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안녕, 기독교>(토기장이) 저자 김정주 전도사가 진행한 평신도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 완성반 참석자가 쓴 글입니다. '한 권의 책 쓰기' 프로젝트에서 저술한 단행본 형식의 미출판 원고 중 일부를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사모행전 - 교회밖에 사모'는 10회에 걸쳐 격주로 연재됩니다. - 편집자 주
1. 반주 한 번에 예배를 뒤집어놓으셨다

"또 하하하ㄴ ㅏ ㅇㅡㅣ ㅇ ㅕㄹ 맾를 바라아아아시며~"

반주가 시작됐다. 페달을 밟아야 하는 다리가 덜덜 떨린다. 찬양을 부르는 선생님들을 쳐다볼 겨를이 없다. 분명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를 쳤는데, '또 하나의 반주를 만드시며'로 곡이 바뀐다. 손이 미끄러지는 건 물론, 손가락이 미처 건반에 닿지 못해 이상한 음을 마구 누른다.

박자는 또 어떻고. 이 찬양이 이렇게나 빨랐던가 싶을 정도로 마구 내달린다. 망했다. 얼렁뚱땅 반주를 끝냈다. 여전히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설교를 앞둔 목사님께서 강대상 위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신다. 말문이 막히는 연주였나 보다. 여기저기서 따가운 눈총이 날아든다. 광고 시간에 당회 서기장로님이 기어코 한 말씀 하신다.

"에… 반주는 좀 더 준비된 사람이 합시다. 정 반주할 사람이 없으면 다른 부서에 부탁하거나 차라리 반주 없이 찬송하세요."

우리 교회 사모님들은 대부분 피아노 반주가 가능했다. 게다가 한 분은 지역에서 유명한 반주자였다. 파이프오르간 연주도 가능한 능력자였다. 반주를 못하는 분은 찬양이라도 기가 막히게 잘 불렀다. 교회에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찬양으로 섬겼다. 피아노를 다시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든 건, 신학교에 다니는 남자친구를 만난 이후였다. 급할 때 반주자로 섬겨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갑자기 각 부서 교사들이 돌아가며 1부 예배 특송을 해야 했다. 반주자는 구하기 힘들었고, 중고등부 총무를 맡은 교사로서 책임감이 앞섰다.

결국 반주를 맡기로 했다. 딸이 예배 때 피아노 반주자로 섬기기 바랐던 말희 씨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없는 살림에 피아노를 10년이나 가르쳤던 그의 선견지명도 보람을 얻는다. 피아노를 배운 지 오래라 손이 굳어서, 직장 근처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직장 동료가 추천해 준 곳인데, 원장님이 교회를 안 다니신다. 대략 난감이다. 반주법이 급한데 자꾸 명곡집만 치란다. CCM 연주곡집도 사 갔지만, 대충 봐 주기만 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실전을 앞두고, 노래에 맞춰 보지 않고 혼자 연습했다. 그때는 잘됐다. 노래가 들리자 문제였다. 노랫소리 따로, 나 따로, 따로국밥이었다. 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아 처음 연주한 곡은 앞서 말했다시피 '또 하나의 반주를 만드시며'로 끝이 났다. 그 반주를 끝으로 은퇴했다. 화려한 데뷔이자 은퇴였다. 아니, 잘렸다. 다시는 반주한다고 나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남자친구였던 남편과 헤어져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반주도 못하는 사모를 어디다 쓰겠나 싶었다.

사모는 교회에서 '5분 대기조' 같은 존재가 돼야 한다. 피아노든 찬양이든 뭐든, 예배 때 펑크가 나면 메꿀 줄 알아야 한다. 급작스럽게 특송을 불러야 할 때도, 각종 예배 때 반주자가 결석해도, 준비된 사모가 있다면 걱정이 없다. 5분 대기조인 사모가 투입되면 되니까. 그런데 반주 한 번에 예배를 뒤집어 놨다. 아니, 망쳐 놨다. 깜냥이 안 되는 걸 어쩌나. 천지가 개벽해도 반주는 못하겠다.

나는 반주를 못한다. 찬양도 잘 못한다. '반주 5분 대기조' 되기는 글렀다. 대신 세심함을 무기로 재능 있는 이들을 섬기고 세워 주며, 다른 방식으로 교회를 뒤집어 보련다. 반주는 못해도 열심히 박수해 주고, 격려해 주고, 수고에 감사를 표하며 기프티콘 하나 날리는 센스를 장착하련다. '세심 5분 대기조'가 되련다.

