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성폭력은 인류의 오래된 범죄다. 구약성서에도 성폭력 사건이 여럿 나온다. 그러나 교회가 이를 성폭력 관점에서 해석한 경우는 드물다. 야곱의 딸 디나가 강간당한 사건만 봐도 그렇다. 디나가 가나안 문화, 즉 '세상 것'에 관심을 가져서 발생한 일이라며 사건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설교가 익숙하다.

<이런 악한 일을 내게 행하지 말라>(동연)는 구약성서에서 나타난 성폭력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살펴본다. 한국구약학회(배정훈 회장) 구약신학 선집 1호다. 구약성서를 연구하는 여성 신학자 박유미·박혜경·유연희·이영미·이은애·이일례·임효명·채은하가 각 장을 썼다. 그동안 가해자 혹은 남성 중심 시각에서 다룬 성폭력 사건을 여성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해석했다.

저자들은 일관되게 구약시대 성폭력 역시 성 문제가 아닌 권력 차이에서 오는 폭력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박유미 교수(안양대)는 '성폭행, 개인의 문제인가, 사회적 문제인가' 챕터에서, 성폭력이 공동체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관찰하며 성폭력이 가부장제 사회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설명한다.

박유미 교수는 개인의 성폭행 사건이 공동체 간 전쟁으로 번지는 원인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①가해자의 사과나 반성이 없음 ②성폭행 사건 후 가해자 혹은 남성 보호자 중심의 일 처리 ③피해자 보호가 아닌 남성 보호자의 사적 복수와 이익을 위해 움직임 ④남성 보호자들의 과도한 복수 ⑤사건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지도자의 부재다.

구약시대 특징을 지금 한국교회에 대입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성폭력 사건이 교회 분쟁의 불씨가 된 사례가 많다. 피해자가 성폭력을 고발하면 ①가해자는 사과 없이 버틴다 ②피해자는 사라지고 평소 가해자를 싫어하는 이가 보호자로 나선다 ③성폭력 사건 해결은 뒷전이고 가해자를 궁지에 몰기 위해 움직인다 ④가해자를 내쫓는 데만 골몰한다 ⑤노회·교단은 상황을 알면서도 방치한다.

교회 성폭력이 이런 방향으로 진행되면 공동체는 파국을 맞는다. 그리고 파국 원인으로 다시 피해자를 지목한다. "너만 가만히 있었으면"이라는 말로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고, 공동체가 내포한 구조적 문제는 돌아보지 못한다.

<이런 악한 일을 내게 행하지 말라> / 박유미 외 7인 지음 / 동연 펴냄 / 240쪽 / 1만 5000원.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런 악한 일을 내게 행하지 말라 - 구약성서와 성폭력 그리고 권력> / 박유미 외 7인 지음 / 동연 펴냄 / 240쪽 / 1만 5000원.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은애 교수(이화여대)는 '다말과 권력형 성폭력'(삼하 13장)에서, 다윗의 딸 다말을 왕궁 내 가족 성폭력의 생존자로 조명한다. 이복 오빠인 암논은 왕궁 내 남성들에게 도움을 받아 다말을 성폭행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이후 다말이 울부짖으며 이 사건을 고발하지만, 다윗을 비롯한 공동체의 남성은 모두 침묵한다.

왕궁 내 모든 남성은 암논이 다말을 강간할 수 있게 돕거나, 강간한 사실을 알면서도 가족 관계라는 이유로 침묵을 강요한다. 이은애 교수는 "남성이며 왕족인 그들이 가진 권력은 그 범죄를 가능하게 했고 그 범죄를 덮었으며 그 범죄 위에 자신들이 세운 제도와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었다"고 썼다.

성폭력은 권력의 문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물론 교회도 이 부분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전통적 교회에서는 이 본문들을 다루더라도 '절제하지 못한 음욕이 낳은 불행', '음욕은 혹독한 환난의 원인' 정도로 설명해 왔다. 하지만 이는 성폭력의 속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여성 신학자들은 이 부분에서 단호하다.

"다말에 대한 성폭력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다른 권력형 성폭력 사건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다윗이 자신의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것(삼하 11장) 그리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아버지의 후궁 10명과 동침하는 사건은 단지 개인의 성적·도덕적 일탈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명백히 권력형 성폭력으로, 권력을 이용하고 권력을 얻고 확고히 하기 위해서 힘을 가진 남자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억압적이고 강제적인 폭력들인 것이다." (143쪽)

성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성폭력이 권력 차이에서 오는 폭력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교회 성폭력 역시 마찬가지다. 목회자 성폭력은 구조의 문제라기보다 개인 일탈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이런 악한 일을 내게 행하지 말라>를 정독해 보기를 바란다. 수천 년 전부터 반복돼 온 실수를 지금 우리가 답습하면 안 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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