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성경을 읽다 보면 이상한 점이 많다. 예를 들어 모세오경은 모세가 썼다고 하는데, 신명기 끝부분에는 모세가 느보산에 올라가 죽는 장면이 나온다. 하나님은 유일신이라고 하면서 '신들'이라는 복수형 표현이 수없이 등장한다. 심지어 욥기에는 하나님이 주재하는 '신들'의 회의도 나온다.

블로그 '불신자가 읽는 성경'은 앞뒤가 안 맞아 보이는 성경 텍스트에 의문을 제기한다. 첫 에피소드인 창세기 1장에서는 "에덴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는다.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이유로 최초의 인류를 내쫓고 천사와 불칼로 에덴동산 입구를 지키게 했다더니, 지금은 어디로 사라진 거냐는 말이다.

그의 눈엔 성경에 나오는 모든 게 낯설다. 며느리와 동침해서 아들을 낳은 유다, 광야에서 먹을 게 없어 만나에 의존하는 백성들이 며칠간 피칠갑을 하며 짐승을 잡아 제사 지내는 행위…. 이런 낯섦의 정점에는 이 모든 기록을 '문자 그대로 믿는' 21세기 한국교회 교인들이 있다. 그들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러한 기록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저 성경에 써 있다는 이유로 여성 안수를 거부하고, 성소수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지구 나이가 6000년이라고 믿고 있다.

'불신자가 읽는 성경' 블로거는 처음에는 페이스북에 조금씩 리뷰를 남겨 오다, 아예 2020년 9월 블로그를 개설해 본격적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2021년 5월 16일 현재 레위기까지 연재를 마쳤다. 그는 이 모든 게 "정말 '왕좌의게임(미국 HBO 드라마)'처럼 재밌다"고 답한다. 이유를 묻자, 그는 "'왕좌의게임'처럼 아주 부조리한 세계가 아무렇지 않게 펼쳐지는 낯선 감각을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이 더 재밌다"고 말했다.

'덕질'하듯 '성경 통독'을 하는 그는 각종 인터넷 밈과 트렌드를 충실히 반영해 글을 쓰는데, 이야기책을 보는 것처럼 술술 읽힌다. 각종 짤방에 목사들마저 당황시키는 히브리어 연구까지 곁들인, 이 희한하고 특이한 블로그의 주인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텍스트에 대한 비판적 성찰 없이 그저 'QT'로 대변되는 적용·나눔에만 골몰한 한국교회에, '낯설게 읽기'는 꼭 필요한 방식 중 하나다. 그에게 여러 인사이트를 얻어 보고자 인터뷰를 요청했다. 5월 18~20일까지 메일과 메신저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그의 요청으로 이름은 밝히지 않기로 했다.

"구약을 왕좌의게임처럼 읽고 있는" 범상치 않은 불신자를 인터뷰했다. 블로그 갈무리
"구약을 왕좌의게임처럼 읽고 있는" 범상치 않은 불신자를 인터뷰했다. 블로그 갈무리

-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저는 수도권 한 대학의 교수입니다. 대학명과 본명을 밝힐 수 없는 이유는 제가 근무하는 대학이 기독교 관련 재단이기 때문입니다. '밥줄'이 걸려 있다 보니 눈치가 보입니다.

- '불신자가 읽는 성경'이라는 이름이 생소하고 특이한데요. 정말 교회에 다녀 본 적은 없으신가요?

초등학교 5학년 때쯤, 교회 다니자고 조르던 동네 친구가 있었습니다. 하도 졸라서 하는 수 없이 한번 따라가겠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요일이 되자 귀찮음이 몰려왔습니다. 후회하는 마음을 한가득 안고 문을 나섰더니, 문밖에서 기다리던 친구가 그런 옷을 입고 갈 거냐며 못마땅하다는 듯이 지적하더군요.

아직도 기억납니다. "교회에 갈 때는 제일 좋은 옷을 입고 가야 한다." 그전까지 교회는 상냥하고 착한 사람들끼리 편하게 모이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생각 외로 엄격·근엄·진지한 곳일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확 들더군요. 딱 질색이었습니다. 제 옷을 지적한 것도 불쾌하고, 갈아입기도 귀찮아서 가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그 친구는 가끔 저에게 "내가 너 전도했다고 다 말해 놨는데 네가 안 나와서 내 입장이 얼마나 곤란한지 아느냐"고 따졌습니다. 이것이 교회에 대한 저의 첫 이미지입니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교회 다니던 다른 친구의 꼬드김으로 2박 3일 계곡 수련회에 따라갔습니다. 그 수련회에서 물놀이하고 담력 테스트하며 놀던 것이 상당히 즐거워서, 그 후에 한번 찾아가 봤지만 교회가 망했다고 하더라고요.

