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과 같은 심각한 사건이 드러났을 때 대중의 관심은 가해자에게 집중된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가해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가해자에게 어떤 수위의 처벌이 내려지는지 등등. 사법 체계 자체가 가해자의 범죄를 특정하고 그에 알맞은 형벌을 내리는 과정이고, 언론 보도 또한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가해자가 징벌을 받은 것이, 혹은 받지 않은 것이 이슈가 되고 그 일이 지나가면 사건은 잊힌다. 물론 가해자가 적절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피해자의 피해 회복이 소외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일이다.

<뉴스앤조이>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해, 교회 혹은 신학교에서 목사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 5명을 인터뷰했다. 자신이 입은 피해를 공론화한 후 수개월에서 수년이 지난 현재, 이들은 어떤 일상을 살고 있을까. 그들이 원하는 '피해 회복'이란 무엇이며, 그 회복이 삶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지, 회복에 도움이 혹은 방해가 된 것은 무엇이었는지 들어 봤다. 이들이 꺼내 보이고 싶지 않은 기억을 기꺼이 다시 끄집어낸 이유 중 하나는 '교회를 위해서'다. 이들이 교회를 향해 던지는 말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 기자 주
*'교회 성폭력 생존자의 오늘' 전편 보기(클릭)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김희영 씨(32·가명)는 20대 대부분을 ㅂ교회에서 보냈다. 스물한 살부터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해 8년간 헌신했다. ㅂ교회는 담임목사였던 이 아무개 씨가 개척한, 청년들을 타깃으로 사역하는 곳이었다. 희영 씨는 이 씨가 ㅂ교회를 설립하기 전부터 그와 함께했던 핵심 사역자였다. ㅂ교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청년들에게 알려진 데는 희영 씨를 비롯한 사역자들의 헌신이 있었다. 거의 풀타임으로 사역하면서도 사례비는 월 20만 원이었고 그마저도 쪼개서 헌금을 했다. ㅂ교회는 이 씨와 그의 아내를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식 구조로 운영됐다. 희영 씨는 그들을 영적 리더로 믿고 따랐다.

희영 씨는 2018년 7~8월 두 차례 걸쳐 이 씨에게 강제 추행을 당했다. 자신이 당한 일이 성추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희영 씨는 오히려 스스로를 탓했다. 리더의 잘못은 덮어 주고 용서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간 이 씨와 그의 아내에게 그렇게 배워 왔기 때문이다. "티 내지 말고 사역하라"는 이 씨의 말에 순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그해 10월 희영 씨는 ㅂ교회를 떠났다.

인생을 바쳤던 교회를 떠나고 희영 씨는 "뇌가 정지한" 것처럼 살았다. 우울감과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20대를 사역만 하고 살아서 당장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어렵게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결혼도 하고 자기 가게도 내 봤지만, 영적 아버지로 믿고 따랐던 이 씨에게 당한 성폭력 피해가 그를 옭아맸다. 그사이 자신과 함께 사역하던 다른 전도사도 이 씨에게 강제 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도사들이 떠나도 ㅂ교회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굴러갔다. 이 씨의 악행을 아는 사람은 피해자들밖에 없었다. 주변에서는 오히려 피해자들이 ㅂ교회를 떠난 이유에 대한 유언비어가 돌았다.

희영 씨는 2020년 1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성추행을 당했다는 글을 올리고 이 씨가 소속했던 지역 목회자 모임을 통해 사건을 해결해 보려 했다. 희영 씨와 또 다른 피해자가 원하는 건 이 씨의 가해 사실 인정과 진정한 사과뿐이었다. 하지만 이 씨는 강제 추행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목회자 모임에 속한 목사들도 '서로 화해하라'고 종용할 뿐이었다. 피해자들은 상담소를 통해 공식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2020년 말 정혜민 목사(성교육상담센터 숨)를 찾아갔다. 정 목사가 이 씨를 만났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도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희영 씨와 또 다른 피해자는 언론을 통한 공론화를 택했다. 올해 초 <뉴스앤조이>와 <평화나무> 등이 이 사건을 보도했다.

