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최근 북한 이탈 주민(탈북자)을 주축으로 한 북한 인권 단체의 무분별한 대북 전단 살포가 남북 관계 불안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북한 인접 마을 주민들이 극구 반대하는데도 대북 전단 살포를 고집하며 주민들과 대치하고 으름장 놓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탈북자 단체의 엇나간 행보를 볼 때마다 링크(Liberty in North Korea·LiNK) 한국 대표 박석길 지부장(36)은 안타까움이 앞선다고 했다. 박 지부장은 "남한에 사는 탈북자 3만 3000명이 모두 이렇게 정치적이지는 않은데,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소수 탈북자가 과잉 대표되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일로 탈북자를 향한 국내 시각이 다시 경직될까 우려했다.

미국에 본부를 둔 북한 인권 운동 단체 링크는 '사람이 세상을 바꿉니다. 북한 사람이 북한을 바꿉니다'라는 모토로 활동하는 국제 비영리단체다. 북한 탈출 난민이 무사히 한국·미국에 도착할 수 있게 돕고, 한국에 온 탈북자가 더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한다. 한국계 영국인 박석길 지부장은 링크 활동을 통해 영한 관계를 증진시킨 공로로 2018년 대영제국 훈장(Member of British Empire)을 받았다.

박석길 지부장이 대표로 있는 링크(LiNK)는 '사람이 세상을 바꿉니다. 북한 사람이 북한을 바꿉니다'라는 모토로 활동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박석길 지부장이 대표로 있는 링크(LiNK)는 '사람이 세상을 바꿉니다. 북한 사람이 북한을 바꿉니다'라는 모토로 활동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링크의 도움을 받아 한국과 미국에 정착한 사람만 1200여 명. 이들과 함께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박석길 지부장을 6월 17일 링크 한국 지부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 나눴다. 박석길 지부장은 북한을 보는 눈이 '분단' 아니면 '통일'로 양분된 상황에서는 북한 '사람'을 향한 상상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 90년대생과 비슷한
북한 '장마당 세대' 주목
개개인 이야기 다큐로 만들기도

링크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북한을 떠난 난민이 한국·미국으로 안전하게 이동하도록 돕는 일이다. 조건을 따지거나 비용을 받지 않고 탈북자를 돕지만, 한 가지 원칙은 있다. 북에서 살고 있는 사람을 떠나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 단순히 탈북자 이동을 돕는 단체는 많다. 링크는 한국에 온 탈북자를 지원하는 일도 한다. 탈북자들은 한국의 모든 것이 낯설다. 휴대폰 개통, 대중교통 이용 등 일상생활이 새로운 과제다. 링크는 이들이 첫 단추를 잘 꿸 수 있도록 실질적으로 돕고 있다.

박석길 지부장은 주로 젊은 탈북자들과 교류한다. 특히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장마당 세대'를 주목한다. 이들은 한국 사람들이 흔히 그리는 탈북자 이미지와 조금 다르다.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던 '고난의 행군' 이후 태어난 장마당 세대는, 배급·의무교육 등 국가 혜택을 이전처럼 받지 못했다. 스스로 살길을 찾아 시장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웠다. 이 때문에 국가·이념을 우선하기보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이들은 한국 1990년대생과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신인류'로 통한다. 시장경제를 경험했고, 한국 대중문화를 접한 비율도 높으며 한국 사회에 정착하려는 의욕도 높다. 박 지부장은 이들 개개인의 이야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링크가 2017년 다큐멘터리 '장마당 세대'를 제작한 이유다. 52분짜리 다큐에는 북한에서 온 20~30대 청년 8명의 이야기가 담겼다.

"우리가 친구를 사귈 때 그 사람이 어디 지역에서 왔는지부터 보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유독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 같아요. 북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경직되고 수동적이거나, 항상 힘든 삶을 산 것만은 아니에요. 슬픈 가운데서도 위트가 있고, 삶에서 주도권을 갖고 뭔가를 이루려는 사람들도 있어요.

 

다큐 '장마당 세대'에 나온 이들이 제 친구들인데요. 직접 만나 보니까 우리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탈북자라고 해서 늘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며 슬퍼하는 것도, 항상 통일 같은 무거운 주제만 생각하며 진지하기만 한 것도 아니에요. 개개인이 좋아하는 것도 다 다르고 꿈도 야망의 크기도 다르죠. 링크는 이런 탈북자 개개인이 지닌 이야기를 발굴해 널리 알리는 일도 합니다."

