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안전하게 여성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교회에서 경험한 성차별이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직시하게 된 여성들은 자기 경험을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누군가는 가까운 공동체에서 그런 곳을 발견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런 곳을 만들어 보고자 노력도 하지만, 더 많은 이는 그저 섬처럼 고립돼 있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은 교회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움트다'는 그런 여성들을 위해 탄생한 공간이다. 교회 내 성차별을 경험하고 분노한 여성 12명이 2019년 '교회 여성 네트워크 커뮤니티'를 지향하며 만든 움트다는, 3년여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꾸준히 교회 내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매달 교회 여성들의 대화 모임 '오픈 움트다'를 열었고, 반기에 한 번씩 '여성주의 예배'와 '여성주의 워크숍'을 진행했다. 교회 내 성폭력, 이주 여성, 미얀마 민주 시위, 기후 위기 등 그리스도인들이 관심을 쏟아야 할 이슈에도 연대했다.

움트다가 지향하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서로 지지·응원하는 자매애를 바탕으로 한 '안전한 공간, 느슨한 연대'다. 이는 움트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조직 내부부터 적용된다. 움트다는 카리스마적인 인물이 단체를 끌고 가는 방식이 아닌, 느리지만 모든 구성원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사역해 왔다. 사역의 결과가 드라마틱하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움트다를 통해 위로받고 살아갈 힘을 얻는 여성이 하나둘 늘고 있다.

2022년을 맞아 움트다는 단순히 교회 여성들을 잇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움트다 전수희 대표와 움트다연구소 이하나 실장을 1월 18일 서울 중구 희년평화빌딩에서 만나, 움트다가 어떤 곳인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들어 봤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동기인 두 사람은 10여 년간 사역하며 체감한 교회 내 여성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왜 교계에 자매애를 중심으로 한 조직이 필요한지 역설했다.

움트다 전수희 대표(사진 왼쪽)와 이하나 실장을 만났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움트다 전수희 대표(사진 왼쪽)와 이하나 실장을 만났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출산휴가 줬더니 '먹튀'했다고?

- 움트다는 어떤 계기로 만들어졌나요?

전수희 / 에큐메니컬 여성 활동을 했던 모임이 있었어요. 2019년 2월 어떤 단체에서 세미나를 했는데, 같이 모임 하던 한 친구가 여성 관련 주제로 발제를 했어요. 저희는 스태프로 참가했고요. 발제 뒤 토론 시간이 있었는데, 거기서 저희가 분노했던 사건이 벌어진 거예요. 비교적 진보적이고 깨어 있다고 자부하는 젊은 남자 담임목사님 발언이 문제였어요. 자신은 여성을 사랑하고 여성들에게 잘해 주고 싶다면서, 여성 사역자에게 출산휴가를 줬다고 되게 자랑을 하시더라고요. 거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결론은 "그 여성 사역자가 '먹튀'를 했다"는 거였어요. 정말 '먹튀'라는 워딩을 그대로 썼어요.

육아휴직도 아니고 출산휴가였고,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여러 상황이 생길 수 있잖아요. 그 사역자 입장에서도 다시 교회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얼마나 안타깝고 힘들었겠어요. 근데 그걸 '먹튀'라고 표현하면서 '여자들에게 잘해 주려고 했는데 결국 여자들이 문제'라는 식으로 말하는 거예요. 토론 자리에 있던 여자 교수님께서 거기에 조목조목 반박해 주셨어요. 그랬더니 그 목사님이 또 "좀 친절하게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교수님이 "우리가 그걸 왜 친절하게 가르쳐 줘야 하나. 스스로 공부하라"고 하셨죠. 지금 생각해도 명언이었다고 생각해요.

이하나 / 저도 당시 스태프로 참여했는데 정말 분노가 턱밑까지 차더라고요. 왜냐면 저는 그런 상황을 알거든요. 제가 그때 신대원 여자 동기 아이를 주일마다 봐주고 있었어요. 그 친구는 사역을 나가야 하는데 아이를 시댁에도, 친정에도 못 맡기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렇다고 아이를 교회에 데려가면 그 아이는 천덕꾸러기가 돼요. 그런 상황이면 엄마는 당연히 사역을 접어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고,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그만두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먹튀'했다고 표현하니까….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리니까 못 가는 건데, 그걸 너무 쉽게 '처음부터 돌아올 생각이 없었구나'라고 치부해 버리고, '내가 이만큼이나 해 줬는데 보답은 못할망정 배은망덕하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건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인 거죠.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하필 제가 며칠 뒤에 그 목사가 담임하는 교회에 면접을 보러 가기로 했던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참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참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그 목사님한테 발언을 했어요. 출산휴가·육아휴직 주는 걸 너무 자랑스럽게 얘기하시지 말라고, 지금 사회에서는 아빠들에게도 육아휴직을 권고하는 단계인데 교회에서 여성 사역자에게 출산휴가 줬다고 자랑하면 세상에서 뭐라고 하겠냐고요.