소식은 이 씨가 속했던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까지 들어갔다. 이 씨는 총회 윤리위원회에 회부됐고, 올해 9월 기침 총회에서 면직이 결정됐다. 가해자가 교단에서 면직되면서 사건은 '끝났다'. 그것도 겉으로 보기에는 '정의롭게' 처리됐다. 그러나 결국 피해자들이 유일하게 바랐던 '가해 사실 인정과 진정한 사과'는 이뤄지지 않았다. 교단으로부터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하다가 갑작스레 "마침표를 찍을 수밖에 없게 된" 희영 씨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ㅂ교회와 사역밖에 모르고 살던 희영 씨는 믿고 의지하던 담임목사에게 강제 추행을 당하고 교회를 떠났다. 
ㅂ교회와 사역밖에 모르고 살던 희영 씨는 믿고 의지하던 담임목사에게 강제 추행을 당하고 교회를 떠났다. 
내가 이상한 건가?

피해를 당하고 가장 처음에 든 생각은 '내가 이상한 건가'였어요. '내가 너무 유난스러운 건가'라는 생각을 제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음… 왜냐하면 강간을 당한 건 아니잖아요. 그때 제 생각에는 더 수위가 높은 일을 당하지 않았으니까 별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냥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가해자가 너무 친분이 있고 존경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이상한 건가'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어요.

가해자의 태도도 그런 생각을 강화하게 했죠. 가해자는 시간이 갈수록 "이제 그만 용서하라"고 했어요. "너 티 내지 말고 사역해", "네 기분·감정 티 내지 말고 사역하는 게 잘하는 거야"라면서 가스라이팅을 한 거죠. 그런 말을 계속 들으니까 '내가 이상한 건가', '내가 감정이 주체가 안 되는 사람인 건가' 이런 생각에 많이 빠져 있었어요. '내가 지금 사역자인데 내 마음 관리도 제대로 못하는구나' 이 생각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첫 번째 피해를 당했을 때는 서로 놀랐다고 해야 하나? 그랬던 것 같아요. 근데 두 번째는 가해자가 아주 강압적으로 했죠. '용서해야지. 내가 잘해야지'라고 생각하며 버텨 보려고 했지만, 계속 그 교회에 다니기가 힘들더라고요. 두 달 뒤에 ㅂ교회를 나왔어요. 그랬는데도 한동안은 그 목사 부부와 교류가 있었어요. 목사 부부가 늘 "관계를 잘해야 지혜 있는 거다. 그게 하나님한테 복 받는 거다"라는 말을 했거든요. 특히 리더와의 관계를 잘해야 한다고요. 뭐랄까, 거의 세뇌됐다시피 교육을 받아서 그렇게 행동했던 것 같아요.

어렵게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목사님·사모님 용돈 드리고. 가끔 그들이 "우리 집 와서 아이 좀 봐줘" 혹은 "밥 먹으러 와" 했을 때, 가기 싫어도 '가는 게 지혜 있는 거야, 그게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왕래했어요. 계속 불편했는데, 제가 거절하면 벌 받을 것 같은 마음이 되게 컸거든요. 그 목사와 사모에게 늘 듣던 이야기예요. 그 말에 안 따르면 ㅂ교회에서는 바보 같은 사람이 되거든요. 정말 생각 없고 지혜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아요. 가해자 부부가 그런 두려움을 습관적으로 심었던 것 같아요. 그들과 완전히 관계를 끊은 건 또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였어요. 그때 비로소 '아, 이건 너무 잘못된 일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죠.

당시 제 일상은… 먹고살기 바빴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수년간 ㅂ교회에서 사례비 20만 원에 교회가 운영하던 조그마한 카페에서 일하고 받는 20만 원, 총 40만 원으로 한 달을 살았거든요. 목사님·사모님이 제가 풀타임 사역자처럼 있기를 원해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ㅂ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졸업장도 필요 없겠다 싶어서 대학도 졸업 안 했어요. 오로지 사역만 했어요. 그들이 원하는 사역을 한 거죠. 그렇게 7~8년을 살고 나오니까, 경력도 없고 자격증도 없고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몇 개월을 카페 같은 데서 일했어요. 스물여덟 스물아홉 나이에 계속 아르바이트만 전전했죠. 나이 제한 때문에 안 되기도 하고. 그런 삶의 연속이었어요, 몇 개월간.

