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복음주의 시리즈' 3부작을 쓴 '두크나이트'가 <뉴스앤조이>에 '종교와 사회'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미국과 한국의 시민종교 △종교를 이용한 경제적·정치적 이익 추구 비판<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한 오해 등을 주제로 총 4회 글을 게재합니다. 연재를 통해 종교와 사회를 사회과학적 시선으로 보다 풍부하게 바라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 - 편집자 주

"시민종교는 한 사회를 통합하고, 도덕적으로 결속시키며, 그 구성원들에게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정체성을 제공하는, 그러면서 어느 정도 성스럽게 여겨지거나 최소한 존중의 대상이 되는, 폭넓게 공유되고 합의된 가치 및 신념 체계 그리고 그와 연관된 상징, 신화, 의례, 실천, 장소들의 체계다."1)

'국뽕'이 차오르고, 주모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BTS, 손흥민, 안산 등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를 볼 때는 물론이고, 독립 유공자의 처우가 개선될 때, 대통령이 전쟁 유공자에게 무릎 꿇을 때, 민족적 자긍심이 타오르며 '이게 나라다'라고 느끼게 된다. 이렇게 국뽕이 차오르는 순간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와 민족을 희미하게나마 인식하게 된다. 이런 뜨거운 감정은 애국심으로 이어지고 국가와 민족을 향한 충성의 다짐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세속 국가에서의 종교다.

지난 광복절,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봉환됐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송기가 영공에 진입하자 공군 전투기 6대가 엄호를 시작했다. 봉송기가 착륙하자 대통령이 맞이했다. 봉환식이 시작됐다. 국민 의례가 거행되고, 육군·해군·공군·해병대 통합 의장대가 유해를 하기했다. 대통령과 광복군 출신 김영관 지사의 분향, 묵념이 이어졌고 이 엄중한 의례가 끝난 뒤 유해는 운구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홍범도 장군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가 서훈했고, 18일 대전 현충원에 안장됐다. 대통령이 참여한 성스러운 안장식 역시 거대한 의례로 생중계됐다.

숭고했다. 애국의 부흥회였다. 이 일련의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한 국민들은 '집합적 열광' 속에서 애국심을 느끼며, 국가와 민족을 다시금 상기하게 됐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다. 일부 언론은 홍범도 장군의 이력을 들추며 그가 공산주의자·사회주의자이기 때문에 유해를 북한에 보내야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문재인 정부는 공산주의 독립운동가만 대우한다는 기사도 나왔다. 한편 다른 언론에서는 홍범도 장군 묘비의 서체가 국가보안법 연루자인 신영복의 글씨체라고 문제 삼았다. 시민종교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것은 '민족주의 교리'와 '반공주의 교리'의 대결이다. 이렇듯 시민종교는 오늘날에도 뜨겁고 생생한 문제다.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식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 사회에 생생히 살아 있는 시민종교 간 대결 양상을 보여 줬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식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 사회에 생생히 살아 있는 시민종교 간 대결 양상을 보여 줬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한국 시민종교 원형의 건축가들:
식민지 엘리트2)

한국에서 시민종교는 권규식을 통해 최초로 정식 소개됐다.3) 그러나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시민종교는 간헐적으로만 다뤄지고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못했다. 시민종교에 대한 통합적인 연구는 2019년 이후 한국 현대사를 시민종교로 재해석한 종교사회학자 강인철에 의해 비로소 진전됐다.4) 이번 글에서는 강인철의 시민종교 논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강인철은 <시민종교의 탄생>(성균관대학교출판부)을 통해 한국 시민종교의 원형을 분석하는데, 이 원형을 주조한 사람들은 '식민지 엘리트' 세력이었다. 식민지 시기 조선에서는 다양한 부류의 근대적 범주가 탄생한다. 이들은 근대 기술과 교육을 받은 모더니스트였다. 식민지 엘리트는 식민지 체제에 협력한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들을 단순히 '식민지 협력자'로 규정하기에는 이들의 이질성 또한 존재한다.5) 일부 예외는 존재하지만, 식민지 엘리트는 조선 민중과는 다른 사회 체제 내 위치 때문에 식민지 체제에 협력할 가능성이 컸고, 전근대적 조선왕조가 아닌 윤치호·이광수·최남선 등의 근대적 지식인을 흠모했다. 이들은 능력주의·사회진화론 등으로 무장한 지식인들이었으며 조선을 계몽으로 이끌 선각자·지도자로 군림했다.

