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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교회 대신 합동 분향소 예배실에 간다
[인터뷰] 세월호 희생자 아라 양 아빠 김응대 씨
  • 박요셉 기자 (josef@newsnjoy.or.kr)
  • 승인 2017.05.27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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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세월호 가족들은 국회 앞에서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2014년 10월 29일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방문할 계획이었다. 대통령이 도착하자 가족들이 외쳤다. "대통령님 우리 아이들을 살려 주세요!", "사고 진상을 밝혀 주세요!", "자식 잃은 부모들이 울면서 외칩니다!". 박 전 대통령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곧장 국회로 들어갔다. 이 모습을 지켜본 아라 아빠 김응대 씨는 깨달았다. 이 정권은 불의하다고.

"3년 내내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측은지심조차 없는 저 대통령과 관료들, 그들이 있는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무너지게 해 달라고요.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국민을 대표하고 나라를 지킬 수 있겠어요. 사실 지난 3년을 돌아보면 한국 사회에는 혼란스러운 일만 가득했어요. 세월호를 비롯해 메르스, 국정교과서, 위안부 합의, 사드 배치 등으로 국민들이 분열하고 갈등을 겪었죠."

유가족들은 정부에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열린 3차 세월호 청문회 모습. 뉴스앤조이 박요셉

나라 믿었던 가족들
구조에 소극적이었던 정부

김응대 씨는 세월호 희생자 김아라 양(단원고 2학년 9반) 아버지다. 시내버스 운전기사인 그는 3년 전 그날 경기 군포시에서 서울 이수역까지 운행하는 버스를 몰고 있었다. 라디오로 소식을 처음 접했다. 앵커는, 오전 9시경 수학여행을 가는 고등학생들을 태운 한 여객선이 제주도로 가는 길에 맹골수도 앞바다에서 침몰하고 있다고 소식을 알렸다.

"처음에는 우리 아라가 탄 배인지 몰랐어요. 오전 9시면 아라가 이미 제주에 도착했을 시간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아라가 연락이 안 돼요. 학교에 전화해 물어봤어요. 한 선생님이 아이들이 탄 배가 맞다고 하더라고요. 하늘이 노래졌어요. 그때부터 라디오 뉴스에 온 신경을 집중했어요. 버스를 차고지까지 어떻게 갖다 놓았는지 기억이 안 나요."

김응대 씨는 작업복을 입은 채 단원고등학교로 달려갔다. 아내를 비롯해 다른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그때는 나라를 믿었다. 정부는 모든 장비와 인력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가족들은 그 큰 배가 쉽게 침몰하지 않을 거라고, 모두 구조될 거라고 서로를 달랬다. 그때 "전원 구조됐다"는 속보가 들어왔다. 김응대 씨는 가족들과 함께 안산시가 제공한 버스를 타고 진도로 내려갔다. 그게 '오보'라는 사실은 가는 길에 알았다. 버스 안은 부모님들의 통곡 소리로 가득했다.

참사 당시 유가족들은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을 오가며 구조 작업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팽목항에서 만난 해양수산부·해경 관계자들은 소극적이었다. 가족들은 사고 당일부터 계속해서 침몰하는 배를 붙잡아 줄 바지선을 요청하고, 구조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알려 달라고 했다. 관계자들은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하고 자세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바지선은 배가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맹골수도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구조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거기서 중요한 시기를 놓쳤던 거 같아요. 가족들은 이때부터 정부를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이게 과연 대한민국 정부가 맞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죠. 마치 불난 집이 모두 다 타 버릴 때까지 지켜보겠다는 것 같았어요. 이후 모든 게 의문투성이었어요. 왜 미국 함대 협조를 거부했고, 민간 잠수사의 구조를 방해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죠. 누가 뒤에서 이 모든 걸 지시한 건 아닌지 가족들은 의심했어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딸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모든 부모의 고백이 그렇듯, 아라는 과분한 딸이었다고 김응대 씨는 말했다. "아라는 제게 기쁨을 많이 주었어요. 하나님께서 지친 제게 힘을 내라고 주신 선물 같았어요."

"제가 학창 시절 때 공부를 잘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아라에게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죠. 근데 아이가 반에서 한 번도 5등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는 거예요. 학교에 가면 딸 덕분에 저도 모르게 목에 힘이 들어갔죠. 좋은 과외를 시켜 주거나 학원에 보내 주지 못했는데, 혼자 잘 커 준 딸이 고맙고 기특했어요. 친구들과도 다투지 않고 잘 지냈어요.

