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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언니들이 말하는 '내가 겪은 여성 혐오'
사회·교회서 누구나 겪는 성추행과 차별…"남성들, 분노 전에 여성 이야기 먼저 듣길"
  • 이은혜 기자 (eunlee@newsnjoy.or.kr)
  • 승인 2016.05.2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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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으로 '여성 혐오'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찰은, 가해 남성 김 아무개 씨가 2008년부터 조현병을 앓아 왔기에 이번 살인 사건이 '묻지 마 살인'도 '여성 혐오 범죄'도 아니라고 발표했다.

여성 혐오 사건이든 아니든, 여성 한 명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처참히 살해당했다. 사건 발생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강남역 10번 출구에 피해자를 추모하는 글이 담긴 포스트잇이 붙기 시작했다. 20~30대 여성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많은 여성이 한 사안을 놓고 한꺼번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이들은 "나는 살아남았다"는 문장으로 이번 사건을 추모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의 목소리에 불만인 남성도 많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세월호 희생자 등을 조롱하며 희화화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일간베스트저장소 회원들이 "남자라서 죽은 천안함 용사들을 잊지 맙시다. 일간베스트저장소 노무현 외 일동"이라고 쓰인 화환을 현장에 보내면서 추모 열기는 조금 다른 국면을 맞았다.

여성 혐오인가 아닌가를 논하던 것이 이제는 남성 대 여성, 성 대결 구도로 옮아가고 있다. 여성이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고 있다며 불쾌감을 표시하는 목소리가 높다.

<뉴스앤조이>는 여성의 목소리를 듣기로 했다. 그동안 한국 사회와 교회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겪은 폭력과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여성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강남순 교수(텍사스크리스천대)가 지적한 것처럼 여성 혐오인가 아닌가에 머물지 않고 논의가 더 진전되길 원했다.

   
▲ 5월 22일 서울 청파동 <뉴스앤조이> 사무실을 30대 여성 세 명이 찾았다. '강남 살인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여성으로 살면서 겪은 일들을 나누기 위해서다. 왼쪽부터 박소현 씨, 박진영 씨, 홍지숙 씨. ⓒ뉴스앤조이 최유리

공통점은 여성·기독교인, 그녀들의 수다

5월 22일 오후 5시, 30대 여성 세 명이 서울 청파동 <뉴스앤조이> 사무실을 찾았다. 거창한 담론을 제시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을 받고, 직장 생활을 했고,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주체적인 목소리도 내 온 사람들이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자신의 생각을 나누기 위해서다. 한마디로 '좀 들어 보자'는 취지였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던 탓인지 배고픈 줄도 모르고 이야기는 계속됐다.

박소현 씨는 기독교계 출판사에서 일하다 지금은 육아 때문에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교회를 떠나 교회 운영이 꽤 진보적인 것으로 알려진 교회로 옮겨 지금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진보적인 교회라고 하지만 여성 문제에 대해서는 그 안에서도 크게 다른 점을 찾지 못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스트레스는 더했다. 교회 내 여성 역할과 위치 등을 고민하다 지금은 대한성공회에서 신앙생활하며 만족하고 있다.

박진영 씨는 '전직' 목사다.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을 전공하고 같은 학교에서 목회학 석사과정도 마쳤다. 석사과정을 마친 후 순수 미술을 배우기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5년 살았다. 박진영 씨는 그곳에서 성 소수자 친구·교수들과 만나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180도 바뀌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예술과 신학의 접목을 꿈꾸며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 현장으로 갔다. 하지만 성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기존 교회와 너무 달랐기에 목회를 이어 갈 수 없었다. 지금은 전공을 살려 스타트 업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홍지숙 씨는 얼마 전 <뉴스앤조이> 기사로도 소개한 적 있다. 프리랜서 편집 디자이너이자 지난 총선에서 녹색당 의왕·과천 지역 후보로 나섰다. 8살 때부터 지금 다니는 교회에서 신앙생활했고 대학교에서 선교 단체 CCC에 들어가면서 신앙의 전기를 맞았다.