문제는 예기치 못한 해방으로 찾아왔다. 조선 민중에게 해방은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면서 동시에 분노와 응징의 시간이었다. 강인철의 책에 인용된 당시 통계에 따르면, 해방 후 약 10일 동안 조선인은 일본인 관리, 친일파를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이 중 조선인 친일파의 비율은 85%에 육박했다고 한다.6) 민중의 분노는 식민지 엘리트를 향했다. 이들은 한순간에 민족의 지도자에서 민족 반역자로 전락했고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됐다.

해방과 민족주의의 폭발은 식민지 엘리트에게는 충격이었다. 이로 인해 식민지 대중과 식민지 엘리트 사이에 분기점이 만들어진다. 대중은 민족적 열광 속에 있었지만 엘리트에게 민족주의의 발흥은 악몽이었다. 그러나 해방 공간의 뜨거운 민족적 열광과 과거사 청산 시도는 모두 수포로 돌아갔을 뿐더러 종국에는 엘리트가 민중을 청산하는 역청산까지 일어난다. 식민지 엘리트 세력은 50년대 보수 양당 체제의 성립 이후, 대한민국의 확고한 지배층이 됐으며 시민종교의 건축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한국 시민종교의 5대 교리7)

한국의 정부 수립 이후 '48년 체제'가 출범한다. 이 시기에 한국 시민종교의 '5대 기본 교리'가 만들어진다. 시민종교 교리 중 '민족주의'는 유보 없이 수용됐다. 이승만 정부는 안호상을 중심으로 일민주의一民主義를 국시로 삼고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을 제정했다. 학교에서는 단군을 교육했고 개천절, 3·1절 등 국가 기념일을 지정하면서 자연스럽게 '민족'을 인식할 수 있게 됐다. 이 시기에는 대중적으로는 이순신·안중근과 같은 반일 민족 영웅이 기념과 숭배의 대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민족주의는 시민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였지만, 지도층이 허용한 민족주의는 언제나 안전한 민족주의였다. 과거사 청산이나 통일 운동 같은 적극적 민족주의는 묵살됐다.

'반공주의'는 대한민국 시민종교의 가장 핵심적인 교리로 작용했다. 여순 사건은 반공 국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를 통해 반공이 법제화됐다.8) 하지만 반공주의 교리가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과 군부독재를 거치면서였다. 미군정하에서 생존 논리였던 반공은, 전쟁을 거치면서 대중의 마음까지 사로잡으며 시민종교의 중추에 자리 잡게 된다. 육탄 10용사 같은 반공 영웅, 유엔군 참전을 기리는 추모비, 전국 곳곳에 세워진 충혼탑, 현충원 등의 반공 성지, 현충일 같은 기념일은 반공주의 교리에 성스러움을 더했다. 월남전 파병은 한국인의 반공 민족주의와 선민사상을 고취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 바야흐로 '48년 체제'의 시작이었다. 사진 출처 대통령기록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 바야흐로 '48년 체제'의 시작이었다. 사진 출처 대통령기록관

그다음 교리는 '발전주의'다. 이는 '경제성장'으로 대표됐다.9) 발전주의 역시 한국전쟁의 참상 속에서 대중의 뼛속까지 스며든다. 이로 인해 전 국민이 경제 발전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갖게 됐다. 수입에 의존하던 공산품이 기술 발전으로 국산으로 대체되면서 '국산 담론'이 시작됐는데, 이 시원은 1940년대로 올라갈 정도로 유서가 깊다. 이후 개발독재가 진행되면서 공업탑, 경부고속도로 기념탑, 건설 기념비, 원자력발전소 기념비, 수출·전기·세금·철도·저축의 날 등 기념일이 제정됐고, 수출액 및 국민 총생산 목표 달성 같은 선전 방송, 교육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발전주의 교리는 각인됐다.

