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안녕, 기독교>(토기장이) 저자 김정주 전도사가 진행한 평신도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 완성반 참석자가 쓴 글입니다. '한 권의 책 쓰기' 프로젝트에서 저술한 단행본 형식의 미출판 원고 중 일부를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자모실. 아기가 아무리 넘어져도 다칠 염려 없는 푹신한 알집 매트와 곳곳에 붙은 모서리 방지 테이프, 아기들이 언제든 식사를 할 수 있는 수유실, 뒤처리가 가능한 기저귀 갈이대와 화장실까지 완비된, 아기를 데리고는 이보다 더 안락할 수가 없는 곳. 하지만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한 영적 전투가 매주 일어나는 그곳.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 어, 어… 안 돼 안 돼! 주보 입에다 넣으면 안 돼요~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

- 흐잌~~~ 아니야, 만지지 않아요. 성경책 찢는 거 아니야.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 왜, 왜~ 뭐 줄까? 배고파? 아까 먹고 왔잖아~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ㄷ…

- 알았어, 알았어. 엄마가 안아 줄게.

후우… 시작부터 난관이다. 사도신경이 이렇게 고백하기 힘든 거였나. 울어 대는 아기를 들쳐 업고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다. 적당한 바운스가 중요하다. 멀리서 보면 택견을 하는 것 같기도, 스포츠 댄스를 추는 것 같기도 할 것이다. 아기를 위한 몸짓이기도 하고, 찬양을 부르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언제나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찬양 드리기 원하지만, 찬양 부르랴 우는 아기 달래랴 하다 보면, 그 '진정'도 있었다 없었다 한다. 더 크게 찬양을 불러 보려는데 옆에 아기 엄마가 묻는다.

- 몇 개월이에요?

- 이제 8개월이요. (더는 안 물어봤으면 좋겠는데…)

- 얘는 아기 띠를 좋아하나 봐요.

- 네, 아기 띠를 하면 조용해서요. (예배드려야 하는데…)

- 저희 애는 아기 띠를 안 좋아해서 팔이 빠질 것 같아요.

- 아, 네에…^^ (아기를 안고 있는 게 정말 힘들어 보이긴 한다.)

기도는 절대 눈을 감고 해서는 안 된다. 아니, 할 수 없다. 아기 띠를 해도 징징대는 통에 다시 바닥으로 내려놓기라도 하면, 아기는 종종 기어서 온 자모실을 헤집고 다니기 때문이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딸랑이를 들고 왔는데도 계속 옆 아기 딸랑이를 탐낸다. 아무래도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은 본능인가 보다.

- (개미만한 목소리로) 아니야, 만지지 않아요~ 네 거 여기 있잖아. 자, 이거 보세요. 딸랑딸랑~

기도문을 하나도 듣지도 못했고, 하나님께 무언가를 전하지도 못했는데 기도 시간이 끝났다. 이제 다시 집중해야 했다. 설교조차 놓치면 이곳에 온 목적이 사라진다.

자모실에 무려 두 개씩이나 비치된 커다란 모니터에 최대한 시선을 꽂고 목사님 말씀을 청종하려 했다. 자모실에 마치 피난민처럼 앉은 엄마들이 열댓 명은 되어 보인다. 나와 비슷한 어조로 아기에게 말하는 엄마가 열댓은 된다는 얘기다. 설교 내용이 무슨 말씀인지 잘 들릴 리가 없다. 그래도 필기는 못할지언정 집중력을 잃어서는 안 된다. 주의 말씀을 놓치게 되면 이번 한 주도 잘 보내기는 글렀으니까. 근데 이건 무슨 냄새지? 누가 똥 쌌나? 누구지? 저 아기인가? 옆에 아기인가? 아, 우리 아기구나…. 어서 기저귀 갈이대로 가야 했다.

돌아오니 설교는 이미 3번째 꼭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래도 놓칠 수 없다. 한 말씀이라도 더 들어야 한다. 영적으로 채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으앙~~~~~!!!