김응대 씨 가족. 김 씨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기도 하다. 사진 제공 김응대
아라는 김응대 씨에게 과분한 딸이었다. 혼자 알아서 잘 커 줘서 늘 고맙고 기특했다. 사진 제공 김응대

중학교 때 아라가 고등학교 진학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미술에 관심이 있어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어 했는데, 미술은 돈이 많이 드니까 알아서 포기한 것 같더라고요. 다른 도시에 있는 자율형 공립 고등학교, 사립 고등학교에도 가고 싶다고 했는데, 아내와 제가 반대했죠. 제 딴에는 집과 가까운 학교에 통학하는 게 아라에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그게 아니었던 거 같아요. 그때 아라의 부탁을 들어줬다면 어땠을까 후회해요."

자책은 김응대 씨 인생 전체를 에워쌌다. '내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이런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김 씨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릴 때 시골에서 아버지와 엽총으로 산짐승을 사냥했던 게 잘못이었을까, 다른 사람에게 저질렀던 잘못이 문제였을까, 김응대 씨는 자신의 죄목을 늘어놓으며 반성했다고 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지금은 벌레 하나 쉽게 잡지 못한다.

참사 이후 세상을 등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가장이었다. 2개월 만에 일을 시작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참사 직후 김응대 씨는 일을 할 수가 없어 잠깐 쉬었다. 그런데 일을 안 하고 집에만 있었더니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 음식을 잘 먹지 않고 종일 누워만 지냈다. 몸과 마음이 무기력해지고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사람들을 만나는 게 두렵고 무서웠다. 이대로 혼자 조용히 세상을 등지며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등지며 살 수는 없었다. 힘들더라도 사람과 어울리고 부대끼며 사는 게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가장이었다. 고향에 있는 부모님을 모시고, 아내와 아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김 씨는 참사 2개월 만에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처음에는 일을 많이 못했어요. 하루 일하고 이틀 쉬는 꼴로 했어요. 쉽지 않았죠. 운전이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으니까, 종일 아라가 생각나더라고요. 시시때때로 울었어요. 운전하면서 울고 밤늦게 퇴근하면서 또 울고… 그랬죠."

위로 기대했던 교회
"아이는 천국에 갔으니
이제 잊어버려라"

김응대 씨는 아라와 함께 동네에 있는 교회에 수십 년 출석했다. 사고 이후, 그는 교회에서 위로를 받고 싶었다. 예배에도 꾸준히 참석했다. 하지만 교인들은 오히려 그를 힘들게 했다.

"어느 날 한 장로님이 그러셨어요. '김 집사, 이제 잊어버려요. 아이는 천국에 갔으니 이제부터는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기도 열심히 하고 살아.' 한 목사님은 교회 앞에서 저를 볼 때마다 웃으며 '아이고 김 집사님, 잘 지내셨어요' 하고 반기더라고요. 저는 속이 문드러지고 슬픔이 복받치는데. 그 웃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더라고요. 제게 필요한 건 그냥 제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고 같이 울어 줄 사람이었거든요."

김응대 씨는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대신 일요일과 목요일, 안산 합동 분향소 기독교예배실에서 열리는 기도회에 참석하고 있다. 그는 분향소에서 예배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여러 교회가 꾸준히 찾아와서 모임을 이끌어 주고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모습에 위로를 얻는다고 했다.

김 씨는 4월 16일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열린 부활절 예배에 성찬위원으로 참석했다. 그는 생각보다 많은 기독교인이 예배에 참석해 줘서 고마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경소영
추운 날씨를 마다하고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든 시민들. 세월호 가족들에게는 아픔에 공감해 주는 가족과 같았다. 뉴스앤조이 현선

지난 겨울은 김응대 씨를 포함해 세월호 가족들이 힘을 얻는 시기였다. 국민들은 매주 토요일 저녁이 되면 두꺼운 외투를 입고 촛불을 들었다. 김응대 씨는 촛불을 보면서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세월호 가족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그들이 가족처럼 느껴졌다.

"촛불 시민이 함께해 주면서 세월호 가족들이 힘을 얻었어요. 지난날 박근혜 정부가 그렇게 저희를 외면하고 진상 규명을 방해했는데, 국민들이 모이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나 하나라도 힘을 실어야겠다'며 모인 시민이 몇 십만 몇 백만이 되어, 결국에는 정권을 바꿨잖아요.

세월호 가족들은 지금 새 정부가 사고 원인을 명백히 밝히고 관련자를 모두 처벌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그것이 한국 사회가 생명을 존중하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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