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이집트인 아나스 엘 아살(28)은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벌써 22일째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9월 7일 기준). 아나스는 가림막 하나 없이 건물 그림자와 스펀지 깔개를 의존한 채 매일 농성장을 지킨다. 그는 현재 정당한 난민 심사와 난민 지위 인정을 한국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아나스는 2016년 7월 한국에 입국했다. 곧바로 출입국사무소에 난민 신청을 했지만, 1년 10개월 만에 돌아온 대답은 '난민 불인정'이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집트에서 군사정권에 저항하다 3차례 투옥됐던 그였다. 징역형을 받을 것이 예상돼 가까스로 탈출했는데, 어째서 한국 정부는 자신을 난민으로 볼 수 없다는 걸까. 불인정 결정서를 여러 번 읽어 봤지만 이해할 수 없는 내용 투성이었다.

무기한 단식 농성 중인 아나스를 9월 7일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만났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동조 단식을 하고 있는 이집트 난민 신청자 알델라흐만 자이드(20일째)와 무나(8일째)가 함께 있었다. 모두 힘겨워 보였다. 이틀 전에는 아나스와 무나가 갑자기 의식을 잃어 병원에 긴급 후송되기도 했다. 인터뷰는 짧게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대화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앰뷸런스가 도착해 아나스를 이송해 갔다.

이집트 내 인권 탄압 심각 
대통령 비판하다 구속된 아나스
"대한민국, 법치주의 기대했지만
난민 심사 불성실"

아나스는 공정한 난민 심사를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집트의 지난 몇 년은 한국 현대사와 닮았다. 30년 독재한 호스니 무라바트 대통령은 2011년 3월, '아랍의 봄' 영향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이집트 역사상 첫 민선 대통령 선거에서 모하메드 모르시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모르시 대통령은 1년도 안 돼 지지도를 잃었다. 국민들은 매일같이 거리로 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였고, 그 기회를 당시 군인이었던 엘시시 대장이 놓치지 않았다.

엘시시는 2013년 7월 쿠데타를 일으켜 모르시 대통령을 축출했다. 그는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대통령에 올랐다. 이후 쿠데타에 저항했던 인사들을 탄압하고 집단 사형에 처하는 등 무수한 인권 탄압을 자행했다. 당시 기자였던 아나스는 엘시시 대통령의 인권침해를 비판하며 반정부 활동을 펼쳤다. 세 차례 수감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재판 선고를 앞두고 가까스로 이집트를 탈출했다. 마침 가장 빨리 출국할 수 있는 표가 한국행이었다. 그가 보기에도 한국은 살기 좋은 나라였다. 시민들이 스스로 군부 정권을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쟁취한 나라. 법과 질서가 확립한 사회였다. 게다가 난민법을 보유하고 있다는 소식에, 자신 같은 난민을 보호해 줄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막상 난민 심사 과정을 거치면서 경험했던 한국은 기대와 달랐다. 아나스는 심사관들이 제대로 심사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집트에서 활동했던 증거와 자료를 제출해도 심사관들이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반정부 활동으로 투옥됐던 이력이 분명한데, 심사관들은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심사를 불성실하게 진행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단식 농성을 하는 게 특혜를 원해서가 아니라고 했다. "한국은 난민 협약에 가입하고 난민법을 보유한 나라다. 난민을 보호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법과 원칙을 그대로 이행하라는 것이다." 아나스는 한국의 난민법이 명시하는 난민 자격 심사를 정당하게 받고 싶다며, 이의를 신청한 상태다.

한국에서 득남한 아나스
난민 인정 안 돼 출생신고 불가

아나스의 아들 '무타심'. 아나스는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 미안해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지옥 같은 삶 속에서도 아나스에게 최근 좋은 소식이 있었다. 8월 31일, 부인 제납이 아들을 낳은 것이다. 3.8kg이 넘는 우량아였다.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아나스는 핸드폰을 꺼내 아들 사진을 보여 주었다. 머리숱이 많고 눈이 동글동글한 아이였다.

아빠 미소를 보이던 아나스는 금세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해 아직까지 아들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아들은 서류상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다. 모든 사람은 국적이 있기 마련인데, 우리 아이는 없다. 난민 인정을 받지 않는 한 이 아이의 존재를 법적으로 증명할 방법은 없다."

아나스와 제납은 아이 이름을 '무타심'으로 지었다. '저항'을 뜻한다. 불의한 세상과 싸우며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 아나스는 "무타심이 나중에 자라 기자가 되든 경찰이 되든 어떤 직업을 갖게 될 텐데, 올바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약하고 억울한 이들을 돕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나스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여러 시민단체가 아나스와 동료들을 돕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시민단체 54곳은 9월 7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단식 농성 중인 아나스의 요구를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아나스의 이야기가 조금씩 알려지자, 그를 멸시하는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아나스는 지난달 소셜미디어로 모르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발악하면 할수록 대한민국은 난민법을 폐지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아나스는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다니는데,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가 목발을 부순 일도 있었다.

아나스는 자신과 부인을 받아 주지 않는 한국 정부나, 단식 중인 자신과 동료들을 비웃는 한국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법과 규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억울한 사람이 발생하고 오해하는 이들도 생기는 것 같다"며, 단식 농성은 정부와 다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제도를 고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홀로 거리에 나와 단식 농성을 시작했던 아나스는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난민인권센터,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AP 등 여러 시민 단체가 아나스와 그의 동료들을 돕고 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혹시나 모를 돌발 상황을 막기 위해 정기적으로 이들을 진료하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등 종교 기관도 이들에게 힘을 싣고 있다.

54개 시민단체는 9월 7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아나스의 요구를 들어줄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아나스가 20일 넘도록 단식 농성을 하는 동안 정부는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난민 심사를 공정하게 진행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며 △난민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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