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2일 광화문광장에 개관한 세월호 기억·안전 전시 공간 '기억과 빛'이 광장 재구조화 공사에 따라 서울시의회로 임시 이전한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2019년 4월 12일 광화문광장에 개관한 세월호 기억·안전 전시 공간 '기억과 빛'이 광장 재구조화 공사에 따라 서울시의회로 임시 이전한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월호 기억·안전 전시 공간 '기억과 빛'이 서울 중구 서소문동 서울시의회로 임시 이전하던 날. 담담한 표정의 유가족들은 직접 따다 말린 꽃들로 장식된 아이들 사진 앞에 서서 인사를 나눴다. 미리 준비한 에어캡으로 액자를 정성스럽게 감싸 노란 박스에 차곡차곡 담았다. 세월호 선체 조형물과 책, 돗자리, 각종 팻말들도 미리 준비된 차량에 하나둘 실렸다.

'기억과 빛'에 전시된 전시물·기억물은 서울시의회 1층 로비에 위치한 전시관과 야외 공간으로 옮겨 간다.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4·16세월호참가족협의회(가족협의회)는 7월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 이후 생명과 안전의 가치, 모든 시민의 민주주의 열망을 광화문광장에 담기 위한 시의회 차원의 지속적인 노력 의지를 봤다"며 "서울시의회에 임시 보관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이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세월호 유가족들은 광화문 기억공간 철거를 앞두고 서울시와 갈등해 왔다. 지난해 11월 광화문 재구조화 공사에 돌입한 서울시는 7월 5일 유가족들에게 7월 26일까지 기억공간을 철거하라고 통보했다. 유가족들은 △기억공간 이전 설치를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고 △광화문 재구조화 공사 이후에도 유지할 것을 요구했지만, 서울시는 '불가' 방침을 고수해 왔다. 철거 시한을 앞둔 23일에는 공간 내부 사진·물품 등을 정리하려는 서울시 인력들이 유가족들과 1시간 30분가량 대치하다가 철수하기도 했다. 이후 유가족과 기억공간을 지키려는 시민들은 철거 당일까지 24시간 노숙 농성을 벌이며 서울시 집행부의 입장 변화를 촉구해 왔다.

좁혀지지 않던 양측의 견해차는 철거 당일인 7월 26일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서울시의회의 중재로 잠정 봉합됐다. 이들은 26일 오후 기억공간을 방문해 유가족들에게 '서울시의회 내 임시 이전' 내용을 담은 중재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집행부도 이날 철거 시한을 하루 유예해 달라는 가족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세월호 기억·안전 전시 공간 '기억과 빛'은 세월호를 기억하고 생명 안전 사회를 염원하는 시민운동의 거점 역할을 해 왔다. 사진은 2019년 6월 20일 열린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4·16광장 연합 기도회'. 뉴스앤조이 박요셉
세월호 기억·안전 전시 공간 '기억과 빛'은 세월호를 기억하고 생명 안전 사회를 염원하는 시민운동의 거점 역할을 해 왔다. 사진은 2019년 6월 20일 열린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4·16광장 연합 기도회'.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에 따라 기억공간은 시의회로 이전되고,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목조 건물은 빠르면 28일 중으로 해체돼 안산시 가족협의회 사무실로 옮겨질 예정이다. 건물 해체는 시공사와 유가족이 직접 담당한다. 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기억공간은 유가족들과 건축사·시공사·시민들이 정성을 함께 모아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무단으로 부수고 폐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 폭력적인 철거가 아니라 정성껏 해체한 뒤 다시 활용할 수 있도록 방안을 논의해 보겠다"라고 말했다.

임시 이전 장소는 정해졌지만, 향후 유지 방안이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다만 서울시의회는 25일 '서울시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안'를 발의해 광화문 내 기억공간을 설치·운영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유 위원장은 "가족들은 건물을 고집하는 게 아니다. 지상에 어떠한 건축물도 들이지 않겠다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취지에 맞으면서도, 민주주의와 생명 안전 사회를 향한 시민들의 뜨거운 열망을 담을 만한 아이디어를 내 보자는 게 유가족들의 일관된 요구였다. 실제로 박원순 전 시장과 약속했던 것도 철거 여부가 아니라, 공사를 마친 후 어떤 형태·방식으로 세월호 참사의 역사와 의미를 담아낼 수 있을지 시민들과 협의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유가족들이 박원순 전 시장 시절 (광화문 재구조화) 공사와 연계해 철거하기로 합의했다며 상황을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협의회 김종기 운영위원장은 "오늘 이 자리는 끝이 아닌 시작이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는 광화문 공사가 끝나고 난 뒤 기억의 역사, 민주주의의 역사, 촛불의 역사를 이 광장에 어떻게 다시 오롯이 담아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고민은 가족·시민들과 함께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