   
▲ 박진영 씨는 목사다. 그는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쳤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5년간 순수 미술을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와 목사 안수를 받았다. 현장에서 목회자로 지내면서 느낀 한계 등을 풀어 놨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이번 사건, '여성 혐오'로만 볼 수 있을까

애초에 이 사건에 '여성 혐오' 딱지가 붙은 것은 가해자 김 아무개 씨가 경찰에서 한 증언과 행동 때문이다. 그는 체포 후 첫 진술에서 "여자들이 나를 항상 무시해 아무 여성이나 살해하려고 화장실에 숨어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범행 당시, 남성 6명이 같은 화장실을 찾았지만 첫 번째 찾아온 여성을 살해한 것이 추가로 밝혀져 더욱 '여성 혐오'에 무게가 실렸다.

박소현 / 한 사건에 하나의 이유만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선택지처럼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없듯이 여성 혐오와 정신 질환을 범행의 이유로 같이 생각할 수밖에 없다. 본인이 여성에게 무시당했다고 이야기했고 정신 질환 병력도 같이 참고해야 하는데 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범행이 정신 이상으로 인한 일이라는 건 납득이 가는데 분명 그 동기가 여성 혐오였다. 왜 서로 이게 맞다 저게 맞다 하면서 꼭 골라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박진영 / 동의한다. 이번 일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동시에 여성 혐오를 갖고 있는 사람이 저지른 사건이다. 이분법적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논지를 흐리기 때문에 둘을 떼어 놓고 말할 수 없다.

홍지숙 / 나는 많은 여성이 이번 일에 분개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놀랐다. '왜 이렇게 반응하지?' 생각했는데 관련 기사와 댓글을 보니 두려움에 떨게 되더라. 남성들이 단 댓글 중에 "너를 성폭행해서 죽여 버리겠다"는 말도 있는데 그런 댓글들이 너무 무서웠다.

이번 사건으로 과거에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또는 고통스러웠지만 적당히 무시하고 지워 버렸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기도 했다. 우리가 어느 하나를 택하기 전에 멈춰서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박소현 / 그동안 여자를 살해한 범죄는 많았다.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도 많았는데 왜 이렇게 이 사건에 꽂혔나 생각해 봤더니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인 것 같다. 세월호 때 많은 사람들이 추모 행렬에 동참했던 것도 내 가족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 1차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도 누구나 잘 다니던 강남역 번화가, 아무 의심 없이 다니던 공용 화장실에서 일어났다. 흉악범들의 범죄는 뭔가 으슥한 곳, 산속에 끌려가거나 납치되는,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번에는 화장실 갔다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사람들이 '나'일 수도 있겠다는 감정이입이 된 것 같다.

   
▲ 홍지숙 씨는 20대 총선에서 녹색당 지역구 후보로 출마했다. 여성주의에 막 관심을 기울일 무렵 이번 '강남 살인 사건'이 터졌다. 그는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홍지숙 / 이번에는 분명히 단지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죽었다. 맨 처음 기사화됐을 때 '목사 꿈꾸던 신학생, 여자가 무시해서 묻지 마 살인'이란 주제로 나갔다. 나는 벌써부터 모든 걸 깔끔하게 규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일부러 여성 혐오 프레임으로 가는 것 같다.

박진영 / '여성 혐오'라는 단어만 강조되는 게 조금 불만이다. 여성 혐오는 사실 여성 차별, 폭행 등 여성에 관련된 모든 것이다. '여성'에만 모든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여자는 피해자, 남자는 가해자라고 비치게 만든다. 단어 선택을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강남순 교수님 글에 공감한다. 여성 남성 대결 구도로 만들어 가기 전에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 문화를 더 강조하면 좋겠다. 여성만 피해자가 아니라 남성도 피해자고, 남성만 가해자가 아니라 이 가부장 문화를 계속 재생산해 온 여자도 가해자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다 같이 반성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여성 혐오'라는 단어가 전체 숲을 보는 맥락을 차단한다고 생각한다.

너도 겪고 나도 겪은 '여성 혐오'

이번 사건 이후 많은 여성들이 기억 저편에 묻어 두었던 끔찍한 기억을 떠올렸다. 살아가면서 '여자라서' 겪었던 일들이다. 이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 언제 또 비슷한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날 처참하게 살해당한 그 여성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었기 때문이다. 이날 대화에서도 살면서 겪었던 자신들의 '불편한' 기억들이 소환됐다.

