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압둘 와합을 소개합니다 -  어느 수줍은 국어 교사의 특별한 시리아 친구 이야기> / 김혜진 지음 / 원더박스 펴냄 / 312쪽 / 1만 4800원
<내 친구 압둘 와합을 소개합니다 -  어느 수줍은 국어 교사의 특별한 시리아 친구 이야기> / 김혜진 지음 / 원더박스 펴냄 / 312쪽 / 1만 4800원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외국인 친구를 소개받았다고 생각해 보자. 갑자기 글로벌 시대의 일원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말이야 좀 안 통하면 어떤가. 나는 어느새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하며 친절하게 삼겹살과 치킨을 함께 먹어 줄 수 있는 세계시민적 소양을 갖춘 사람이 돼 있다. 자, 그런데 그 친구가 아랍인이라면? 내전 때문에 자국에 돌아가지 못하는 난민이라면? 그가 라마단을 철저하게 지키는 무슬림이라면?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글로벌 시대의 일원, 세계시민인가?

"당연하지!"라고 흔쾌히 답할 수 없었던 사람이 시리아인과 친구가 되어 가는 과정을 쓴 책이 나왔다. <내 친구 압둘 와합을 소개합니다>(원더박스)는 제목 그대로 저자 김혜진 교사가 압둘 와합(Abdul Wahab Al Mohammad Agha) 헬프시리아 사무국장을 소개하는 책이다. 와합 국장이 본국 시리아에서 어떻게 살았고,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게 됐으며, 지난 10여 년간 어떻게 살았는지 기록했다. 중간중간 나오는 시리아 역사·문화, 내전 이유 및 전개 과정은 와합 국장이 직접 썼다.

이 책의 특징은 한마디로 '눈높이'다.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김혜진 교사는 한국의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랍인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보수 성향 교회를 다니는 개신교인이다. 책에는 당황스러웠던 첫 만남부터 얼떨결에 헬프시리아에 참여하게 된 사연 등이 담겼다. 한국 사회 일반적인 사람의 눈높이에 맞기 때문에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저자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책장이 촤라라락 넘어갈 것이다.

책을 다 읽자마자 냉큼 저자 인터뷰를 요청했다. 4월 3일 <뉴스앤조이> 사무실에서 김혜진 교사와 압둘 와합 국장을 만날 수 있었다. 시리아 내전이 올해로 10년을 맞았기 때문에 결코 가벼운 내용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종일관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참고로 와합 국장은 한국말을 잘한다. 너무 잘해서 약간 TMI인 게 함정….)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 내 한 줄 평도 한번 적어 보련다. '압둘 와합과 친구가 되고 싶다.'

김혜진 교사와 그의 친구 압둘 와합 사무국장을 만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이해해요. 저도 편견이 있었으니까"

- 선생님이 책에서 솔직한 감정을 잘 표현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쓰셨나요.

혜진 /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차오르면 책을 낸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누군가 우리 사회에 와합 이야기를 알려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사실 머리말에서도 밝혔지만 누군가 대신 써 주기를 바랐어요. 근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도 안 쓰는 거예요.(웃음) 지금 생각하면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는데 홀린 것처럼(?)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주변에서 말렸으면 금방 접었을 텐데, 다들 '한번 써 봐' 그러더라고요.

또 한 가지는 교사로서의 부담감 같은 건데요. 와합과 헬프시리아 이야기는 인권과 차별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학생들도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제가 헬프시리아 활동을 직접 하고 있으니 오히려 말을 못 하겠는 거예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책을 통해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학생들을 많이 생각하면서 썼어요. 아직 편견이 덜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다른 시선을 가져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요.

