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안녕, 기독교>(토기장이) 저자 김정주 전도사가 진행한 평신도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 완성반 참석자가 쓴 글입니다. '한 권의 책 쓰기' 프로젝트에서 저술한 단행본 형식의 미출판 원고 중 일부를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사모행전 - 교회밖에 사모'는 10회에 걸쳐 격주로 연재됩니다. - 편집자 주
부족한 아비를 둔 죄인

불꽃이 번쩍. 용순 씨가 락카 스프레이를 공중에 뿌리더니, 라이터를 가져다 댄다. 펑 하고 불꽃이 피어오른다. 술에 취해 광기로 번뜩이는 용순 씨 눈빛에서 살기가 느껴진다.

"다 불 싸질러 버릴 거야. 다 같이 죽어 봐 오늘!"

광기로 가득 차 울부짖는 용순 씨를 뒤로하고, 나와 말희 씨는 잠옷 차림으로 도망쳤다. 만약을 대비해 경찰서와 119에 신고도 했다. 경찰과 소방관이 출동하니 용순 씨의 화가 진정되는 듯했다. 아니었다. 단단히 화가 난 용순 씨는 우리만 보면 락카통과 라이터를 찾았다. 술에 잔뜩 취해 잠든 그에게 들킬세라, 몰래 집에 들어와 여행용 가방에 짐을 챙겨 들고나왔다. 그의 화가 풀릴 때까지 찜질방에서 지낼 생각이었다.

용순 씨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의 분노는 사라진 우리 대신 교회로 향했다. 집안 살림 내팽개치고 새벽부터 교회에 나가는 말희 씨와 교회 봉사로 임용고시는 뒷전인 나에 대한 분노의 화살은 교회로 돌아갔다. 용순 씨가 교회에 계속 전화를 해 댄 모양이다. 담임목사, 당신 내 앞에 와서 얘기 좀 들어 보라고 말이다. 말희 씨의 휴대폰에 급기야 부재중 전화와 음성 메시지가 날아든다. 확인할 줄 모르는 말희 씨 대신 내가 슬쩍 확인한다. 생전 처음 듣는 담임목사님의 노기 띤 음성이다.

"고 권사! 집안일을 교회로 끌어들이면 어떡해? 알아서 해결하세요!"

용순 씨의 분노는 오래 지속됐고, 주일 오후 말희 씨와 나는 당회실로 불려 갔다. 자초지종을 묻는다는 명목하에 여러 장로님 앞에서 취조를 당했다. 덧붙여 다시는 교회에 이런 전화가 걸려 오도록 하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하고 나왔다. 결국, 용순 씨가 애타게 찾던 담임목사님 대신, 나와 남준 형제, 청년부 목사님이 용순 씨 앞에 섰다. 셋 다 무릎을 꿇고 앉아 이야기를 들어 드리고, 기도해 드리고, 안아 드리고, 용서를 받았다.

몇 주가 지났다. 담임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갑자기 용순 씨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 내내 강대상에서 나를 찾아내 눈을 마주쳤다. 그후로 용순 씨 이야기는 설교 시간 단골 소재가 됐고, 목사님의 눈빛을 받아 낼 때마다 가슴이 욱신거렸다. 그 얘기가 다른 의미로 들리기 시작한 건, 남준 형제와 혼담이 오가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시어머님이 말씀하셨다. 너는 다 마음에 드는데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고, 그중 하나가 용순 씨라고 했다. 남준 형제가 친아버지 사랑을 못 받고 자랐으니, 며느리만큼은 목사·장로 가정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기를 바라셨단다. 시어머니는 "남준이가 아버지 대신 장인어른 사랑을 먹는 아들이 되기를 바랐는데…"라며 말끝을 흐리셨다.

