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복음주의 시리즈' 3부작을 쓴 '두크나이트'가 <뉴스앤조이>에 '종교와 사회'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미국과 한국의 시민종교 △종교를 이용한 경제적·정치적 이익 추구 비판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한 오해 등을 주제로 총 4회 글을 게재합니다. 연재를 통해 종교와 사회를 사회과학적 시선으로 보다 풍부하게 바라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 - 편집자 주
1. '상징의 정치', '종교의 정치'의 현재성

다가오는 2022년, 한국 정치 최대 이벤트인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정치권은 대선 시간표에 맞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대선 주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적 행보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며 비전을 연출한다. 각 대선 후보들의 행보에는 (이들이 서로 매우 상이한 정치적 입장을 지녔음에도)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추모'와 '참배'를 통한 '상징의 정치'를 한다는 점이다.

여당 대선 후보 이재명 경기지사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첫 행보로 현충원을 방문해 무명용사 묘역을 참배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대선 레이스 첫 행보도 현충원 참배, 구체적으로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는 일이었다. 한편, 야권 대선 후보 지지율 1위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현충일에 맞춰 현충원을 참배했으며,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대권 출사표를 낸 또 다른 야권 후보 최재형 전 감사원장 역시 현충원 참배, 정확히는 천안함 희생자 묘역, 백선엽 장군 묘역 참배로 첫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이들은 대통령 선거의 무게감에 걸맞게 치열한 수 싸움으로 지지율을 계산해 가며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대선 주자들이 현충원에서 어떤 대상을 참배하거나, 독립운동가의 기념관에서 대권 도전을 선언하는 일은 다분히 '정치적인' 동시에 '종교적인' 연출이다. 누가 어떤 대상을 숭배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의미는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대선은 '정책과 이념'의 각축장인 동시에 '상징과 숭배'의 각축장이기도 하다. 나는 이번 글과, 이어지는 다른 한 편의 글에서 '추모'를 매개로 한 '상징의 정치' 내부에 있는 '시민종교(civil religion)' 개념을 살피고, 이를 통해 근대 정치의 종교적 성격을 파헤치고자 한다.

2. 근대 정치의 종교적 차원

"시민은 왜 국가를 사랑하며, 국가는 어떻게 시민을 지배하는가."

계몽주의와 함께 시작된 근대국가에 이르러, '정교분리政敎分離'와 '제정분리祭政分離'가 헌법에 명시되기 시작한다.1) 정치에서 종교적 차원이 분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정교일치가 작동한 전근대사회에서, 정치권력은 종교의 신성한 후광을 등에 업을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교회 권력이 국가의 통치자를 인정함으로써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도록 돕거나 '왕권신수설' 같은 논리로 절대왕정을 옹호했다. 이러한 경향은 동양에서도 나타는데, 이를테면 옥황상제玉皇上帝의 아들인 천자天子나 신화적 기원을 지닌 일본의 천황天皇은 혈통만으로도 숭배의 대상이 되는 신성한 존재였다. 조선왕조 역시 성리학적 질서에 따라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그러나 근대국가의 통치자는 더 이상 종교가 제공하는 성스러움을 동원해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게 됐다. 그래서 국가권력을 정당화하고 신성한 후광을 부여할 다른 장치가 필요했다. 환원하면, 국가는 합리적 권위 이면에 있는 '유사 종교적(quasi-religious)'이고, 열광적이며, 비이성적인 충성심을 끌어내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했다. 정교분리 이후 진행된 근대국가의 국민/국가 만들기 프로젝트의 심층에는 다분히 종교적인 근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을 '시민종교'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2)

3. 시민종교 개념의 기원

시민종교의 연원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와 로마제국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특정한 공동체 의식, 집단적 가치, 전통의 종교적 차원을 시민종교로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민종교'라는 용어가 처음 현대적으로 사용된 것은 사회철학자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의 <사회계약론>에서였다.3)

루소는 1762년 <사회계약론> 4권 마지막 부분에서 시민종교(religion civile)를 다룬다.4) 루소는 피에르 벨(Pierre Bayle)을 인용하면서 단적으로 "국가는 종교라는 토대 없이 세워진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전의 신정정치와는 다른, '근대'라는 정치 질서 속에서 종교와 정치의 긴장을 해소할 새로운 이음매를 만들고자 했다.