- 블로그 제목이 '무신론자가 읽는 성경'이 아니라 '불신자가 읽는 성경'인데요. 다른 종교를 믿으시나요?

저 자신은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 어떤 종교도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만, 남이 믿는 것까지 간섭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굳이 신이 없다고 선언하고 주장할 생각은 없어서, 저 혼자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는 뜻에서 '무신론자가 읽는 성경' 대신에 '불신자가 읽는 성경'이라고 제목을 지었습니다.

- 연재를 하기 위해 공부를 많이 하신다고 들었는데요.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을 간략히 소개해 주신다면.

대한성서공회의 '새번역' 사본으로 먼저 정독한 뒤, 두란노의 '우리말 성경'과 아가페의 '쉬운 성경'을 빠르게 훑어보며 서로 내용이 크게 다른 부분은 없는지 확인합니다. 또한 '합환채', '역청', '바로' 같이 한국어로 번역하는 바람에 오히려 더 이해가 안 되는 단어가 나오거나, 한국어 문장상 선후 관계가 명확하게 보이지 않으면 영어 성경 'NLT(New Living Translation Version)'로 확인합니다. 보통은 여기서 비교해 보는 작업이 끝나고, 한 편에 들어갈 중심 주제를 정해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가끔 번역본마다 내용이 너무 상이하거나 여전히 명확하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개역개정'과 'KJV(The King James Version)'를 봅니다.

히브리어도 공부해 원전을 찾아 읽는다(…).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히브리어도 공부해 원전을 찾아 읽는다(…).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 글을 쓰기 위해 히브리어까지 공부하셨다고요.

사본을 볼 때 가끔 히브리어 성경인 'BHS'(The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판으로 단어를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원문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서 구약 히브리어를 아주 약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현대 히브리어는 전혀 모르는 초보 상태라, 모음을 표기하지 않은 문서는 전혀 읽지 못합니다. 또한 히브리어 성경을 볼 때도 사전과 문법책을 뒤지며 들여다봐야 겨우 이해가 가능합니다. 이런 경우가 많이 생기진 않아 다행이지만, 한번 하게 되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히브리어 성경까지 펴 보는 일이 적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외에 참고하는 문헌이나 자료가 더 있나요?

평소 레반트·메소포타미아·이집트 지역의 신화·고대사 등을 책이나 다큐멘터리, 해외 박물관 사이트 등으로 틈틈이 확인해 두다가, 성경을 읽던 중에 연결되는 부분이 생기면 글에 언급합니다.

가장 도움이 됐던 책은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의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가람기획), 조르주 루의 <메소포타미아의 역사>(한국문화사), 김산해의 <최초의 신화 길가메시서사시>(휴머니스트), 사무엘 헨리 후크의 <중동 신화>(범우사) 등이 있고 그 외에도 조금씩 참고한 책들이 있습니다.

도움이 됐던 사이트는 이라크 'Ishtar TV(Ishtar Broadscasting Corporation)' 홈페이지입니다. 갈대아·시리아·아시리아를 전문으로 다룹니다. 이 홈페이지를 통해 메소포타미아(이라크) 지역 문화유산인 '세겔'이라는 화폐 단위를 현재는 이스라엘이 가져다 쓰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의 기조로 보아 이라크인들은 자신들의 전통 문화유산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홍해 문제를 쓸 때는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를 참고했습니다.

- 웬만한 목사·신학생보다 많이 공부하시는 것 같네요(…) 원문을 직접 확인한 사례를 몇 가지 꼽아 주신다면요.

'만나'라는 단어와 창세기의 "뱀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였다"(창 3:1),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 3:22)라는 구절, 출애굽기의 "여자를 가까이하지 말라" 같은 구절은 히브리어 성경으로도 확인해 봤습니다.

