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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가장 곤욕을 치르고 있는 곳이 종교 단체다. 신천지 집회를 통해 코로나19가 확산할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 전광훈 목사를 중심으로 한 광화문 집회와 사랑제일교회를 통해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개신교계가 더욱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 달라'는 질병관리본부 권고에 따라 모임이나 대면 접촉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비대면 사회에서 더욱 치명적인 곳이 종교계다. 면벽 수행이라도 하지 않는 한, 종교 행위에서 중요한 요소가 모임을 통한 친교다. 교회라는 말 자체가 라틴어로 '회중'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대중 집회를 열 수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종교계를 곤란하게 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필 코로나19 사태 확산의 진원지로 종교 집회가 지목돼 호된 비난을 받게 되자, 각 종단에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종교 집회를 중단하게 됐다.

한국 천주교회는 창립 236년 만에 처음으로 미사를 전면 중단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고, 대한불교조계종도 전국 사찰의 법회를 중단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책임으로 눈총을 받는 개신교계 역시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온라인 비대면 예배로 대체하고 있지만, 일부 교회에서 대면 예배를 고집해 지자체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종교계 집회 중단 조치는 코로나19가 호전될 때까지 이어질 듯하다.

'사회적 거리 두기'. 지난 5월 5일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러 온 신자들이 성전에 입장하기 위해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제공 정중규
'사회적 거리 두기'. 지난 5월 5일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러 온 신자들이 성전에 입장하기 위해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제공 정중규
표층 종교에서
심층 종교로 나아가야

비대면 시대, 종교의 본령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성당의 미사, 교회당의 예배 같은 공적 전례가 거의 멈춘 상황에서, 신앙생활을 그저 종교 집회에 모이는 것으로만 여겼던 전통적 신앙관을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수는 없다 – 기독교 뒤집어 읽기>(현암사) 저자인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는 종교를 두 가지로 나눈다. 표층 종교화 심층 종교. 표층 종교는 자기 육신의 안녕과 무조건적 믿음을 중요시하고 신을 초월적 존재로만 보기에 자기 밖의 신을 찾는다. 하지만 심층 종교는 새로운 나로 태어남과 깨달음을 중요시하고 범재신론 입장에서 신을 초월이자 내재적 존재로 보기에 신을 찾는 길이 곧 참된 나를 찾는 게 된다.

심층 종교는 지금의 나를 부정하고 죽여서 더 큰 나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는다. 교리와 율법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문자적인 '믿음'을 강조하는 표층 종교와 달리,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깨면서 의식이 변화하고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얻는 '깨달음'을 강조한다. 오 교수는 "우리나라 종교인 중 95% 정도가 표층 단계에 있다"면서 "표층도 필요하지만, 심층으로 가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교회는 성전만이 아닌 하느님 백성,
신앙은 종교 예식만이 아닌 삶 자체

온택트(ontact)이든 언택트(untact)이든, 대면 집회를 할 수 없게 하는 시대적 상황이 대중 집회를 신앙 활동의 중심에 세웠던 종교에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성경에 보면 구약시대에도 신앙 행태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예언서들에서 그러하다.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생활이 종교적 제식에만 치우쳐 형식주의 매너리즘에 빠져들자, 이사야·아모스·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들이 나서서 기복주의 신앙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축의 시대'를 연 예언자 이사야와 예레미야. 마르크 샤갈 작품. 사진 제공 정중규
'축의 시대'를 연 예언자 이사야와 예레미야. 마르크 샤갈 작품. 사진 제공 정중규

이사야 예언자는 야훼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 너희가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나는 너희 앞에서 내 눈을 가려 버리리라.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너희의 손은 피로 가득하다.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사 1:13-17)."

아모스 예언자도 외친다.