2. 요리보다 배달 음식이 편한 '불량 사모'

"사모님, 아주 귀한 재능을 가지셨네요. 예전에 다른 교회 갔더니, 담임목사님 사모님이 여전도회분들 이끌고, 빵을 만들어서 손님들 대접을 하시더라고요. 되게 보기 좋았어요. 사모님도 아주 귀하게 쓰임받으실 거예요."

반주를 못하니 이렇게라도 쓰임을 받는 건가, 내심 기뻤다. 독학으로 열심히 제빵 실력을 갈고닦았다. 호두파이 정도는 선물용으로 구울 수 있는 정도가 됐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니 도저히 베이킹을 할 수가 없었다. 삼시 세끼 챙겨 먹기도 바빴다. 베이킹과 요리는 남의 일이 되어 갔다.

아이들이 제법 컸다. 사역지도 옮겼다. 남편이 청년부를 맡게 됐다. 청년들을 집에 자주 불러 식사를 대접하고 싶단다. 청년들에게 대접할 우리 집만의 대표 메뉴를 개발하란다. 일단 제일 자신 있는 일본식 카레를 이야기했다. 그것뿐 아니라, 여러 메뉴를 연습해서 다양한 메뉴로 섬겨 달란다…. 힘들지 않게(?) 스테이크 덮밥, 돈가스 덮밥 같은 한 그릇 메뉴 위주로 말이다. 말은 참 쉽다.

어느 날 청년부 임원 10명이 우리 집에 온다는 통보를 받았다. 아침부터 카레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 양파 8개를 채 썰어, 1시간 넘게 볶는다. 스테이크용 소고기도 일일이 손질해서 넣는다. 양송이버섯은 껍질을 까서 잘게 썰어 둔다. 아이 둘을 데리고, 혼자 복작대면서 카레를 만든다.

청년들이 들이닥친다. 카레 10인분을 상에 차린다. 샐러드도 곁들인다. 후식으로 낼 크로플은 청년들이 식사하는 속도에 맞춰 굽는다. 그 사이에 아이 둘 밥도 먹인다. 그릇이 나오면 1차 설거지를 시작한다. 임원회의에 방해되지 않게 아이들을 안방에 몰아넣는다. 청년들이 후식까지 다 먹으면 후다닥 2차 설거지를 하고 안방으로 숨어 들어간다. 그들이 언제쯤 돌아갔는지 모르겠다.

다음 날, 예배가 끝난 뒤 아이들과 교회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삼각김밥 냉장고 근처에 있는 저 남자, 어디서 본 것 같다. 그쪽도 긴가민가한 시선을 보낸다. 누군지 모르겠다. 편의점에서 나온 큰아이가 "엄마는 왜 어제 우리 집에 온 아저씨한테 인사 안 해?"라고 묻는다. 아, 어제 우리 집에 왔던 청년이었나 보다.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낭패다. 어제 수고했다는 남편의 말에도 뾰족한 대답이 날아간다.

"다음부터는 배달 음식 시켜 먹자. 크로플 정도는 만들어 볼게."

얼마 전, 달 사모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남편 목사님이 청년부 사역을 하실 때 청년들을 집에 불러 교제를 나누고 싶어 하셨는데, 본인이 요리를 못해 집에는 초대를 자주 못 했단다. 청년부 사역을 그만두며 그게 제일 아쉬웠다고 말하는 남편 앞에서 펑펑 울었다며, 눈물을 보이신다. 나도 그만 울음이 터진다.

달 사모님과 만날 때마다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참 좋았다. 늘 다정하게 눈을 맞춰 주시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신다. 누구보다 깊이 공감해 주신다. 못하는 요리를 붙들고 있을 시간에 배달 음식을 주문하고 이렇게 깊이 있는 교제를 나누면 안 될까? 그러면 '불량 사모'가 되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 정성스러운 음식을 대접해 놓고, 다음 날 얼굴도 못 알아보는 게 나을까, 배달 음식을 대접하더라도 눈을 맞추고 마음을 나누는 게 나을까. 불량 사모인 나는 자꾸 배달 앱만 뒤적인다.

민달팽이 / 사모師母가 아닌, 하나님을 사모思慕하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며, 매일매일 아등바등 삶을 살아 내고 있는 이 시대의 '불량 사모'. 교회 '밖에'서가 아닌, 교회'밖에' 모르던 삶으로 돌아가려 여전히 애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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