박소현 / 이 일이 있고 나서 집 앞에서 택시를 탔는데 스스로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예전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 번은 택시 기사가 자기 가족 얘기로 상담을 청하길래 응했다. 대화 분위기는 좋았다.

목적지에 다다라서 "저 앞에서 내려 주세요"라고 했는데 그 택시 기사가 활짝 웃으면서 "내가 여기서 안 내려 주면 어떻게 할 건데요?"라고 하는 거다. 물론 그 아저씨는 자기 흥에 겨워서 한다고 한 농담이었겠지만 이런 농담이 여자 입장에서는 위협이자 협박으로 들린다. 객관적으로 보면 굉장히 끔찍한 경험인데 한국에서는 얘기할 필요조차 없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 박소현 씨는 기독교 출판사에서 일하다 육아로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그는 결이 다른 여러 교회를 다니다 지금은 대한성공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박진영 / 나는 그동안 안전에 대해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살았는데 그 사건 이후로 좀 하게 된다. 사실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 만드는 게 싫어 의도적으로 내색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에는 밤에 혼자 집에 있으면 자꾸 밖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문을 잠가도 안심하지 못 한다. 스스로 체감하는 정도가 다르다.

홍지숙 / 이번 일로 지난 총선 전 선거운동할 때 기억이 떠올랐다. 피켓 들고 선거운동을 하다 어떤 남자분에게 "안녕하세요" 하면서 다가갔는데 갑자기 "야, 이 OO년아"라고 욕하고 지나갔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그냥 얼어붙었다. 만약 내가 남자였으면 그 사람이 나한테 그렇게 욕하고 지나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박소현 / 사실 사회에서는 별일 다 당한다. 한번은 1호선 지하철역이었는데 인적이 좀 드문 곳이었다.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데 차림새가 허름한, 술에 취한 아저씨 두 명이 밑에서 나를 향해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손이 닿을 만큼 가까이 오더니 내 가슴을 만지고 휙 가 버렸다.

'무서워! 도망가야 해'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내 신체적 조건은 생각도 않고 뒤돌아 서서 주먹을 불끈 쥐고 "야!" 소리 질렀다. 그 사람들이 날 잠깐 응시하더니 그 짧은 시간에 알아챈 거다. '아 쟤는 여자 혼자구나.' 두 명이 계단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다 한 계단 탁 내려온 순간 난 뒤돌아서서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내 뒤통수에 대고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내뱉기 시작하는거다. 나는 그 욕을 들으며 죽어라 뛰어서 겨우 집까지 왔다.

집에 도착해 잠금장치 세 겹을 잠가도 공포와 분노가 가시지 않더라. 사건이 일어난 지하철역과 거리가 한참 떨어진 안전한 내 방이었는데도, 벌벌 떨면서 억울함과 분노로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그때의 공포심과 굴욕감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교회는 여성 혐오 청정 지역?

교회는 사회와 조금 양상이 다르다. 교회 안에서는 적어도 모두 주님 안에 한 '형제자매'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교회라고 사회와 크게 다를까.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교회 울타리를 벗어난 적 없는 세 여성이 느끼는 '교회가 여성을 차별한다고 느꼈을 때'를 들어 보자.

홍지숙 / 대학교에서 CCC에 있을 때 캠퍼스 대표는 항상 남성이 맡고 부대표는 여성이 맡았다. 부대표는 '기도의 어머니'로 불렸다. 여자에게는 대표 자리를 제안하지도 않았다. 선교 단체 안에서 이상적으로 설정해 놓은 남성성, 여성성이 있는 거다.

당시 <노데이팅>이라는 책이 유행이었는데 대학가에서 수련회 하면 항상 그 주제로 강의를 들었다. 그 안에서도 툭툭 튀어나와 문제 제기하는 여성들이 있었는데 그들 이야기는 들어 보려 하지 않고 바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했다.

그런 수련회에서 남자들이 여자들한테 짓궂게 장난치면 여자들이 싫어하니까 하루는 간사가 남자들만 불러 놓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면서 남자들이 한다는 말이 "야~자매들은 깨지기 쉬운 유리래"였다. 그렇게 말하더라. 순간 "어? 나는 깨지기 쉬운 유리인가?" 이런 의문이 들었다.