"뱀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였다"를 찾아본 이유는, 신자가 아닌 입장에서 기독교를 바라볼 때, 항상 뚜렷하게 의도와 실체가 있는 것처럼 다뤄지는 '악'이라는 존재가 가장 부조리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악의 존재가 신의 의도된 창조인지, 방조인지, 실수인지, 신이 만든 세상의 구멍인지, 비존재인지 가장 최초의 레퍼런스는 어떻게 언급하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중 하나"라는 구절은, 야훼가 본인의 입으로 에덴동산의 인간이 영원한 생명까지 얻게 되어 "우리 중 하나가 될까 봐 걱정된다"고 말하는 부분을 말합니다. ('우리'라는 표현은 유일신 사상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냥 다신교 신화를 베껴 오다가 저렇게 된 걸로 보여요. 기독교계에서는 삼위일체를 뜻하는 거라고 말하더군요. 제 눈에는 삼위일체설이라는 게, 성경의 설정 구멍도 메워야겠고, 야훼와 예수 둘 다 버릴 수 없는 상황에서 '유일신' 틀은 맞춰야겠고 해서 짜낸 부가 설정처럼 보이는데, 아무튼 그게 정설이라고 합니다.

"여자를 가까이하지 말라" 구절을 확인한 이유는, 기독교는 여자를 신앙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종교인 건가 싶어서 확인했습니다. 확인 결과 히브리어 문법상 2인칭 남성들을 향해 말하는 문장입니다. 이 외에도 성경은 오로지 남성들에게만 말을 건네고 있음을 알게 됐고, 이런 종교 체계에서 여성이 신앙 주체가 되지는 못하겠구나 추측했습니다.

많은 교인이 어려워하는 레위기도 재미있게 정리한다. 글마다 각종 시대를 담은 성화도 빼놓지 않고 곁들인다. 블로그 갈무리
많은 교인이 어려워하는 레위기도 재미있게 정리한다. 글마다 각종 시대를 담은 성화도 빼놓지 않고 곁들인다. 블로그 갈무리

- 기독교인이 성경을 보더라도 이렇게 다양한 자료를 놓고 읽지는 않는데요. 교회도 안 다니는 '불신자'인데 왜 이렇게 열심히 읽으시나요?

계기는 한 축구 선수 때문입니다. 아내에게 "하나님이 여자에게 출산의 고통을 내렸으니 무통 주사를 맞지 말자"는 식으로 말했다기에, 도대체 성경에 뭐가 어떻게 적혀 있길래 저렇게 해석하게 되는 건가 싶어서 열어 본 것이 시작입니다. 꽤 최근 일이죠.

처음 창세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야기책처럼 느껴져서, 성경의 모든 내용이 다 일종의 신화·전설 모음인 줄 알았습니다. 막상 그렇게 창세기를 재미있게 읽기 시작했는데, 주변에서 레위기니 민수기니 신명기의 존재를 예고하며 겁을 주길래, 그제야 특히 재미없고 어려운 구간이 있음을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신자들도 성경을 잘 안 읽는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의문이 가득 찼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이라면 최소 한 번 이상 통독하고 발췌독도 하고 필사도 하고 그러는 줄 알았습니다. 전철에서 성경 열심히 읽는 분들을 간혹 봤거든요.

직접 읽어 보지 않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고, 어떻게 믿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신앙의 주체가 될 수 있고, 게다가 자신이 신실하게 믿는 사람이 맞는지 스스로 확신할 수 있죠? 저는 직접 읽으면서 제 스스로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점점 더 확신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무튼 며칠 전엔 운문으로만 이루어진 장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벌써부터 두렵습니다.

- 지금 레위기까지 연재를 마치셨는데, 창세기부터 레위기까지 읽으시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에피소드와 가장 어이없던 에피소드를 한두 개 꼽아 주세요.

제일 흥미로웠던 에피소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칠 뻔한 편입니다. 가볍게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해서 썼는데, 나중에 시간이 난다면 19세기 덴마크 철학자인 키르케고르의 <공포와 전율>이라는 책을 통해 다시 본격적으로 해석해 보고 싶습니다.

가장 어이없던 에피소드를 고르는 것은 매우 어렵네요. 어이없지 않은 에피소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가장 어이없고 동시에 해로운 걸로 꼽자면, 체외사정의 죄로 죽은, 유다의 둘째 아들 오난 이야기입니다. 자손을 갖기 위한 성행위만을 인정하고(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에서 읽었습니다), 혼전 순결을 강조하고, 그 외에 정액을 그냥 버리는 행위인 콘돔 사용, 자위, 몽정마저도 죄악시했던 기독교 문화가 참으로 인류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그런 걸로 지나친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들어, 서로 손가락질하고 주홍 글씨 달도록 만든 것이야말로 많은 사람을 폭발 직전의 신경증 상태로 빠뜨려 버린 것 같습니다.

