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정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 광주기독교교회협의회(광주교회협)가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광주교회협은 10월 28일 발표한 성명에서 "노태우 씨는 살아생전 광주 5·18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한마디 용서도 구하지 않았으며, 광주 학살의 전모를 털어놓지도 않았다"고 했다.

광주교회협은 노 전 대통령이 북한과의 관계에서 진전을 이룬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군사 반란을 일으키고 광주 학살의 만행을 저지른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했다. 정부가 수구 세력을 의식해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게 아니라면, 5·18민주화운동이 남긴 역사의식을 따라 정의를 실현하고 약자를 보듬어 주기 위해서라도 국가장을 철회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

성 명 서

광주시민들은 1980년 5월 이후 오늘까지도 5·18 진상 규명을 위해서 투쟁하고 있다.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지, 몇 명이 죽었는지, 암매장 장소는 어디인지, 아무것도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그것은 5·18 수괴들이 증거를 인멸해 놓고 지금까지도 굳게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전두환·노태우를 비롯한 5·18 수괴들은 진정 어린 사과도, 과거 저질렀던 범죄에 대해서도 40년 이상 묵묵부답으로 세월을 버텨 왔다. 광주시민들과 광주NCC(광주기독교교회협의회) 그리스도인들은 5·18 수괴인 노태우의 죽음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용서받기 어려운 죄를 지은 노태우 씨의 업적을 기리고 예우를 다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

1. 1980년 5월, 광주는 야만과 살육이 난무하는 처절한 도시였다.

전두환·노태우 신군부 세력은 공수부대와 계엄군을 광주에 보내 유혈 폭력으로 애국 시민들을 폭압·학살했다. 학생·시민들은 '계엄령 해제', '전두환 물러가라', '군부독재 물러가라'고 외치면서 죽음으로 총칼 앞에 저항했다. 광주시민들은 10일간의 항쟁 기간에 세계 혁명사상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었던 정의와 사랑의 공동체를 이뤄냈다. 5월 광주 민중 항쟁은 정의와 진실이 입 맞춘 예수 이름 없이 역사적 예수를 실천한 '작은 예수 공동체'였다.

2. 김부겸 국무총리는 노태우의 공을 치하했다.

김부겸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전 대통령 노태우 씨의 재임 중 남긴 업적에 대해 언급했다. "고인께서는 대통령 재임 시 국가 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정부는 이번 장례식을 국가장으로 해 국민들과 함께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예우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노태우 씨는 재임 기간 중 북방 외교와 남북 관계 등에서 큰 업적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1991년 '남북 기본 합의서' 체결과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등의 성과를 내었다. 그렇다고 해서 '12·12 군사 반란 사건'을 주도하고 '광주 학살 만행을 저지른 대죄'를 비켜 가게 할 수는 없다.

3. 노태우가 회개했어야 할 죄는 무엇인가.

노태우는 '서울의 봄',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짓밟고 5·17 계엄령 확대와 5·18 광주 학살을 자행한 전두환과 공범이 아닌가. 대법원은 이들을 단죄했다. 전두환은 무기징역, 노태우에게는 징역 17년을 언도했다. 전두환은 지금까지도 사죄하지 않고 있다. 노태우 씨는 아들을 통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노태우 씨는 살아생전에 5·18 광주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단 한마디의 용서도 구하지 않았다. 용서를 구하면서 광주 학살의 전모를 속속들이 털어놓았어야 했다. 예수님께서도 회개한 자를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내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누가복음17:3)

4. 노태우 국가장은 법률적으로도 옳지 않다.

5·18 당시 신군부는 정치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광주시민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했다. 정부에서 노태우의 장례를 10월 26~30일까지 5일간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노태우가 누구인가. 군사 쿠데타 주범이요, 내란죄 수괴요, 광주 학살 주범이 아니던가. '국가장' 이유인 즉 노태우가 북방 외교 등 공이 있다는 것인데, 공이 아무리 큰들 군사 반란죄와 광주시민 학살죄를 덮을 수는 없다.

국가장법 2조에서는 전·현직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인이 사망 시 국가장을 치르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중대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국가장법 1조는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서거(逝去)한 경우에 그 장례를 경건하고 엄숙하게 집행하므로 국민 통합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과연 노태우 씨는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은 사람"인가? 노태우 국가장이 '국민 통합에 이바지할 자'로 판단이 되는가. 정부에 묻고 싶다. 정부는 하지 않아도 아무 일이 없을 사람을 '국가장'이란 관을 씌워서 광주시민의 상처를 덧나게 하고 있지 않는가.

5. 정부는 보수층의 정서를 의식해서 국가장을 결정했는가.

우리 사회에서 온갖 진보와 수구의 갈등을 딛고 5·18의 진실과 정의를 세워 놓았다. 수구 세력을 다독이기 위해서 '노태우 국가장'을 했는가. 믿어지지 않는다. 만시지탄이 있지만 노태우 씨 국가장은 철회돼야 한다. 우리 사회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5·18 역사의식을 세워 놓았다. 우리 사회는 5·18 역사의식의 대의를 따라 정의를 실현하고 약자를 보듬어 주는 대로를 걸어가야 할 것이다.

- 이 사람아, 야훼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 그의 이름을 어려워하는 자에게 앞길이 열린다(성서, 공동번역, 미가 6:8절).

2021년 10월 28일
노태우 국가장 반대 광주NCC(교회협의회) 회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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