   
▲ 이번 사건은 많은 여성에게 '불편한'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겪었지만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 말이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박소현 / 나도 대학 때 SFC 활동을 했다. 서울 북부지구 위원장이었는데 그전에는 여자를 위원장으로 임명하지 않았다. 부위원장이었던 남학생은 내가 여자라서 별로 따르고 싶어하지 않았다. '너가 여자임에도 대표를 맡았으니 어디 한번 잘해 보라'는 식이었다. 난 자신감이 충만해서 대표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과는 처참했다.

대표가 하는 일은 주로 남성들이 잘할 수 있는 일로 짜여졌다. 사람들을 격려하고, 깊은 영성을 추구하고 누구를 상담하는 일이 선교 단체 리더가 하는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때 되면 체육대회나 모꼬지 기획하고, 운전해서 사람들 실어 나르고 바베큐하는 일, 선수로 뛰면서 경기를 이기는 일 등이 나에게 맡겨진 일이었다.

박진영 / 나는 교회에서 여성으로서 한계를 느꼈었다. 학부 때 전도사 시작하고 나서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처음 유아부를 맡았는데 내 능력 밖이라고 느꼈다. 유아부에서 2년 보내고 중고등학생들과 잘 지내고 해서 청소년부를 임지로 찾았는데 불러 주는 곳이 없었다. 나보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남자 동기들도 청소년부로 잘만 가는데 나는 갈 수 없었다. 청소년부에서 여자 교역자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천천히 스며든 교회 내 여성 차별

교회에는 눈에 보이는 차별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더 많다. 겉으로 보기에는 몇몇 교단을 제외하고는 여성에게도 모든 것이 허용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너무 오랫동안 체제 안에 순응하고 살다 보면 뭐가 여성 차별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박진영 / 나는 교회에서 여자들이 남자 조수 역할하는 거 정말 반대한다. 한번은 목회자 수련회 가서 음식을 준비하는데 그 자리에 있는 여성들 즉 목사 아내와 여성 목회자가 총동원됐다. 남자 목사들은 그냥 소파에 앉아서 토론하고 있는 그 상황이 너무 싫었다. 나는 목사로서 주방 일 하지 않는 걸 선택했다. 주방에 계신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남자 목사 수발드는 존재로 취급받고 싶지 않았다. 다른 여성들도 싫어하셨지만 내색은 별로 안 했다.

다녀와서 다른 선배 여성 사역자가 내 이야기를 듣고 다른 시각으로 조언했다. 그분은 그럴 때 가만히 있지 않고 더 열심히 했다고 하시더라. 오히려 나서서 하면 남자들도 미안해서 같이 따라한다는 경험담을 들려줬다. 관점 차이라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남성이 우위에 있는 틀에서 여성이 살아남기 위해 남성 비위를 맞추거나, 남성을 동참하게 만들어서라도 깨우치게 하고 싶지 않다. 나는 같은 상황에서 주방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고 그분은 알면서도 하는 것을 선택했다.

   
▲ 대학생 선교 단체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홍지숙 씨는 교회 안에 만들어 놓은 남성성과 여성성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박소현 / 결혼하면서 교회에서 또 다른 종류의 압박이 있었다. 청년 때는 서로 정치 이슈나 교회 현안을 놓고 토론하곤 했다. 하루는 어느 가족이 교회에 있는 신혼부부를 초대했다. 그 교회는 교계에서도 민주적인 교회 운영으로 유명한 진보적인 교회였다. 그런데 여자들은 다 부엌 가서 일하고 남자들은 다 거실에 앉아서 정치, 교회 현안들 놓고 이야기했다. 신혼부부까지는 그냥 앉아서 먹는 걸 용인해 주는 분위기였다.

밥 먹을 때까지는 남자 쪽에서 버티고 앉아 있었는데 여자 쪽 식탁에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거기에 계신 여자들을 무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을 밥 차리는 존재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교회는 여자들 주일에 주방 일 안 시킨다고 주일에 김밥 먹었다. 결국에는 그 제도가 사라졌는데 재밌는 것은 중년 여성 분들이 밥을 해서 교인들을 먹이고 싶은 마음에 김밥 제도가 사라졌다. 당사자들을 위해 만든 제도였는데 당사자들이 그걸 깼다.

