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XX들은 신이 없다는 걸 확신하는 게 틀림없어."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한 네티즌이 성범죄 저지른 목사를 두둔하는 댓글들을 보고 남긴 글이라고 한다. SNS에서 누군가가 이 같은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실천적 무신론자'는 리처드 도킨스가 아닌 기독교인이라고 성토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기독교인의 도덕 불감증이 오히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목회자를 비롯한 기독교인의 범죄를 기사로 접하는 게 흔한 일이 되어 버린 현실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와 같은 기독교 현실을 교리적으로 진단하는 포럼이 얼마 전 열렸다. 12월 5~6일 있었던 미래교회포럼이다. '이신칭의, 이 시대의 면죄부인가?'라는 주제였다. 한국교회에서 가르치는 칭의론과 성화론을 재점검하는 시간이었다. 김세윤 교수(미국 풀러신학교), 박영돈 교수(고려신학대학원), 권연경 교수(숭실대학교)가 강의했다. 각자 칭의론과 성화론에 대해 어느 정도 견해 차를 보였지만, 한국교회가 이신칭의를 잘못 가르치고 있다는 데는 뜻을 같이했다.

신학자들 강의를 현장 목회자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이틀 내내 포럼에 참석한 이문식 목사(광교산울교회)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 목사는 교회를 네 번 분립 개척한 목회자다. 네 번째에는 15년째 담임하던 교회에서 나와, 본인이 직접 개척지로 나서 주목을 받았다.

인터뷰는 12월 8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진행했다. 이 목사는 시국 기도회에 참석한 데 이어 인터뷰에 나섰다.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광화문 한 카페에서 이문식 목사와 만났다. 어떤 질문에도 거침없이 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이신칭의, 이 시대의 면죄부인가?' 포럼 어땠나. 전체적으로 평가해 달라.

주제가 '이신칭의, 이 시대의 면죄부인가'다. (이신칭의는) 면죄부 역할을 했다. 그래서 이 주제로 모였던 거다. 이신칭의가 행위를 수반하지 않는 구원파적 신앙으로 한국 사회에서 기능했다는 사실을 다들 인정하고 있다. 죄를 지어도 예수 믿고 속죄받아 최소한 구원은 받는다는 자기 위로의 복음에 매몰돼 있었다. 그 결과 오늘날 개신교 교인들이 행위 없는 믿음과 값싼 은혜로 전락했다는 위기의식은 모두에게 있었다. 이번 포럼은 현상에 대한 안타까움, 답답함만으로 끝난 게 아니라 근원적이고 신학적 통찰, 즉 우리 구원론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근원적 신학적 통찰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주 강사였던 김세윤 교수는 하나님나라 관점에서 칭의론을 새롭게 보는 중요한 강의를 했다. 박영돈 교수가 김 교수 견해에 대한 몇 가지 다른 의견이나 질문을 '전통적인 칼뱅주의'라는 개혁주의 칭의론 관점에서 제시했다. 신약학자는 대부분 김 교수와 비슷한 입장 아니겠나. 박영돈 교수는 조직신학자기 때문에 성서학 입장보다 교의학 관점에서 많이 정돈했다고 볼 수 있다.

권연경 교수는 루터파와 개신교, 가톨릭 사이의 공동적인 신앙고백 선언을 다뤘다. 칭의론과 구원론을 상호 접근했지만 괴리가 크다. 그 흐름을 설명했고, 권 교수 역시 신약학자라 그런지 서로 긴장을 유지하는 게 좋다는 입장이었다. 그것을 교의학에서 어떤 교리, 도그마로 받아들여 칭의론을 평면화시키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김세윤 교수는 최근 바울신학의 새 관점 학파에서 얘기하는 칭의론의 문제점도 정리했다. 장점도 설명했고 그럼에도 갖고 있는 문제점, 새 관점 학파가 개혁파에서 말하는 법정적 칭의론을 간과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기 입장을 옛 관점 학파의 새로운 통찰이라고 이야기하며 종교개혁 전통에서 칭의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설명했다.

- '구원의 탈락'에 대한 입장 차가 이슈가 되기도 했다.