전수희 / 교계는 여성에 대한 처우가 하향 평준화해 있기 때문에 거기서 평균만 해도 굉장히 칭송받을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날 밤에 분노한 여성들이 숙소에 모여서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가 더 이상 이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 "지금 교계는 자기가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까지 저런 발언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하는 분위기다", "무언가를 하긴 해야겠다" 그런 말이 많이 나왔어요. 그래서 일단 우리와 뭔가 같이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 보자고 했죠.

그렇게 처음에 12명이 모였어요. 저희가 장신대 출신이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역자가 다수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러 교단에서 평신도·사역자 구분 없이, 연령도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게 모이게 됐어요. '교회 안의 성차별적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모인 거죠. 그런데 신학을 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 페미니즘을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어요. 안다고 해도 다들 깊이의 차이가 있었고요. 사실 저도 그전까지 페미니즘을 공부해 보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공부를 했어요. 정기적으로 모여서 책을 같이 읽고 토론도 했죠.

전수희 대표는 교회에서 파트타임 사역을 하며 움트다 운영을 병행하고 있다. 유튜브를 하기 위해 영상 편집을 배웠다고 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전수희 대표는 교회에서 파트타임 사역을 하며 움트다 운영을 병행하고 있다. 유튜브를 하기 위해 영상 편집을 배웠다고 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딱히 페미니즘을 공부하지 않았는데도 교회 현실이 성차별적이라고 느끼신 거네요.

전수희 / 그렇죠. 살면서 너무 체감했던 거니까요. 교회에서 차별당한 얘기하려면 정말 밤새워 할 수 있어요. 저희 움트다 유튜브 채널 첫 번째 영상이 교회에서 들은 성차별적 발언인데요. 거기에 있는 사연들 제가 제일 많이 썼어요.(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제가 신대원 다닐 때 청년부 사역을 너무 하고 싶어서 이력서를 수십 장 썼어요. 근데 일단 청년부는 공고 자체가 '35세 이하의 남성' 이렇게 나요. 요즘은 좀 바뀌었다고 하는데 10여 년 전에는 여자가 지원할 수 있는 교회 자체가 별로 없었어요. 저는 공고에 '남자'라고 돼 있어도 무조건 냈어요. 나중에 지인들에게 돌고 돌아 들은 얘기로는, 담임목사들이 '여자 사역자하고는 사우나에 갈 수 없으니까' 같은 어이없는 이유를 들면서 이력서도 보지 않았다는 거예요. 면접도 보고 출근 날짜까지 잡아 놨는데 "장로들이 여성 사역자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전화 한 통 받고 잘린 적도 있죠.

결국 제가 한 교회 청년부 사역자로 갔어요. 거기는 남자들이 다 기피하는 교회여서 갈 수 있었던 거예요. 힘들다고 소문난 교회였거든요. 그 교회에서 2년 사역했는데, 담임목사님에게 정말 2년 내내 "우리 교회 청년부에 여자 사역자는 처음이니까 잘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한두 번이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고 넘길 수 있는데, 매주 반복되니까 그 말 자체가 억압이 되더라고요.

이하나 / 전에 있던 교회에서는 교육전도사에게 교육부서를 제외한 곳에서 설교를 시키지 않았어요. 한번은 교역자들이 다 수련회를 가서 새벽 예배 때 설교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당시 교육전도사 중에는 저와 제 동기(여성)가 제일 연차가 많았어요. 그런데 굳이 저희보다 한참 늦게 들어온 남자 전도사에게 설교를 맡기더라고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저희는 교회와 먼 곳에 살아서 새벽에 나오기 힘드니까 남자 전도사에게 맡겼다는 거였어요. 배려받는다는 느낌이 아니라 기분이 나빴어요. 저희는 전날 교회에서 자고 설교할 수 있을 만큼 의욕이 충만했는데 말이죠.