여전도회에 참여도 문제가 됐다. 교회에서 장로님이 왜 당신은 여기에 참여하지 않느냐고 따로 불러 말하더라. 그래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그대로 이야기했다. 첫째, 교회 규약을 보니 여성 기혼자 모임은 필수가 아니다. 원하는 사람만 갈 수 있는 곳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둘째,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동갑인데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에게는 왜 가입을 권유하지 않는가. 이곳은 기혼 여성만의 모임인가 아니면 진짜 여성회인가. 규약에는 여성회라고 나와 있지 않은가. 이런 가족주의 문화가 싱글 여성을 소외시키기 때문에 가고 싶지 않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그 장로님이 이런 얘기를 해 줘서 고맙다고 쿨하게 받아 주셨지만 실상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었다. 교회에서 여성에게 바라는 일반적인 기준들이 편견과 함께 공포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건 성추행의 공포뿐만 아니라 타인의 편견과 시선이 주는 분명한 공포다.

홍지숙 / 청년부에서 성교육 받을 때 "방 안에 남녀가 단둘이 있으면 안 된다" 이런 종류 이야기를 듣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자 청년은 여자 청년보다 성욕이 50배나 더 강하다는 이야기를 막 한다. 남자 입장에서 쓰인 책을 선교 단체나 교회에서 성교육할 때 교재로 쓴다. 남자는 성욕을 조절할 수 없으니 여자가 조심해야 하고 남성은 단순한 존재라서 "노"라고 이야기해야 하고 옆에서 챙겨 줘야 하고 자존심을 세워 줘야 한다는 류의 이야기들, 전부 다 교회에서 배우는 거다.

박진영 / 교회 안에서 여성의 선택권이나 자율권이 존중되지 않는다. 교회 규모가 어느 정도 큰 곳에 가면 50~60대 중에도 공부를 많이 한 전문직 여성들이 있다. 사실 이분들은 식당에서 별로 봉사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집사일 때는 괜찮지만 권사라는 타이틀을 가지는 순간 식당에 가야 한다. 또 권사가 주로 하는 일이 목사와 함께 자기 지역 구역을 심방하는 일이다. 그런데 직업이 있는 권사가 평일 낮에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나. 자기 직업이 있어 일을 하는 권사, 요즘은 손주 보는 권사도 많은데 그게 참 곤욕이다. 뿐만 아니라 식당 봉사 안 한다는 이유만으로 앞에서는 욕하지 않지만 뒤에서는 온갖 소리를 다 듣는다.

   
▲ 박소현 씨는 대학 시절 겪은 성추행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그때 당시의 심경을 전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페미니즘', 남자를 해치지 않아요

한국에서 남자들은 가부장제 환경에서 자라 군대를 겪으면서 상명하복 구조에 익숙해진다. 이런 환경에 익숙한 이들은 '페미니즘' 단어만 나오면 바로 특정 성향의 여성을 떠올린다. 자기들을 못 잡아 먹어 안달인 기세고 드센 여자들 말이다. '꼴페미', '페미나치' 같은 혐오 발언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규정하는 여성들은 여성주의가 결국 남성에게도 유익하다고 주장한다.

박소현 / 교회 안에서 가장 위험한 말이 무슨 문제가 생기면 "원래 그랬어"라고 하면서 관습이나 전통으로 치부해 별다른 물음표를 안 던지는 거다. 설령 그 사람들은 그렇게 해 왔을지라도 전통이 틀리다면 언제든지 합의해서 바꿀 수 있는 건데 그런 시도 자체를 안 한다. 누군가 물음표를 던져도 우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는 분위기가 아니라 "원래 그랬어. 말해도 소용없어"로 자꾸 돌아가는 거다.

