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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는 사회생활, 대안은 인간의 영혼이다
[서평] 최동석 <다시 쓰는 경영학>(21세기북스)
  • 전세훈 (vision7025@naver.com)
  • 승인 2017.09.17 18:40

지치는 사회생활, 대안은 없는가

우리 일상의 불행은 사회생활에서 나타난다. '사회생활'이라 불리는 이름의 조직 생활은 우리에게 고통을 준다. 취업만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가 생긴 게 끝이 아니다. 일자리의 '질'이 더 중요한 시대다. 내가 다니는 일자리에서 지금 나는 어떠한가. 끊임없이 일하는 대가로 얻는 것은 월급뿐이다. 그나마도 저임금의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일자리를 가지고 있다면 더 힘겹다.

일상의 문제는 대부분 일자리에서 나온다. 대부분의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다. 노동은 '먹고사는 문제'다. 상사의 갑질, 동료와의 갈등 등 인간관계는 사람을 괴롭힌다. '이 일을 계속해야 할까'라는 물음 속에서도 이 고통은 이어진다. 월요일 출근해 금요일을 기다린다. 금요일에는 다시 월요일이 두렵다. 성과 중심의 경영 속 우리의 영혼은 제대로 설 길이 없다.

이 조직 문화는 '사회생활'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된다. 원래 그런 것이라고 얘기한다. 인간의 존엄이나 존재에 대한 고민이 현재 경영학에서는 부족하다. 기업의 최대 목표는 이윤이다. 자신의 영혼을 챙길 겨를이 없으니, 당연히 다른 이도 신경 쓰지 못한다. 교회와 세상을 바꾼다는 거창한 구호는 일터에 가자마자 무너진다. 일터는 자신의 생각을 펼 수 없는 곳이다. 우리의 일자리에는 권위주의 그 자체다. 권위주의 정부도 무너졌다는데, '일자리의 민주화'는 멀고도 멀다.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권위주의적 기업이 더 많다는 게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인간을 옥죄고 힘들게 하는 경영만 가능한가. <다시 쓰는 경영학>(21세기북스) 저자 최동석 소장(최동석인사조직연구소)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경영이 우리를 지치게 하는 이유는 그 중심이 돈을 향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원이 아니다. 저자는 "인간을 지원으로 보는 월스트리트 경영 방식은 한계에 다다랐음이 분명하다"(11쪽)고 지적한다. 이른바 '당근과 채찍'을 통해 시행하는 위계와 명령에 의한 경영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이러한 경영 패러다임 때문에 조직의 구성원들은 고통받았다.

<다시 쓰는 경영학 - 인간의 이름으로> / 최동석 지음 / 21세기북스 펴냄 / 392쪽 / 1만 8,000원

수직적인 경영의 한계

수직 경영은 한계에 도달했다. '월스트리트식 경영' 패러다임은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토속신앙'처럼 굳어져 있다. 인간을 옥죄고 고통스럽게 하면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사회적인 신앙과는 달리, 경영성과도 좋지 않다. 우리의 노동생산성은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50~60% 수준이다. 그러나 근로시간은 OECD 국가 중 가장 길다. 이러한 경영 패러다임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노동생산성을 올리면서도, 구성원들이 행복할 수 있는 경영을 시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근본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경영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저자는 인간 존재 목적에 대해 인문학, 그중에서 신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독일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저자는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는 신학적 접근에서 이 책을 시작한다. 오늘날 경영학은 효용과 계량화로 인간을 설명하고자 하지만, 인간은 그것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다. 득이 될 게 없는데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 잘못된 선택을 한 뒤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한다. 저자는 인간이 경제적 효용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인간을 이해하려고 시도했던 가장 오래된 학문 중 하나가 신학이다. 저자는 인간의 인간 됨을 고민했던 인문학에서 경영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이 중에서도 신학적 접근을 하는 것은 서양철학사에서 기독교 세계관이 준 영향 때문이다. 저자는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신학적 도그마가 전체주의 신앙을 갖게 했고, 인간의 영혼을 옥죄는 교회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다룬다. 이와 같은 것들은 테일러가 시도했던 '계량화의 신앙'과 놀랍도록 비슷하다고 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이 인간을 옥죄고자 하는 부분이 비슷한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경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영혼을 어루만지는 경영이어야

이 책에서 다루는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과 영혼이다. "이 위대한 과학의 시대의 영혼을 다루는 것은 정신 나간 소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영혼의 목소리가 있다. 이것은 오늘날 과학의 방법론으로 해명하기 어려울 뿐이지, 일상적인 삶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이다"(31쪽)고 말한다.

