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독서 캠페인 '탐구생활'(탐독하고 구도하는 그리스도인의 독서 생활)에서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책입니다. 아래 내용은 평자가 책을 읽고 주관을 담아 작성했습니다.
<바다의 문들 - 상처 입은 세계와 하느님의 구원> / 데이비드 벤틀리 하트 지음 / 차보람 옮김 / 비아 펴냄 / 196쪽 / 1만 3000원
<바다의 문들 - 상처 입은 세계와 하느님의 구원> / 데이비드 벤틀리 하트 지음 / 차보람 옮김 / 비아 펴냄 / 196쪽 / 1만 3000원

박혜은 서울책보고 매니저

이 책은 올여름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머물러 있었다. 가슴에 머문 기독 출판물은 많았는데 머리에 머물다가 결국 가슴으로까지 내려온 책을 만나는 건 드문 일. 긴 시간이 걸린 작업이었던 만큼, 이 책은 내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열어젖혔다. 과연 '비아 제안들 시리즈'는 믿고 읽는 시리즈가 되어 가고 있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 이름도 낯선 벤틀리 하트의 주장, 그러니까 "고난과 죽음은 그 자체로는 어떠한 의미도 목적도 갖지 못한다"(53쪽)는 것이 신약성서의 가르침이라는 말이 혼란스럽게만 느껴졌다. 고난은 축복이자 하느님을 만나는 통로라고 배워 왔는데 하느님은 "선 그리고 아름다움 그 자체"(82쪽)이시며, "악은 하느님의 결정이나 피조물과 관련된 그분의 목적에서 어떠한 역할도 맡을 수 없다"(106쪽)니! 이게 실제 재난에 닥친 이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며칠을 생각했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은 소임을 다했다. 하느님에 대해 더 숙고하고 악의 본성을 고찰하며 무엇보다 고난받는 이웃과 때때로 고통에 빠지는 내 삶의 안쪽을 더 정교하게 들여다보게 만들었으니까. 참, 110쪽은 올해 내가 읽은 페이지 중 그 문장과 의미가 가장 심오하고 아름다운 페이지였다. 

한 줄 평: 세계에서 벌어지는 비극 앞에서 울분을 터뜨린 적 있는 회의주의자에게 살며시 건네주고 싶은 책.

송지훈 성서한국 사무국장

이해할 수 없는 재난과 죽음, 고통을 만나면 우리의 시선과 물음은 항상 신을 향한다. 그러나 잔인하게도 신은 늘 침묵한다. 그러나 진짜 잔인한 것은 신의 침묵 뒤에 남는 여백을 함부로 채우는 인간의 말들이다. 무신론자는 신의 부재가 증명됐다는 식의 냉소를 던지고, 종교인은 신의 무고를 증명하기 위해 섭리와 인과응보의 논리를 섣부르게 꺼낸다. 2004년 인도양 쓰나미 이후에도 이런 말들은 쏟아져 나왔고, 이를 비판하기 위해 데이비드 벤틀리 하트가 <월스트리트저널>에 쓴 '의문의 미진'이라는 칼럼이 이 책의 시초가 됐다. 개인적으로 이 책 중후반의 신학적 진술은 소화하기 벅찬 감도 있었지만 많은 부분에서 수긍이 됐다. 자신만의 신학적 논지를 힘 있게 밀어붙이는 것도 좋았다. 이 책이 명확한 답을 줬기에 좋았던 것은 아니다. <바다의 문들>은 그런 책이 아니다. 오히려 답 없는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생각하며 읽을 수 있게 만들어 줘서 좋았다. 답도 안 주는 책을 왜 읽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침묵하기 위해서' 읽는다고 말하겠다. 때로는 어떤 문제에 대해 말하게 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한 줄 평: 재난으로 아무것도 증명하지 말라. 신의 부재도, 신의 무고도.

정다운 번역가

세상에 불같은 글이 있고 물 같은 글이 있다면 <바다의 문들>(비아)은 전자다. 온화하고 부드럽게 우리를 어루만지는 책과는 거리가 멀다. 인류와 그리스도교 신앙의 오랜 숙제인 악과 고난의 문제 앞에서, 벤틀리 하트는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애쓰는 (얼치기) 무신론자들, 하느님의 전능함·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해 섣부른 의미를 부여하는 그리스도교인들을 향한 경멸과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이 책이 신정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특히 이반의 '반역')에 대한 세심한 독해, 제1원인과 제2원인들에 관한 논의, 신약성서의 세계에 관한 논의 등 무겁고 녹록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속도감 있게 읽히는 이유는, 바로 그 분노의 불길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놀랍게도(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분노는 고통 속에 울부짖는 죄악 된 세상을 고집스럽게 변모시키고자 하는 사랑의 하느님에 대한 깊은 신뢰에서 비롯한다. 이 책을 읽으며 '신은 죽었다'는 자신의 항변이 언제나 신을 향하고 있었다는 면에서 자신은 (세간의 오해와 달리) 무신론을 주장한 적이 없다던 엘리 위젤을 떠올렸다. 신을 향한 깊은 분노가 실은 '선한 신'을 향한 신뢰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는 역설. 어쩌면 때로 우리에게는 더 깊고 단단한 분노가 필요한 것일까? 

한 줄 평: 악과 고통이라는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몸부림치는 모든 이반에게 보내는 헌사.

구매 링크 바로 가기: https://bit.ly/3zgbTaB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