사실 저도 편견이 있었으니까요. 저는 그런 사람들도 이해가 가요. 모르니까. 잘 몰라서 오는 두려움이 크니까. 그래서 솔직하게 내 얘기를 하면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저도 부끄럽죠.(웃음) 좀 감추고 싶고 변명하고 싶고 그런 맘이 왜 없었겠어요. 근데 진정성은 통하기 마련이잖아요. 제가 솔직하지 않으면 독자들에게 가닿지 않겠구나 싶었어요. 부끄럽더라도 솔직하게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와합 국장님이 쓰신 부분을 보면서, 시리아에 그렇게 아름다운 환대 문화가 있는지 몰랐어요. 책에서 소개하지 못한 시리아의 자랑거리 하나만 더 이야기해 주세요.

와합 / 한국에서 택배 기사님들이 쓰러졌다는 뉴스를 들으면 참 가슴이 아파요. 저도 지금까지 수백 번 택배를 받아 봤지만, 기사님들 얼굴을 한 번도 못 봤을 정도로 바쁘게 다니시니까요. 시리아에도 택배가 있어요. 한국처럼 발달하지는 않았지만. 시리아에서는 택배 기사가 오면 마치 알고 지냈던 사이처럼 인사도 하고 음료도 주고 이야기도 나눠요. 아무리 바빠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고 따뜻함이 있어요.

제가 다마스쿠스대학에 다녔을 때, 한번은 친구들과 집에서 음식을 주문한 적이 있었어요. 배달원이 음식을 가지고 왔는데 너무 힘들어 보이는 거예요. 들어와 같이 먹자고 했더니 배달원이 사장님 때문에 안 된대요. 그래서 제가 그 가게에 전화를 했어요. 이 사람 힘들어 보여서 밥 좀 먹이고 보내겠다고. 그랬더니 사장님이 "나도 같이 먹으면 안 되냐"고 하더라고요.(웃음) 사장님은 가게 보라고 하고 배달원하고만 같이 먹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음식 배달하러 온 사람과 같이 밥을 먹은 적도 있네요.

혜진 누나가 아까 택시에서 내려서 인터뷰 장소를 못 찾고 헤매고 있었잖아요. (인터뷰를 진행한 4월 3일 토요일에는 서울에 비가 많이 왔다.) 시리아 택시 기사님들은 절대 이렇게 비 오는 날 손님이 길을 못 찾게 내버려 두지 않아요. 꼭 목적지에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고 자리를 떠요. 여성이면 더욱 그렇죠. 그렇다고 한국 문화는 나쁘고 시리아 문화가 좋다는 말은 아니고요. 각각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김혜진 교사는 책을 쓸 때 솔직하게 써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책을 보니 정말 솔직하게 썼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책을 통해 와합 국장님과 가족들이 시리아를 탈출하기 위해 말 그대로 생사를 넘나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그런 무거운 이야기를 대신 쓰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책을 쓰기 위해 내용을 복기하고 정리하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혜진 / 그 부분이 책의 핵심이었어요. 와합의 가족들이 어떻게 시리아를 빠져나와서 정착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난민이 된 건지…. 분량이 좀 줄어든 면도 있죠. 가족들이 시리아를 빠져나오기 위해 계속 시도하고 실패하고 반복된 일이 많아서요. 독자들을 위해 많이 잘라내고 압축했어요. 와합과 가족들은 실제로는 책 내용보다 더 힘든 경험을 한 거죠.

와합과 저의 합이 잘 맞은 것 같아요. 제가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닌데 어떤 장면에 대한 기억은 또렷이 남아 있어요. 다행히 와합이 가족들 생사와 안부를 실시간으로 전했던 그때 기억이 선명하더라고요. 와합은 기록을 잘해 놨어요. 긴박한 상황에서도 페이스북이나 채팅방에 당시 상황을 잘 정리해 놓았더라고요.

그래도 벌써 몇 년 전 일이니 한계가 있잖아요. 그렇다고 제 추측을 더하거나 그때 분위기를 지어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런 부분은 와합에게 계속 물어봤죠. 지금 생각해도 미안해요. 그때 기억을 되살려야 했으니…. 그래도 와합은 항상 성실하게 답해 줬어요.