그 후로 담임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용순 씨를 언급할 때마다 난 '부족한 아비를 둔 죄인'이 되었다. 너는 앞으로 절대 사모가 되지 말라는 명령처럼 느껴졌다. 아버지가 장로·목사도 아닌 네가, 더구나 알코올중독자를 아버지로 둔 네가 감히 사모가 될 거냐고 묻는 것 같았다. 이후 전도사가 된 남편이 새로운 사역지를 찾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장로 아버지를 둔 다른 사모님은 사역 게시판에 올라오는 교회들 사정을 훤히 꿰고 있었다. 우린 가고 싶은 교회가 있어도 전혀 사정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 보면, 나에게 믿고 의지할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 한 분뿐이라는 사실이 선명해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에겐 여전히 장로 아버지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그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구한다. 나에게 아버지는, 사모師母로서 평생 사모思慕할 하나님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장모가 사고 치면,
자네가 교회에서 잘리는 거야

남편이 된 남준 형제가 신대원에 입학했다. 우리 교회 청년부에 3년 정도 출석하던 남편은 자연스럽게 파트타임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했다. 교회에 봄 정기 대심방 기간이 돌아왔다. 권사인 말희 씨는 몇 년째 대심방 대원에서 제외되고 있었다. 이에 발끈해 부목사님에게 이유를 물으면, 죄송하다, 실수였다, 다음에는 꼭 대원 명단에 넣겠다는 대답만 돌아온다고 했다. 그런데 올해는 어쩐지 말희 씨가 별말이 없어 넌지시 물었다.

"엄마, 올해는 꼭 말씀드려."
"뭘?"
"엄마 심방 대원 하는 거 말이야. 아니면, 남편 통해서 말해 두라고 할까?"
"아냐, 그러지 마."

말희 씨답지 않게 풀죽은 목소리였다. 이상하게 여긴 나는 왜 그러냐며 말희 씨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내막은 이랬다. 몇 년 전, 마지막 심방에서 말희 씨가 큰 실수를 했단다. 교회에 새로 오신 성도님 가정에 심방을 갔다고 한다. 부인 되시는 분이 다소 이국적인 외모를 지니셨는데, 말희 씨가 그만 "튀기(혼혈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 - 기자 주) 아니냐"는 어마어마한 발언을 했단다. 말희 씨는 내적 독백으로 했다고 믿었는데 말이 입 밖으로 튀어 나오고 말았고, 결국 그 가정은 상처를 받아 교회에 나오지 않겠다고 했단다. 그 후로 말희 씨도 모르게 권징 차원에서 '심방 대원 영구 제외'라는 처벌이 내려진 거란다.

엄청난 실수다. 당연한 권징이다. 당시에는 몰랐다가 몇 년 뒤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말희 씨도, 지금은 볼 수 없는 그분에게 많이 미안해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몇 년 동안 아무 이야기도 없더니, 주보에 남편의 전도사 부임 광고가 날 때쯤 말희 씨와 남편이 나란히 당회실에 끌려갔단다. 이러이러해서 고 권사가 권징 중인데,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사위인 남편이 바로 사역을 그만둬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단다. 말희 씨와 남편에게 각각 다짐까지 받아냈단다.

"고 권사, 앞으로 말실수 하나라도 더 하면 여기 있는 사위 바로 잘리는 겁니다. 다음 주에 당장 해임 광고 낼 거예요. 알겠어요?"
"네."
"자네, 장모가 사고 치면 전도사에서 잘리는 거야. 알겠지?"
"네."

하필, 용순 씨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사고를(?) 쳤다. 어느 순간부터 매주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용순 씨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았다. 예배당 제일 왼쪽 앞에서 네 번째 자리가 용순 씨의 지정석이었다(참고로 바로 앞줄까지는 장로님들이 앉으신다). 어느 날, 우리 교회에 새로 나온 가족이 용순 씨 자리에 앉았단다. 나중에 온 용순 씨가 그냥 그 뒤에 앉으면 될 것을, 그분들에게 여긴 내 자리니 비켜 달라고 했고, 그분들은 바로 교회를 떠났다고 한다. 당회에서는 이 일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당장 말희 씨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어렵게 전도한 잃은 양을 어떻게 그리 한 방에 보내 버릴 수 있느냐, 한 번만 더 그러면 그만큼 전도를 해 오든지 교회를 떠나든지 하라는 내용이었단다. 게다가 용순 씨가 보내 버린(?) 그 가족 중 한 분은 대학교수이자 다른 교회 장로님이었다며, 어렵게 설득해 우리 교회로 모셨는데, 당신들이 그 가족이 낼 만큼의 헌금을 낼 수 있느냐며, 이번 일로 교회가 얼마나 큰 경제적 손실을 봤는지 아느냐고 따져 물었다고 한다.