그래도 ㅂ교회를 떠났기 때문에 좀 더 빨리 결혼할 수 있었어요. 남편도 ㅂ교회에 다녔는데 제가 나오고 나서도 거기 몇 개월 더 남아 있었거든요. 제가 피해를 당한 걸 남편도 알고 있었는데, 남편 역시 '리더의 잘못은 덮어 주는 게 지혜다'라고 배워 왔기 때문에 좀 더 버틴 거죠. 목사와 사모가 저와 결혼을 못 하게 했어요. 뭐 꿈을 꿨는데 결혼을 서두르는 게 하나님 뜻이 아니라느니, 걔가 너무 이상한 애라서 너는 감당 못한다느니, 이런 식으로 계속 컨트롤하려 했어요. 결국 남편도 버티다가 ㅂ교회를 떠났고 저희는 결혼 준비를 했죠. 보란 듯이 결혼해 버려야겠다, 이런 생각도 있었어요.

그렇게 결혼도 했고 일도 열심히 하는데… 저녁이나 이럴 때 혼자만의 시간이 되면 또 '내가 이상한 건가' 하는 생각에 빠지는 거예요. 저는 모든 관계가 끊겼어요. 저에게 세상은 ㅂ교회가 전부였으니까. 결혼 후에도 계속 힘들었어요. 남편과 있을 때는 잊고 지내다가도, 남편이 출근하면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하는 거예요. '내가 실수한 건가', '그냥 덮고 넘어갔으면 더 좋은 사역자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다 갑자기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계속 이상한 말이 들려왔어요. 제가 목사님·사모님을 배신했다는 이야기부터, 제가 교회를 떠난 이유에 대해 너무 많은 유언비어가 떠도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더 힘들었죠. 공론화하기 전까지는 이런 삶의 반복이었어요.

그냥… 그냥 살았어요. 제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기회가 생겨서 꽃 가게를 차려 1년간 운영했어요. 뭔가 새롭게 시작해 보려고요. 그렇게 했는데도 못 헤어나겠는 거예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고 관계가 형성되는 게 너무 싫고 계속 혼자 있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남편이랑도 싸우게 되더라고요. 제가 1년 이상 지나도 계속 힘들어하니까 남편도 이제 그만하라고 했던 거죠. "교회 떠난 지도 오래됐는데 왜 그러냐"고요. 이런 문제로 계속 다퉜어요. 그러면서 또 그냥 살아지고…. 그냥 태어나서 사는 기분이었어요. 한순간에 제가 살던 세상이 없어졌으니까요. 모든 게 사라졌죠. 관계도, 일도, 직위도 다….

이 느낌이 지금도 있어요. 이제 좀 괜찮은 것 같고 나도 뭔가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문득문득 '그냥 사는' 느낌이 들어요. 저 말고 다른 피해자도 똑같은 말을 하더라고요. "언니, 나 그냥 사는 것 같아"라고요. 모든 걸 잃었는데 회복이 안 되는 느낌이랄까, 삶이 다시 돌아가지 않는 느낌이랄까….

존경했던 목사님들, 그냥 아저씨더라고요

2020년 1월 소셜미디어에 피해를 당했다는 글을 쓰고, 가해자가 속한 목회자 모임에 이야기했어요. 너무 힘들었거든요. 계속 이 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게 힘들어서, 나 좀 살아야겠다 싶어서 이야기했어요. 저는 더 이상 그 교회에 가지 않았지만, 지인 관계가 한 다리만 건너면 엮여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근데 그들에게 들려오는 말이 "걔는 감정 컨트롤이 안 돼서 목사님·사모님 은혜도 모르고 나간 애야", "걔네가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다닌대" 이런 거예요. 계속해서 부정적인 말들이 붙더라고요. 우리는 피해자인데….

공황장애가 왔어요. 그런 게 공황장애인지도 몰랐는데…. 전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막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확 올라오더라고요. 미용실에서 머리 감겨 주는데도 제가 막 죽을 것 같아서 제발 일으켜 달라고 할 정도였어요. 버스 같은 데서도 좀 심하게 오기도 했고…. 제가 너무 힘들어서, 좀 살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 싶었어요.