영혼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영혼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자기를 인식(Self-awareness)하도록 하고, 자기를 객관적(meta-cognition)으로 보게 하고, 사회적으로 올바른 역할을 인식하도록 하고(role awareness), 진선미와 인의예지(a priori synthetic judgment)를 구분하도록 한다(31쪽). 이러한 영혼의 능력은 육체와 분리되지 않는다. 구성원들이 마음을 다하여, 행복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더 높은 생산성을 올릴 수 있다. 인간의 존엄에 대한 이해 없는 현재의 경영 패러다임은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인간의 영혼의 능력을 오늘날에는 영성이라고 부른다. 이 영성이 짓밟히고 있는 조직 문화는 결국 구성원과 조직을 모두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저자는 이 영성을 존중해 주고, 인간의 존엄을 회복한 경영이 더 높은 생산성과 조직의 발전을 담보한다고 설명한다. 현재의 기업 조직은 인간의 영혼을 무너뜨리고 있다. 노동자들을 기계의 부속품처럼 일하게 한다.

요즘 말로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직장에서 자아실현을 하거나 행복을 느낄 수는 없다. 생존만 아니면, 당장 그만둘 직장을 '버티고' 있다. 이렇게 능률이 오를 리 없는 집단에서 기업은 이윤을 낼 수 없다. 이러한 경영 패러다임은 기업의 효율성을 망쳐 놓고 있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결국 이윤을 내고, 이를 재분배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 본령은 기업이기주의로 망가지고 있다.

현대 경영은 인간성 상실의 다른 말을 효율성이라고 말한다.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사람을 쥐어짜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경영은 결단코 효율적이지 않다고 설명한다. 오히려 회사의 효율은 개인의 영혼에 대한 배려에서 나온다. 현재까지의 합리적 선택인 당근과 채찍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한 인간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영혼을 움직여야 한다.

돈과 성과 중심적인 조직은 계량화된 성과를 위해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으로 바뀌게 된다. 대부분 이를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러한 운영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니는 직장이 괴물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우리의 사회생활은 너무 힘들다.

저자는 기업도, 개인도 살기 위해서는 영혼을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경영자들이 구성원들 마음에 어떤 고통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삶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고 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조직 구성원들의 영혼은 고통받고 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목표 달성의 압력과 스트레스, 지배와 착취 구조의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무력감, 장래 커리어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사실 이러한 고통은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이나 기업 조직의 환경은 영혼의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 결코 아니다. 숫자로 나타난 성적과 실적 경쟁 때문에 잠시라도 맑은 영혼을 유지하기 어렵다. 경영자는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그들의 마음, 잠재력, 영혼의 능력을 맘껏 발현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168쪽)

인간 중심의 경영이 우리의 행복을 바꿀 수 있다.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행복도, 최장 노동시간 등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일상이 행복할 수 있다. 인간을 존중하고,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기업이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은 자원이 아니기에, 그 자체로 존엄하기에 일터에서도 그 존엄을 인정받아야만 한다.

영혼 살리는 조직, 영혼이 사는 교회

한국교회는 한국의 기업 문화와 너무도 닮았다. 그 발전 양식과 조직 문화가 너무도 유사하다. 한국 개신교가 가진 폐쇄성·배타성·권위주의·성장지상주의 등으로 한국교회는 무너지고 있다. 한국교회가 무너지고 있는 것은, 교회가 오히려 영혼을 짓밟는 기업과 너무도 유사하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기업과 똑같은 구조로 움직이고 있다. 영혼 구원보다는 비즈니스적인 이유로 운영된다. 교회의 '이윤'을 늘리기 위해 성도 개개인을 돌보지 않는 교회, 상처받은 영혼을 돌보기보다는 전체 이윤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교회로 성장했다. 이것이 한국교회 위기로 다가왔다. 한국교회의 질적 위기는 회사와 다르지 않은 운영 방침에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아우구스티누스 이후에 만들어진 신학적 도그마가 이데올로기화되어 발생했던 교회의 아픈 역사를 서술해 놓았다.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등의 폭력성이다. 그리고 신학이 제도화되면서 '절대 진리'를 교황청이 독점한 후에 인간의 영혼이 억압되었다고 설명한다. 신앙과 신학이 인간 영혼의 힘을 짓밟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런 상황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회사와 교회의 모습은 계속되고 있다. 영혼을 살피지 않는다. 기업을 위해, 교회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개인은 영혼의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교회에 출석하는 개신교인이 비개신교인에 비해 영혼의 능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과 교회 모두 인간을 옥죄어 영혼의 능력을 하락시키는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기업처럼 양적 성장에 주목한 채 질적 성장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성도 하나하나를 돌보는 것을 비효율적인 방법처럼 여긴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는 영혼을 돌보기보다는 교회 전체를 중요시한다. 거기다 교회 생활은 '제2의 직장 생활'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사역만 떠맡는 모습은 결단코 옳지 않다.

새로운 조직 패러다임은 인간의 영혼을 존중해야 한다. 인간의 영혼이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교회가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세상의 문화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면, 양적 성장 말고 질적 성장을 지향해야 한다. 앞으로 조직도 영혼을 살리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미래를 바라보는 조직 문화다. 인간의 영혼을 망가뜨리는 조직 문화가 아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일은 교회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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