전후 한국에서 미국은 반공주의·발전주의·민주주의 교리의 전범典範인 국가였다. 이런 상황에서 '친미주의'는 다른 시민종교 교리와 자유로운 교류가 가능했으며 은폐된 지배 이념으로 작동됐다. 마지막 '민주주의 교리'는 48년 체제부터 시민종교의 경전인 헌법을 통해 정당화된 교리였으나, 이는 북한과 대립하는 체제 경쟁의 의미로 작용했고, 오랜 기간 모호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더불어 민주주의 교리는 체제 유지에 동원됐고, 군부 쿠데타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공격받았다.

한국 시민종교의 모순과 분열

지난 연재에서 쓴 것과 같이 로버트 벨라가 보았던 미국의 시민종교는 미국 초대 국부를 중심으로 한 통합적 시민종교였고, 대부분의 시민종교 논의는 1국가 1시민종교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하지만 식민성과 전쟁 속에서 만들어진 한국의 시민종교는 이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한국 시민종교는 초기부터 분열의 징후를 가지고 있었다. 해방·전쟁 속에서 시민종교의 숭배 대상은 '민족적인 것'과 '반공적인 것'으로 나뉘어 경합하게 됐다. 민족적 숭배 대상은 독립운동과 식민지 시기의 결과였고, 반공적 숭배 대상은 군경과 전쟁의 결과였다.

효창공원에 위치한 삼의사의 묘.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효창공원에 위치한 삼의사의 묘.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가 묻혀 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민족 성지聖地의 대표적인 예로 효창공원을 들 수 있다. 효창공원은 '삼의사'로 불린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임시정부 요직을 지낸 이동녕·조성환·차리석 그리고 백범 김구가 묻혀 있고, 안중근의 허묘虛墓가 있는 성지였다. 하지만 이 성스러움은 지속되지 못했다. 이승만 정부는 압도적인 규모의 '유엔 전우탑'을 세우며 효창공원을 '반공 성지'로 탈바꿈하고자 했다. 이것은 시도에 그쳤으나 끝이 아니었다. 이승만 정부는 효창공원에 축구장을 건설했다. 박정희 정부는 이곳에 테니스장과 반공 기념비, 놀이터, 육영수 송덕비 등을 설치하며 '독립 성지'가 될 수 있었던 효창공원의 성성聖性을 중립화하고 오염시켰다. 이 시기 반공 영웅 및 반공 성지가 국가 지원하에 성스러운 후광을 제공받은 것과는 분명 다른 양상이었다.

한국 지배 엘리트의 반민족주의적 성향과 함께 반공주의에 내재된 민주주의와의 긴장 역시 시민종교에 갈등을 더했다. 특히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은 민주주의 교리를 정면으로 공격하면서 독재를 정당화했다. 민족주의·민주주의에 대한 지배 엘리트의 배교는 시민종교의 균열을 낳았다.

민주화와 두 개의 시민종교

지속되는 지배 엘리트(시민종교의 사제 진영)의 배교와 유신 체제의 성립은 시민종교에 예언자 진영을 형성하게 했다.10) 1970년대 이후 다양한 사회운동 조직이 만들어졌다. 반정 부운동에 가담하는 재야인사, 종교인, 학생운동가 등이 시민종교의 예언자 진영을 구성했다. 예언자 진영에 다양한 순교자, 영웅이 탄생했다. 이한열 장례식에서 문익환의 조사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그 조사에서는 다양한 인물이 호명됐다. 그중에서도 몇 명을 따져 보면 광복군 출신의 장준하, 노동운동가 전태일, 민주화 운동가 이한열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민족주의·발전주의·민주주의 등의 기존 시민종교의 지배적 교리를 비판하거나 보완하는 순교자·영웅이었다. 1970년대 이후 형성된 시민종교 예언자 진영의 탄생으로 인해, 기존 사제 진영은 반공주의를 중심으로 반공-국가주의 시민종교를 형성했고, 예언자 진영은 민주-공화주의 시민종교를 형성하게 된다.

