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믿음 생활을 아무리 잘했다 한들, 지금은 하나님께 등 돌리고 성령에 민감하지 않으면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 사람들이 김세윤 교수가 이상한 말 한다고 비판하는데, 내가 하는 말이 아니다. 바울이 한 말이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하나님나라 유업을 못 받는다고 바울은 엄연히 경고한다."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12월 5일부터 이틀간 연동교회(이성희 목사)에서 열린 미래교회포럼의 한 장면.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느냐는 한 참석자 질문에 김세윤 교수가 답했다. 주최 측은 다른 강연과 달리 김 교수 강의에 6시간을 할애했다. 강의 주제는 '사도 바울의 복음(바울의 칭의의 복음과 예수의 하나님나라의 복음)'.

바울신학 대가로 알려진 김세윤 교수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세상을 구속하는 묵시적 세계관으로 칭의론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칭의와 성화를 구별했던 입장을 비판하며 이 둘을 통합해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칭의는 자질을 얻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한다고 했다. 김 교수 강의를 요약했다.

김 교수는 묵시적 세계관을 가지고 칭의론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칭의의 완성은 사단에 대한 궁극적 승리

복음 선포는 하나님나라가 사단의 나라를 물리치는 도식을 갖고 있다. 복음이 기쁜 소식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게 통치권을 위임해 사단의 권세를 꺾었다는 데 있다.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세상을 하나님나라로 구속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 세계가 하나님의 의와 화평과 생명 아래 있게 했다.

바울은 칭의를 예수 그리스도가 사단의 세력에 최후 승리한 것으로 표현한다. 예수가 재림할 때, 우리는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 의를 행한 자는 구원을 얻고 악을 행한 자는 심판을 받는다.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한 예수 그리스도는 심판대 옆에서 우리를 중보한다. 칭의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칭의론은 이러한 묵시적 세계관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메시아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 높임을 받고 모든 사단의 세력을 멸망시키는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사면으로 끝나지 않는다

의는 관계론적 의미를 지닌다. 관계에서 의무를 다하는 게 의다. 모든 관계는 의무가 요구된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선생과 제자 등 각자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하나님과 피조 세계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예가 이스라엘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었다. 이 언약에 신실하셨다. 아담과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 뜻에 순종하지 않고 의를 지키지 못했다. 만약 하나님이 아담과 이스라엘을 저버렸다면? 우리는 소망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신실하셨다. 우리를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과 새 언약의 제사로 내어놓았다. 그리스도 사건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의다. 이 사건을 선포하는 복음에 하나님 의가 있다. 이를 믿는 이에겐 그리스도 사건이 효력을 발생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로 죄가 씻기고 하나님 관계가 회복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사면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칭의는 죄를 사면받고 '의인'이라 칭함받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것은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 통치를 받는 관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다.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고자 했던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순종하는 관계로 회복되는 것이다.

칭의는 주권의 '전이'다. 사단의 죄와 죽음의 나라에서 하나님 의와 생명의 나라로 이전되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 주권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말한다. 믿음의 순종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는 것을 말한다.

성령과 예수가 칭의론을 완성시킨다고 김세윤 교수는 설명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칭의론과 윤리는 분리할 수 없어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처음 고백할 때 다 이뤄지고, 예수 그리스도 재림 때 최후 심판에서 자동으로 의롭다고 확인되는 게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칭의는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는 '의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 들어가 통치에 따르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는 최후 심판까지 계속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 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포함한다. 이것이 칭의의 현재 단계로, 전통 기독교가 '성화'라 이름을 잘못 붙인 것이다.

칭의, 성화 순서를 시간적인 순서가 아니라 논리적인 순서라고 말하는 조직신학자들이 있다. 시간이든 논리든 칭의-성화라는 개념으로 보는 건 사실상 칭의와 성화를 분리하는 조치다. 이는 윤리와 분리된 칭의론을 낳을 수밖에 없다.

전통 개신교는 칭의를 마치 세례 때 다 이뤄지는 것처럼 여긴다. 그 이후에는 성화가 된다고 여긴다. 사실상 최후 심판을 무력화시키는 거다. 하지만 바울이 최후 심판을 얘기하는 건 엄중한 경고를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 서 있도록 바울은 경고한다.

칭의론과 윤리는 하나의 통합체로서 서로 분리할 수 없다. 의인이라 칭함받은 자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서 있는 자다. 하나님나라로 이전된 자이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의 순종을 해야 한다.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닌 의의 종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몸을 죄에 바치지 말고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성령이 우리를 깨우치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종말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변호사 노릇을 한다. 성령과 예수가 칭의론을 완성시킨다.

성령은 우리가 오늘날 가치를 판단하고 선택하는 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사단의 유혹을 뿌리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를 수 있는 힘을 준다. 최후 심판 때 하나님의 심판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옆에서 우리를 중보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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