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중원 씨 사망 55일이 됐지만 아직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다. 시신은 냉동차에 실려 광화문 길가에 안치돼 있다. 뉴스앤조이 이찬민

[뉴스앤조이-이찬민 기자]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는 천막이 줄지어 있다. 각자 억울한 사정으로 정부에 책임을 요구하며 노숙 농성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다. 약 한 달 전, 새로 천막이 들어섰다. 한국마사회 경마기수 고 문중원 씨 분향소다. 바로 옆에는 문 씨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가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두 달 가까이 흘렀지만,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일하던 문중원 씨는 2019년 11월 29일, 한국마사회 부조리를 폭로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유서에 "지금까지 힘들어서 나가고 죽어서 나간 사람이 몇 명인데… 더럽고 치사해서 정말 더는 못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2005년 부산경남경마공원 개장 이래 벌써 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덟 살 딸과 다섯 살 아들이 아빠 문중원 씨에게 편지를 썼다. 뉴스앤조이 이찬민

이들 죽음 원인에는 한국마사회의 다단계 하청 고용 체계가 있었다. 마사회는 기수와 말관리사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중간 관리자 '조교사'를 통해 고용해 왔다. 문 씨와 같은 기수나 말관리사는 특수 고용 노동자 신분으로 조교사의 불합리한 대우에 쉽게 노출돼 왔다. 부상 위험에도 경주에 임해야 했고, 부당한 지시도 따라야 했다.

생계도 어려웠다. 기수들은 기승 계약료로 150만 원 남짓 고정 수입을 받고, 나머지 임금은 순위 경쟁에 따라 받았다. 노동계는 다단계 고용 구조와 경쟁 임금 체계가 기수들 간에 생존 경쟁을 부추긴다고 비판해 왔다.

문중원 씨 죽음으로 드러난 부조리에,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이 들고일어났다. 그러나 한국마사회는 "마사회는 경마 주최 기관이고, 경주에 참여하는 마주는 구단주, 조교사는 감독, 기수는 선수의 역할을 하므로, 상호 간 계약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유가족과 시민단체는 2019년 12월 27일 시민대책위원회를 출범했다.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해 오고 있다. 시민대책위는 공기업 한국마사회에 대한 정부 관리·감독 책임을 주장하며, 정부종합청사 앞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매일 촛불 문화제를 열고 있다.

시민 100여 명이 모여 문중원 씨 죽음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며 기도했다. 뉴스앤조이 이찬민

문중원 씨가 떠난 지 55일째인 1월 22일, 문화제를 대신해 향린교회와 정의평화를위한기독인연대, 예수살기,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촛불교회가 기도회를 열었다. 시민 100여 명이 모여 함께 기도했다. 분향소 근처에서 7일째 단식 농성하던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도 참석했다.

전날, 유가족과 시민들이 과천경마장부터 청와대까지 26km를 오체투지로 왔는데 경찰들이 청와대 앞을 막아선 일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날 현장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기도회 시작 전 경찰들이 분향소를 기웃거렸고, 주최 측은 경찰을 향해 "오늘은 방해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기도회는 문중원 씨 아내 오은주 씨의 영상으로 시작했다. 오 씨는 영상에서 "제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널리 알려 죽음의 경주를 멈추게 할 것입니다. 저는 이제 제 남편 문중원만을 위해서 싸우지 않습니다. 마사회가 억울하게 죽음으로 내몬 6명의 기수와 관리사, 우리나라 청년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우겠습니다"라고 했다. 일부 참가자는 오 씨 말을 들으며 숨죽여 울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문중원 씨 가족들이 설날에 새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찬민

기도회에 참석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2020년 전 예수는 낮고 낮은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오셨다. 차별과 배제에 고통받던 이들과 함께했던 예수의 삶이 우리 삶이 돼야 할 것이다. 며칠 뒤면 설날이다. 문중원 열사 가족들이 새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설교한 김희헌 목사는 진상 조사와 재발 방지를 강조했다. 김 목사는 "문중원 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죽음의 일터가 된 직장을 보다 정의로운 곳으로 변화시키고자 했다. 그런데 마사회는 반성도 사과도 진상 조사도 안하고 있다. 그의 육신은 벌써 4주째 차가운 길거리에 멈춰 있다. 책임자를 처벌하고 죽음이 반복되는 구조를 개선하고, 유족들에게도 합당한 보상을 해야한다. 마사회와 감독 기관인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김희헌 목사는 가난하고 낮은 자리에서 역사의 구원과 해방이 시작된다고 했다. 그는 "떨기나무는 불이 붙으면 타 없어지는 연약한 풀이다. 그것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상징한다. 사그라들지 않고 불타오르는 떨기나무를 통해 하느님이 모세에게 계시를 내렸던 것처럼, 장례도 지내지 못하고 부르짖는 오늘 이 자리가 하나님이 주목하는 곳이요, 역사의 불꽃이 타오르는 자리다. 여기서 외치는 소리에 귀 기울일 때, 우리 시대를 향한 하늘의 소리를 듣게 되고,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헌 목사는 마사회와 정부가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앤조이 이찬민

참석자들은 "갑질과 부조리가 만든 사회적 타살, 문중원을 살려 내라", "돈보다 생명, 경쟁보다 공정, 문재인 정부가 책임져라"고 다 같이 외쳤다. 예배가 끝나고 몇몇 참가자는 분향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지지 메시지를 적어 붙이기도 했다.

촛불 문화제는 평일 저녁 7시, 토요일 오후 6시, 일요일과 휴일에는 5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몇몇 시민은 추모와 지지 메시지를 적어 분향소 옆에 붙였다. 뉴스앤조이 이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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