사실 처음에는 기대가 있었어요. 가해자 부부가 저희에게 가르친 건, 죄를 지었을 때 재빨리 모두에게 인정하고 사과하고 돌이키고 회복하는 게 '하나님 뜻'이라는 거였어요. 그렇게 배웠고 실제로 ㅂ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대대적으로 사과하고 인정하고 회복하는 시간들이 있었거든요. 한편으로는 제 선택에 대한 기대이기도 했죠. 내가 그들을 선택했고, 그들이 옳다고 믿었고, 그래서 그렇게 사역만 하면서 살아왔던 거니까요. '내가 선택한 멋진 어른들이니까 분명 그렇게 해 줄 거야', '분명히 빨리 돌이킬 거야' 이런 희망 같은 게 있었어요. 그때까지도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가해자 부부를 정말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부부가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그 목회자 모임에 계신 목사님들이셨어요. 그래서 내가 직접 그들에게 사과를 받느니, 그들이 인정하는 어른들을 통해서 사과받는 게 빠르겠다 싶었어요. 뭐랄까, 제가 좀 안전하게 보호를 받을 수도 있겠다 싶었죠. 그렇게 하면 이 일이 금방 끝나겠다, 이런 마음으로 그 목회자 모임에 찾아가게 된 건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진 않았어요.

한 목사님이 저희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으셨고, 가해자도 만나셨어요. 근데 가해자의 말이 계속해서 바뀌는데도 목사님들은 모르시더라고요. 결국 "서로 만나서 지혜롭게 화해하는 게 정답이다" 이렇게 결론짓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너무 화가 났는데, 금세 담담해졌어요. 뭐 울고 매달리고 해도 우리 손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 용서하라고 더 강요하기 전에 우리가 여기서 커트해야겠다' 이런 마음이 들었어요. "아, 그러시면 우리는 더 진행하지 않겠습니다.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끝냈던 것 같아요.

그 모임에서 잘 해결되지 않은 게 사실 큰 타격은 아니었어요. 대신 실망감이 컸죠. 우리가 영적 아버지라고 생각했던 분들에게서 나온 답이라는 게, 저희가 생각했을 때 뭐랄까…. 그냥 동네 아저씨들 같았어요. 그냥 그 시대의 교육을 받은 40~50대 아저씨들, 성폭력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더라고요. 한때는 '우와 저분 말씀 너무 좋다'라고 생각했는데, 다 쓸모없더라고요. 저희가 거기서 발을 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만하겠다고 정말 단호하게 말씀드렸거든요. 빨리 정리한 게 지금 생각해도 잘한 선택인 것 같아요.

'내가 이상한 건가'라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사람과 관계 맺기가 싫어졌다. 우울감과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내가 이상한 건가'라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사람과 관계 맺기가 싫어졌다. 우울감과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거짓말이요, 그들의 거짓말

몇 개월 후 지인을 통해 정혜민 목사님과 연결됐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두 가지 마음이었어요. '무조건 알려야겠어'라는 결단과, '근데 너무 무섭다'는 두려움. 저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무서웠어요. '하나님은 그냥 조용히 묻고 가는 걸 원하시지 않을까', '내가 용서하고 지나가면 더 복을 주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거든요.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계속 배워 왔으니까요. '그럼 나는 지금 실수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이건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해야 돼'라고 마음먹었어요.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이건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니까' 스스로 계속 이런 주문을 걸면서 공론화를 진행했어요.

정혜민 목사님을 비롯해 도움을 주신 분들이 저희에게는 큰 힘이 됐어요.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분들에게 응원을 받았어요.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친분이 두텁지 않은 분들이 더 일어나 주시더라고요. 제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을 공유해 주시고, 저한테 연락해서 걱정해 주시고 같이 화내 주셨어요. 오히려 제가 믿었던 분들의 반응이 실망스러웠죠. "정혜민 목사님이랑 얘기한 녹음본 좀 줄 수 있어?", "그 증거 우리도 좀 보면 안 돼?"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분들이 이런 식으로 되게 재촉하셨어요. 어떤 분은 "정 목사는 좌파다" 이런 식으로 얘기해서 "그렇게 얘기하실 거면 전화 끊으시라"고 한 적도 있어요. "내 얘기는 안 했지? 내 얘기는 하지 마. 나는 끼고 싶지 않아"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죠. 배신감이 들더라고요.