성경에는 구원의 확신을 주는 본문이 분명히 있다. 칼뱅주의에서 말하는 예정론·견인론도 그래서 나왔다. 그리고 분명히 신약성경에 명령형(Imperative) 본문을 보면 구원에서 떨어질 것을 경고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9장에서는 바울이 구원에서 탈락할 것을 두려워한다고 분명히 이야기한다. 두 본문이 상존한다.

이번 포럼에서 공감한 내용은 어느 한 본문으로 다른 한 본문을 완전히 엎거나 의미를 축소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신학함의 자세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경 속의 충돌과 모순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 말씀으로 이해하고, '이미'와 '아직', 구원의 '확정성'과 '불안정성' 사이의 긴장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훨씬 더 건강하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실 때의 전략적 모호성이라고 생각한다. 교의학자들은 아무래도 일관성과 정태적으로, 평면적으로 묘사하고 싶어 할 텐데 복음 자체가 다중성을 갖고 있다. 그렇게 이해하는 게 훨씬 좋을 것 같다.

미래교회포럼 강사로 나온 권연경 교수, 김세윤 교수, 박영돈 교수. 뉴스앤조이 박요셉

다만 목회적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교회에서 신앙생활 동기를 부여할 때 "너 이거 잘못하면 탈락한다"고 학사 경고를 해 줘야 하는 학생이 있다. 반면 "지금 잘하고 있다. 영광이 있다. 아주 확실하다"라고 격려해 줄 때 더 열심히 할 학생이 있다. 목회적으로 칼뱅의 견인론적 확신으로 신앙의 열매를 맺도록 할 수 있고, 60점 미만에서 왔다 갔다 하면 "넌 탈락할 것"이라고 경고해 신앙의 온전함을 이루게 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바울이 쓴 서신도 보면, 고린도교회 같은 곳에 얘기할 때는 경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 목회자도 성도들 신앙 상태나 자신의 신앙 상태에 따라서 성경을 읽을 때 강조하는 부분이 다를 수 있다. 자연스럽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최갑종 총장(백석대학교)이 말했다. 성경에는 구원의 확실성을 얘기하는 직설법 표현도 있고, 탈락할 것을 경고하는 표현도 있다고. 다만 탈락 가능성에 대한 교훈을 강조하기 전에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직설법의 표현이 나온다고 했다. 탈락만 얘기하지 않는다. 하나님 구원의 은총을 충분히 얘기하면서 탈락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도 있다고 경고하기 때문에 성서의 용법, 강조점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 문맥을 살피지 않고 그저 한쪽만 뽑아 교리를 만들면 기독교 역사에 있었던 칼뱅주의와 신인협동설의 대립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명제적 신앙 논쟁은 성서학을 하는 자세가 아니지 않겠는가 하는 얘기도 했다. 칼뱅도 해석학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칼뱅 당시 교회 상황과 칼뱅이 왜 그 당시 교회에서 성화 교리를 강화하고 만들고 정돈했는지 이해하고 해석하면 칼뱅을 해석할 때 정확한 해석이 된다. 맥락을 무시하고 칼뱅을 해석하면 칼뱅 말 자체가 또 하나의 도그마가 된다. 경직성이 생겨서 다른 여러 진리를 제거하는 역기능을 한다. 그런 유명한 말이 있다. 칼뱅이 천국에서 "I'm not calvinist"라고 말한다고. 도그마로서 칼뱅 이해는 극복해야 한다.

- 현시점에서 칭의와 성화 논쟁이 어떤 의미가 있나.

딱 하나다. 지난 개신교 역사 속에서 칭의론을 이야기할 때 루터가 강조됐고, 그게 문제가 있어서 칼뱅은 성화론 중심으로 신학을 짠다. 반대로 칭의와 성화를 둘로 나누어 칭의를 더 중요시 여기고 성화를 보완적인 것으로 신학을 짜면 부작용이 생긴다.

