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월요일 오후, 반가운 손님이 <뉴스앤조이> 사무실을 찾아왔습니다. 기아대책 김현중·김효정 선교사 부부와 한국에서 화상 수술을 받은 알제이(8)와 그의 엄마, 그리고 김 선교사 부부가 운영하는 Biblical Worldview Christian Academy의 교사 한 분이, 필리핀으로 나가기에 앞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려고 온 것입니다.

지난 3월, 저희가 소개해 드린 알제이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알제이는 2년 전, 끓는 기름을 뒤집어 써 온몸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습니다. 필리핀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상처가 덧나는 상황, 김 선교사 부부가 운영하는 아카데미에 등록한 알제이는 두 선교사와 한국 한림화상재단의 도움으로 한국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알제이는 엄마와 함께 5월 한국으로 들어와, 서울 영등포에 있는 화상 전문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습니다. 두 달에 걸쳐 5번이나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상처를 긁어 내고 허벅지와 엉덩이 살을 떼어 화상 부위에 이식했다고 합니다. 수술 이후 드레싱하는 과정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수면 마취를 10번 정도 했다고 하니, 얼마나 어려운 치료 과정이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중간에 한 번 수술 중단의 위기도 있었다고 합니다. 재단의 예상보다 치료 비용이 훨씬 많이 들어가고, 모금도 잘 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다행히 기아대책이 협력하기로 했고, 치료는 예정대로 잘 진행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힘든 일을 겪은 알제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표정입니다. 어린아이 특유의 유쾌함이 느껴지는 아이였습니다. 실제로 드레싱할 때는 아파서 울다가도, 치료만 끝나면 울음을 뚝 그치고 싱긋벙긋 웃었다고 합니다. 그런 알제이가 울상이 된 건, 김 선교사 부부와 제가 1시간 넘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사무실에 장난감도 없고 이것 참….

김현중 선교사와의 인연은 특별합니다. 2013년 말, 필리핀에 '하이옌'이라는 거대 태풍이 들이닥쳐 수많은 인명·재산 피해가 났습니다. 당시 저는 피해가 가장 심했던 타클로반으로 2주간 취재를 갔습니다. 필리핀 말은 물론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제가 재난 지역에서 취재하려면 현지를 잘 아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도움을 준 사람이 김 선교사입니다.

2주간 김현중 선교사와 재난·선교·신앙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실 교계 기자들 사이에서는 "필리핀 선교사 90%는 가짜다"라는 과장된 소문이 있을 정도로, 필리핀에는 한국 선교사가 많고 그만큼 비리·비행도 많습니다. 웬만한 <뉴스앤조이> 기사는 전부 챙겨 본다는 김 선교사와 이런 민감한 문제들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선교를 잘 모르지만, 한 가지 고민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성공주의·번영신학으로 무장한 한국 선교사들이 (나쁜 의미에서) '한국식 기독교'를 퍼뜨리는 게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전도·선교라고 했을 때, 과연 한국식 선교가 얼마나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김현중 선교사도 이런 문제의식에 동의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정치와 경제, 사회를 볼 줄 알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정치는 혼탁하고 인구 대부분이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필리핀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많은 고민이 필요한 일입니다.

한국교회에서 통용되는 시각으로 본다면, 김 선교사 부부는 실패한 사역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파송 10년이 됐는데 아직까지 번듯한 예배당 하나 없으니까요. 수백 명씩 결신시키는 모습은 김 선교사 부부와 거리가 멉니다. 건물 짓는 게 펀딩이 잘된다는 사실은 김 선교사도 알고 있지만, 그럴 능력(?)이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칩니다.

건물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고 싶다고 합니다. 아카데미도 하고, 필리핀 청소년·청년들을 대상으로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LDP)도 하고, 최근에는 필리핀 곳곳에 도서관을 만들자는 필리핀작은도서관협회도 시작했다고 합니다. 해마다 LDP 멤버들과 필리핀 오지에서 '생존 캠프'를 한다던데, 꽤 흥미롭습니다. 언젠가 김 선교사 부부 이야기를 진득하게 풀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아이디어도 좋고 추진력도 있는데 열악한 후원 상황이 발목을 잡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에서도 왠지 동질감을 느낍니다. 저희는 "한국교회가 봉사와 후원을 그렇게 많이 하는데, 우리는 왜 이러는가" 얘기하며 허탈하게 웃었습니다.

알제이가 화장실에 다녀온 후 다시 들어와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한참 이야기하던 중 알제이가 울먹이기 시작합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어로 1시간째 이야기하고 있으니 도저히 견딜 수 없었나 봅니다. (알아들을 수 있어도 재미가 없었겠죠;) 왠지 모를 미안함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알제이는 앞으로도 1년간은 압박붕대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상처가 다시 올라올 수 있기 때문에 보습과 압박이 중요하다고 하네요. 더운 나라, 열악한 환경에서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필리핀에 화상 전문의가 없다는 것도 우려가 됩니다. 큰 병원은 비용도 만만치 않고요.

불행 중 다행은, 한림화상재단에서 필리핀 의사 한 명에게 화상 치료를 전수해 주겠다고 제안한 것입니다. 김 선교사 부부는 8월 6일 필리핀으로 돌아가, 알제이를 치료해 주고 한국에서 수련할 의사를 찾는 것이 제1과제가 되었습니다.

큰일을 겪은 알제이가 지금처럼 씩씩하게 치료 과정을 잘 이겨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을 읽으신 독자분들도 잠깐 동안 알제이를 위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알제이 화상 치료 후원하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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