또 한번은 규모가 작은 교회에 부임하게 됐어요. 교육부 담당하시는 집사님 첫마디가 "전도사님, 피아노 칠 줄 아시죠?"였어요. 못 친다고 했더니 "그럼 기타는 칠 줄 아시죠?" 그래요. 악기는 전혀 못 다룬다고 했더니 그분이 하는 말이 "그럼 뭘 할 줄 아세요?"였어요. 여성 사역자에게 기대하는 어떤 틀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물론 "저는 사역을 잘합니다"라고 받아치긴 했지만.(웃음)

전수희 / 면접 때 "결혼은 언제 할 거냐", 결혼했으면 "애는 언제 낳을 거냐" 이런 건 뭐 너무 많이 듣는 질문이고요.

이하나 / 아주 구체적으로 물어봐요. "향후 2년 안에 임신 계획이 있냐."

전수희 / 면접 때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이제 사회에서는 불가능하잖아요. 근데 교회에서는 너무 자연스럽고, 뭔가 좀 더 신경 써 준다는 듯이 포장해서 이야기를 해요.

- 움트다 유튜브 채널에서 전수희 대표님 인터뷰 영상을 봤는데, 제목이 '페미니스트 목사라는 정체성을 가지고'더라고요. 지금 한국 사회, 특히 교회에서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오해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럼에도 페미니스트를 자처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전수희 / 저도 페미니즘이 뭔지 몰랐을 때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왠지 모를 반감이 있었어요. 그러면서도 페미니즘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죠. 근데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했잖아요. 제가 선교신학을 전공했는데, 페미니즘을 공부할수록 선교와도 맞닿는 지점이 있더라고요. 누가복음 4장에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라는 말씀이 있잖아요. 선교는 억눌린 자에게 해방을 주는 것이고 사회의 모순적인 부분을 이야기하고 해결해 나가는 것인데, 페미니즘도 비슷하더라고요.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나니까,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뭘 잘 모르고 공격하는 것 같아요.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것도 아니고, 여성 우월주의는 더더욱 아니에요.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존재 자체로 인정받고 존중받는 걸 지향하죠.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고 그 결과로 선교에 헌신하게 됐고, 그 삶은 곧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된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존재로 살 수 있게 하는 것이거든요. 그럼 제가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거예요.

이하나 / 저는 신학 석사(Th.M.) 학위논문을 여성 종교개혁자를 주제로 썼어요. 당시 16세기 여성 종교개혁자 마리 당티에르(Marie Dentière, 1495~1561)의 글에 꽂혔거든요. "어떤 여성도 예수를 팔거나 배반한 적이 없고 유다라는 남자가 그랬는데도 왜 여성들이 그토록 비난을 받아야 합니까? 이땅에 그토록 많은 의식, 이단, 그릇된 교리를 지어내고 고안한 자들이 남성들이 아니라면 누구입니까? 그리고 남성들이 가련한 여성들을 꾀어냈습니다. 여성이 거짓 선지자였던 적은 한 번도 보이지 않고, 여성들이 그들에 의해 잘못 인도되었던 것입니다."

이 글을 보면서 '맞네. 여성은 뭘 잘못한 적이 없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데 우리는 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교회 안에서 이렇게 차별당해야 하지? 심지어 사회는 더 이상 그렇지 않은데'라는 인식을 가지게 됐어요. 그러다 그 '먹튀' 발언 사건이 터지고 다른 분들과 같이 페미니즘을 공부했죠. 제가 이해한 페미니즘은 이거예요. 남성이든 여성이든, 생물학적이든 사회학적이든, 성 때문에 어떤 기회가 주어지는 데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저 역시 그런 삶을 지향하니까 제가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죠.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것

- '움트다'라는 이름이 특이해요. 누가 만든 건가요?

전수희 / '움트다'라는 이름은 처음 모인 12명이 같이 이야기하며 정했어요. 한 분이 '메움', '돋움' 이런 아이디어를 냈는데, 그 말을 듣고 여러 명이 '움이 트다'라는 말을 떠올렸어요. 우리를 통해서 여성들이 움을 틔웠으면 좋겠다고, 새싹이 나오고 열매가 맺히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희는 다른 멤버를 '움'이라고 불러요. '하나 움', '수희 움' 이렇게요. 저도 목사이기는 한데, '목사'라는 호칭을 쓰는 순간 평신도와의 위계가 형성되잖아요. 그런 호칭은 쓰지 말자고 했고, 움트다에 오는 모든 사람은 '움'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이하나 / '움'이라는 말에 여러 뜻이 있더라고요. 누구는 새싹이라는 의미로 쓸 수 있고, 누구는 우물이라는 의미로 쓸 수도 있고, 누구는 포궁(womb)이라는 의미로 쓸 수도 있죠. 서로를 '움'이라고 부르는 건, 다양한 사람들을 인정하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귀한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이하나 실장은 세 살 된 아이를 육아하며 움트다에 참여하고 있다. 결혼·출산·육아가 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이하나 실장은 세 살 된 아이를 육아하며 움트다에 참여하고 있다. 결혼·출산·육아가 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움트다는 어떤 곳인지 소개해 주세요.