이한열 열사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으며 울부짖고 있는 고 문익환 목사. 사진 출처 통일의집
이한열 열사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으며 울부짖고 있는 고 문익환 목사. 사진 출처 통일의집

민주화는 시민종교의 예언자 진영을 확고하게 자리 잡게 했다. 민주화는 기존 시민종교의 성성을 탈신비화했고 다양한 기념물을 변화시켰다. 일례로 북한의 김일성광장에 대응하듯 만들어져서 '5·16광장'이라 불리며 다양한 선전·동원으로 활용된 여의도광장은 여의도공원으로 자리매김했다. 동학농민운동 같은 역사도 민주화 이후 새롭게 해석되기 시작했고, 과거사 청산이 일어나면서, 일제강점기에서부터 군부독재 시기에 이르는 다양한 역사가 재해석되기 시작했다. 민주-공화주의 시민종교의 영웅·성지가 새롭게 만들어졌고 민주 묘지가 국립묘지로 탈바꿈했다.

이런 '기억 전쟁' 속에서 한동안 힘을 잃었던 사제 진영이 반격을 시작한다. 이들은 기존 시민종교 교리의 성스러움을 옹호하기 위해 애쓰며 반공-국가주의를 중심으로 결집했다. 민주화 이후 민주화 운동, 국가폭력 희생자 기념물이 급증한 만큼 사제 진영을 중심으로 한 전쟁 기념 시설도 뚜렷하게 증가했다. 이러한 교전 속에서 통합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전선은 교착됐다. 이들은 '5대 교리(민족주의·반공주의·발전주의·친미주의·민주주의)'를 공유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이런 두 개의 시민종교의 대립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2016~2017년 '촛불 vs 태극기'의 분열이다. 둘 사이에는 '어떤 대상을 숭배하고 무엇을 성스럽게 여기는가' 하는 근원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이 종교적 근원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의 갈등을 새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시민종교와 개신교

시민종교의 관점에서 한국 개신교를 조망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국 개신교의 대표 교단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신학부는 지난 2018년 103회 총회에서 복음주의 단체의 '사상'을 연구해달라는 헌의를 올렸다.11) 이 연구에는 독특하게 신학자가 아닌 법학자 이정훈도 참여했다.12) 다음해 진행된 104회 총회에서는 해당 단체에 관한 연구의 결과가 발표됐다. 이 연구는 이단 연구는 아니었기에 이단성은 판단하지 않았으나, 연구 대상이었던 단체 대부분은 '참여를 위해 목사와 당회 지도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받았다.13)

독특한 것은 이들의 결과 보고서가 다양한 사회사상에 대한 판단을 포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현실에서 종교 교리의 범위, 종교적인 것과 사회·정치적인 것을 명확히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들은 좌파·대북 문제·편향성 등을 근거로 개신교의 근본 교리와는 유리된 사회문제를 문제 삼았다. 문제를 확대해 보면 많은 종교 단체에서 정치적 발언과 행동이 오가는데도, 총회에는 이런 소수의 복음주의 단체만 '문제'로 인식돼 연구를 진행하는 것부터 편향성을 보여 준다. 사회에 미친 부정적 영향력이 막대한 전광훈에 대한 교단들의 신중함14)과 대비되는 이러한 처사는 한국 개신교 주류가 무엇을 성스럽게 여기고, 무엇을 성스럽지 않다고 여기는지 보여 준다.

