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13년 전 책 <88만 원 세대>

종교 사기 집단이라 할 수 있는 신천지와 n번방 사건을 이어 주는 가슴 아픈 키워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청년'이다. 언론 보도로 신천지 신도 중 1/3이 '20대'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남성에 의한 여성 성 착취 및 인격 살인 사건인 n번방 사건도 동일 세대(10~20대) 내에서 발생했다. 사회의 가장 그늘진 구석에, 가장 아픈 구석에 '청년'이 있다.

<88만원 세대>는 13년 전 출판되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88만 원은, 당시 비정규직 청년이 받는 월평균 임금을 계산한 금액이다. 이후 '88만 원'은 청년 세대의 빈곤과 상실, 소외를 지칭하는 슬픈 대명사가 되었다. 13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변했을까. 안타깝게도, 청년들이 자조를 담아 만든 '노오력'이라는 말은 "노력하면 된다"는 사회적 기만을 폭로할 뿐이다. 변하지 않는 사회, 착취와 폭력이 내면화한 사회를 살아온 20대를 생각한다면, 어쩌면 이번 사건들은 예견된 일이었다.

1. 20대가 살아가는 무한 경쟁 사회

"IMF 이후 새롭게 형성된 한국 경제의 질서는 매우 가혹하게 변했다. (중략) '죽을 사람은 내버려 두고 일단 살 사람이라도 살자'. 아무리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목놓아 외쳐도 집으로 돌아가면 이 사회는 '살 사람만 우선 살고 보자'는 사회이다."

20대가 된 청년들은 10대를 '극한의 경쟁' 속에서 보낸 사람들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영어 학원을 비롯한 온갖 사교육에 일상을 빼앗겼고, 교복을 입고 나서는 '성적 전쟁'과 '입시 경쟁'의 지옥 같은 삶을 살았다. 닭장 같은 교실과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늦은 밤에야 비로소 교복을 벗는다. 승리의 보상은 소수에게만 주어진다. 절대다수는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는 소모적인 게임을 10년 넘게 해 왔다. 자유가 주어질 것으로 생각했던 20대가 되자, 더 심한 경쟁과 사회적 압박에 처하게 됐다.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잘해서 무조건 앞으로 나가는 것이 승자 독식이라는 게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선생님들도 그렇게 가르친다."

학교에서는 경쟁이라는 것에 '진릿값'을 부여한다. 학교는 학생들이 새로운 판을 짤 수 있도록 창의력을 길러 주지 않고, 전쟁과 같은 경쟁 게임에서 살아남는 5%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현실판 '배틀 그라운드' 하는 법을 알려 주는 것이다.

우리 삶과 사회구조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잠식되어 있고, 이것은 우리 의식구조까지도 지배한다. 우리 학생들이 단 1년이라도 다른 사회에 가서 살아 본다면, 지금 그들의 불행이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텐데….

2. 혹사 사회

이렇게 살아가는 청년들 삶은 당연히 고단할 수밖에 없다. '워라밸'이라는 신조어는 우리 일상과 쉼이 무너졌다는 방증이다. 청년들이 사회에서 역할을 감당하기 전부터 신체적·정서적 탈진을 경험하는 것은 엄청난 사회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아리스토텔레스 경제학>)에 따르면 노예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기간은 3년 정도다. 충분히 조심을 하면 8년까지 사용 가능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밥과 주거를 위해 돈이 너무 많이 들고, 또 병이 나면 8년까지 쓸 수 없으니까 높은 노동 강도를 유지하기도 어렵게 된다. 또 너무 혹사시키면 노예는 몇 달 만에 죽게 된다. 따라서 이런 비용들을 모두 감안해 볼 때 3년 정도의 수명으로 사용하는 것이 최고로 높은 효율이 난다고 이 무명의 그리스 저자는 적고 있다. (중략) 사회제도 혹은 법률의 형태로 개입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면 이렇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경제학>이 소개하는 노예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법이다. 너무 혹사시키면 일찍 죽어 버리고, 그렇다고 오래 데리고 있으면 유지비가 너무 들어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3년 일하다 죽을 만큼 부리다 버리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이는 고대 노예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청년들은 기성세대보다 경제적으로 매우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다. 이 같은 현실은 '비정규직 청년의 노예화'이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은 학자금과 주거비 등 부채를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때문에, 금수저를 제외하고는 아득바득 일해야 한다. 이렇게 3년을 일하면 거의 탈진 상태에 놓이고 이직을 고민한다. 사실 이것도 사정이 나을 때 하는 말이다. 근무 조건이 좋지 않은 비정규직 청년들, 특히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지원받기 어려운 청년들은 앞서 말한 것처럼 '노예'처럼 일할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혹사 사회'이다.

