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지난해 11월 10일 게재한 '진보적이지 않은 진보적 복음주의'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 편집자 주
1. 진보적 복음주의의 지성에 대한 사랑

글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진보적 복음주의'(progressive evangelicalism)라는 집단을 정의해야 할 것 같다. '진보적 복음주의'란 정치적으로는 극우·보수주의 노선에 있는 근본주의·복음주의 신앙과 구별되고, 신앙적으로는 사회참여에 적극 나섰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등 진보 노선과 구별되는 하나의 종교운동이다. 이들은 보수적 신앙에 기반하면서도 사회참여에 있어서는 기존 근본주의·복음주의보다 진보적인 정치 의제를 지지했다. 진보적 복음주의는 하나님나라신학, 로잔 언약, 기독교 세계관 등의 신학적 토대와 1980년대 한국 사회·정치적 상황 속에서 형성된 종교운동이다.1)

글 하단 필자 소개에서 볼 수 있듯, 나는 진보적 복음주의 내부에 있었다. 짧지 않은 기간 그 흐름 내부에 있는 여러 단체를 경험하며, 아카데미·강연회 활동 등에 적극 참여했다. 그 전통에 속한 서적을 탐독하며 신학적 토대인 '기독교 세계관'과 '하나님나라신학'을 공부했고, 독서 모임 등을 통해 이를 열심히 전파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진보적 복음주의의 한 아카데미에서 수강생을 관리하는 일을 맡기도 했는데, 그런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진보적 복음주의 운동에 속한 이가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은 전문직·중산층이었다는 것이다.

영미 복음주의는 근본주의와 자신을 '지성'으로 구별 지었다. 자생적 전통이 아닌 영미 신학을 수입해 탄생한 한국의 진보적 복음주의 역시 이와 비슷한 입장을 지닌다. 한국의 진보적 복음주의는 근본주의 개신교와 신학적·지성적 차이를 강조하면서 자신을 구별해 낸다. 진보적 복음주의 특유의 지성 강조는 어디에서 기원한 것일까? 진보적 복음주의는 태생이 수도권 대학생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진보적 복음주의를 '87년형 복음주의'로 부르기도 하는데2), 이 종교운동의 근원에는 80년대형 지식인 모델과 대학생 중심의 사회운동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이 운동의 중심에는 지성이 자리하고, 이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지적 회심', '지적 계몽'이 필요하다.

진보적 복음주의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신학적 강조점은 '하나님나라신학'에 있다. 진보적 복음주의라는 하나의 장(field)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보수 신앙을 기반으로 두면서도 하나님나라신학이 가진 종말론적 의미를 이해하고 사회참여에 나설 수 있는 신앙적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더불어 근본주의 신앙의 문자주의적 성서 해석, 창조과학 등과도 결별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지성적 전환 즉 계몽인데, 독서와 학자의 강연 청취가 필수적이다.

진보적 복음주의의 지성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앞서 언급했듯, 진보적 복음주의는 1980년대 중·후반 기독교학문연구회·기독교문화연구회 등 대학원생 중심 모임과 복음주의청년학생협의회 같은 대학생 중심 모임에서 파생했고, 기독교학문연구회는 현재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로 이어졌다.3) 진보적 복음주의는 종교운동인데도 대학원생·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학술 모임'에서 시작됐다. 이런 전통은 기독교청년아카데미·현대기독연구원·청어람아카데미·기독연구원느헤미야·새물결아카데미 등 학술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런 아카데미 활동은 진보적 복음주의 운동의 중추를 담당하며, 진보적 복음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아카데미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더불어 진보적 복음주의 국내 저자로 구분할 수 있는 손봉호·이만열·강영안·박득훈·김회권·권연경·김근주·김형국·배덕만 등은 대부분 국내 명문대 출신에, 해외 유수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학자다. 이들은 기독교 출판사와 긴밀하게 협력해 꾸준히 책을 출간하고 독서를 장려하며 지성 운동을 이끈다. 진보적 복음주의 대표적 행사인 성서한국만 봐도 진보적 복음주의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성서한국 주 강사는 대부분 학자·교수다. 물론 학력·학벌 숭배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 특성이기도 하지만, 다른 종교운동에 비해 진보적 복음주의 진영의 학력·학벌 인플레이션과 지성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분명 두드러진다.

2. 진보적 복음주의 지성 운동의 한계:
중산층 중심의 몰계급적 '구별 짓기'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진보적 복음주의 진영 대표 인물들이 명문대 혹은 해외 대학 학위 소지자인 게 문제라는 말이 아니다. 이들이 대표로 자리매김한 배후에는 이들의 이력 이전에 진보적 복음주의 흐름 내부에서 지성적·엘리트적 능력에 정당성을 부여한 많은 지지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복잡다단하게 분화한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다양한 사회의 장소에 존재하고, 다양한 장소에서는 서로 다른 가치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를테면, 스포츠의 장(field)에서는 육체의 탁월성과 그를 기반으로 한 압도적 퍼포먼스가 그 내부에 있는 사람에게 인정받는 하나의 가치가 된다.