"나는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배척한다. 너희의 그 거룩한 집회를 반길 수 없다.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과 곡식 제물을 바친다 하여도 받지 않고 살진 짐승들을 바치는 너희의 그 친교 제물도 거들떠보지 않으리라. 너희의 시끄러운 노래를 내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희의 수금 소리도 나는 듣지 못하겠다. 다만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암 5:21-24)."

예레미야 예언자도 외친다.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쳐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살게 하겠다. '이는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이다!' 하는 거짓된 말을 믿지 마라. 너희가 참으로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치고 이웃끼리 서로 올바른 일을 실천한다면, 너희가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억누르지 않고 무죄한 이들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않으며 다른 신들을 따라가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는다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예로부터 영원히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땅에 살게 하겠다(렘 7:3-7)."

축의 시대,
기존 세계관 붕괴로 주어진
깨달음의 뉴노멀 시대

교회는 건축물인 성전만이 아니고 하느님 백성이고, 신앙생활은 종교적 제식만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는 외침이다. 기원전 8세기부터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예언자들 주도하에 일기 시작한 이런 깨달음은, 그 후 2000년간 인류 정신에 자양분이 될 황금률을 만든 고등 종교와 고전 철학이 탄생했던 '축의 시대(Axial Age)'를 여는 신호탄이었다.

인디아에서는 붓다에 의해 불교가 창건되고, 그리스에서는 고대 철학 시대가 열리고, 중국에서도 제자백가 시대가 진행된다. 그리고 '축의 시대'의 마지막 열매, 그리스도교의 창시자 예수는 이런 예언자의 계보에 속한다.

깨달음의 시대인 '축의 시대' 주역 4대 성현. 사진 제공 정중규
깨달음의 시대인 '축의 시대' 주역 4대 성현. 사진 제공 정중규

2000년 전 세계 각지에서 꽃피웠던 고대 문명마다 강타했던, 기존 원시적 세계관 붕괴에 이어 주어진 깨달음의 뉴노멀이었다. 문명 발달과 함께 급격하게 진행된 도시화와 인구 대폭발 현상은 기존의 경제·정치·문화·사회·윤리·도덕 패러다임을 전혀 쓸모없게 만들었다. 뉴노멀이 요구된 것이다. '축의 시대'는 그러한 고민에 대한 응답으로 태어난 문명의 꽃이요 열매였다.

이제 다시 고민할 때가 되었다. 종교의 본령에 대해 근본적으로 검토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시기이다. 종교계에서 이미 그런 각성이 일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시기를 더욱 앞당기고 있을 뿐이다.

종교 위기 시대,
종교 본령 찾도록 해야

종교가 사회를 걱정해야 하는데,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다. 각 종교에서 주장하는 종교인 수를 더하면 총인구수보다 더 많다는 종교 백화점 국가, 다양한 종교가 전투적 포교 활동을 펼치며 경쟁하는 사회, 하지만 종교에 대한 매력은 갈수록 떨어지는 것 같다. 2015년 통계에 의하면, 본인이 무종교인이라 답한 경우가 전체 인구의 56.1%이다. 무종교 국가, 이것이 대한민국 종교계의 실상이다.

종교 위기의 시대에 새로운 깨달음,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 지난 2000년 동안이 종교적 천재인 고등 종교 창시자들의 깨달음을 단순히 추종했던 시대, 본회퍼가 말한 '값싼 믿음'의 시대였다면, 이제부터는 개개인과 대중 스스로가 깨우칠 때다. 어쩌면 인류 사회에 다시 올 '축의 시대'가 이렇게 준비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7년 12월 28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불교·개신교·천주교 종교개혁 선언문 선포 및 기자회견'에서 각 종단의 쇄신을 바라는 신도 대표들이 종교개혁 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앞줄 맨 오른쪽이 필자). 사진 제공 정중규
2017년 12월 28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불교·개신교·천주교 종교개혁 선언문 선포 및 기자회견'에서 각 종단의 쇄신을 바라는 신도 대표들이 종교개혁 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앞줄 맨 오른쪽이 필자). 사진 제공 정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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