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이 아무개 목사는 5년 전 교회를 개척했다. 서울 강남에 있는 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7년 지내다 교회를 나왔다. 기성 교회 시스템에 의문이 생겼다. 교인들이 교회만 왔다 갔다 하며 신앙생활이 아닌 종교 생활을 하는 건 아닐까. 교인들 스스로가 묵상과 독서로 하나님을 자세히 알아 가길 바랐다.

처음에는 이 목사 생각대로 교회가 잘 운영되는 듯했다. 5년이 지나면서 교인이 늘고 전용 공간을 마련했다. 그러자 교회가 점점 기성 교회와 비슷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요새 재정비를 고민 중이다.

국형준 목사(예수가족교회)도 사역 방향을 고민하는 기로에 서 있다. 교회를 개척한 지 두 해가 지났다. 그도 한 대형 교회에서 오랫동안 부목사로 지냈다. 출석 교인 3,000명이 7,000명으로 늘어나는 과정도 지켜봤다. 큰 교회에 있다 보니 한 사람을 찾아 나서야겠다는 마음이 흐려졌다.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옛 제자들과 성경 공부 모임을 하며 교회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람이 교회다'라는 생각으로 전용 공간을 갖지 않았다. 사무실·학교·학원 등 주말에 비는 공간에서 주일예배를 했다. 지역 안에 갈등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교회가 되고 싶은데, 이를 어떻게 구체화할지 고민이다.

최주광 목사(교회, 흩어지는 사람들)도 개척 교회 목사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선교를 준비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생각을 바꿨다. 한국 사회 안에 교회가 해야 할 일을 고민했다. 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있던 중, 교회를 떠도는 기독교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신들만의 '교회', '믿음'을 찾는 '난민'이었다. 이들을 위한 목회를 하고 싶어 교회를 개척했다.

지난 2월 20일, 미션얼 처치에 관심 있는 목회자·신학생이 한자리에 모였다. 페이스북 그룹 '모험으로 나서는 미션얼'이 이번 시간을 준비했다. 참석자 대다수는 교회를 개척했거나 앞으로 개척할 이들이다. 이들은 미션얼 처치를 놓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했다. 여정훈 전도사(나무공동체)에게 영국에서 탄생한 과정을 들은 후 참석자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미션얼 처치를 지향하고 교회를 개척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는 말이 쏟아졌다.

 2월 20일, 미션얼 처치에 관심 있는 목회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상과 현실의 거리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사람들 사이에 교회가 없다

여정훈 전도사는 2004년 '잉글랜드 성공회 선교와 사회 문제 위원회'가 발간한 <선교형 교회>(비아)를 중심으로, 오늘날 미셔널 처치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설명했다.

잉글랜드 성공회는 마을 단위로 교회를 두고 있다. 행정구역 중심으로 교회를 세웠다. 잉글랜드 성공회에서 교회 개척은 잉글랜드 행정구역 상 교회가 없는 지역에 사제를 파송해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가 있는 마을에 또 다른 잉글랜드 성공회 교회가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지역을 근거로 두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교회였다.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사제들은 당황했다. 이후, 1991년 잉글랜드 성공회는 '새로운 교회'(a fresh expressions of church)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전담 기구를 만들어 이 모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94년 출간한 <새 땅 개척하기>가 첫 보고서다. 이날 여정훈 전도사가 소개한 <선교형 교회>는 두 번째 보고서다.

<새 땅 개척하기>에서는 '새로운 교회'를 기존 행정구역 중심 교회 체제의 보조 수단으로 여겼다. 10년 후 출간된 <선교형 교회>는 더 대담한 분석을 내놓는다. 지역을 근거로 두지 않는 '네트워크 중심 교회'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새로운 교회' 지위가, 기존 교회 체제를 보조하는 수단에서 동등한 위치로 격상됐다.

<선교형 교회>는 미국 가톨릭 빈센트 도노반 신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빈센트 도노반 신부는 한 문화권의 구성원이 자기 문화의 언어로 기독교 신앙을 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미국 선교사 도널브 맥가브란에 따르면, (타문화권 사람에게) 문화적 경계를 넘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보다 기존 문화 안에 머물며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돕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여정훈 전도사는 지역 중심 교회가 네트워크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은 패러다임을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기존 패러다임이 지닌 문제의식이 '교회에 사람이 없다'였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지닌 문제의식은 성육신한 예수를 닮아 다른 문화권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지역 중심 교회가 전도 대상자 삶에 깊이 접근하지 못했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여정훈 전도사는 네트워크 중심 교회가 '사람들 사이에 교회가 없다'를 문제로 본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교인·공간·사례비 고민하는
미션얼 처치 목사들

발제가 끝나자 참석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잉글랜드에서 성공한 미셔널 처치와 달리, 한국은 아직 어려운 요건이 많다는 데 다들 동감했다.