기독교라는 토대는 이성과 과학 아래 해체되고 있었다. 일부 계몽주의자는 종교의 종말을 반겼지만, 루소는 종교 없는 사회를 두려워했고, 종교의 사회 통합 기능에 주목했다.5) 루소는 시민종교를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이것이 시민의 덕성, 공공성,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공고하게 만들어 정치 공동체를 유지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한다. 루소는 불관용의 원칙을 배제한, 사회를 위한 시민종교의 교의를 구상했다. 루소에게 시민종교는 사회적 결속을 바라는 권력층에 의해 창조돼 시민들에게 강제되는 새로운 세속 종교였다.

루소 이후,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이 시민종교 구상의 계보를 잇는다. 로버트 벨라는 뒤르켐을 두고 "프랑스 제3공화국 시민종교의 대제사장·신학자이자, 근대 프랑스를 비롯해 서구 사회가 직면한 사회적·도덕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예언자"라고 평했다.6) 젊은 지식인 뒤르켐에게 로마가톨릭교회는 극복의 대상이었으며, 세속화는 거부할 수 없는 세태였다. 당시 프랑스는 보불전쟁에서 패배하고 나폴레옹 제정의 붕괴를 경험한 이후 아직 제3공화국이 자리 잡지 못한 때였다.

뒤르켐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통 사회에서 종교가 수행했던 사회 통합 기능을 대체할, 새로운 세속 종교의 필요성을 인식했다.7) 그는 시민종교에 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종교사회학 연구는 새로운 세속 종교의 등장에 단초를 제공했다.  프랑스대혁명에 주목한 뒤르켐은 사회의 관념도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봤다. 프랑스대혁명의 집합적 열광과 공공 여론은 조국·자유·이성을 '불가침한 가치'이자 '성스러운 것'으로 변화시켰다. 뒤르켐은 평범한 것에서 신성한 것을 창조하는 능력이 있는 인간이 원시종교에서 바위·조상·동물 등을 숭배했다면, 세속 사회에서는 사상·국가·지도자 등을 숭배하게 됐다고 주장했다.8) 이러한 뒤르켐의 논의는 벨라에게 많은 영감을 제공했다.

4. 로버트 벨라의 시민종교9)
- 정치권력과 동원의 정당화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닐리 벨라(Robert Neelly Bellah, 1927~2013).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닐리 벨라(Robert Neelly Bellah, 1927~2013).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시민종교 개념을 현대적으로 체계화한 것은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Robert N. Bellah)다. 벨라는 1967년 기념비적인 논문 '미국의 시민종교(Civil Religion in America)'를 발표한다.10) 이 논문은 이후 진행된 시민종교 논의의 기준이 됐고, 이를 통해 벨라는 '루소 - 뒤르켐 - 벨라'라는 계보11)를 형성하며 시민종교 이론가로 자리매김한다.

"내가 여러분과 전능하신 신 앞에서 우리 선조들이 거의 175년 전에 규정한 것과 똑같은 엄숙한 선서를 했기 때문입니다. (중략) 인간의 권리는 국가의 관대함에서가 아니라 신의 손에서 나오는 것 (중략) 신의 축복과 도움을 청하면서 (중략) 신이 하시는 일은 틀림없이 여기 지상에서 진실로 우리의 일이 된다는 것을 알고서 우리가 사랑하는 대지를 이끌어 나아갑시다."12) (1961년 존 F. 케네디의 대통령 취임식)

벨라는 위 논문의 서두에서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의 대통령 취임사를 분석한다. 케네디의 취임사에서 '신'은 세 부분 언급되는데, 이런 언급은 비단 케네디뿐 아니라 엄숙한 국가 행사에 참가하는 다른 미국 대통령에게서도 어김없이 나타나는 대목이다. 벨라에 의하면, 이러한 정치적 언명의 배후에는 표면화하지는 않았지만 내면 깊숙이 자리한 시민종교적 가치·약속이 존재한다.