사실 공론화는 다들 말렸어요. 제 주변 모두가 싫어했어요. 처음에는 다른 피해자도 싫어했고, 남편도 싫어했고, 부모님도 싫어하셨고…. 제 주변에 있는 사람은 다 크리스천인데, 정말 거의 100% 이렇게 말했던 것 같아요.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 "그건 네가 할 일이 아니지. 하나님이 하실 거야"라고요. 그중에서 "네가 용서해야지"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도 가끔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나를 위해서라도 역시 용서하는 게 맞을까?' 근데 한편으로는 너무 당연하게, 가볍게 던져지는 그 '용서'라는 말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언론에 제보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하나예요. 거짓말이요, 그들의 거짓말. 가해자 부부가 정혜민 목사님과 이야기하면서도 강제 추행 사실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진짜 약간 혼내 주고 싶었어요. 당신이 정말 잘못하고 있다는 걸, 반복하는 그 거짓말 때문에 일이 계속 커지고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었어요. 우리는 피해 사실을 인정받고 진정한 사과만 받으면 된다고 했는데, 회개할 기회가 몇 번씩이나 주어졌는데 그걸 제 발로 걷어차 버린 거니까요.

약간 복수심 같은 것도 있었어요. 그 목사·사모만 보면 되는 건데, 그들 말만 믿는 ㅂ교회 성도들을 보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저와는 모든 연락을 끊어 버린 사람들이, 제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걸 보고도 '우리 목사님은 아니야' 이러면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내는 거예요. 저는 그 모습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거기 붙어 있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더 '끝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기사가 나갔을 때 저는 너무 좋았어요. 제3자가 사건을 조사해서 '이건 정말 잘못된 거야'라고 인정해 준 거잖아요.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든든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뭔가 방패가 생긴 느낌이랄까. 저희가 숨을 곳이 되어 주면서도 강력하게 싸울 수 있게 해 주신 것 같았어요.

근데 보도 후로도 그 목사와 사모는 계속 거짓말을 하고 다녔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뭐 불안하다는 생각보다는 '저 사람들 진짜 밑바닥이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구나'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안타까웠죠. 이상한 게, 제가 너무 사랑했던 분들이라서 계속 상반된 마음이 들더라고요. '저러다 진짜 지옥 가겠다'고 생각하다가도 '그냥 빨리 사과하지' 이런 마음도 컸어요. 그냥 인정하고 사과했으면 용서했을 텐데…. 근데 계속 거짓말하고 저희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하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너무 상상되는 거예요. 대체 왜 저럴까… 안타까웠어요.

저와 상관없이 마침표가 찍힌 거죠

교단을 통한 해결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요. 근데 기사가 나가고 몇 달 뒤에 한 교단 목사님에게 연락이 왔어요. 그분이 연결해 주셔서 총회 윤리위원회 목사님들과 만나는 약속까지 잡았죠. 날짜까지 잡았는데 왠지 불발될 것 같았어요. 왜냐면 이걸 추진하고 싶은 분은 몇 안 됐거든요. 윤리위원회가 직접 저희에게 연락한 것도 아니었고요. 결국 그쪽 사정으로 만남이 성사되지 않았죠. 연결해 주려고 했던 목사님만 저희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저희는 오히려 그분에게 감사했어요.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는데 조금 불안했어요. 윤리위원회가 저희는 안 만나고 가해자만 만난다는 거예요. 이해가 안 됐죠.

9월 총회에서 가해자에 대한 치리가 결정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결정이 잘 나올지 걱정되더라고요. 잘 안 되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자고 전날까지도 남편과 얘기했어요. 잘 안 되면 가해자가 기세등등해질 테니까 두려웠죠. 한편으로는 저희에게 연락을 주시던 목사님이 어느 정도 말씀을 해 주셔서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 상태에서 <뉴스앤조이> 기자님이 결과를 알려 주신 거죠. 총회에서 가해자 '면직'이 결정됐다고요.

가해자가 면직되면 뭔가 다 풀리는 기분이 들 줄 알았어요. 근데 막상 소식을 들으니까 약간 어안이 벙벙해지더라고요. '이게 뭐지?' 하는 느낌…. 그냥 너무 뜬금없이 마침표가 찍힌 기분이었어요. 다행이다 싶기도 했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젠 정말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이 사건과 공론화했던 모든 일이 뭔가 허무해지는 느낌이랄까. 제가 뭐라고 표현을 잘 못하겠네요. 근데 다른 피해자도 똑같이 말하더라고요. "이게 그냥 이렇게 돼 버렸다"고….