"영국에서 미셔널 처치가 성공한 이유는, 기존 제도권 교회와 건강한 긴장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기존 체제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작한 교회였지만, 제도권 안에 포함돼 있었다. 본부에서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한국교회는 다르다. 교회를 개척하고 나면, 부교역자로 있을 때 경험하지 못한 고립을 경험한다. 모든 문제를 혼자 떠안고 해결해야 한다. 기성 교회가 새로운 목회 방식을 시도하는 미션얼 처치를 무시하거나 '적'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기성 교회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지 방안이 필요하다." (구균하 신부)

"고립한다는 지적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단이 미션얼 처치를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하도록 다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오늘 이 시간처럼 목회자들이 서로 만나 교제하고 네트워크를 이루는 게 의미가 있다." (여정훈 전도사)

참석자들은 한국에서는 미션얼 처치가 어려운 형편에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미션얼 처치는 자칫 목회자 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다. 기성 교회 체제에 익숙한 교인들이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호소하게 된다. 개척 초기, 사역 방향을 확실히 정하지 않으면 이후 교인들이 생각하는 교회 비전이 서로 달라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우리 교회에는 집사가 4명이다. 올해 초, 4명 모두 힘들다면서 갑자기 1년 쉬겠다고 하더라.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리 교회는 아무것도 안 한다. 굳이 있다면 묵상과 독서뿐이다. 교인들은 '영적 공급이 부족하다', '정체성이 애매하다'며 힘들다고 했다. 직분자가 되었지만 교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스스로 혼란스럽고 지쳤던 거다. 목사가 교회 비전, 사역 방향을 추상적으로만 이야기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이중임 목사)

"미션얼 처치에 관심이 많아 교회를 개척했지만, 교인 간 갈등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목회를 접어야 했다. 처음에는 교인 12명과 모임을 잘해 왔다. 1년이 지나자 다들 자기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교인들이 생각하는 교회 비전·방향이 서로 달랐다는 것이다. 견해차가 심했는데, 이를 조율하기가 어려웠다." (이동진 목사)

일부 참석자는 교인들이 생각보다 따라와 주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중직 목회 이야기도 나왔다. 참석자 대다수는 이중직 목회를 하고 있고, 그게 맞다고 봤다. 저마다 목수, 강사, 상담가 등 여러 직업을 갖고 있었다. 이동진 목사는 이중직 목회가 맞다고 보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중직 목회를 무조건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지금은 철회했다.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교회를 개척하고 나서, 부업으로 장애인 활동 보조인을 했다. 일이 힘들어 목회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교인들을 만나며 목양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었다. 어디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몸과 마음만 지쳐 갔다. 결국 교인들과 회의를 열어 목회를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메우는 게 쉽지 않았다." (이동진 목사)

"이중직 목회를 할 때 주의할 게 하나 있다. 목회를 본업으로 여기고 다른 일은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마음가짐이다. 나는 주중에 목수 일을 하는데,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적절한 대화가 필요하다. 막무가내로 쉬어 버리면 동료들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평일에 더 열심히 일한다. 목회하는 만큼 밖에서 하는 일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최주광 목사)

한 참석자는 이중직 목회를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이중직 목회를 시작하니 생각이 달라졌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개척 교회 목사들만 참석했던 건 아니다. 미션얼 처치에 관심을 갖고 준비하는 신학생들도 있었다. 선배 목사들이 어렵고 힘든 얘기를 털어놓자, 이들은 사전 준비를 잘해야겠다고 했다.

"미션얼 처치 목사들이 어떻게 초심을 유지하고 생존하는지 궁금했다. 기본은 준비가 되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영진 전도사)

"강의 내용과 참석한 목사들 이야기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꼈다. 선교적 교회가 새로운 교회로 떠오르긴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김동명 전도사)

"교회를 개척하면 동역자를 어떻게 만날지, 공간은 어떻게 구할지, 수입은 어떻게 해결할지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게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한 문장이 마음에 계속 맴돈다. 오늘날 사람들 사이에 교회가 없다는 말이다." (이민우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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