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거 그런 책 아닙니다

조재형의 <그리스-로마 종교와 신약성서>(감은사)는 여러모로 <창세기 설화>(감은사)를 떠올리게 하는, 뾰족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책이다. 일단 이 책이 사용하는 소재가 일반적인 K-개신교 대중 독자들에게는 '지뢰밭'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책은 '그리스도교가 그리스-로마 종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는 한편으로 자유주의 이단에 대항해 그리스도교만의 고유성을 수호해야 한다고 믿는 '경건맨'들의 발작 버튼을 누를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교는 고유성도 없는 짬뽕 나부랭이에 불과하다고 까 내리며 자신의 합리성을 과시하고픈 '스노브(다른 사람과 구별되려는 목적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이를 일컫는 말 - 편집자 주)'들에게 떡밥(?)을 제공할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의 운명은,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양극단의 입맛에 맞게 조리돌림을 당하거나, 어렵고 복잡한 논의에는 관심없는 독자들에게 외면을 당하거나 둘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이 책에 대한 양극단 독자의 예상 반응 공통점은, 그리스도교의 '고유성'에 집착한다는 점이다(그런 점에서 양극단 모두 근본주의적이다). 이러한 반응은 그리스도교가 순도 100%의 고유성을 담지하지 않는다면 진리가 될 수 없으며, 고로 아무런 의미도 없어진다는 착각에 기반한다. 이는 그리스도교 신약 해석이 지나온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사실 신약성서가 묘사하는 예수와 바울은 유대 종교만으로는 해석하기 참으로 난감하다. 한동안 신약성서가 헬레니즘이라는 그리스-로마의 종교·철학에 입각해서 해석돼 온 이유다.

실제로 과거 신약학계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창시자는 예수가 아니라 바울이라든가, 유대 종교의 여러 약점을 예수와 바울이 헬레니즘 형태로 극복·발전시켰다는 변증법적인 접근이 성행했다. 이러한 접근법은 그리스-로마 종교를 기원으로 하는 여러 그리스도교 제의와 내러티브를 발굴해 내는 학술적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은 진지한 학술적 논의와 상관없이 어떻게든 신약성서의 고유성(헬레니즘은 1도 첨가되지 않은)과 유대 종교와의 연속성에 더 집착하는 유형, 그리스도교를 고유성 없는 혼합 종교쯤으로 여기며 폄하하려는 유형으로 나뉘어 왔다.

그러나 <그리스-로마 종교와 신약성서>에서 드러난 저자의 문제의식을 따라가다 보면,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로마 종교의 관계가 단지 무관하다거나 변증법적이라거나 하는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유대 종교와의 단순 비교로는 해결이 어려운 난제 해석 가능성'에 주목하며 그리스-로마 종교 연구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독자들이 고유성에 집착하는 경건맨·스노브들의 극단적인 목소리를 배제하고 나면, 이 책은 비로소 차근차근 말해 주기 시작할 것이다. "이거 그런 책 아닙니다"라고.

<그리스-로마 종교와 신약성서 -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한 사상사> / 조재형 지음 / 감은사 펴냄 / 400쪽 / 2만 2000원
<그리스-로마 종교와 신약성서 -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한 사상사> / 조재형 지음 / 감은사 펴냄 / 400쪽 / 2만 2000원
2. 예수는 참된 디오니소스

조재형은 이 책을 통해 신약성서 내 다양한 기독론 중 몇 가지 기독론이 그리스-로마 종교의 디오니소스 제의와 오르페우스교의 '고난받는 신의 아들' 모티프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복음서의 서사 구조가 <호메로스>와 상호 텍스트 관계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양극단 근본주의자들의 기대나 우려를 분명히 비껴간다. 신약성서가 그리스-로마 종교를 '인용'했다고 해서 신약성서의 근원이 그리스-로마 종교에 있다는 식의 논의로 직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약성서 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사역을 고유한 내용으로 삼으면서도 그리스-로마 종교에 대한 해석을 덧대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러한 접근법을 통해 조재형은 유대 종교 내에서는 그 기원을 찾기 힘든 신약성서의 기독론 묘사 방식에 대한 창의적인 해답을 내놓는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자신의 피를 마시라고 지시하는 '요한복음의 예수'를 해석하는 부분이었다. 성만찬 제정 본문에서 "피를 마시라"는 직접적인 지시를 피하고 예수의 피와 잔을 최대한 은근하게 처리하려는 공관복음과는 달리, 요한복음은 당황스럽게도 예수가 제자들에게 "내 피를 마시라"고 직접 지시한다.

