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이전과 확실히 다르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시작된 포스트잇 추모 물결이 구의역 희생자 추모로 이어지고 있다. 추모 열기를 보면 일각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처럼 이 모든 일이 특정 정치 세력이 개입해서 성사된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강남역 살인 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 아침, 누군가 강남역 10번 출구에 포스트잇과 펜을 가져다 놓았다. 언론이 사건을 보도한 후, SNS를 중심으로 피해자를 위해 '살아남았다'는 문구를 포스트잇에 적어 사건 현장과 300미터 거리인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여 달라는 글이 퍼져 나간 뒤였다.

하나둘 붙던 포스트잇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 물결을 이뤘다. 하루 만에 형형색색의 포스트잇이 강남역 10번 출구를 뒤덮었다. 6명의 남성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만난 첫 번째 여성을 살해했다는 가해자 증언에 여론은 들끓었다. 특별히 많은 여성이 추모에 발 벗고 나섰다.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그동안 겪었던 끔찍했던 기억을 털어놓는 일도 많았다.

페이스북에는 '강남역 10번 출구'라는 페이지도 생겼다. 이곳에 강남역 살인 사건 추모와 관련한 각종 정보가 올라왔다. 전국 여러 곳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소개하고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한신대·계원예대·서울예대·홍익대 등 대학교를 비롯해 대전·대구·부산·진주 시내 곳곳에서 진행된 추모 행사를 중계했다.

▲ 누군가를 추모하기 위해 포스트잇을 붙이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공용 화장실에 갔다 살해당한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강남역 10번 출구(위)를 뒤덮었다.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치어 숨진 19세 청년의 죽음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구의역 승강장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심규원
 

강남역에서 시작된 포스트잇 추모 물결은 구의역으로 이어졌다. 5월 31일,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19세 청년이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스크린 도어 정비 작업을 하다 들어오는 열차에 치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가방 안에 컵라면이 있었다는 것과 열악한 근무 환경이 보도되면서 그를 추모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사고 다음날 누군가 구의역 승강장 9-4 지점 스크린 도어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다. 희생자가 사고를 당한 자리였다. 드문드문 붙던 포스트잇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구의역에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더 많은 사람이 구의역을 찾았다. 구의역을 찾은 추모객들은 연령·성별에 상관없었다. 62세 남성도 추모 메시지를 남겼고 희생자 같은 아들을 두었을 법한 나이의 중년 여성은 추모 메시지를 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메시지였다.

강남역 살인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추모를 주도하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생겼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9-4 승강장'이라는 이름의 페이지에는 강남역 때와 마찬가지로 전국 각지의 추모 정보가 올라오고 있다. 그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 죽어야 했던 한 청년의 가슴 아픈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이 전국 곳곳에서 그를 기억하는 자리를 만들고 있다.

포스트잇 추모 물결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추세인 건 분명하다. 가해자 눈에 띈 첫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어야 했던 강남역 살인 사건 피해자가 나였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여성들은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어 가방에 컵라면을 넣고 다니던 19세 꽃다운 청년의 죽음에도 시민들이 함께 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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