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교회 개척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한 교회에서 일정 기간 부목사로 사역한 목사들은 때가 되면 교회를 개척해 나가라는 요구에 직면한다. 젊은 후배들이 부목사로 사역할 수 있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는다. 기독교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전도 환경도 예전과 같지 않은 요즘, 교회 개척은 쉽지 않은 일이다.

등 떠밀려 개척한 교회는 미자립으로 남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못하는 목회자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후원을 요청하거나 노회에서 생활비를 지원받는 형식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때로는 생계를 위해 이중직·삼중직을 택하기도 하지만, 목회자로 부름을 받았는데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한다는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결국 처음 교회를 개척할 때 '잘' 개척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개척하기 전 준비를 잘하는 수밖에 없다. 때가 돼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개척이 아닌, 목사가 능동적으로 임하는 개척. '개척학교 숲'은 교회 개척을 앞두고 있는 목사와 교인을 돕는 단체다. 개척하려는 사람이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어떤 교회를 세울지, 어떤 사람들과 만나기 원하는지 계획을 세우도록 도와준다.

'개척학교 숲'에서 코치로 활동하는 김종일 목사(왼쪽)와 염종열 목사. 뉴스앤조이 이은혜

개척학교 숲은 지난해까지 4기 수료생을 배출했다. 5기를 모집할 차례지만 한 학기 쉬어 가기로 했다. 쉼 없이 달려온 일정에 잠시 숨 고를 틈을 주고, 내실을 다지기 위해서다. 어쩌다 교회 개척을 위한 '학교'까지 열게 됐을까. 개척학교 숲에서 '코치'하고 있는 김종일(동네작은교회)·염종열(함께가는교회) 목사를 3월 27일 서울 삼일교회 D관에서 만났다. 개척학교 숲은 삼일교회 내 공간 일부를 월요일, 수요일에만 빌려 사용한다.

교회 개척하는데
'너 자신을 알라'고?

개척학교 숲은 원래 작은 초교파 목회자 모임으로 시작했다. 매주 월요일, 교단을 초월한 목회자들이 모여 책을 읽고 교제했다. 그렇게 함께하던 사람들이 서로 교회 개척 경험을 나눴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나누다 '다른 목회자들도 교회를 시작하기 전 준비를 잘했으면 좋겠다. 미리 준비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학교'를 계획하게 됐다.

1기부터 4기까지 매회 약 20명이 모여 교회 개척을 주제로 수업을 듣고 토론했다. 매해 3월에서 6월까지 4개월 동안 정규 과정을 진행했다. 가을 학기에는 기존 수료자와 새롭게 수료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교제를 나누는 네트워크 모임을 운영했다. 김종일 목사는 이렇게 목사들이 서로 교제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했다.

개척학교 숲은 봄과 가을, 두 학기로 운영한다. 교회론에 대한 강의부터 토론까지 오가는 내용은 다양하다. 사진 제공 개척학교 숲

개척학교 숲에는 다양한 동기와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참석한다. 전통적인 형태의 교회를 꿈꾸는 목사도 있고, 은퇴한 선교사가 교회를 다시 개척하기 위해 개척학교 숲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도 있었다. 기독교인이 모이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꾸는 평신도도 있었다. 담임목사 중심 구조에 염증을 느끼고 새로운 모습의 교회를 꿈꾸고 온 사람도 있었다.

염종열 / 1기에서 4기로 갈수록 젊은 목사 참석 비율이 높아졌어요. 전통적인 교회 모습에 한계를 느끼거나 '교회가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생각해, 뭔가 시도해 보기 위해 온 사람도 있었고요.

개척학교 숲이 다른 교회 세미나와 다른 건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참가자가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몇 주를 보낸다.

김종일 /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어떤 성향이고, 어떤 일을 하면 효과적인지 알아보며 시간을 보내요.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죠.

자기 내면을 돌아보고 성향을 파악한 이들은 후에 각종 강의를 듣는다. 한국교회 전체 지형과 교회 유형을 살펴본다. 현재 개척 방향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구체적인 개척 방법과 그 방법을 택하는 신학적 배경, 그 사람을 부르신 이유 등을 찾는다. 모든 강의를 들은 뒤에는 개척학교 숲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교회 개척 계획서'를 작성하는 일이다.

개척 계획서 세우기는 수료 전까지 고치고 또 고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으니 누구를 만나러 갈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지, 어떤 지역으로 가야 하는지 스스로 고민하고 찾게 한다. 재정 계획도 간략하게 넣는다. 이렇게 세운 계획을 여러 코치, 다양한 강사진, 동료 수강자들 앞에서 발표하고 점검받는 시간을 갖는다.

김종일 / 강의에서 여러 개척 사례를 제시하지만, '이것이 맞다'고 우리 것을 이식하려는 건 아닙니다. 코치들이 제시하는 내용, 여러 강사진의 강의를 다 들은 후, 수강생 스스로가 어떻게 교회를 개척할 것인지 계획을 세워요. 이름까지 완벽하게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은 후에 교회에서 그대로 따라하라고 하는 다른 세미나들과는 차이가 있죠.

염종열 목사(함께가는교회)는 "교회를 개척하려는 목사 스스로 계획서를 작성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염종열 / 수강생이 처음 만든 계획서가 계속 바뀌어요. 자기에 대한 이해 폭, 세상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수록, 신학·문화·상황을 이해하는 만큼 생각이 자랄 수 있거든요. 추동을 줘서 스스로 만들게 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이게 끝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돕습니다.

