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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나누는 사랑의 속삭임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면, 기도를 정말 단단히 오해한 것이다. 그런 기도는 '안전한 기도'요, 그저 하나님께 '보험'을 드는 기도일 뿐이다.

<위험한 기도>의 저자 크레이그 그로쉘은 단순히 살아 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와의 소통을 넘어, "나를 살피시고 내 마음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나를 시험하여 보소서"라고 기도해 보라고 초청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대로 살기 위해 용기를 발휘해 보라고 도전한다. 이는 마치 어린 독수리가 안전한 둥지를 벗어나 저 높고 푸른 창공을 날기 위해 격렬히 날개짓하기 시작하는 순간과 같다.

만일 기도의 힘을 안다면, 나의 안전한 기도에 넌더리가 난다면, 자기중심적인 신앙을 벗어나 타인을 위한 신앙으로 도약하고 싶다면, 기도부터 바꿔야 한다. 이제 '위험한 기도'를 시작할 때다. 이것은 영혼을 정결케 하고, 마음을 고치며, 영원한 변화를 일으킨다.

저자는 하나님의 인정보다 사람들의 인정을 우선시하는 마음과 줄곧 싸워 왔으며, 이것이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의 영적 결함이라고 고백한다. 목회자로서 사역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쉽게 분노하고, 다른 성도들 심지어 아내에게 화를 낸 적이 있지 않은가? 당신은 그 순간 왜 화를 냈을까? 그것이 과연 하나님을 위한 분노였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인정을 하나님께 받는 인정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다. 타인보다 나의 위신과 명예를 더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위험한 기도-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결코 안전한 길이 아니다>/ 크레이그 그로쉘 지음 /유정희 옮김 / 규장 펴냄 / 224쪽 / 1만 3000원
<위험한 기도-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결코 안전한 길이 아니다>/ 크레이그 그로쉘 지음 /유정희 옮김 / 규장 펴냄 / 224쪽 / 1만 3000원

이제 우리는 "나를 깨뜨리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 그저 안전하게 지켜 주시고, 생명을 보호해 주시고, 더 많은 것을 달라고 구하는 대신, 우리 자신을 깨뜨려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 온전히 쓰임을 받으려면 나 자신을 비워야 한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시는 그림 속에 들어가, 하나님의 손으로 완성될 걸작품을 보려면 우리는 그분께 굴복해야 한다.

우리가 설교하는 복음의 핵심은 "와서 죽으라"는 초청이다. 그런 복음을 전하기 전에 목회자부터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죄·과거·육신·자아·두려움에 대해 죽어야 한다. 그것은 편안하고 미적지근한 파트타임의 헌신이 아니다. 주님의 뜻에 철저하고도 담대하게 굴복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기도는 "나를 보내소서"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보내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라고 하실 수도 있다. 정말 엄청난 일 혹은 불쾌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순종의 기도는 결코 쉽지 않다.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경외심이 없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은혜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그렇다. '위험한 기도'는 처음부터 은혜였다. 주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 나 자신을 제대로 보고, 주님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는 훈련이다. 은혜는 나를 바로 세워 줄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시는 모습대로 세워 줄 것이다. '나를 바로 세우는 기도', 그것이 바로 위험한 기도의 결말이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이종수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고문, 의정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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