종교의 장을 예로 들면, 오순절 중심 영성을 강조하는 종교 집단에서는 성령 운동에서 통용되는 은사와 영적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 의미·권위를 획득하게 된다. 반대로 진보적 복음주의처럼 지성과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종교 집단에서는 성령의 은사, 종교적 체험, 영적 카리스마가 의미를 얻기 어렵다. 일반적인 종교 집단에서는 종교 지도자의 종교적 카리스마가 정당성 획득 수단이 되는 데 반해, 진보적 복음주의는 자신의 종교적 가르침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내외 유명 학자를 끌어들인다. '종교적 서사'가 아닌 '학술적 서사'로 종교운동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무언가에 대해 논할 때, '이것은 신의 계시다'고 하는 것보다, '아무개 학자가 이것을 이렇게 해석했다'고 가르친다. 그런 까닭에 진보적 복음주의 장에서는 유독 학자 출신 저자·활동가·스피커가 각광받는다. 진보적 복음주의 내부자 역시 이런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이 체제를 유지하는 데 공모한다.

그렇다면 진보적 복음주의가 지성에 애정을 갖는 일에는 무슨 문제가 있는가. 지성 운동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만 이 지성 운동이 지나치게 편협한 몰계급적 시각으로, 일종의 지적 페티시즘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사회학에서는 일찍이 사회에 통용되는 많은 유·무형 에너지를 '자본'으로 개념화했다. 보통 자본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경제 자본 외에도, 인간의 사회적 삶 속에서 노동으로 축적되어 있으면서도 그를 통해 다른 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을 자본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를테면, 출중한 용모 역시 '외모 자본'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인간관계를 통해 만들어진 연줄·인맥 같은 '사회(관계) 자본'도 있고, '문화 자본'도 존재한다. 여기서는 특별히 문화 자본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4)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는 자본 개념으로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분석했다. 문화 자본이란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체화된 인지 역량으로서의 문화 자본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비교적 쉽게 전이·상속할 수 있는 경제 자본과 다르게, 문화 자본은 인간의 신체 일부가 된 자본이다. 문화 자본의 측면으로 본다면, 한 개인이 어떤 고상하고 수준 높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이나, 고급스러운 어휘를 구사하고 독해할 수 있는 능력 역시 자본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문화 자본도 다른 자본과 같이 '상속'되고 '세습'된다는 데 있다.

고급스러운 문화 자본을 상속받거나, 사회적으로 이런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사람에게 지성 운동과 독서, 지식인의 강연은 자연스럽고 편안한 것이 될 수 있다. 고급스러운 문화 자본이 있는 사람에게, 지적으로 정합성이 없고 비속어가 난무하는 수준 낮은 설교는 되레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것이 된다. 반면, 이런 고급스러운 문화 자본을 상속받지 못했거나 사회·경제적 이유로 이런 능력을 획득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학술적인 언어, 유창한 외국어와 해외 신학자가 인용되는 강의·설교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

계급·계층마다 문해력이 다르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해외 대학 박사 학위를 소지한 지식인의 강연·설교를 듣고, 매달 나오는 국내외 신학자의 신간을 구매해 읽고 토론하는 '고급스러운' 신앙을 향유할 능력도 계급·계층의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진보적 복음주의의 운동은 지성 역시 다분히 계급·계층적이라는 현대 사회과학의 상식조차도 성찰하지 못한 것 같다.

진보적 복음주의는 그런 신앙을 향유하지 못한 자, 이를테면 부흥강사의 수준 낮은 설교에 감동하고, 신학적으로 엉성한 책을 읽거나 아예 책을 읽지 못하며, 지적으로 옹호하기 어려운 문자주의적 성서 해석과 창조과학을 지지하는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이는 부르디외가 <구별 짓기>에서 지적한 지배계급의 시선, 즉 민중 계급의 저급한 문화 취향을 자신의 고급스러운 취향과 구별하는 엘리트주의적 시선을 환기한다.

진보적 복음주의 운동의 중추 역할을 하는 아카데미 운동 역시 중산층 중심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생업에 바쁜 사람은 그런 지적 활동에 참여하고 아카데미 운영을 위한 자금을 후원하기 쉽지 않다. 진보적 복음주의 운동의 이면에는, 이 운동에 가담할 수 있는 경제 자본, 담론을 향유할 수 있는 문화 자본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중산층·지식인 계급이 중심이 돼 지성 운동에 자부심을 갖고, 지성으로 타자와 자신을 구별해 낸다. 이것이 진보적 복음주의 운동의 일면이다.

