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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선교 10년 "사람을 세우고 싶다"
[인터뷰] '전신 화상' 아동 위해 발 벗고 나선 김현중·김효정 선교사 부부
  • 이은혜 기자 (eunlee@newsnjoy.or.kr)
  • 승인 2017.03.25 00:57

필리핀에서 사역하고 있는 김효정, 김현중 선교사 부부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알제이(8)의 상황을 설명하던 김현중·김효정 선교사 부부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웠다. 필리핀에서 힘겹게 10년을 버텨 온 선교사 부부가 온몸에 화상을 입은 소년 알제이를 만난 건 2016년 3월, 운영하던 유치원 원아를 모집할 때였다.

김 선교사 부부는 2007년 기아대책 파송으로 필리핀 땅을 밟았다. 독서 운동의 꿈을 안고 한국 선교사 자녀를 위한 학교를 시작하겠다고 갔지만 현실은 달랐다. 시행착오 끝에 현지인 사역으로 전환했다. 몇 번의 실패를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차세대 교육에 관심 있던 김 선교사 부부는 교회 한 부분을 빌려 유치원을 시작했다.

유치원에서 만난 아이 알제이. 알제이는 처음부터 눈에 확 띄었다. 얼굴과 몸 군데군데가 선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몸 전신에 깊은 화상 흉터가 남아 있었고 흉터에서는 진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알제이는 온몸에 화상 자국이 그대로 있다. 수술이 절실한 상황이다. 사진 제공 김현중 

알제이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화상을 입은 건 2015년 9월경이라 했다. 엄마를 따라 시장에서 장사하는 고모를 찾은 알제이. 고모는 시장에서 '피쉬볼'이라는 간식을 팔았다. 피쉬볼은 한국 어묵과 비슷한 튀김 음식이다. 알제이는 벌레를 피하다 기름 솥을 건드렸고 펄펄 끓는 기름을 온몸에 뒤집어썼다.

김효정 /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상처에는 딱지조차 앉지 않았더라고요. 아이 엄마에게 연고 바르지 않느냐고 물었죠. 연고는 없고 로션을 바른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처음에 제가 잘못 말하고, 그 어머님이 잘못 알아들은 줄 알았어요. 필리핀에서는 '연고'를 로션으로 부르나 싶었죠. 뭘 바르는지 좀 보여 달라고 해서 봤는데 진짜 그냥 '베이비 로션'인 거예요.

김현중 / 응급처치가 끝난 뒤에는 돈이 없으니까 그냥 로션만 발라 왔더라고요. 어차피 현지 병원은 돈 없는 사람들인 것 같으니까 따로 처방을 안 해요. 로션 바르는 것 외에 한 달에 한 번 스테로이드 성분이 포함된 주사만 맞아요. 약 부작용 때문인지 알제이는 1년 만에 몸이 거의 두 배가 됐어요. 살이 찌니까 상처는 점점 벌어져서 더 아물지도 않고…심각한 상황이죠.

보고만 있을 수 없던 김 선교사 부부는 동료 의료 선교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필리핀에서 치료받는 것보다 한국으로 데려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 한림화상재단과 연결됐다. 한림화상재단은 매년 한두 명씩 화상으로 고생하는 후진국 아이들을 데려와 수술을 해 준다. 김 선교사 부부는 여기에 지원했다.

결과적으로 올해 6월 혹은 7월에 알제이를 한국으로 데려와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그 과정도 쉽지 않았다. 작년 5월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데, 도통 연락이 없었다. 전화를 하면 일이 조금씩 진행됐다. 아이는 매일이 고통인데 진행 속도가 너무 느렸다. 김 선교사 부부는 3월 초 한국으로 들어와 직접 한림화상재단을 찾았다. 그제야 확답을 받을 수 있었다.

알제이는 지붕도 제대로 없는 판잣집에서 엄마, 누나, 형들과 함께 산다. 맨 왼쪽이 김효정 선교사. 사진 제공 김현중 

알제이의 수술은 선교사 부부 예상보다 훨씬 큰 프로젝트가 됐다. 화상이 워낙 심각해, 수술 한 번으로는 치료할 수 없다. 최소 3차례 수술비와 체류비, 비행기표 값으로만 1억 원이 드는 대형 프로젝트다. 한림화상재단은 기금 마련을 위해 모금을 진행 중이다.

'사람 세우는 일' 가능할까
선교사 부부, 10년째 고민

알제이의 치료를 확정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김현중·김효정 선교사 부부를 3월 21일 <뉴스앤조이> 사무실에서 만났다. 부부는 필리핀에서 10년째 사역하고 있다. 한국에서 후원금을 지원받아 교회 세우는 선교사도 많은데, 이들은 간이 건물 하나 없이 공간을 임대해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김 선교사 부부는 필리핀 다음 세대 교육에 관심이 많다. 애초에 독서 운동 꿈을 품은 것도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차세대 리더를 양육하고 싶어서였다.