미국은 표면상 정교분리 국가이지만, 미국 사회에는 여전히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는 공통의 종교적 지향·인식이 존재한다. 이는 미국인의 생활양식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공공의 종교적 차원은 믿음, 상징, 의례로 표현된다. 이를테면 대통령 취임식은 국가 내 최고의 정치적 권위가 지닌 종교적 정당성을 재확인하는, 매우 중요한 시민종교적 의례다. 대통령은 국민 앞에서 신에게 맹세를 하고, 이로써 그의 의무와 통치 권한은 헌법을 넘어 신에게 도달해 신성화한다.

국민은 정치가 지닌 종교적 차원을 통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목표를 제공받기도 한다. 다시 말해, 정치와 종교의 결합은 국민에게 지상(세속)에서 신의 뜻을 이행해야 하는 개인적·집단적 의무를 부여한다. 세속의 정치적 의무는 곧 신의 뜻이 되고, 함께 도달해야 할 신적 의무, 초월적 과업으로 변모한다.

5. 로버트 벨라의 시민종교
- 미국 시민종교의 원형

벨라에 따르면, 미국의 건국 이후 남북전쟁 이전 시기까지 미국 사회에 시민종교의 원형을 제공한 이들은 미국의 초대 국부들이다. 이들은 신의 섭리를 강조하며 미국의 독립을 열렬히 호소했고, 이러한 종교적 언명은 종교의 담장을 넘어 '추수감사절' 같은 국가 기념일로까지 지정되며 미국 시민종교의 초기 형태를 주조했다. 건국 과정에서 발현된 미국 특유의 '선민사상'에도 시민종교가 한몫을 했다. 미국인은 자신들을 종교의자유를 위해 신대륙에 정착한 존재로 인식했다. 그러면서 유럽을 이집트로, 미국을 약속의 땅으로 상정했다. 선택받은 백성인 미국인이 신의 인도에 따라 유럽으로부터 독립(출애굽)했다고 여긴 것이다.

남북전쟁은 미국 시민종교 형성에 결정적 기여를 제공한다. 남북전쟁을 통해 미국의 시민종교에는 죽음, 희생, 부활이라는 테마가 결합된다. 특히 에이브러햄 링컨의 죽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벨라는 링컨의 죽음과 추모에서 강하게 표출되는 종교성을 분석한다. 그는 링컨이 예수와 알레고리로 연결됐다고 본다. 미국의 한 시인도 링컨의 게티즈버그연설은 성사聖事적이었고, 미국과 미국인을 위한 그의 죽음 역시, 자유·평등에 대한 토마스 제퍼슨의 이상을 죽음·부활이라는 기독교적 희생 제의로 완결한 것이었다고 분석한다.

'우리의 순교한 대통령' 링컨은 기독교적 원형에 의해 '최후까지 모든 헌신을 바친 예수'와 동치된다. 이와 같은 '희생' 테마가 미국 시민종교의 중심이 된다. 이 새로운 상징은 의례화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사자들을 위한 국립묘지 건립으로 이어진다. 이들을 안치한 국립묘지는 국가에서 가장 성스러운 기념물이 된다. 남북전쟁과 함께 확대된 전사 장병 추모일(미국의 현충일)은 시민종교 의례화의 대표적인 예다. 현충일을 통해 순교한 전사자 숭배가 진행되고, 미국적 희생의 가치는 내면화된다. 독립 기념일, 보훈의 날, 워싱턴·링컨의 생일을 포함한 미국의 국가 기념일은 시민종교의 의례적 기념일을 제공하고, 공교육은 이를 사회화하는 장으로 충실히 기능한다.

6. 시민종교의 양가성

로버트 벨라는 시민종교를 "일련의 믿음, 상징, 의례로 표현되는 종교의 공공적 차원"으로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시민종교는 정치권력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하고, 정치에서 초월적인 목표를 제공하며, 국가 이념을 내면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주로 '탈출(출애굽)', '선민選民', '약속의 땅', '새 예루살렘', '희생적 죽음', '부활'이라는 성서적 원형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그 자체로 예언자·순교자·성지聖地 등 성스러운 의례와 상징을 가지고 있다.

