40~41쪽). 헤이스는 <복음서에 나타난 구약의 반향>에서 각 복음서 저자들이 구약을 상호 텍스트적으로 참조하면서 이스라엘 이야기(구약)를 어떻게 '재서사화(renarrates)'하는지 추적하고, 예수와 교회, 곧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의 이야기가 구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탐구한다(48쪽).

네 권의 복음서에 나타나는 구약의 반향을 모두 살펴보면 좋겠지만, 이 글에서는 책 2장에서 다루는 마가복음에 한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마가복음 저자는 여전히 외세의 압제하에 있는 이스라엘, 포로기를 경험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그린다. 그는 "목자 없는 양"(막 6:34)과 같이 무력하고 혼란스러운 상태, 결핍 가득한 상태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묘사할 때 구약의 시편·예언서에 있는 표현을 차용한다. 이를 통해 유대 묵시 사상이 고대했던 하나님의 신적 개입, 즉 불의한 이들에게는 심판이 가해지고 이스라엘은 회복되는 일이 예수 안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물론 마가복음 저자가 발견한 것을 예수 시대 이스라엘 모두가 받아들이고 이해하진 않았던 것 같다. 마가복음에서 이스라엘은 예수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저항하고 반대한다. 마가복음 저자는 이스라엘이 예수의 선언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의 선포와 해석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들의 눈이 멀어졌다고 묘사한다(105쪽). 이는 마가복음의 저자가 구약의 기록을 재해석하고 반향해 내면서 이스라엘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마가복음 저자가 그리는 예수의 모습은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 다윗 자손의 왕, 영광스러운 인자, 하나님 존재의 체현(embodiment)으로 나타난다. 그러한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다.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는 구약에 나타나는 '고난 받는 의인'을 재해석한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마가복음 저자가 독단적으로 상상한 고유한 산물이 아니다. 구약을 예수 사건에 비추어 거꾸로 읽으면서 재해석한, 구약의 반향을 담아내고 있는 해석이다.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 따르미' 즉, 교회의 모습에도 구약을 반향한 저자의 재해석이 담겨 있다. 교회는 이교적 권력 체계와 긴장 관계에 놓인 박해받는 소수자이자,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의 메시지를 고통으로 체현해 내는 증인으로 그려진다. 교회는 영광스러운 인자이신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리며 깨어 있어야 한다.

그들이 해야할 일은 혁명을 일으키는 것도, 사회에서 유리되어 자신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하나님나라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 결과로 따라오는 고난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한다. 더 나아가, 교회는 이방인을 배제하지 않고 복음에 반응하는 모든 사람에게 열린 공동체, 권력이라는 환상에 현혹되지 말아야 할 공동체,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는 공동체로 그려진다(198~200쪽).

성경과 오늘을 잇다

<복음서에 나타난 구약의 반향>은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내용을 다룬다. 한마디로 '재미있지만 재미없는' 책이다. 헤이스의 방법론과 해석에 동의가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내 전공이 구약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알게 모르게 거부감이 생기는 지점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책은 그런 거부감마저 떨쳐 낼 수 있을 만큼 큰 울림을 선사했다.

복음서 저자들은 구약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무작정,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공동체의 상황을 인식하고 있었고, 예수 사건에 비추어 구약을 거꾸로 읽고, 그 반향 아래서 복음서를 기술했다. 때로는 구약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끔, 때로는 구약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그들은 그렇게 복음서와 구약을 서로 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2022년을 살아가는 나에게 '성경과 오늘을 어떻게 이어야 좋을지' 질문을 던지게 했다. 성경을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사용하는 일을 멈추게 했고, 성경의 메시지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어떻게 오늘에 맞게 생생히 풀어낼 수 있을지 탐구하는 여정으로 안내했다.

<복음서에 나타난 구약의 반향>은 그 여정에 나선 독자들에게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와 교회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길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성경과 오늘을 잇기 위한 하나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그렇게 성경과 오늘을 '잇다' 보면, 오늘이라는 상황 속에서 교회가 교회답게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최이형순 / 구약을 전공한 신학도. 히브리어가 세상에서 제일 쉽다고 느끼는 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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