전수희 / '움트다는 이런 곳이에요'라고 선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편할 텐데, 저희는 그렇게 하나로 정형화해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안전한 공간, 느슨한 연대'를 추구하기는 하지만, 그건 하나의 지향점이지 우리를 정의하는 건 아니잖아요. 움트다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거예요. 누군가 한 사람이 대의를 이야기하면서 끌고 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꼭 소외되는 사람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저희를 굳이 하나로 정의하지 않기로 했어요. 누구도 소외시키고 싶지 않아서요. 실제로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게 너무 힘들고 피곤한 지점이기는 한데, 그걸 잃고 싶지는 않아요. 저희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느린 걸음이어도 바른 길을 가자."

움트다는 여성들이 자기 존재 가치를 인정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역을 계속하고 있어요. 저희가 처음에는 '교회 여성 네트워크 커뮤니티'를 표방하며 여성들을 연결하고 서로 관계 맺는 작업을 했다면, 작년 말에 '여성들을 위한 성장 플랫폼'이라고 변화를 줬어요. 여성들이 그간 교회 안에서 가질 수 없었던 기회를 제공하고, 거기서 자신을 발현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하자고요. 저희 프로그램들 취지가 기본적으로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자는 거예요.

'오픈 움트다'는 모든 여성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든 거고요. '책트다'는 함께 여성과 관련한 것들을 공부해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습득하자는 거예요. 여성들이 가슴에 담아 둔 건 너무 많은데,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것도 고민 중 하나거든요. 말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발언대에 서 보지 않았기 때문에 표현하기가 어려운 거죠. '배움트다'는 '우리 일자리는 우리가 만든다'는 목표로 출발한 거예요. 여성들이 하고 싶은 게 있고 할 수 있는 게 있어도, 자리가 없어서 못 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저희는 '움스터'(움트다+마스터)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이 움스터에게 자기가 가진 것들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 해요. 제 염원은 우리 안에서 많은 여성이 강사로 세워지는 거예요. 여기가 발판이 돼서 다른 곳에서도 활약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하나 / 이번에 '움트다연구소'도 만들었는데요. 연구소는 '여성주의 예배'를 중점으로 연구하고 있어요. 관련 자료를 번역해서 같이 읽는다든지, 여성주의 예배를 기획·디자인하고 워크숍을 진행하는 게 주 사업이에요. 좀 더 확장되면 책을 번역해서 출판하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어요.

전수희 / 저희가 재작년에 여성주의 예배를 두 번 드렸고, 작년에는 워크숍 한 번, 예배 한 번 했고, 올해도 워크숍과 예배를 기획하고 있어요. 이 예배 한 번을 위해서 저희가 7~8개월을 준비해요.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냐고 물을 정도죠. 저희는 예배를 준비하는 그 순간순간이 정말 하나님과 동행하는, 은혜를 체험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값지게 다가와요. 또 그 예배를 통해서 "회복됐다", "이런 예배가 있는 줄 몰랐다", "너무 감사하다"는 고백들을 접하니까 계속하게 되는 거죠.

저희도 여성주의가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계속 공부하고 찾아가고 있어요.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게 아니듯이, 여성주의 예배도 여성만을 위한 예배가 절대 아니거든요. 모든 사람이 참여해 평등하게 드릴 수 있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그런 예배를 같이 만들어 가고 싶어요.

- '움트다와 함께하면 이런 게 좋다', 뭐가 있을까요?