그 다음은 소돔에서의 롯이 두 딸을 동네 약탈자들에게 대신 내주려고 한 이야기를 꼽고 싶습니다. 롯은 어떤 의미에서 의인일까요? 손님을 환대하고 보호하려한 점? 동성 강간 대신 이성 강간을 권장한 점?

하나만 더 꼽는다면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 이야기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많이 좋아하는 이야기로 알고 있었는데, 직접 읽어 보니 전형적인 '마름(지주를 대신해 소작농을 관리하는 사람)' 타입으로, 권력자의 눈에 드는 재간이 있습니다. 결국 흉년을 이용해 백성들의 땅을 모조리 수탈, 국유화(말이 좋아서 국유화지 파라오의 것으로 만든)하여 소작농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전 이 이야기가 몹시 불쾌했습니다.

어려운 처지에 놓여도 열심히 노력하면 그 보상으로 남 머리 꼭대기에 올라선 최고 권력자이자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관점, 즉 능력만능주의가 기독교 사회 내에서는 전혀 비판받지 않는 것 같아서였습니다. 약자를 등쳐 먹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능력만 있고 알뜰히 노력하면 세속적으로 큰 보상을 받는 것이 원래 기독교에서 권장하는 미덕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내가 가장 바라는 사회 모습을
가장 적극적으로 막는 기독교
"교인들 문자주의적 발상에 아연실색"

- 신성모독, 종교 비하라는 식의 악플도 많이 보셨을 것 같은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악플은 뭔가요?

악플까지는 아니고, 제 글을 공유해 가서 붙인 글이었는데 "당시 시대적 한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현대 관점에서 까는 게 편협하다 못해 측은한 마음까지 든다"는 게 있습니다. 비슷한 투덜거림은 자주 겪는데, 이 얘기는 계속 나오던 거라 기억에 남네요.

- 이런 반응을 마주하면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어차피 신성을 모독하고 있는 중이니까 그것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왜 하필 기독교만 트집 잡느냐고 묻는다면,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제가 바라는 사회의 모습을 가장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종교가 기독교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고, 차별 금지 조항에서 동성애 항목을 제외하려 하고, 동성애를 '죄'이자 '질병'이라고 하고, 성차별을 조장·방관하고, 심지어는 '창조과학'이라는 괴상한 썰을 들고 와서 과학적 진보를 저해하는 등, 제가 살고 싶은 사회를 가장 적극적으로 막아서고 있습니다. 아마 다른 종교가 현대 한국 사회 정책에 방해질을 일삼는다면 당연히 그 종교도 비판할 것입니다.

- 이런 글을 신선하고 재밌게 수용하는 기독교인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정말 정말 신기합니다. 저는 저와 같이,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성경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알려 줄 목적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성경과 기독교를 엄청나게 잘 아시는 분들이 오셔서 댓글을 다는 점이 아주 놀랍습니다. 특히 목사님들과 신학대 전공자분까지 놀러 오시는 건 좀 두렵기까지 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제 편견도 아주 많이 사라졌습니다. 어릴 때야 기독교인들은 다 선하다고 생각했지만, 자라면서 꽉 막히고 말이 안 통하는 아주 보수적인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로 굳어졌거든요. 그런데 이번 기회에 그 편견이 다 사라졌습니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은 사실 어느 조직, 어느 사회에나 있는 것인데 제가 너무 일부만 보고 성급히 판단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이분들은 고일 대로 고인 분들이라, 성경 내용이 궁금해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어느 부분에서 놀라거나 충격을 받거나 괴로워하거나 화를 낼 걸 이미 다 예측하고 있다가 제 반응을 즐기러 오시는 것 같아요. 리액션 비디오를 보는 심정이실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겨우 이런 걸로 놀라시다니 과연 사사기에서 어떠실지 궁금하군요" 같은 댓글을 남기시거나, "어떤 어떤 에피소드 나왔나요? 생략인가요? 다음 편에는 나오나요?" 등 편성 문의를 하는 시청자 게시판 같은 댓글도 달립니다.

저도 이런 반응은 예상치 못했는데, 저 덕분에 닳고 닳은 고인물들께서 오랜만에 신선하다며 껄껄 웃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단어나 인명, 족보 관계에서 실수하는 것도 찾아 주시고, 다른 추가적인 이론도 알려 주시고, 뒷부분을 읽지 못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판단해 내린 결론은 바로잡아 주시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글이 기독교인들의 '비판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가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악플에도 의연한 그에게서 이말년의 패기가 느껴진다. 블로그 갈무리
그는 자신의 글이 기독교인들의 '비판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가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악플에도 의연한 그에게서 이말년의 패기가 느껴진다. 블로그 갈무리

- 댓글들을 보면, 21세기에도 구약 체험을 핑계로 염소를 정말 도살한다던가 여성은 목사가 될 수 없다는 실제 사례를 보고 놀라시는 것 같던데요. 한국교회가 이런 식으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시도를 보며 느끼신 점이 있나요?