아무래도 본인이 직접 쓰는 것보다는 못하겠죠. 그런데 이렇게 한 다리 건너서 쓰는 게 장점이 될 수도 있겠더라고요. 와합이 자기 이야기를 썼다면 더 어둡고 무거운 내용이 됐을 거예요. 저와 같은 입문자(?)들은 이렇게 한 다리 건넌 내용에 좀 더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와합 / 정말 힘들었어요. 좋지 않은 사건이 있었던 날은 긴장되고 불안하고 잠도 못 잘 만큼 걱정했으니까. 한 사건을 떠올리면 다른 사건이 자동으로 연결돼서 떠오르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해야 하는 날에는 우울하고 힘들었죠. 사실 이 얘기는 혜진 누나한테도 안 했는데…. 한번은 누나와 이야기하러 가는 길에 너무 힘들어서 '이제 앞으로 그만 물어봐'라고 말하려고 한 적도 있었어요. '오늘은 꼭 이 말을 하자'고 다짐하고 가서, 하지 못하고 돌아오고 그랬죠. '시리아를 위해, 독자들을 위해 참자'고 생각하며 버텼어요.

그리고 문제가…(웃음) 처음에는 3~4개월 안에 끝날 줄 알았는데, 출간까지 2~3년이 걸린 거예요.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싶어서 누나한테 계속 졸랐어요. 책 언제 끝나냐고.(웃음) 누나가 다른 일정이 있다고 하면 '근데 누나 책은 안 써?'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어요.(웃음)

혜진 / 다 끝난 후에 와합이 제가 원고 썼던 컴퓨터가 있는 방을 가리키면서 "저 좁은 데 끌려가서 정신적 고문을 당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이제 다 끝났다고 어찌나 좋아하던지.

와합 / 거기 들어가서 누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 너무 힘들었어요. 들어가면 저는 아이처럼 문만 쳐다봤어요. 거실에 있는 혜진 누나 동생한테 자꾸 말 걸고.(웃음) 탈출하고 싶었어요.

"난 기독교인인데 기도해도 돼요?"

- 책을 보니 김혜진 선생님은 교회를 다니시는 것 같더라고요. 개신교인이기 때문에 와합에 대한 편견이 더 있지는 않았나요.

혜진 / …없다고 말 못하죠. 책에 못 썼을 뿐이죠. 그런 일도 있었어요. 제가 헬프시리아 활동을 한다는 걸 알게 된 주변 목사님들이 '혜진이가 이상한 일을 하더라'고 말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이야기가 들려오면 머리가 아프고 그날 밤은 잠도 못 잤어요.

쓰면서도 겁이 났어요.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정말 기도 많이 하면서 썼어요.(웃음) 그래도 한 가지 위로가 됐던 게. 2018년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들어왔을 때 사회적으로 분위기가 험악했잖아요. 그때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어떻게 난민을 환대할 것인지 강의를 열더라고요. 우리 교회는 신뢰할 수 있게 됐죠.

흥미롭게도 와합의 친구들이나 헬프시리아 활동하는 분들 중 개신교인이 정말 많아요. 이슬람이나 난민을 반대하는 사람 중에도 개신교인이 많겠지만, 그들을 환대하자는 데 앞장서는 사람 중에도 개신교인이 많은 거죠.

와합 / 저는 가끔 힘들 때 페이스북에 기도해 달라고 써요. 저는 기도의 힘을 믿어요. 하느님이 어떤 기도를 받아 주실지는 모르죠. 그래서 더 여러 사람의 기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번은 터키에서 정말 힘든 날이 있었는데, 그때 제 페이스북에 달린 댓글을 보고 너무 웃겼어요. 직접적으로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제 글을 보고 '난 기독교인인데 기도해도 돼요?'라고 댓글을 쓴 거예요. 주변 상황은 심각했는데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더라고요. 일단 너무 감사했고요. 종교가 달라도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들어주실 거라 생각해요.

