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1859년부터 지금까지, 창조와 진화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과거 천동설과 지동설 논쟁은 우주 관측 기술의 발달로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이 눈으로 확인되면서 종결됐다. 하지만 창조와 진화는 인간의 시공간적 한계 내의 기술 발전으로는 관찰되기 어렵다. 창조와 진화가 방대한 시간적·공간적 범위를 포괄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창조론과 진화론 둘 다 완벽히 정립될 수 없고, 둘 사이의 논쟁은 인류 역사에서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세대기간'이 짧은 바이러스와 생물(박테리아와 일부 조류 및 곤충 등 최소 10세대의 기간이 인간 한 사람이 지속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50년 이내인 생물)에게서는 진화가 현저하게 관찰된다. 항생제·살충제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내성을 가지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해충들의 진화, 영국 산업혁명 시대 공업암화와 그 이후 역현상을 통해 드러난 회색가지나방(peppered moth)의 진화가 구체적인 예다. 땅속 씨앗을 먹고 사는 핀치새의 서식처 갈라파고스섬에 극심한 가뭄이 지속되자 후세대 핀치새들 부리 길이가 늘어난 것도 진화의 예다. 그 외 화석과 DNA 유전자 비교 등 여러 연구 사례가 진화가 일어났다는 가능성을 더해 준다.

진화는 어떤 마법이나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며, '자연선택'이라는 체계적인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 자연선택은 모든 생물이 DNA라는 유전자지도에 의해 그 형태와 성질 및 행동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분자생물학적 법칙을 기본으로 한다. 이는 아래 5단계로 설명된다.

1. 다수의 일반적 개체가 가진 유전자들과는 주요 부분이 다른, 변이 유전자를 지닌 소수의 변이 개체들은 그 형태나 성질 및 행동이 다르게 나타나며 세대마다 늘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평소 환경에서 변이 개체들의 생존력은 낮다.
2. 기존의 환경에 주요한 변화가 생긴다.
3. 이때 변이 개체들이 그 환경 변화에 더욱 잘 적응할 수 있는 형태나 성질 및 행동을 갖추고 있다면 해당 변이 개체는 기존의 비변이 개체보다 생존력이 증가한다.
4. 기존의 많은 비변이 개체는 해당 환경 변화에서 생존력이 약해져 생식에 이르기 전에 죽는 반면, 생존에 유리하게 된 변이 개체들은 계속 살아남아 생식 과정에까지 이른다.
5. 생식 과정을 통해, 변이 유전자를 지닌 변이 개체들의 생식세포들이 후세대 개체들의 유전자를 이뤄 변이가 전달된다. 이런 과정이 세대를 걸쳐 지속되어 생존에 유리한 해당 형태 및 행동의 변화, 즉 진화가 더욱 현저하게 나타난다.

이렇듯 진화는 '이미 존재하는' 생물체 집단의 변화를 자연선택이라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메커니즘을 통해 설명하며, 우리는 환경 변화에 대한 진화에 실패한 생물종을 '멸종'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화도 '최초의 생명체 출현'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진화의 기본이 되는 자연선택은 반드시 앞 세대가 존재해야만 설명되는 개념이다.

모든 생물의 존재는 타인에게서 나온다. 나의 존재는 나의 부모로부터, 나의 부모의 존재는 그들의 부모로부터,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최초의 어떤 존재는 스스로에게서 나와야만 한다.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출 3:13-14)가 있었기에 그 후의 자연선택도, 진화도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와 진화 둘 중 어느 하나만 맞고, 다른 하나는 완전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창조가 최초 생물 출현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면, 진화는 최초 출현 이후 존재하는 생물 종들이 어떻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설명해 준다.

문제는, 많은 기독교인과 창조론자가 '이미 존재하는 생물체들'의 환경에 변화가 생겼을 때, 이에 대한 적응 기작으로서 우리 앞에 분명히 드러난 진화 현상조차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줄곧 믿어 온 신의 존재와 가치가 무너질까 봐 두려운 것인데, 앞에서도 언급했듯 진화는 이미 존재하는 생물 집단의 변화를 설명할 뿐 최초 생물의 출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입증할 수 있는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종종 자연선택이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 같은 워딩과 함께 쓰인다고 비난하는 이가 있다. 자연선택이 생명을 상품적 존재로 여기는 세속적 사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상 해석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자연선택을 처음 접했을 때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 되는', '낮은 자는 높아지고, 높은 자는 낮아지는' 진리의 순환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자연선택에 대한 사상적 해석은 그야말로 각자의 주관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 진화의 객관적 존재 여부와는 완전 별개 문제다.

