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농단에 맞서 촛불을 들고 박근혜 퇴진과 탄핵을 외쳤던 그리스도인들이 박근혜 특별사면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2016년 11월 시위 장면. 뉴스앤조이 박요셉
국정 농단에 맞서 촛불을 들고 박근혜 퇴진과 탄핵을 외쳤던 그리스도인들이 박근혜 특별사면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2016년 11월 시위 장면. 뉴스앤조이 박요셉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국정 농단 주범으로 탄핵돼 도합 징역 22년을 선고받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22년 신년 특별사면 대상자로 선정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12월 24일 "우리 앞에 닥친 숱한 난제들을 생각하면 무엇보다 국민 통합과 겸허한 포용이 절실하다. 이번 사면이 생각의 차이나 찬반을 넘어 통합과 화합, 새 시대 개막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박 전 대통령 사면 취지를 밝혔다.

하지만 촛불을 들고 안전 사회 건설과 적폐 청산을 외쳤던 그리스도인들은 이번 특별사면을 강하게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에 기대했던 인권 정책 개선, 세월호 진상 규명 등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통합과 화합이라는 미명하에 사면을 단행했고, 그 결과 촛불을 들었던 수많은 시민과 그리스도인이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방인성 목사(교회개혁실천연대 고문)는 24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확실한 책임을 묻고 처벌한 후에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 제대로 된 회개와 처벌이 없는데 무슨 부활의 꽃이 필 수 있겠는가. 이번 특별사면은 세월호 참사의 최고 책임자의 회개와 처벌을 뒤로한 채 304명의 죽음을 미궁으로 빠뜨리고 유가족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결정이다. 과연 박근혜가 진정한 회개를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선거에서 지더라도, 정의를 위한 발걸음을 옮기다가 진다면 다음 기회에 희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눈앞에 놓인 유불리에 민감하게 반응해서는 국민 화합이 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이런 식의 통합은 한국 사회에 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득훈 목사(2022기독교대선행동 상임대표)도 "권력자는 아무리 큰 죄를 범해도 이렇게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건가. 이것은 불의한 세상의 특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개인에게 연민의 마음을 가질 수는 있어도, 개인적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이지 이렇게 사면하는 것은 국가 운영 책임자가 보일 태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목사는 "이번 사면에 반대하지 않는 대선 후보들 역시, 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으려는 욕망 때문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뉴스를 보고 힘들어하고 가슴 아파할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은 감옥에 있으면서 단 한 번도 반성하지 않았다. 그 점을 감안할 때, 이번 특별사면은 역사의 정의를 기대하는 사람들을 낙심시키는 행위"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지속적으로 방해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이번 특별 사면으로 큰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사진은 2016년 7월 특조위 강제 해산 반대 기자회견. 뉴스앤조이 구권효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지속적으로 방해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이번 특별 사면으로 큰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사진은 2016년 7월 특조위 강제 해산 반대 기자회견. 뉴스앤조이 구권효

박 전 대통령 특별사면은 세월호 진상 규명을 외쳐 온 유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 불과 하루 전 세월호 성탄 예배에서 '희망'을 이야기했던 박은희 전도사(단원고 희생자 유예은 양 엄마)는 실망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박 전도사는 "국정 농단에 화가 난 국민과 유가족이 피해 당사자다. 사면 여부는 피해 당사자가 결정해야 하는데, 문 대통령은 우리의 심정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런 짓을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크리스마스라고 선물 주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너무 사악하다"고 말했다.

박 전도사는 "이미 올해 초 청와대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할 때부터 문재인에 대한 믿음을 접기는 했다. 그 추운 겨울에 단 한 번도 농성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없었다는 것 아니겠나. 그뿐 아니라 취임 이후 한 번도 안산에 오지 않았다. 당선 당시 진상 규명을 당부하며 노란 리본을 달아 줬고, 누구보다 기대했다. 그러나 철저히 정치적 이익만을 위해 아이들을 이용하고 수단으로 삼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용서가 안 된다"고 말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는 24일 오후 "자신이 저질렀던 범죄행위에 대해 일말의 사과와 반성조차 하지 않은 자를 '국민 대화합'을 이유로 사면시키는 것은 민주주의의 후퇴이며 시대정신의 파괴"라는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기사 하단 성명 전문 참조).

차별금지법 제정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지만, 이번 특별사면은 반대 여론이 더 우세한데도 밀어붙였다. 이번 결정에 대해 '국민 통합'이란 말을 함부로 갖다 붙이지 말라는 비판도 나왔다. 사진은 2020년 7월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 뉴스앤조이 이은혜
차별금지법 제정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지만, 이번 특별사면은 반대 여론이 더 우세한데도 밀어붙였다. 이번 결정에 대해 '국민 통합'이란 말을 함부로 갖다 붙이지 말라는 비판도 나왔다. 사진은 2020년 7월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 뉴스앤조이 이은혜