시민종교는 미국인을 통합하고, 공동의 동기를 부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 안에서 '신-국가-국기'를 융합한 보수 집단을 탄생하게 했다. 이들은 스스로와 동일시될 수 없는 집단을 공격했다. 미국식 선민사상은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됐고, 제국주의적 만행과도 연계됐다. 이를테면, 미국은 자유세계의 수호자이자 신의 선택을 받은 국가로서, 베트남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자신의 마땅한 역할로 인식했다. 또한 전쟁에 따른 참혹한 죽음들도 '거룩한 희생'이라는 테마로 성화聖化할 수 있었다. 패권주의, 폭력, 무수한 죽음이 종교적 알레고리로 신성화한 것이다. 이것이 시민종교가 가진 양가적 속성이다.

다시 한국의 상황으로 돌아오자. 현재 여야의 주요 대선 주자들이 보이는 참배·추모·상징의 정치는 위와 같은 시민종교의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시민종교가 기독교적 기반과 사회가 공히 존경할 수 있는 국부國父 등 '공통' 기반 위에 뿌리를 내렸다면, 한국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한국의 시민종교는 근대국가 형성기인 제1공화국 이후, 민족주의적 열망을 뒤로하고 식민지 엘리트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민주화 이후 그에 대항하는 시민종교의 예언자 진영이 활성화되면서 복수의 시민종교가 경합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승만-박정희를 추모하는 것과 김대중-노무현을 추모하는 것, 식민지 엘리트를 숭배하는 것과 독립운동가를 숭배하는 것, 백선엽을 참배하는 것과 민주 묘역을 참배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는 여기에서 어떤 상징의 사슬을 느낄 수 있다. 태극기와 촛불의 근원에는 '정치의 종교적 차원'이 교묘히 작동하고 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한국 근현대사에 출현해 오늘날 대한민국을 촛불과 태극기로 양분한 거대 시민종교에 대해 논한다.(계속)

두크나이트 / 대학에서 사회학·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현재 사회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인스타그램 계정 '북큐레이터 아틀라스'에서 책을 소개하고 있으며, 블로그 '사회과학 소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1) 대한민국 헌법 20조 제2항을 예로 들 수 있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2) 강인철. 2019. <시민종교의 탄생>. 성균관대학부출판부.
3) Cristi, Marcela. and Dawson, Lorne L. 2007. "Civil Religion in America and in Global Context". James A. Beckford and N. J. DemerathⅢ eds. The SAGE Handbook of the Sociology of Religion. SAGE.
4) Cristi, Marcela. 2009. "Durkheim's Political Sociology. Civil Religion, Nationalism and Cosmopolitanism". Lori G. Beaman and Peter Beyer eds. Holy Nations and Global Identities. BRILL.
5) 장-자크 루소. 2018. <사회계약론>. 김영욱 역. 후마니타스.
6) Cristi, Marcela. 2001. From Civil to Political Religion. Wilfrid Laurier University Press.
7) Bellah, Robert N. 1973. Emile Durkheim on Morality and Societ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8) Santiago, Jose. 2009. "From 'Civil Religion' to Nationalism as the Religion of Modern Times: Rethinking a Complex Relationship". Journal for the Scientific Study of Religion. vol.48. no.2.
9) 에밀 뒤르켐. 2020.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 민혜숙·노치준 역. 한길사.
10) 이 부분은 Bellah, Robert N. 1968. "Civil Religion in America". William G. McLoughlin and Robert N. Bellah eds. Religion in America. Beacon.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11) William Swatos는 벨라의 이 논문을 두고 "막스 베버(Max Weber)의 개신교 논문을 제외하고, 종교사회학에서 이만큼 논의를 확장하고 후속 연구를 이끌어낸 단일 논문은 없었다"고 평가한다. Swatos, William H. 2004. Book Reviews. Implicit Religion. 7 (2). 193~198.
12) 주한미국대사관 공식 홈페이지 "존 F. 케네디 취임사(196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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