이하나 / 일단 내 편이 있다는 마음이 들어서 좋아요. '먹튀' 발언 때 제가 그 목사에게 문제를 제기했던 그날 밤 숙소에서 "네가 틀리지 않았어", "네가 한 말이 옳은 거야"라고 지지해 주는 여성들이 없었다면 아마 저는 계속 후회했을 거예요. '그냥 말하지 말 걸', '입 다물고 있을 걸' 했을 거예요. 교회 안에서 그런 얘기를 듣는 여성이 많대요. 뭔가 좀 불편하다고 얘기하면 "너는 왜 그렇게 예민하냐", "너 때문에 분위기 이상해지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라고. 최근 저희 멤버십에 가입하신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저희는 "당신이 틀린 게 아니에요", "당신이 예민한 게 아니에요", "당신이 지적한 그게 진짜 문제인 거예요"라고 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래서 같이 목소리 내 주고 싸워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 저희는 '세련된 자매애'라고 표현하는데 그런 시스터후드(sisterhood)가 있어서 든든해요. 저는 지금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 인간관계가 거의 다 끊어진 상태예요. 심지어 코로나 때문에 아기랑 집에 갇혀 있죠. 그런 저에게 움트다가 있고, 여기서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좋아요.

전수희 / 움트다는 여성들이 지지·응원받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혼자서는 설 수 없는 여성들이 같이 손잡고 가는 거요. 남성들 입장에서는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성들에게는 그게 우리를 살리는 힘이거든요.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 주지 않는 삶의 현장에서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준다는 거, 그것만으로도 살아갈 힘이 돼요.

작년 연말에 멤버십을 모집했어요. 우리 안에 형성된 것들을 우리만 누리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우리와 같은 경험을 하고 우리와 같은 상황에 있는 수많은 여성이 있을 텐데. 그 외로운 여성들의 손을 우리가 잡아 주자, 함께 가자는 생각에 멤버를 좀 더 확장한 거예요. 멤버십 모집할 동안 늘 기도했어요. 어딘가에서 혼자 섬처럼 존재하고 있는 그 여성에게 움트다가 닿았으면 좋겠다고.

움트다는 작년 12월 한 달간, 1년간 함께할 멤버십을 모집했다. 가입한 사람들에게 보낸 굿즈 중에는 선배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엽서도 있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움트다는 작년 12월 한 달간, 1년 동안 함께할 멤버십을 모집했다. 가입한 사람들에게 보낸 굿즈 중에는 선배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엽서도 있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움트다가 그리는 미래와 맞닿아 있을 것 같은데요. 교회 내 성차별적인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이하나 / 저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이야기를 해요. 당회가 쪼개져야 한다고. 지금 보면 담임목사도 남자고 장로도 대부분 남자잖아요. 그것도 60대 이상. 그들이 교회 정책을 논의해요. 과연 60대 이상 남자들이 내놓는 정책이 모든 교인을 위한 것일 수 있을까요. 총회도 마찬가지죠. 예장통합 교단만 해도 총대 여성 할당제가 있는데 의무가 아니라 권고 사항이 돼 버렸잖아요. 여성 총대 비율이 항상 5%가 안 되죠. 그 5% 안에 들어갔다 쳐도 정작 총회에서 발언하지도 못해요. 구조적으로 그런 의사 결정 회의에 여성 권사든 장로든 청년이든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들과 교회 정책을 논의해야 하는 거죠. 그러려면 지금 힘 있는 담임목사와 장로들 마인드가 바뀌어야 할 텐데… 갈 길이 멀죠.

전수희 / 그러려면 자기가 가진 기득권을 먼저 내려놔야 하잖아요. 근데 어느 누구도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고, 자기가 가진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걸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위에 계신 분들 인식이 변해서 그 구조가 바뀌면 다행이겠지만, 그런 일은 사실 불가능하잖아요. 위에서 안 되면 아래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저희가 발 벗고 나선 거예요.

여성들에게 기회가 있어야 해요. 제 경우만 봐도 신학교 졸업한 지 7년 됐는데, 지금 남자 동기들은 다 목사 안수받고 전임 사역하고 있어요. 여성 동기들은 전임 사역 비율이 남성에 비해 굉장히 낮아요. 저도 지금 파트 사역자고요. 결혼·출산·육아 때문에 쉴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는 친구도 많아요. 남성들은 계속 경력을 쌓고 성장해 가는데, 여성들은 점점 기회를 상실하면서 도태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움트다는 우리의 생존이기도 해요. 여성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여성들이 살아서 존재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공간인 거죠. 우리 안에서부터 여성들의 이야기가 점차 퍼져 나갈 수 있게 하자고, 그러면 사람들 인식도 점차 변할 것이고 언젠가 구조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저희 사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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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트다 페이스북 페이지
*움트다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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