3. 진보적 복음주의,
'학술 활동'인가 '종교운동'인가

신앙을 갖고 교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시절, 여름이면 전국 시골 교회를 다니며 봉사 활동을 하고는 했다. 그때 굉장히 다양한 경험을 했는데, 무학無學이거나 저학력인 인구가 많고, 거주 인구가 몇백 명도 안 되는 시골 교회에서 진보적 복음주의는 전혀 작동할 수 없었다. 이들에게는 진보적 복음주의 운동으로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자본이 없거나, 이를 획득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도 미비하기 때문이다. 비단 시골뿐만 아니라 도시도 마찬가지다. 인구 수백만 광역시에서 나고 자라며 신앙을 가졌던 나는, 교회에서 그 흔한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단어조차도 들어 보지 못했다.5) 나뿐만 아니라 비슷한 처지에 있거나, 삶에 여유가 없는 이에게 진보적 복음주의는 허울일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진보적 복음주의는 다분히 몰계급적이다.

한 가지 확실히 해야 할 것은 진보적 복음주의는 '신앙 운동'이지 '학술 활동'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서는 조용기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조용기는 한국전쟁 이후 절대 빈곤이라는 시대적 문제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신앙관을 만들어 냈다. 절대 빈곤에 처한 이들에게 그는 절절한 신앙적 위로를 주었다. 그는 전도하러 나가서 만난 한 빈곤한 이의 처절한 삶에 충격을 받고 '3박자 축복'이라는 단순한 신앙 구호를 만들어 냈다. 누구든 쉽게 이해하고 수용해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였다.

조용기의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부정적 영향을 간과하며 그를 미화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조용기가 가진 현실적 영향력을 조망하자는 것이다. 그가 만들어 낸 평이한 신앙 언어·서사에는 힘이 있었다. 이를 통해 한국 개신교는 '조용기주의'라고 할 만한 영향력을 행사했다.6) 하지만 진보적 복음주의는 모든 이를 아우를 수 있는 단순한 구호나 서사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렇게 조용기의 신은 대한민국의 신이 될 수 있었지만, 진보적 복음주의의 신은 고학력자, 전문직 종사자, 중산층에게만 신이 될 수 있었다.

진보적 복음주의가 지닌 지적·엘리트주의적 한계는 이미 지적됐다.7) 하지만 상황은 변한 게 없다. 사람은 자신이 자라난 계급적·사회적 상황에 영향을 받아 특정 장르의 책을 선호하고, 특정 감독의 영화를 즐기며, 특정한 문화적 취향을 갖게 된다. 그렇듯 종교적 성향 역시 자신이 자란 사회적 환경에서 구성된 것일 수 있다. 진보적 복음주의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에게 진보적 복음주의는 맞지 않는 옷일 수 있다. 게다가 지금 그 옷은 입기에 너무 까다로운 옷이 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진보적 복음주의 운동은 중산층·고학력·수도권 기반을 지닌 사람들끼리의 종교적 여흥, 신앙적 유희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계속)

두크나이트 / 근본주의 개신교에서 진보적 복음주의로 이적했다가 3년 전 결국 비신자가 됐다. 대학에서 사회학과 정치외교학을 공부했고, 종교 바깥에서 한국 개신교를 관찰하고 있다.

1) 진보적 복음주의에 관한 정보는 다음의 글을 참고했다. 류대영, 8장 '1980년대 이후 보수 교회 사회참여의 이론과 사례',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 푸른역사, 2009. 배덕만, 11장 '진보적 복음주의', <복음주의 리포트>, 대장간, 2020.
2) 87년형 복음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는 정정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정정훈, '한국 복음주의 혁신 없이 미래는 없다', <복음과상황>, 2012년 1월호.
3) 배덕만, 11장 '진보적 복음주의', <복음주의 리포트>, 대장간, 2020.
4) 피에르 부르디외, 이충한·김선미·정병은 역, 2장 '자본의 형태', <사회자본 이론과 쟁점>, 도서출판 그린, 2003.
5) 한국의 수도권 중심주의는 비단 진보적 복음주의만의 문제는 아니다. 물론 진보적 복음주의 내부에도 성서한국 지역 운동 본부를 설립하거나, 기독연구원느헤미야의 경우 지역 캠퍼스를 만들어 운영하는 등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진보적 복음주의 기반 시설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6) 김덕영, <에리식톤 콤플렉스>, 도서출판 길, 2019.
7) 배덕만, <복음주의 리포트>, 대장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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