개신교는 지난 400년 동안, 인간의 타락한 성품 때문도 있지만 "나는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까" 하면서 성화가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요즘에 나온 신학적 반성이 칭의와 성화를 이분법으로 나누거나 모호하게 구분해서 '성화 없는 구원'을 이야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 이런 논의가 목회 현장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과거처럼 구원파 신앙에 안주하던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까. 하나님의 구원과 윤리적 명령, 성화의 명령 사이에서 긴장을 갖고 신앙생활하게 만든다. 현장 목회자 입장에서 보면, 교인들에게 '성경을 좀 더 제대로 가르쳐야 되겠다', '균형을 잡고 긴장을 갖고 총체적으로 가르쳐야 되겠다', '값싼 은혜, 행위 없는 믿음으로 성도들을 타락시켜선 안 되겠다'와 같은 목회적 자각이 생긴다.

이 목사는 이번 포럼이 복음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을 통찰하는 중요한 자리였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박은조 목사(은혜샘물교회)가 포럼 '초대의 글'에 남긴 걸 보면, "최순실 최순득 자매는 한 지역 교회를 섬기는 집사로서 성도로서 성실했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라는 문제 제기가 나온다. 어떻게 보면 한국교회의 칭의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도 현 시국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말로 들린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신학적인 것이 그렇게 파편적인 죄까지 일일이 영향을 미쳤는지 모르겠다. 기독교 관점 없이 인간의 공공선만으로 봐도 분명 죄다. 다만 개신교 전체가 삶에서의 윤리를 구원의 은총만큼 가르치지 않았다. 얼마 전 <경향신문> 조사에 따르면 파워 엘리트 대부분이 서울대 출신이고 기독교인이다. 한국 기독교는 이제 한국 사회 주류 세력이다. 권력과 돈을 쥔 사람들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다. 고위 공무원 비리 문제가 나오면 다 기독교인이 연관되고, 방산 비리까지 기독교인 장로와 목사 장교가 끼어 있다. 거기에 앞장선 사람들의 죄와 악에 침묵한 교회나 목회자들 책임이 있다. 총체적으로 이런 주제와 연관이 있다고 해석하는 이유다.

개신교에는 언약파(covenant) 전통이 있다. 장 칼뱅, 존 녹스 이후 사무엘 루터포드의 <Lex Rex>(법과 군주)라는 책이 있다. 거기에 보면 왕권신수설을 배격하는 대목이 나온다. 사무엘하 5장 1-5절에 보면 하나님이 왕을 세울 때 백성의 대표가 다윗과 언약을 맺고 백성의 대표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다. 루터포드가 이에 기반해 왕권신수설을 배격하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한다. 백성들의 언약 관계를 파기한 왕은 더 이상 하나님의 거룩한 왕이 아니고 사악하고 타락한 왕에 불과하다고 얘기한다.

거기서부터 국민 저항권이 일어나고 청교도혁명이 시작되고 입헌군주제와 시민 민주주의가 도입됐다. 이런 흐름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 하야가 시대적으로도 신학적으로도 맞다. 언약파 신학을 따르는 개혁파 전통, 개신교 전통에서는 용납할 수가 없다.

- 설교할 때 포럼에서 이야기하는 교리적인 부분을 설명하면 교인들이 잘 받아들일까.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사회 현상 등과 교리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사회·문화·정치·경제 현실의 문제가 설교 주제가 되거나, 혹은 설교를 현실에 적용할 때 항상 아쉬운 건 개신교 목사들의 인문학적 소양이다.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야 한다. 칼뱅의 제네바아카데미도 3년짜리 신학 수업을 위해 어학·인문학·수사학·철학을 4년 배웠다. 400년 전에도 인문학 소양을 강조했는데, 지금 목회자들에게 부족하다. 신학 교육 체제도 문제다.

사회적·문화적 이슈에 부닥치면 목회자들이 논리의 비약, 이해 부족이 드러난다. 성경이나 교리를 이용해 간극을 무리하게 메우고 해석하려다 보니 일반 교인들이 볼 때 비난을 받거나 동의를 못 받는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갖고 있는 약점이다. 목회자들이 성경과 신학에 대한 본질적인 이번과 같은 연구와 동시에 사회·역사·인문·철학·문화의 흐름을 본질에서 볼 수 있는 인문학적 통찰도 함께 키워야 한다. 공부를 충분히 한 후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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