물론 창조론자와 진화론자의 견해는 그 안에서 저마다의 발견과 이론으로 무수히 다르게 나타난다. 100% 창조를 지지하거나 100% 진화를 지지하는 이론도 있다. 하지만 현대에는 그보다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 △유신론적 진화(Theistic Evolution) △무신론적 진화(Atheistic Evolution) △젊은 지구론 (Young-Earth Theory) △늙은 지구론(Old-Earth Theory) △간격 창조론(Gap Creationism) △점진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ism) 등 진화와 창조 정도, 물리·화학·생물·신학 등 학문의 정도가 다양하게 섞여 창조 진화 이론의 스펙트럼이 넓고 다양해졌다. 그만큼 '진화'라는 과학적 사실은 여러 신념 안에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진화의 이해가 반드시 '신은 없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요즘뿐만 아니라 진화 개념이 최초로 제시됐을 당시부터 과학을 공부하는 기독교인은 진화의 수용과 신에 대한 믿음이 양립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 왔다.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진화와 자연선택 개념이 최초로 세상에 알려졌을 때, 미국 식물학자 아사 그레이(Asa Gray, 1810~1888)는 <종의 기원>이 "생명의 일치성과 다양성을 보존시키기 위한 신의 정교한 방법(God's ingenious way of ensuring the unity and diversity of life)"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이에 찰스 다윈마저도 <종의 기원> 후판에서, 또한 그의 말년에 사람들이 "열렬한 유신론자이면서 진화론자(an ardent theist and an evolutionist)"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현대에 들어서는 더욱이 많은 기독교인 과학자가 '진화와 기독교 신념의 양립 가능' 입장을 취한다. 미국의 저명한 대학인 컬럼비아대학교(Columbia University),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캘리포니아주립대 데이비스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등에서 유전학을 가르쳤던 러시아 태생 미국 유전학자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hansky, 1900~1975)는 정교회 신자였다. 도브잔스키는 에세이 '진화의 빛이 없는 생물학은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Nothing in Biology Makes Sense Except in the Light of Evolution)'에서 스스로를 "창조론자이자 진화론자(I am a creationist and an evolutionist)"라 규정하고 "진화 이론은 종교적 믿음과 상충되는가? 그렇지 않다(Does the evolutionary doctrine clash with religious faith? It does not)"고 밝히며 그 논리와 증거를 드러낸 바 있다.

현존하는 과학자 중에도 신실한 신자면서 동시에 진화 현상을 받아들이고 있는 이들을 볼 수 있다. 현재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원장으로 있는 유전학자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는 인간 유전체 연구 사업(Human Genome Project)에 참여한 저명한 과학자이자 신실한 기독교인이다. 콜린스는 스스로를 "독실한 기독교 신자(serious Christian)"라 부르며, 그의 저서 <신의 언어(The Lagnuage of God)>를 통해 진화와 기독교 믿음이 양립 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한국에는 대표적으로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우종학 교수가 있다. <무신론 기자, 크리스찬 과학자에게 따지다> 저자인 우종학 교수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믿음과 진화 및 과학적 이슈에 대한 포럼 활동을 이끌고 있다.

여기서 명확히 짚고 넘어갈 용어들이 있다. '진화'라는 현상에 신은 없다는 이념을 추가한 것이 바로 '진화주의'다. 사람들이 '진화론'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보통 '진화'보다는 '진화주의'를 내포한다. 하지만 드러난 현상 자체를 뜻하는 '진화', 현상을 바탕으로 한 이론인 '진화론', 현상에 대한 무신론적 해석과 이념을 말하는 '진화주의'는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이러한 용어 사용은 아주 최근에서야 이루어졌다. 특히 우종학 교수가 세 용어의 정확한 구분을 강조해 오고 있다. 진화와 진화주의 사이 용어 구분이 없던 과거에는 '진화론'이 '진화'를 뜻하기도, '진화주의'를 뜻하기도 했다. 위에서 언급한 과거 과학인들의 '진화론'은 종교적 신념과 양립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진화주의'가 아닌 '진화'로 보는 것이 맞다.

'진화'라는 현상 자체는 분명 존재한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 우리가 약을 먹을 때나, 식물을 기를 때, 병에 걸렸을 때 등 일상 영역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 진화를 가지고 신이 있냐 없냐 따지는 것은 입증하거나 관찰될 수 없는 문제다. 개인의 믿음과 세계관 차이일 뿐이다.

신은 직접 여러 생물을 '창조'하여 출현시키고 각 생물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했다. 이러한 자유의지를 지닌 생물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상호작용할 때 불가피한 환경 변화가 일어난다. 신은 척박한 환경 변화 속에서 생물들의 자유의지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다시금 만물이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진화'라는 회복 기작을 심어 놓은 것이다. 물론 진화라는 회복 기작이 있어도, 인간의 극단적 이기심이나 자연 및 생태에 대한 무관심·무책임 때문에 수많은 생물이 멸종했고, 멸종하고 있지만 말이다.

학부 과정에 머물러 있을 뿐이지만 생물학도이자 기독교인으로서, 창세기와 전공 서적 사이를 오가며 현재 시점에서 정리한 창조와 진화에 대한 개인적 생각은 감히 이러한 것들이다.

어떻게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성경에도 없는 진화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이냐는 사람들이 있다. 그분들에게 묻고 싶다. 지구에서 중력의 존재나 식물의 광합성 기작 등 우리에게 분명히 나타나 있지만 성경이 설명하지 않은 수많은 과학적 이야기의 사실 여부는 왜 논쟁하지 않는가. 성경 내용은 진리지만, 성경에 모든 과학 법칙과 현상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지는 않다. 성경이 쓰인 목적은 하나님의 존재하심, 그의 성품과 능력을 알리기 위함에 있지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지 않기에 그럴 필요도 없었다.

지식과 사상을 과시하고 강요하며 타인을 무시하는 것은 큰 교만이다. 하지만 알아보려는 노력은 없이 눈과 귀를 막고 타인의 의견을 정죄하는 것이 과연 겸손한 일인가. 진화를 위험한 사상으로 보고, 그 배경에 어떤 어두운 영이 있다고 비판할 에너지와 시간이 있는 분이 있다면, 생물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 보는 것이 어떨까.

최은빈 / 부산 맑은물교회 교인, 부산대학교 생명과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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