이들은 한국 보수 정치 세력과 반공주의-국가주의 교리를 공유한다. 그들은 온건하고 국가(교회)에 동원할 수 있는 민족주의, 반공주의, 경제성장과 동의어인 발전주의, 친미주의,체제 경쟁에 쓰일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보수적으로 굴절시켜 부적처럼 가지며 옹호한다. 친미적이고 반공적인 것은 성스럽다. 그렇지 않은 것은 속한 것이며, 이단적인 것이 된다.

한국 보수 개신교는 종교와 시민종교가 착종돼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낸 듯하다. 보수 개신교의 교리에는 조직신학에서 다루는 전통적인 주제뿐 아니라, 반공-국가주의의 교리와 영웅도 숭배 대상으로 포함될 수 있다. 교회에서는 그것을 명시하지 않지만, 어쩌면 그것은 한국에서 보수 개신교의 신앙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동되는 것이어서 언급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한편으로는 한국 보수 개신교의 종교와 정치가 착종된 양상을 보면 이들의 본체가 개신교 교리에 있는 것인지, 보수주의 정치에 있는 것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한국 보수 개신교는 무엇을 진정으로 성스럽게 여기고, 무엇을 숭배하는 것일까. 보수 개신교와 다른 일군의 복음주의를 '민주당 아저씨 복음주의'라고 명명할 때도 마찬가지로, 정치와 결합된 한국 개신교의 진정한 종교는 무엇일지 고민해야 한다.

두크나이트 / 대학에서 사회학·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현재 사회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인스타그램 계정 '북큐레이터 아틀라스'에서 책을 소개하고 있으며, 블로그 '사회과학 소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1) 강인철, <시민종교의 탄생>,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9.
2) 이 부분은 강인철, <시민종교의 탄생>,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9.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3) 권규식, "미국의 시민종교론: R. Bellah의 소론을 중심으로", <현대와종교>, 1985.
4) 그 작업은 다음과 같다. 한국 현대사를 시민종교 관점에서 재해석한 대작 <시민종교의 탄생>, <경합하는 시민종교들>,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9. 한국에서의 전사자 숭배 문제, 죽음의 위계화를 다룬 <전쟁과 희생>, 역사비평사, 2019. 5·18민주화운동을 리미널리티, 커뮤니타스, 사회 드라마의 시각에서 재해석해 5·18 연구에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 낸 <5·18 광주 커뮤니타스>, 사람의무늬, 2020. 등이다.
5) 민족주의를 지지한 반일 식민지 엘리트의 대표적 예로 김건우,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느티나무, 2017.에 나오는 모더니스트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민족주의적 식민지 엘리트였으며 일부는 해방 이후 정국에 깊게 관여하기도 했다. 김건우는 이 책을 통해 한국 우익의 새로운 기원을 분석한다.
6) 허종, "1947년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의 '친일파처벌법' 제정과 그 성격", <한국근현대사연구>, 2000.
7) 이후 세 부분은 강인철, <경합하는 시민종교들>,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9.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8) 김득중, <'빨갱이'의 탄생>, 선인, 2009.
9) 발전주의 교리와 매우 밀접한 분석을 담은 책으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김덕영, <에리식톤 콤플렉스>, 도서출판 길, 2019. 이 책에서 김덕영은 한국의 자본주의 정신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걸신 들린 에리식톤의 식탐과 같다고 분석한다. 구체적으로 한국의 자본주의 정신은 박정희(국가)가 주조하고, 정주영(대기업)이 구현했으며, 개신교가 성화시켰다. 이런 상징에 정점에는 산업화 세력, 현대 출신, 개신교 장로인 '이명박'이 있다.
10) 막스 베버는 종교 지도자를 다양하게 분류한다. 그중 사제형 종교 지도자는 기존의 가치규범을 정당화하고 초월적인 존재로부터 오는 위로와 지지를 제공한다. 반면 예언자형 종교지도자는 기존의 가치 규범을 비판하여 전복하고 새로운 가치 규범을 제안한다.
11)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9659
12)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22834
13)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25219
14)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1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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