3. 신천지 청년들: 다단계 구조로 본 신천지

우석훈 교수는 <88만 원 세대>에서 불법 다단계 조직이 조직폭력배보다 훨씬 악질이라고 말한다. 조직폭력배들은 '외부'에서 불법적으로 착취한 재화를 내부 회원에게 공유하지만, 다단계는 '없는 것들'에 대한 '내부 착취'를 자행하기 때문이다.

"불법 다단계는 상층부에게 혜택이 집중되고, 피해는 아래 단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20대일수록 불리하게 된다."

코로나19로 신천지의 범죄적 행위와 신천지 신도 중 1/3이 20대라는 사실에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큰 충격을 받았다. 우석훈 교수 관점에서 볼 때, 신천지와 다단계는 사회·경제구조상 같은 위치에 있다. 아래 인용은 다단계에 관한 내용인데, 신천지에 대한 것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우리나라에서 아무런 진입 장벽 없이 20대를 환영하고 무료로 강의도 시켜주고, 집단 합숙도 시켜 주는 경제조직은 불법 다단계밖에 없다. (중략) 이런 사회에서 경쟁에 패한 20대를 환영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곳은 불법 다단계밖에 없다."

사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한 대다수 청년들은 좌절감을 느끼게 되고, 자아 효능감을 상실하게 된다.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감, 패배의식, 소외감 등 부정적 정서를 느낀다. 청년들은 자아를 존중받을 수 있는, 자기 효능감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을 찾게 되고, 자신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신천지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문턱이 높아 온갖 경쟁을 해도 실패하는 사회와 달리 신천지는 청년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물론 그들이 문턱을 낮추고 청년들을 환영하는 것은 그저 착취하기 위한 목적에 있다. 여기에 빠진 청년들은 시간도 돈도 건강도 젊음도 모두 신천지라는 불법 다단계 조직에 바친다.

4. n번방은 사회적으로 예견된 일인가

구조화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은 경쟁의 폭력성을 '내면화'한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타인의 고통을 묵인한다는 것이다. 곧, 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라면 누가 희생되든 상관없다는 것이다.

영화 '배틀 로얄'을 보면, 작중 청년들은 죽이지 않으면 죽게 되는 경쟁 설정 속에서 점점 '폭력'을 합리화·내면화해 간다. 청년들이 살아가는 오늘 우리 사회는 '배틀 로얄'이 실제로 작동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청년들은 비경제적 가치들(우정·사랑·존중 등)을 잃어버리고 비인간화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n번방 사건'은 이미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아래 인용은 n번방 사건에 대한 경고처럼 들리기도 한다.

"지금 한국이 갇혀 있는 이 승자 독식 게임은 우리를 영광과 번영의 미래보다는 파시즘과 혐오가 지배하고, 조금이라도 힘이 약하고 조금이라도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 가차 없이 정신적, 언어적 그리고 경제적 폭력을 가하게 될 아주 고통스러운 구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여 년간 구조적인 폭력과 착취를 경험해 온 청년들은 폭력과 착취를 세대 내 더 취약한 사람(10대, 여성)에게 행사하여 개미지옥의 왕이 되려 한다. n번방 사건은 우리의 폭력적이고 비인격적인 사회구조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우리 청년들의 윤리 의식은 무너졌고, 나이 어린 여성들은 폭력과 착취의 표적이 되어 버렸다.