'하나님께서 여성에게 벌로써 출산의 고통을 주셨으니 무통 주사를 안 맞는 것이 더 옳지 않은가?' 같은 걸 진지하게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또한 레위기에서처럼 염소를 도살하는 모습을 아이들 눈 앞에서 보여 준다거나, 2000년대에 들어서도 여성은 목사가 될 수 없다는 전통을 지키는 곳이 있다는 점에서도 놀랐습니다. 다 성경에 근거가 있겠죠.

그러나 아무리 봐도 고대 신화·전설, 당시 생활상 등을 기록한 사료에 불과한데 이것을 현대로 가져와 문자 그대로 지키겠다는 발상에 아연실색하게 됩니다. 현대 교육을 받은 사람의 눈에는 이것이 얼마나 괴상하게 보이는지 짐작하실 것입니다.

성경의 규례를 문자 그대로 지켜야 한다면 모든 문자를 빠뜨리는 것 없이 그대로 지켜야 할 것입니다. 어떤 문자를 일부러 빼는 것은 모순입니다. 그런데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단언할 수 있습니다. 갑각류나 돼지고기를 못 먹는 것을 넘어서, 제사장 한번 임명하려면 8일 동안 짐승 29마리를 죽여야 합니다. 피부병이 생기면 일주일이나 격리돼야 하고, 생리를 해도, 출산을 해도 격리돼야 합니다. 정화 의식이란 것은 즉석에서 비둘기를 잡아 피를 뿌리는 것입니다. 술 마시고 아버지 말을 안 듣는 아들은 돌로 때려 죽이라는 규례, 혼방 옷감을 입지 말라는 규례까지 지키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불가능합니다.

그런 것들은 지키지 않으면서, 과거와 현대는 다르다며 현대에 맞게 재해석도 하면서, 동성애 규례 같은 몇 가지만 취사선택해 문자 그대로 지킬 것을 강요하는 것은 기만입니다. '문자 그대로 지킨다'는 말 자체가 내적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취사선택을 하는 순간, 문자주의자가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 성경은 언제까지, 어디까지 읽으실 생각이신지 계획이 궁금합니다. 또 연재를 통해 얻고 싶으신 점은?

현재로선 크게 욕심내지 않고 모세오경을 끝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가능하다면 구약 전부를 해 보고 싶습니다. 부조리, 미신, 주술적 관념과 야만스러운 고대 문명이 거칠게 휘몰아치는 참 재미있는 텍스트입니다. 그러고도 시간이 더 난다면 신약까지 완독해 보고 싶습니다. 일단은 모세오경이 끝나면 펀딩으로 출간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너무 바쁘게 쫓기듯 살아와서, 어렵게 시간이 날 때마다 그 시간을 내게 유용한 것, 도움되는 것, 의미가 있는 것, 공부가 되는 것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 가득 차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항상 그렇게 급급하게 빈 곳을 채워 넣으려다 보니, 인생이 풍요로워지기는커녕 황폐해지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쯤은 제 업적이나 경력에 관계없는 것, 제 전공과도 무관한 것, 저에게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에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성경을 읽고 히브리어를 공부하게 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제가 불신자이기 때문에 했던 선택입니다.

저는 이 일에 대한 흥미를 잃고 싶지 않습니다. 신화·문명·역사·종교 등 워낙 방대한 영역으로 넓혀 나갈 수 있는 취미이다 보니, 죽을 때까지 유지하고 싶습니다.

저는 익숙한 것을 무심코 당연하다 여기고 넘어가는 사람이 아닌, 가시처럼 걸려 버리고야 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무뎌지면 사람의 정신은 늙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언가를 판단하고 호불호를 결정하는 우리의 가치관은 비판적 능력이 없던 어린 시절에 대부분 결정돼 버린다는 게 무섭습니다. 기독교 신자이면서도 제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은 처음부터 가시를 느끼신 분들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 웬 불경하고 버릇없는 불신자가 "여기 가시 있다"며 씩씩거리는 모습이 하찮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실 것입니다. 저는 더욱더 많은 분이 가시를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이 다 당연하게 느껴지고 낯설지도, 아프지도, 불편하지도 않다면 그건 꿈속이라는 뜻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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