김현중·김효정 선교사도 여느 선교사처럼 '영혼 구원'의 꿈을 안고 필리핀 땅을 밟았다. 하지만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은 별로 없었다.

김현중 / 인재를 키우고 싶은 마음으로 오긴 왔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제가 필리핀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도 있죠. 관광객으로 가면 그 나라가 쉬워 보이는데 실제로 살아 보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필리핀 사람은 섬나라 동양인이지만 오랜 기간 서양 지배하에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 살아 왔는데, 그들을 하루아침에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사람으로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긴 터널 끝에 희미하게 빛이 보였다. 힘들게 사역해 오던 김 선교사 부부는 지난해 우연한 기회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먼저 필리핀 각지에 흩어져 있는 한국 선교사 8명이 모여 '작은도서관협회'를 만들었다. 교민 사회에서 독서 운동에 뜻을 함께하는 기업가도 합류했다. 미국에서 컨테이너로 책을 받아 선교사들이 곳곳에 나누면, 국립도서관 사서였던 현지인이 가서 책 읽는 법, 책 분류하는 법 등을 강의했다.

컨테이너로 받은 책을 분류하고 있는 필리핀 사람들과 김효정 선교사. 사진 제공 김현중 

김현중 / 필리핀을 변화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현지인들과 연대가 가능해졌어요. 국립도서관 사서였던 필리핀어린이문학협회 대표님과 협업하고 있습니다. 양쪽의 문제의식은 같아요. 가난한 아이들에게 책을 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받은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 무슨 책을 읽을 것인지를 알려 주는 일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죠.

번듯한 예배당 세운다고 하면 한국에서 후원받기도 쉽다. 그러나 김현중·김효정 선교사는 여전히 하드웨어, 즉 눈에 보이는 건물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이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사람을 세우는 일'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 공급이 끊어지면 가난을 벗어날 길이 없다. 최근 해외 원조 경향과도 맞지 않는다. 수혜를 받는 사람이 자립할 수 있도록 힘을 길러 주는 것이 베푸는 사람의 목표가 돼야 한다.

김현중 / 시행착오를 여러 번 겪어 왔는데 필리핀이 충분히 가능성 있는 나라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가능성이 있는 나라인데, 그동안 선교는 가난한 사람만 타깃으로 했죠. 이게 선교 사역의 딜레마인 것 같아요. 가난한 이들에게는 끝없이 쏟아부어야 해요. 선교사가 떠나면 사람들 삶은 이전으로 돌아가죠.

이 굴레를 벗어나는 방법은 필리핀 사람이 필리핀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지식인층을 깨워야 하고요. 지식인층을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사람으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여전히 '500만 원 헌금하면 대나무로 된 예배당 하나 짓는다더라'는 말에 혹해 건물 짓고 감동하는 일은 이제 지양해야 해요. 선교사가 빠져도 시스템으로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더 힘을 쏟아야 합니다.

지난해 티모시크리스천스쿨에 책을 기증한 필리핀작은도서관협회. 맨 왼쪽이 김현중, 김효정 선교사 부부다. 사진 제공 김현중

김효정 / 현지에 나와 있는 선교사는 많지만 파송한 선교 단체의 전략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한 지역에 파송된 선교사들이 뭉쳐서 학교를 만든다든지, 병원을 세운다든지 한다는 전략 대신 각자 움직여 왔어요. 따로 사역하기 때문에 서로 공유도 안 됐죠. 작년에는 떨어져 있는 선교사들도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그것으로도 큰 성과를 거둔 게 아닌가 싶어요.

김 선교사 부부가 그토록 꿈꾸던 '사람을 세우는 사역'은 이제 첫발을 내딛었다. 지난해 확인한 독서 운동과 리더 양육 프로그램을 지속 가능한 모델로 이어 가는 게 이들에게 남겨진 과제다.

김 선교사 부부는 3월 말 필리핀으로 돌아가 알제이 엄마의 여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한다. 1억 원으로 예정돼 있는 수술비 모금을 위해 김 선교사 부부도 작게나마 힘을 보탤 예정이다. 초기 치료에 실패해 상처 부위가 깊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힘든 세 차례의 수술. 아픈 가운데도 밝은 모습으로 버티는 알제이를 위해 김 선교사 부부는 할 수 있는 일을 다해 볼 생각이다.

알제이 후원 전용 계좌는 우리은행 1006-301-297316(한림화상재단사회복지법인)이다. 후원금 모금은 한곳에서 받고 있으며 향후 지출 내역을 후원자들과 공유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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