문재인 정부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해 온 자캐오 사제(성공회정의평화사제단 회장)도 박 전 대통령 사면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캐오 사제는 "이번 특별사면은 문재인 대통령의 결정이라고 하는데, 영웅적 고뇌에 찬 결정일지 모르겠으나 민주공화국에서 혼자 결정하는 게 무슨 민주 정부인가. 대통령제를 가장한 왕정 정치에 더 가까울지 모르겠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와 여당을 지지하는 일부 종교인은 표 계산을 하며 유불리를 따지는 것 같다. 그러나 정의와 평화, 생태와 공존을 이야기하는 종교인들이라면, 이번 특별사면이 그 원칙에 너무나 어긋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캐오 사제는 "국민 통합과 사회적 합의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보편적 인권을 이야기하는 '차별금지법'은 제정하지 않고, 부정 여론이 더 높은 박근혜 사면은 왜 강행하는가. 사면이야말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주제고, (찬성 여론이 높은) 차별금지법 제정이야말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주제라는 답이 나왔는데도 반대로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학생 시절 광화문 세종대왕상에 올라가 박근혜 하야 시위를 벌이고, 촛불 시위에도 앞장섰던 이종건 사무국장(옥바라지선교센터)은 "촛불 시위 당시, 민주당 지지가 아니더라도 민주당 정부에 기대하는 게 있었다. 이 정도 변화의 에너지라면 통일 정책이나 인권 정책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박근혜 사면은 마치 '포기 선언' 같다. 정부와 여당은 오로지 정권 재창출에만 관심이 있다. 100만 명의 촛불을 등에 업고도 해 놓은 게 없는데, 앞으로는 도대체 어떤 정당성을 갖고 어떤 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이종건 사무국장은 이번 특별사면이 문재인 정부의 무능력함을 드라마틱하게 보여 준 사건이자, 문 정부가 신자유주의와 자본 앞에 엎드린 결과라고 평가했다. 그는 "우리 세대에게 박근혜는 유신의 잔재보다 신자유주의의 상징에 가깝다. 세월호 참사 당시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더 이상 이윤 창출이나 자본 권력을 이유로 사람을 잃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된다는 절박한 감정이 있었다. 그런 공동체적 합의가 있었기에 '공공'이라는 기독교적 가치를 외쳐 왔으며, 막연하게나마 민주당 정부에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면은 신자유주의의 물결, 자본의 힘을 가둬 놓을 수 없다고 선언한 것만 같다"고 말했다.

박근혜 사면에 대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연대 입장

누구를 위한 사면인가,
세월호 참사 책임의 몸통, 박근혜 사면을 규탄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 시민의 기대와 열망을 짓밟은 채 304명의 국민 생명을 구하지 않은 책임자, 헌정 질서 파괴의 책임자, 박근혜에 대해 "국민 대화합", "국민 통합"을 내세워 특별사면을 결정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박근혜 특별사면을 강력하게 규탄하며 누구를 위한 "국민 대화합", "국민 통합"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면은 세월호 참사 이후 헌정 질서 파괴와 국정 농단을 거듭 자행한 박근혜에 분노한 시민의 힘으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구속시킴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촛불 시민의 염원을 짓밟은 촛불 배반이다. 자신이 저질렀던 범죄행위에 대해 일말의 사과와 반성조차 하지 않은 자를 "국민 대화합"을 이유로 사면시키는 것은 민주주의 후퇴이며 시대정신의 파괴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국가의 책무를 방기한 장본인이 바로 박근혜다. 세월호가 침몰할 때, 국민을 구조해야 할 때, 국가 시스템이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왜 구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책임도 못 밝혔으며 이에 대한 처벌도 이뤄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당일 국가 컨트롤 타워의 부재, 청와대의 직무 유기와 관련해서 박근혜의 탄핵 심판 과정에서도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으며 이에 대한 처벌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304명의 억울한 희생 앞에 진실을 밝히는기는커녕, 기억과 추모를 위해 모인 시민들을 적대시하며 탄압했다. 진상 규명을 외치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시민의 목소리를 국가권력을 이용하여 봉쇄했으며, 특별조사위원회를 강제해산하여 진실을 가렸으며, 유가족을 포함해 민간인을 사찰하여 정권 유지에만 급급했던 범죄자가 바로 박근혜다.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의 책임에 대해 국가수반인 대통령으로서 국가의 진정성 있는 사죄는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행된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게다가 촛불 혁명을 통해 대통령의 권좌에서 쫓겨나고 처벌받은 자를 국민의 의견도 묻지 않은 채 진행한 사면은 국민이 부여한 사면권의 남용이다.

우리는 촛불혁명으로 탄생인 문재인 정부 5년동안 대통령이 약속했던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다려 왔다. 왜 침몰했는지, 왜 구하지 않았는지, 왜 진실을 은폐했는지에 대한 답을 듣고, 책임이 있는 자는 그에 대한 응당한 처벌을 통해 이 사회의 정의가 다시 세워지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의 권한과 의지를 충분히 사용하지 않았으며 세월호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여전히 진행형인 과제이다.

'세월호 참사 성역 없는 진상 규명, 모든 책임자 처벌', '국민 권리 회복과 안전 사회 건설',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고 주권이 온전히 보장받는 사회 대개혁'이라는 촛불 혁명의 정신을 완수할 때까지 우리는 노란 리본의 물결을 이어 가며, <4월 16일의 약속>을 지킬 것이다.

2021년 12월 24일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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