음… 저희가 교단 쪽에서 들은 내용은 이거밖에 없거든요. "너희가 법적 소송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할게. 근데 너희가 소송을 하면 교단에서는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렇게만 이야기하더니 몇 개월 후에 사건을 이렇게 끝내 버린 거예요. 만약 저희가 총회 목사님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든지, 그래서 총회 쪽에서도 저희에게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업데이트해 줬다면 결과가 나왔을 때 이런 느낌이 들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올해 9월 열린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 현장. 이 씨는 이 자리에서 면직됐지만, 피해자들은 총회에서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올해 9월 열린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 현장. 이 씨는 이 자리에서 면직됐지만, 피해자들은 총회에서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다시 그렇게 살고 싶지가 않아요

ㅂ교회를 떠났을 때는 말 그대로 뇌가 정지한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저만 도태되고 있는 것 같았죠. 그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계속 예배를 하고 말씀을 들으면서 성장하고 있는데, 저는 정말 심정지가 온 것처럼 '삐-' 이런 느낌이었거든요. 당장 뭘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처음에는 거의 집에만 있었던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도 잘 안 구해지니까. 이걸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는데… 그냥 제 세상이 없어졌어요. 지금 생각하면 잘된 거기도 하지만, 거기를 나와서 너무 다행이다 싶지만, 그때는 그냥 세상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았어요.

일요일에 할 일이 없다는 게 너무 어색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다른 교회를 찾아보기도 하고, 여러 교회에 가 보기도 했죠. 근데 갑자기 '하나님이 있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의심의 시작은 제가 당한 피해에 대한 원망이었죠. 분명히 다 알고 계셨을 텐데 왜 막지 않으셨는지…. 그리고 저 말고도 세상에 이런 사건이 너무 많은데, 왜 안 막아 주시는지. 너무 원망스러운데, 원망해도 되는 건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게 맞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모르겠어요, 이제는…. 너무 궁금한데 답을 못 찾겠어요.

저는 모태신앙이고 살면서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어요. 목사님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았고, 말씀에 적혀 있다니까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고 살았죠. 단 한 번도 궁금했던 적이 없어요. 그게 다 맞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으니까. 가장 쉬운 게 하나님을 믿는 거였는데, 지금은 그게 가장 어려워요. 하나님의 세계라는 게 너무 어려워요. 뭐랄까, 제가 '이건 될 거야'라고 믿고 바랐던 일 중에 이루어진 게 있을 거잖아요. 근데 그게 어차피 이뤄질 일이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거기에 하나님을 끼워 맞췄던 건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이 문제로 남편과 토론도 많이 했어요.

제 신앙 상태를 생각하면 그냥 마음이 아파요. 저는 지금 신앙생활이 없어요. 잠시 저를 그냥 놔두는 중이에요. 이게 불편하고 죄책감도 있어요. 근데 또 이런 생각도 드는 거예요. 총회에서 가해자 면직에 대해서 투표할 때 반대표도 많이 나왔거든요. 내가 아무 교회나 갔다가 반대표를 던졌던 목사가 있는 교회에 가면 어떡하나. 꼭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교회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라는 걸 알았을 때 교인들과 목회자의 반응은 어떨까. 받아들여질까. 이런 걱정 때문에 더 교회를 선택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어요.

그리고… 다시 그렇게 살고 싶지가 않아요. 저는 신앙생활이 너무 고됐어요. 물론 순간순간 행복하기도 했지만, 너무 힘들었죠.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도 잘못된 것 같아요. 너무 이상하잖아요. 어릴 때부터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는 게…. 저는 지금까지 신앙생활에 '왜'라는 말을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어요. 이제야 그걸 하고 있는 거죠. 그런 면에서는 지금 상태가 좋은 것 같다고도 생각해요. 계속 궁금해지거든요.

이런 생각도 해요. 저한테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고 다른 피해자에게만 일어났다면, 그리고 이렇게 공론화했다면, 저도 ㅂ교회 교인들과 같았을 거예요. 거기 있으면 리더의 잘못은 용서하는 게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하니까, 그 피해자가 너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다른 교회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했겠죠. 오히려 가해자를 걱정하면서 '뭔가 오해가 있는 거 아니야? 목사님이 피해를 당하시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소식에 불같이 화를 내지만요.(웃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너무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았는데 지금은 조금 더 똑똑해진 느낌이에요.