링크는 2017년 북한 출신 20~30대 청년 8명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장마당 세대'를 제작했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링크는 2017년 북한 출신 20~30대 청년 8명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장마당 세대'를 제작했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링크의 도움을 받은 이들 중에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북한 음식 클래스를 운영하는 사람도 있고, 장마당 경험을 살려 사업을 시작한 이도 있다. 박석길 지부장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정권하에 태어난 이들에게도 삶을 주도할 충분한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이 한국에 잘 적응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북한을 변화시키는 길이라고 믿는다.

"한국에 자리 잡은 탈북자 중 상당수가 북한 가족에게 생활비를 보냅니다. 어떤 사람은 일 시작하자마자 송금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제는 스마트폰으로도 북에 돈을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요. 크게 지체되는 일만 없으면 남한에서 계좌 이체를 클릭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북에 있는 가족이 그 돈을 현금으로 받는 거죠. 남한에 있는 탈북자가 북한에 돈을 송금하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탈북자는 북한을 변화시킬 새로운 동력입니다."

"중국 동포 혐오는 탈북자 혐오 '미리 보기'
집단 향한 색안경 벗어야
사회적 분단도 극복 가능"

박석길 지부장은 현재 한국 사회의 중국 동포 혐오를 보며 위기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에서 '한민족' 같은 개념이 약화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데,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 미지의 존재라는 이유로 혐오가 발생하는 데 문제의식을 느낀다고 했다.

"현재 한국 대중문화에서 중국 동포를 소비하는 방식은 굉장히 위험해요. 중국 동포를 집단화해서 '이들은 다 위험한 존재'라고 얘기하죠. 댓글이나 길에서도 중국 동포를 혐오하는 표현들이 튀어나옵니다. 저는 아무리 누군가를 혐오하는 마음을 가진다고 해도 그걸 겉으로 표현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고 보는데요. 한국 사회 곳곳에서 중국 동포 혐오가 작동하는 것을 보면 우려스럽습니다."

혐오의 화살이 중국 동포에서 탈북자로 옮겨지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는 이런 현상이 탈북자를 향한 혐오의 '미리 보기' 같다고 했다.

"북한을 막 떠나 중국에 발 들인 북한 주민들은 가장 먼저 중국 동포를 만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때 중국 동포들이 '한국에 가 봐야 사람들이 우릴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해요. 저는 그 말 들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탈북자는 한국을 택하거든요. 저는 한국 사회가 탈북자들을 조금만 더 '사람'으로 바라보고 개개인 특성에 주목해 주면 좋겠어요."

링크는 남·북한 청년이 만나 서로 이해하고 알아갈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사진 제공 박석길
링크는 남·북한 청년이 만나 서로 이해하고 알아갈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사진 제공 박석길

링크는 탈북자들의 '앨라이'(ally, 지지자)가 되자는 운동을 전개한다. 자유를 찾아 한국에 온 것만으로 이미 큰일을 해낸 탈북자를 응원하고, 그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해 향후 북한을 변화시킬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게 주된 내용이다.

박석길 대표는 링크가 바라는 건 국가 차원의 통일은 아니라고 했다. '분단' 아니면 '통일'이라는 이분법 프레임에서 벗어나, 지금 곁에 와 있는 '사람'에게 주목할 때 북한을 향한 새로운 상상력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링크가 주목하는 건 체제 통일은 아닙니다. 지금 탈북자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나중에 혹시 통일을 이룰지 몰라도 사회 통합은 힘들어요. 큰 틀에서는 통일을 이룬다 할지라도 그 안을 구성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분단은 계속되는 거죠. 그렇기에 우리는 북한 사람들 이야기에 더 주목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더 널리 알려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한반도에서 북한 문제는 사라지지 않아요. 우리 세대에는 북한과 교류가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북한과의 협력·왕래·소통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로 발생할 텐데요. 그때를 대비하자는 거죠. 지금 한국에 있는 탈북자들의 삶과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갖고 서로에 대한 벽을 허물자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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