세상 속으로 스며드는
또 다른 교회의 모습

그렇게 계획서를 작성한 이들 중 개척한 교회 유형은 다양하다. 일반 카페 교회, 키즈 카페를 통해 사람들과 만나는 목사도 있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믿지 않는 이들과 호흡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주도로 청빙을 받아 간 목사도 있다. 교회를 소연주장처럼 꾸며 평소에는 공연장으로 활용하는 곳도 있다.

개척 사례를 보면 예배당을 지어 놓고 주일예배, 새벽 기도회, 수요 예배, 금요 철야 예배를 드리던 전통적인 교회 모습과 많이 다르다. 개척학교 숲에 지원한 사람들 모두가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꿈꾸며 오지는 않았을 터. 이견은 없었을까.

김종일 / 본인이 생각했던 것과 잘 맞지 않아 몇 번 듣다 안 나오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본인이 새로운 교회 모습을 수용하지 못하니 결국 발길을 끊으시더라고요. 다른 형태의 교회에서는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신학적인 면에서도 안 맞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염종열 / 사실 신학에서는 교회 형태를 말하지 않잖아요. 전통적인 교회 스타일을 고집하시는데 그런 분들은 그 길을 선택하시면 된다고 봐요. 몸에 안 맞는데 남 흉내만 내다 잘못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직접 교회 개척 계획서를 작성해 보라는 거예요. 자기를 잘 봐야 길을 찾을 수 있으니까. 개척학교 숲이 꼭 한 가지만 주장하는 건 아니거든요. 하지만 한국교회는 교회의 새로운 모습에 대한 상상력이 너무 부족해요. 그래서 조금씩 자극을 주고 자꾸 새로운 모습을 찾으라고 주문합니다.

기성 교회와 다른,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상상하는 일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만날 방법을 궁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가나안 교인이 증가하고, 교회를 이탈하는 젊은이들은 점점 늘어난다. 대형 교회에는 사람이 몰리지만, 비신자가 새로 오는 것보다 수평 이동이 더 많다.

소그룹으로 모여 교회 개척 계획서를 점검받는 시간도 있다. 사진 제공 개척학교 숲

김종일 / 가능성 보이는 작은 교회가 더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대형 교회가 자기네들끼리는 잘될지 모르지만 사회적으로는 고립된 것처럼 보이잖아요. 우리는 작은 교회가 잘 출발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막 출발한 교회들이 건강하게 지역이나 계층 안에서 존재할 수 있어야 해요. '이렇게 해도 된다'는 분위기를 계속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계속 협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 가야 해요.

염종열 / 교계에서 큰 교회들 보면 교인들이 수평 이동한 곳이 많아요. 이렇게 가다가는 기독교인이 점점 줄어들 가능성이 높죠. 기독교가 위기라는 것은 이미 탄핵 정국 때 어느 정도 증명이 됐어요. 기독교가 특정 연령에서는 우파 극우 세력으로 바뀌어 있고, 그것 때문에 비신자의 기독교 진입이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나마 개척 교회는 안 믿는 이들에게 관심이 있고, 세속 사회로 들어가려 노력합니다. 교회 규모가 작기 때문에 목사와 교인들이 여러 시험을 해 볼 수 있는 장점도 있죠. 지금 이 시대에 작은 교회가 중요한 건, 안 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이끌어 오는 '복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분명 이 시대에 맞는 전도 방법이 있을 거예요. 문제는 우리가 그 방법을 못 찾는다는 데 있죠. 그래서 함께 고민하고 돕는 것이고요.

김종일 / 현재 한국교회가 비그리스도인을 만나는 방법은 굉장히 한정적입니다. 여전히 많은 교회는 비그리스도인이 관심 두지 않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전하죠. 하지만 작은 교회는 방법을 다양화할 수 있어요. 한국교회에는 다양성을 지닌 작은 교회 여러 개가 필요합니다.

다시 교회 개척을 준비하는 목회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개척을 준비하는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물었다. 잠깐 고민하던 두 목사는 '자기를 아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염종열 / 자기 이해 없이 개척에 투신한다고 하면 힘들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이끌어 오셨고,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 가실까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다르죠.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고,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김종일 목사(동네작은교회)는 한국교회에 다양성을 지닌 작은 교회가 여러 개 필요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김종일 /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내가 나를 모르니까 상대방도, 사역도 잘 이해할 수 없었는데요.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을 알았으면 빨리 내려놔야 합니다. 관계도 그렇고 사역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염종열 / 교회를 개척하는 사람은 자기와 함께하는 교인 한 명, 한 명이 어떻게 하나님에게 부르심을 받았고, 그 부르심을 어떻게 삶 속에 잘 구현해 낼 수 있는지를 돕는 역할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셔널 처치'를 지향하는 목사는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며, 하나님이 이 사람에게 어떤 꿈을 가지셨는지 알 수 있도록 훈련하고 나중에 그를 부르신 자리로 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셔널 처치'는 모습이 특이한 교회, 어떤 그룹에 특화한 교회가 아닙니다.

개척학교 숲은 당분간 휴식기를 갖는다. 현재 대한성공회 브렌든선교연구소와 함께 올해 가을을 목표로 '파이오니아 프로그램' 개설을 논의하고 있다. 내실을 강화한 개척학교 숲은 2018년 3월, 5기를 모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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