처음엔 용순 씨야 장로가 아니니 그렇다고 쳐도, 권사인 말희 씨마저 남편 사역에 방해가 되는 건가 싶어 화가 났다. 말희 씨와 용순 씨가 밉기도 했다. 남편에게는 한없이 미안해졌다. 말희 씨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남편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사과했던 거 같다. 남편은 그래서 잘리면 그만두면 되는 거지 뭘 그렇게 의기소침해하냐고 나를 위로했다.

나중엔 매니큐어 색상까지 고민하며 교회에 다니는 말희 씨를 보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희 씨가 심방 때 했던 발언은 누가 봐도 잘못이다. 다만, 자신이 실수한 줄도 몰랐던 말희 씨에게 '이러이러한 실수를 했으니 권징 차원에서 심방 대원에서 영구 제외된다'고 얘기해 주는 게 올바른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상처 입으셨을 그분에게 말희 씨가 진심을 담아 사과하게 하는 것이 더욱 아름다운 절차였을 것이다.

말희 씨와 남편을 당회실로 부른 교회 어른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이건 마치, 당회가 말희 씨의 잘못을 쥐고 있다가 사위가 사역을 시작하자마자 그것을 빌미로 협박하는 모양새였다. 만약 사위가 전도사가 아니었다면 말희 씨는 평생 왜 자신이 심방 대원에서 제외됐는지조차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말희 씨는 또 매번 자기를 심방 대원에서 빠트리는 애먼 부교역자분들만 원망했을 것이고, 당회는 말희 씨가 영원히 자기 잘못을 모른 채 다른 이의 실수를 정죄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용순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교회에 내 자리란 개념이 없으니 그 행동은 실례였다. 몰랐을 수도 있으나 다음부턴 조심해야 한다'고 사랑을 담아 조언을 했으면 어땠을까. 결국 헌금을 많이 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쫓아낸 게 잘못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초신자였던 용순 씨 마음은 어땠을까. 교회가 말하는 '사랑'이란 결국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가름되는 것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그 당시에는 하루라도 빨리 말희 씨와 용순 씨가 다니는 이 교회를 떠나는 게, 부모님을 위해서도 남편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사모가 된 내가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굳이 사모가 돼서, 말희 씨도 용순 씨도 남준 씨도 모두 힘들게 하는 것 같았다. 출석하는 교회라도 다르면 그들의 신앙생활이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질 것 같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편이 그 교회에서 사역하는 동안, 말희 씨와 용순 씨 때문에 남편이 잘리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뒤돌아보면, 그때 나도 교회 어른들처럼 잘못된 시선으로 말희 씨와 용순 씨를 바라봤던 게 가장 큰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가족의 행동을 연좌제로 묶어서 남편 사역의 잣대로 세웠던 교회 어른들의 잘못된 시선을 답습했으니, 말희 씨와 용순 씨에게 정확하게 사과해야 했다고 말이다. 또한 사모였던 내가, 그들의 잘못을 사랑으로 정확하게 지적하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이야기해 주고 함께 기도해 줬어야 했다고 말이다. 교회 내 잘못된 시선에 맞서 말희 씨와 용순 씨를 대신해 목소리 내지 못했던 사실이 뒤늦게 부끄럽다.

지금은 천국에 계실 말희 씨와 용순 씨에게, 당신들의 딸이 용기 없는 사모라서 죄송했다고 말하고 싶다.

민달팽이 / 사모師母가 아닌, 하나님을 사모思慕하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며, 매일매일 아등바등 삶을 살아 내고 있는 이 시대의 '불량 사모'. 교회 '밖에'서가 아닌, 교회'밖에' 모르던 삶으로 돌아가려 여전히 애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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