- 혹시 그럼 와합 국장님을 개신교로 전도하려고 하는 분들은 없었나요?

와합 / 있었어요. 저뿐 아니라 헬프시리아를 도와준다고 하면서 결국 난민들을 전도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었죠. 저는 그런 방식은 정말 아니라고 봐요. 난민은 그 자체로 힘든 사람들이고 약자일 수밖에 없어요. 도움을 준다는 이유로 다른 종교를 강요하는 건 '새로운 전쟁'이라고 생각해요. 전쟁을 피해 난민이 됐는데 또 다른 전쟁을 하게 하면 안 되죠. 난민들의 존엄성을 지켜 줘야 해요.

혜진 누나도 가끔 나에게 자기 교회 오라고 해요.(웃음) 누나와 저의 관계에서는 괜찮죠. 우리는 친구로서 동등한 관계니까. 제가 거절할 자유가 있고, 거절하더라도 누나와 저의 관계가 나빠지지 않거든요. 하지만 난민과 도움을 주는 사람의 관계는 갑을 관계가 되기 쉽잖아요. 그런 관계에서 전도를 시도하는 건 난민을 이용하는 거라고 봐요.

와합 국장은 이야기보따리 같았다.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와합 국장은 이야기보따리 같았다.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세계적으로 코로나 상황이라 헬프시리아 구호 활동도 어려울 것 같은데요. 특히 예멘 난민 사건 이후로 후원금도 많이 줄었다고 들었어요.

혜진 / 코로나 때문에 작년부터는 구호를 못 하고 있어요. 어쩌면 그래서 더 책 쓰는 데 매진했던 것 같아요. 책을 내니까 강연이 들어오기도 하더라고요. 당분간 난민들에게 직접 갈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알려야겠다 싶어요.

와합 / 예멘 난민 사건 때 헬프시리아 후원을 끊는 분들도 있었어요. 제가 예멘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발언을 했더니, 헬프시리아가 왜 예멘 난민에 신경을 쓰느냐는 것이었죠. 몇몇 분은 난민을 돕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들이 한국에 들어오는 건 원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최근에는 전반적으로 코로나 때문에 경제적으로 힘들어져서 후원이 또 줄었죠.

그런데 코로나 상황이라 난민들은 더 도움이 필요한 게 현실이에요. 난민 캠프는 격리고 뭐고 개인이 조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코로나가 한번 돌면 난민 캠프 전체가 위험하죠. 주변국들도 도리가 없으니 난민 캠프 전체를 격리해 버리고요. 그간 제 여권이나 코로나 문제가 있었지만 사실 후원금이 없어서 구호 활동을 못 간 게 커요.

- 마지막으로 책 홍보 시간입니다. <내 친구 압둘 와합을 소개합니다>, 어떤 사람이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어떤 걸 느끼길 바라시는지.

혜진 / 모르니까 두려운 거잖아요. 모르니까 선입견이 있는 거고요. 난민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이 읽어 보셨으면 좋겠어요.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사회가 '다름'을 잘 인정하지 못한다는 점이 좀 아쉬워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름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생각이 바뀌지 않을 수도 있지요. 저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은 못해요. 그저 제가 경험한 걸 풀어놓은 것뿐입니다. 판단은 독자 여러분이 해 주시면 좋겠어요.

와합 / 많이 팔렸으면 좋겠어요.(웃음) 이 책은 저의 이야기이지만, 누구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어요. 반가운 내용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책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죠. 부디 독자분들이 이 책을 읽고 평화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한 가지 더. 혜진 누나가 저를 보는 것처럼 저를 봐 주셨으면 해요. 아랍인, 시리아인, 무슬림… 이들은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과 비슷한 사람이에요. 사람을 사람으로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무 타이틀 없이, 그냥 '와합'을 봐 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저와 시리아를 위해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종교를 믿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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