회복은 없는 것 같아요

'회복'이라는 것에 대해 정말 고민을 많이 해 봤는데요. 회복은 없는 것 같아요. 저도 제가 회복이 됐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확실히 예전보다는 나아졌으니까요. 근데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회복이란 건 없는 것 같아요. 말하자면 이런 거예요. 상처에 계속 살이 붙는 거죠. 저를 향한 이상한 말들과 스스로 하는 부정적인 생각들. '나 진짜 망했어. 큰일 났어. 너무 무서워' 이런 것들이 살처럼 붙어서 계속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살이 붙지 않은 상태인 거죠. 그렇다고 상처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아요. 이게 '0'이 될 수는 없어요.

상처가 안 난 사람처럼 될 수는 없는데, 이제는 슬프지도 억울하지도 않게 바라볼 수는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만났을 때 꺼내 보일 수 있을 만큼 괜찮아졌어요. 며칠 전 친구와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때 제가 이렇게 말했거든요. "혹시 ㅂ교회 사람들한테 연락이 오면 꼭 따뜻한 커피를 사 줘야겠다"고요. 현실적으로 그들에게 연락이 올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저에게 약간 희망이 남아 있나 봐요. 몇 년 후에라도 연락이 온다면, 그건 아마 미안하다는 연락일 것 같아요. 여전히 그들에게 화가 나지만 밉지만은 않아요. 안타깝죠. 어쨌든 그들에게 연락이 오면 커피를 사 주겠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괜찮아지긴 했어요.

결국은 제가 이겨 내야 하는 거더라고요. 주변에서 위로해 주고 도와주는 것도 감사하지만, 결국 이걸 극복해야 하는 건 저 자신이라고 생각해요. 약간 멘탈 싸움이랄까…. 저는 공황장애를 겪었을 때도 따로 상담이나 치료는 받지 않았어요. 일단 정신과 약을 먹고 싶지 않아서 병원은 안 갔어요. 상담소도 알아보기는 했는데, 뭔가 사건을 들춰내서 이야기하기가 싫더라고요. 다행히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언젠가 상담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별로 그러고 싶지가 않아요.

지금은 저를 다시 구축해 간다고 해야 할까요. 뭔가 저를 다시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너는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아' 이렇게 계속 스스로 자신감도 불어넣어 주고요. 만약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 후회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고된 생활을 견딘 제 자신이 대견해요. 그들에게 배운 것도 없지는 않으니까요. 그렇게 버텨서 더 좋은 사람이 됐다고, 그만큼 버텨 내서 너무 멋있다고 스스로 칭찬해 주고 있어요.

불쑥불쑥 '그냥 살고 있다'는 느낌이 올라오지만,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어요. 지금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 그 이유가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동안 교회라는 곳에 너무 갇혀 있었으니까요. 교회는 겉으로는 세상으로 나가라고 하면서 자꾸 교회 안으로만 끌어들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평범하게 살아 보고 싶다고, 뭔가 영적인 거 생각하지 않고 남들과 동일한 시간에 출퇴근하는 걸 너무 해 보고 싶었어요. 삶을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근데 직장 다닌 지 두 달밖에 안 됐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웃음) 저는 사업을 너무너무 하고 싶어요. 돈 많이 벌어서 좋은 부자가 되는 게 제 꿈이에요.(웃음) 아이러니한 게, 저는 지금 하나님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제가 정말 사업가로 성공하면 교회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형편 어려우면 도와드리고, 목사님 자녀들 장학금도 드리고.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일단 이렇게 정리가 되는 것 같아요. 소송을 생각하지는 않아요. 거기에 시간과 돈을 쓰고 싶지가 않아서요. 좀 지쳤어요. 사건 자체 때문에 힘들다기보다, 이게 또다시 불거지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이제 그만하고 싶더라고요. 저희는 기록으로 남겼고 그걸로 됐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항상 자기들의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했거든요. '우리 사역이 최고고 우리 교회는 잘되고 있다'고요. 근데 공론화를 통해서 그게 무너졌으니, 가장 싫어하는 걸 당하고 있는 거죠. 어쨌든 가해자가 교단에서 면직되기도 했고요.

가해자가 다시 목회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한편으로는 대놓고 할 것 같기도 하고요. 오래 지켜본 그들의 성향상,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회개했다' 이러면서 복귀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을 본다면 화가 날 것 같기는 한데, 좀 더 멀리 보려고 해요. 그들이 뭘 하든 간에 하나님 앞에서는 이미 망한 거죠. 어차피 끝은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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