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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최용신의 신앙과 삶이 녹아든 교회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 샘골교회
  • 이근복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8.02.09 13:54

"반월성 황무지 골짜기로/따뜻한 햇볕은 찾아오네/우리의 강습소는 조선의 빛…
오늘은 이 땅에 씨 뿌리고/내일은 이 땅에 향내 뻗쳐/우리의 강습소는 조선의 싹…
황해의 깊은 물 다 마르고/백두산 철봉이 무너져도/우리의 강습소는 영원무궁…"

최용신 선생의 무덤 앞에 서니, '샘골강습소 교가'가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지하철 4호선 상록수역(심훈의 소설 <상록수>에서 따온 역명)에서 가까운 샘골교회와 최용신기념관을 방문한 날, 눈보라가 치더니 금방 파란 하늘이 드러났습니다. 그러자 상록수공원에 있는 소나무들이 더 청청해졌습니다. 교육과 애국 계몽 운동으로 항일운동을 실천했던 최용신 선생의 기개가 느껴졌습니다.

최용신기념관과 샘골교회. 이근복 그림

최용신 선생은 함경남도 덕원군에서 1909년 출생했습니다. 원산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협성여자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입학한 후(2001년 명예 졸업 증서를 받음) 농촌계몽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송죽회'와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지원하던 황애덕 교수에게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최용신 선생은 1931년 YWCA 농촌 지도교사로 수원군 반월면 천곡(샘골)에 파견됐습니다. 당시 샘골은 일제의 극심한 수탈로 절대 빈곤에 처한 농촌이었는데, 샘골교회를 중심으로 일제 감시를 피해 아동교육 강습소를 운영합니다.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 반대로 쉽지 않았지만 간곡한 호소와 진정성과 교육의 실용성으로 마음의 벽이 허물어집니다.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어른들을 위한 야학을 운영했습니다. 쉴 새 없이 가르치자 학생 수가 급증합니다. 이에 샘골 사람들을 설득해 강습소 건축을 시작했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돌과 흙을 나르고 겨울에도 공사를 계속해 1933년 1월에 낙성식을 합니다. 봄에 110명이나 몰려들어 새 교사도 턱없이 비좁았지만 한글·역사·성경 등의 과목에 중점을 두고, 문맹 퇴치와 농업기술은 물론 민족 신앙과 애국심을 고취하는 데 혼신을 다했습니다.

그러다 중도 포기한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고베여자신학교에 입학하나 병이 나서 6개월 만에 귀국합니다. 샘골 사람들의 간청에 샘골로 달려가 아픈 몸으로 수업을 강행했고, 병세가 악화돼 과로와 영양실조로 1935년 1월 26세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그는 "학교가 잘 보이고 종소리가 들리는 곳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사회장을 치를 때 많은 학생과 마을 사람들이 애통해했습니다.

<동아일보>가 1935년 창간 15주년 장편소설을 공모하자, 낙향해서 농촌계몽 운동을 하던 심훈은 최용신 선생에 대한 부음과 업적을 읽고 감동받아, 최용신을 '채영신'으로 바꾸어 <상록수>를 써서 당선됐습니다. 소설 <임꺽정> 저자 벽초 홍명희가 서문을 쓴 책이 발간돼 큰 인기를 얻었고, <성서조선> 주필 김교신 선생은 1939년 최용신의 삶에 감동받고 수원 고등농림학교의 류달영에게 집필을 부탁해 그해 가을 <최용신 소전>을 출판하는데, 모두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최용신 선생의 얼이 살아 숨 쉬는 샘골교회는 1907년에 세워진 안산의 어머니 교회입니다. 1996년에는 반월 신도시 계획으로 교회 일대가 강제 철거당할 위기에 교인들이 온몸으로 싸운 결과, 교회와 최용신 선생의 유적지를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샘골교회는 1998년 샘골강습소 터전에 지금의 예배당을 건축했습니다.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샘골교회에는 최용신 선생의 신앙과 삶을 담으려는 흔적이 있습니다. 예배당에는 기미 독립 선업문이 있고, 매년 3·1절 기념 예배를 엽니다. 1월에는 최용신 선생 추모 행사를 진행하고, 9월에는 안산시의 상록수 문화제에 협력합니다. '상록수찬양단'도 있습니다.

창립 110주년을 맞은 2017년에 했던 "우리 샘골교회는 이 지역에 필요한 교회, 이 지역에 소망을 줄 수 있는 교회, 이 지역을 사랑하는 교회로 새로운 이야기들을 쌓아 갈 것입니다"라는 다짐에서, 최용신 정신의 부활을 기대해 봅니다.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는 매월 2차례 업데이트됩니다.

이근복 / 목사,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을 거쳐 현재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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