물론 n번방 사건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하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범죄자이며 강하게 처벌받아야 한다. 다만, 이 사건을 경제·사회적 구조로 보지 않고, 가해자 개인(집단)의 내적 요인에 의한 범죄로만 보아서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입체적 접근도 필요하다.

5. Youths support youths?

어떻게 보면 청년들은 구조화된 경쟁의 희생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희생자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다른 사회적 요인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한다. 주입식 교육과 입시 경쟁으로 성찰과 사유의 능력을 거세당한 젊은 세대는 실패의 원인이 사회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20대의 정신 건강은 이미 위험 수위에 달해 있을 것이다. (중략) 공동체가 완전히 해체되지 않은 상태에서 살아온 앞 세대들은 정신세계의 고통을 해소할 문화적 장치들이 있었지만, 지금의 20대는 그야말로 개별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상태다."

안타까운 것은 젊은 세대가 사회 구조적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결집된 단일체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386세대는 젊은 세대보다 혈연·학연·지연으로 훨씬 강하게 묶여 있다. 다양한 사회적·정치적 채널을 통해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고 있다. 하지만 20대는 남과 여로, 좌와 우로, 부와 빈으로 나뉘어 있다. 어떤 세대보다 파편화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들 주장을 사회에 관철하거나 세대적 연합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각개전투만 하고 있다.

"토플과 GRE 점수만으로 구조적 모순이 해결되지 않고, 개인의 인생도 개선되지 않는다."

영화 '엑시트'는 클라이밍이나 드론처럼 쓸모없어 보이는 취미를 가진 청년들이 협력하여 도시 내 유독가스로부터 생존하는 이야기이다. 현실과 영화의 거리는 너무 멀다.

청년들은 결집하여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청년이 청년을 지지하지 않으면 청년 개개인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청년들은 기업에는 마케팅 대상으로, 정치인들에게는 '표 시장' 고객으로 남게 될 것이다.

6. 교회 청년들은 무엇을 하는가?

한국교회 청년들은 어떨까?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가 가진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교회 내 많은 청년이 신앙을 그저 내밀한 '종교적 정서'로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적 모순을 보지 못하고 신앙과 사회 현실을 연결해 내지 못한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경쟁에서 살아남게 해 주는 '매니저'로 전락했다. 정의와 공의라는 하나님 성품에 기초한 새로운 판을 꿈꾸기보다, 경쟁이라는 지옥 불 가운데에서 덜 뜨거운 곳으로 옮겨 달라고 기도한다. 이런 식으로 '소비되는' 하나님은 늘 경쟁에서 이기게 해 주는 하나님이어야 한다. 신앙은 개인화되어 있고, 하나님은 신자유주의적 자기 경영을 위한 '지니'이다.

우리 세대가 가진 파편성과 개인주의, 성공주의는 교회 청년들에게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때로는 '섭리'라는 미명하에 현실 순응을 정당화한다. 교회 청년들은 물살을 거스르는 연어가 되는 데 실패했다.

나가며: 엑시트

우리나라 청년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수면장애, 우울증과 이로 인한 자살은 20대를 갉아먹는 위험한 바이러스다. 계속해서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 청년들이 이러한 바이러스에 취약하게 된 원인은 바로 우리 사회의 경제적 구조에 있다.

경제적 빈곤은 사회적·관계적 빈곤과 문화적 빈곤으로 이어지고, 이는 정서적 빈곤과 사유의 빈곤으로 이어진다. 청년들은 고립되어 있고, 이들의 윤리 체계는 망가져 있다. 이대로 가면 청년 세대는 재생 불능이 될지도 모른다. 신천지에 더 많은 청년이 몰릴지도 모르고, 제2의 n번방 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영화 '엑시트' 한 장면에 이런 현수막이 펄럭거린다.

'청년을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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