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글 쓰는 거 좋아하니까 글쓰기 모임이나 한번 해 보는 거 어때? 김정주(김싸부)의 '쓰고뱉다'."

친한 형이 지나가듯 툭 던진 말을 나는 '탁' 하고 잡았다. 일단 한번 해 보자는 생각으로, 큰 기대 없이 스스로 문턱을 한껏 낮게 만들고 시작했다. 

어설프기 짝이 없었던 강의안, 초라하기 그지없었던 PPT, 처음 만났으니 처음 보는 사람들,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 애매했던 확신, 하지만 '같이의 가치'를 발견하고 '따뜻함'이라는 실마리를 찾은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 1기는, 2018년 8월 그렇게 시작됐다. 1년에 한 기수씩 오프라인에서 2년 동안 2·3기가 진행됐고, 코로나의 난입과 함께 지난해부터 온라인으로 4기가 시작돼, 이번 가을 마침내 10기까지 도착하게 됐다.

글쓰기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많은 사람을 만났다. 존재의 목소리인 글을 통해 그 존재들을 알아가고 그들의 마음에 접속할 수 있었다. 삶의 모습들은 다양하고 입체적이지만 결국에는 모두 하나라는 결론에 도달해,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게 됐다.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 홍보 포스터. 사진 제공 김정주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 홍보 포스터. 사진 제공 김정주

이 여정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 있다면,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들의 서사를 풍성히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 기독교 세계에서 '글'을 통해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주로 목회자의 것이었다. 이게 마냥 부정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목회자는 구조적으로나 기능적으로나 글을 써야 하고 또 쓸 수밖에 없는 위치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목회자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면서, 교회 내에 유통되는 신앙에 관한 이야기가 납작해지고 협소해진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엄밀히 말하면, 목회자는 신앙생활을 가르치는 입장이고 평신도는 신앙생활을 하는 입장이니, 삶의 자리의 다양성·입체성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또한 삶은 교리로 재단하기엔 너무나 복잡하고 애매하고 모호한 구석을 늘 가지고 있다. 목회자들의 글만으로 신앙생활의 다채로운 풍광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평신도'들의 글에 담긴 서사는 내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줬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신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이 아닌, 직관적인 풍경을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쓰고뱉다를 진행하며 어떤 책에서도 얻지 못했던 지식들을 '사람 책'에서 얻게 됐다.

'쓰고뱉다' 모임에서는 각자의 이름·직업명·직위가 아닌 본인의 존재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닉네임을 사용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참석자들이 어떤 역할로서의 자신이 아닌 '존재 자체'로서의 자신으로서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위력이 생겼다. 이 모임에서 글쓰기로 자신의 존재를 마음껏 드러낸 사람들은 언제나 자유함을 얻고 돌아갔다. 주로 기독교인들이 모였지만,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치는 시간이 아니었다. 중간에 설교를 한 적도 없고, 합심하여 기도한 적도 없다. 그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그 '사랑'을 '호의'로 변환시켜 그 시공간을 가득 채우려고 힘썼을 뿐이다.

호의가 계속되니 그게 권리인 줄 아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둘리가 발사하는 '호이'같은 마법이 일어났다.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 없는 '쓰고뱉다'라는 조그마한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그야말로 쓰고 뱉었고, 그 안에서 치유와 회복이 고개를 들었다. 존재의 언어인 글을 쓰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연대를 이루고, 공동체성을 갖고 하나가 돼 갔다. 마침내 종강을 할 때쯤에는 이곳이 '교회' 같았다는 말을 했다.

이 지점에서 많은 생각이 오갔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곳이 교회'라고 고백하게 한 것일까. 답은 가까이에 있었다. 존재 자체를 받아 주고, 존재의 언어로 만나고, 존재의 이야기가 오가는 곳이 곧 '교회'였다. 그 후로는 '쓰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내 숙명이 돼 버렸다. 각 사람이 지닌 존재의 언어를 찾아 주고, 목소리를 찾아 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과 '교회를 세우는 것' 사이에서 별반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참석자들은 글쓰기 모임이 '교회' 같다고 표현했다. 사진은 코로나19 확산 이전 모임 장면. 사진 제공 김정주
참석자들은 글쓰기 모임이 '교회' 같다고 표현했다. 사진은 코로나19 확산 이전 모임 장면. 사진 제공 김정주

기본반만 있었던 '쓰고뱉다'는 사람들의 기분 좋은 요청에 따라 올해 처음으로 심화반·완성반까지 출항하게 됐다. 심화반과 완성반을 통해 더 큰 바다로 나오게 된 '쓰뱉러'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한 권의 책 쓰기'에 도전하게 됐다. 그 결과가 아직 단행본 출판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개개인의 소중한 이야기를 세상에 쏘아 올릴 미사일 한 발씩은 모두가 장착할 수 있게 됐다.

특별히, 지금 이 소개 글을 신호탄으로 <뉴스앤조이>에 '쓰고뱉다' 참석자의 목소리를 담은 글이 연달아 게재될 예정이다. 완성반 참석자들이 쓴 단행본 형식의 미출간 원고 중 일부 필자의 글을 발췌해 차례로 게재한다.

1. 사라 님이 쓴 <교회 언니>는 교회 하면 생각나는 식상한 '교회 오빠'가 아니라, 교회가 싫어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교회 언니'의 신앙생활 이야기를 담았다. 사라 님의 글 중에서는 '안녕, 자모실 - 육아를 하니 영적으로 궁핍해졌습니다'가 소개될 예정이다.

2. 쓰는 인간 님이 쓴 <미신, 차마 신이 되지 못한 것들>은 인간 안에 기본적으로 담겨 있는 신심을 미신을 통해서 추적하고, 그것이 어떻게 참된 신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다룬다.  '물건에 대한 미신 - 문지방 밟으면 복이 나간다고요?'라는 글이 소개될 예정이다.

3. 민달팽이 님이 쓴 <사모행전 - 교회 밖에 사모>는 교회 내 약자이자, 소외된 위치에 있는 '사모' 이야기를 다룬다. 민달팽이 님의 글은 총 10편이 발췌돼 연재 형태로 게재된다. 교회란 무엇이며, 사모란 누구이며,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보여 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 이야기들이 독자들에게 소중하게 잘 전달되길 바란다. 쓰뱉러들의 글이 신앙을 갖고 자신의 자리에서 딜레마·역설·아이러니를 살아 내는 인간 실존을 조금이라도 알리는 데 보탬이 됐으면 한다. 그들의 목소리가 일어나는 것을 영원히 응원하며, 쓰고 뱉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들고자 오늘도 뚜벅뚜벅 걸어간다.

김정주 / <안녕, 기독교>(토기장이) 저자. 글쓰기 수업 '쓰고뱉다'의 선생 '김싸부'로 활동하고 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닌, 글이 나를 쓰는 '글이쓰도인'이 되길 바라며 계속 써 내려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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