이는 하나님의 영역이자 생명의 근원인 피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레위기 율법에 위배되는 것으로, 만일 예수 운동의 배경이 유대 종교에 국한한다면 나오기 어려운 장면이다. 조재형은 이러한 예수의 지시를 들은 유대인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는 장면을 통해, 이 본문이 유대 종교 측면에서 얼마나 납득하기 어려운 것인지 보여 준다. 그러면서도 이 난제를 풀 열쇠는 디오니소스 신화에 있다고 본다. 요한복음 저자가 예수를 설명하면서 디오니소스 신화에 등장하는 묘사를 차용했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디오니소스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의 아들이자 '포도주의 신'이다. 디오니소스를 섬기는 제의는 그 이름에 걸맞게 먹고 마시는 행위로 진행되는데, 그 절정에는 피가 흐르는 고기의 생살을 뜯어먹는 의식(오모파기아)이 있다. 이는 자신을 박해·배척하는 원수들의 생살을 뜯어먹고 그 피를 마시는 디오니소스의 행위가 포함돼 있다. 조재형에 따르면, 요한복음 저자는 예수가 성만찬을 제정하는 장면에서 의도적으로 디오니소스 제의를 떠올리게 하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원수의 살을 뜯어먹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살과 피를 내주는 예수의 모습을 통해 디오니소스 신화를 극복한다. 요한복음 저자는 디오니소스 신화적 언어를 사용해 예수를 "참된 디오니소스"(225~226쪽)로 묘사하고자 했던 것이다.

요한복음 저자는 예수를 참된 디오니소스로 묘사한다.
요한복음 저자는 예수를 참된 디오니소스로 묘사한다.
3. 모든 것이 화합하는 하나님의 강

이런 점에서 조재형이 발굴해 낸 그리스-로마 세계의 그리스도교는, 신학적·종교적 논쟁에서 '고유성'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여러 경쟁 종교의 신학을 자신들의 그리스도 경험에 맞추어 재해석해 나간 포용적 종교였다. 나아가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로마 종교 사이의 관계는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기원으로 일방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선교·변증을 위해 서로 대화하고 수용해 온 화합의 역사다.

이러한 역사를 조재형은 그레고리 라일리의 유비를 빌려 설명한다(180쪽). 라일리는 그리스도교 역사에 '하나님의 강'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이는 하나님의 큰 강인 그리스도교가 자신에게 유입되는 여러 지류의 합으로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여러 하천이 그리스도교라는 하나의 큰 강줄기로 모여들어 전혀 다른 수질, 전혀 다른 유속을 갖고 흘러 왔다. 따라서 한강에 중랑천 물이 흐른다고 한강을 중랑천이라 부를 수 없듯, 1세기 유대 종교와 그리스-로마 종교를 사용하고 재해석하며 발전해 온 그리스도교를 단지 유대교로 환원하거나 디오니소스교의 아류 정도로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대한 강이 여러 물줄기를 하나로 품었듯,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로 인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은 여러 종교의 논쟁적 아이디어를 하나의 복음으로 품어 냈다.

저자는 신약성서 사본은 거의 대부분 코이네 '헬라어'이고, 예수 사역의 배경이 되는 유대-팔레스타인 지방은 오랜 시간 '그리스-로마'의 통치를 받았으며,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유대인들은 '헬라화한' 유대인이라는,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간과하기 쉬운 지점을 다시 상기해 준다. 헬라화한 유대인이었던 신약성서 기자들이 헬라 세계에서 살아간 유대인 예수를 헬라적 사고방식과 언어를 통해 전하려 했으리라는 점 말이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초기 그리스도교는 종교적 경합 상황에서 경쟁 종교를 배제하고 따돌리는 방식으로 발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리스도교는 경쟁 종교를 설득하기 위해 상대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하나로 화합하려는 포용적인 자세를 지닌 종교였다고 볼 수 있다.

권우진 / 카페 알바생, 입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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