아까부터 간식을 놓고 엄마랑 실갱이하던 아기가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낼 수 있는 한 가장 큰소리로 엄마에게 반항하는 중이다. 그 후로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목사님께서 축도를 마치고, 파송 찬양이 시작되고 있었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자모실을 나서니, 남편이 해맑게 기다리고 있다. 눈 밑에 다크서클을 잔뜩 늘어뜨린 채.

- 오빠, 나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 오빠랑 나랑 자모실에서 번갈아 가며 예배드리면 안 될까?

- 나도 그러고 싶은데, 여기 봐 봐….

자모실 문 앞, '아빠 출입 금지'라고 써 있다. 아, 여기 '자모실'이었지? 아들 자에 어미 모…. 아마도 수유실 때문에 생긴 규칙이겠지만, 야속하기만 하다.

이렇게 된 이상 오후 예배라도 드려야 한다. 주일을 말씀으로 채우지 않으면 일주일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든 붙어 있기만 하면 된다는 '포도나무 가지 비유' 말씀을 의지해 본다. 오후 예배는 더 심하다. 오전 예배 때 그나마 붙들었던 정신력마저 체력 저하로 흐트러지고 만다. 낮잠 시간을 놓친 아기들은 더욱 극성으로 울어 대고, 과자를 연신 풀어놓다 내 정신도 함께 풀어놓고, 옆 엄마와 아기들 기질에 대해 말하다 수다 삼매경으로 빠지고 만다.

아기를 낳더라도 예배에 충실하기로 어느 누구보다 굳게 다짐했던 나다. 사탄의 훼방에 절대로 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다. 사탄? 나의 예배를 방해하는 사랑스러운 우리 아기가 사탄이란 말인가, 아니면 집중하지 못하는 나의 마음이 사탄이란 말인가. 대체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갈라놓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하는 절규 끝에도 아기는 해맑게 웃기만 한다. 이런 천사 같은 아기가 사탄일리 없지.

치열한 영적 전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몸에 있는 기운이란 기운은 다 빠진다. 청년 시절에는 오전 9시 초등부 사역을 시작으로 모든 예배가 끝나면 7시, 청년들과 교제하고 집에 오면 10시가 됐는데도 기운이 펄펄 났다. 이제 고작 오후 3시! 교회 붙어 있기만 했을 뿐, 아무것도 못하고 돌아왔는데도 기운이 다 빠져 남편에게 아기를 던져 놓고 소리 내어 울었다.

예배를 잃어버린 시간이 약 4년이었다. 예배당에 붙어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실패할 예배라는 생각에 교회를 가고 싶지 않은 순간도 많았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어느덧 본당에 앉아 예배드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적응이 되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영아부에서 아이가 잘 있을지 걱정되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던 중 기약도 없이 눈물이 찾아왔다. 갑자기 뜨거운 예배의 감격이 갑자기 몰려왔다. 아이 엄마가 아니라 아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무턱대고 울었다. 하나님 보고 싶었다고, 하나님 품이 그리웠다고, 엄마가 아니라 아이였던 때가 그리웠다고. 하나님은 내가 아이를 품듯이 나를 품어 주셨고 나의 예배는 그렇게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

예배가 회복되니 조금씩 살 것 같았다. 죽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4년의 의미도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키워 내는 동안 하나님도 나를 키워 내고 있었음을, 육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충분히 느끼게 하셨음을. 당시에 몰랐던 것들이 하나씩 깨달아지며 지난 4년에 대한 감사가 쏟아졌다.

육아 광야기가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는 내 삶이 영영 이럴 것만 같아서였다.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 또한 지나가긴 한다는 것을….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내가 하나님께 붙어 있었다기보다 하나님께서 내게 붙어 있으셨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자모실에서의 힘든 시간도 그 사랑을 끊을 수는 없었다. 지나간 시간이니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여전히 자모실을 보면 눈물이 난다.

사라 / 교회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교회 언니. 온전한 은혜 가운데 있지만, 때론 어렵고 힘든 신앙생활을 함께 나누고 싶어 글을 썼다. 삶의 여정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지만, 함께 나눔으로 한 걸음 더 내딛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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