홍지숙 / 나는 "야 원래 그런 거야. 너만 유난 떨지 마"라는 말이 너무 싫다.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조차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박진영 / 이런 말 하는 사람들 중에 남성이 많다. 개인적인 경험인데 처음에 교회 부임해 보니까 부목사들이 쫙 있는데 이분들이 담임목사를 보스라고 부르더라. 보스에게는 절대복종이었다. 교회가 클수록 더 그렇다. 담임목사가 없을 때는 다 보스라고 한다. 부목사들끼리 이야기하다 이슈가 되면 담임목사한테 전달해야 하는데 아무도 그렇게 못 한다. 왜 말을 못 하느냐고 해 봐야 소용없다, 안 된다는 말부터 한다.

지금 옮긴 회사도 아직 3개월밖에 안됐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다. 우리 회사는 직급도 없고 서로 별명 부르고 회사 문화가 민주적이어서 의견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시정을 요구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렇게 생각만 하지 아무도 나서서 말하려 하지 않는다. 무조건 "그거 얘기해 봐야 소용없다"고 하길래 '그런 얘기 말고 당신 의견은 무엇인가'라고 물어봤다. 자기 의견은 이거나 저거나 다 좋은데 결론은 '그래도 대표 의견은 안 바뀐다'였다. 대표 의견이 곧 자기 의견이 되는 거였다.

내가 대표한테 설득력 있고 논리 정연하게 장문의 문장을 보냈는데 "예. 그렇게 하죠"라고 답장이 왔다. 교회에서, 사회에서 경험했던 걸로 '남자들은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결국엔 군대 문화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부장제와 군대 문화다. 군대를 다녀오는 순간, 남자들도 피해자가 되는 거다. 모든 억압, 세뇌가 온몸으로 체화된 건데 그게 자신이 속한 조직, 가정, 교회 안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거다.

박소현 / 바꿔 말하면, 이거를 실행할 수 있는 키가 여자한테 있다는 말이 된다. 남자들은 그들만의 룰이 있어서 못 나서는데 우리는 그 룰을 모르니까 대범해질 수 있는 거다. 그들은 우리는 사장한테 덤비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이상하면 가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다.

   
▲ 박진영 씨는 교회 현장에 아직도 명백한 남녀 차별이 존재한다고 했다. 여성은 남성보다 아래 있다는 차별 의식은 남자에게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남성들이여, 먼저 이야기를 들어라

이번 살인 사건이 있은 후 어떤 남성들은 "모든 남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지 말라. 이건 여성 혐오 살인이 아니라 한 정신병자가 벌인 미친 짓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반면 여성들은 그동안 터트리고 싶었지만 꾹꾹 참아 왔던 경험을 토하듯 쏟아 내고 있다. 왜 여성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일까.

박진영 / 어제 언니와 밥 먹다가 '여성 혐오' 이야기하니 "진영아 언니는 사실 이런 거 안 보고 싶어. 기사도 안 읽고 싶어. 그런 거 보면 빠져들고 고민하고 힘들어지잖아. 내가 그렇게 챙겨 본다고 해서 세상은 안 바뀌잖아"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결국 내가 관심을 가지니까 언니도 이 이야기를 듣게 된 거라는 말이었다.

세상은 제도가 바뀐다고 바뀌지 않는다. 내가 먼저 바뀌고 내 주변에 가족, 친구가 바뀌고 그게 번져 나가야 한다. 나는 남성들이 자기 성찰의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다. 여자들은 '내가 뭘 잘못했지?' 이런 생각을 먼저 하기도 한다.

그런데 남성들은 모든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세상에 있는 당연한 것들을 한발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서 의도적으로 '자기 객관화'를 해 봤으면 좋겠다. 교육제도 안에서 동등한 교육을 하자고 하면 한도 끝도 없지만 결국에는 남자와 여자가 같이 목소리 내고 실천하는 게 나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박소현 / 우리는 장애가 없기 때문에 장애인이 뭐가 불편한지 막연하게 생각하지 구체적으로 잘 모르면서 산다. 아기를 낳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니까 그동안 못 느꼈던 작은 턱들이 느껴지더라. 이게 휠체어나 유모차가 못 다니는 길이구나. 이런 부분을 우리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산다. 이게 누군가에게 불편한 장애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게 가서 뭐가 불편한지 적극적으로 물어봐 주면 '어떻게 해 달라'는 말이 나올 것 같다.

여자들이 어떤 점에서 불편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 보고 싶은 남자들도 많지 않을까 싶다. 구체적으로는 뭐가 불편한지 일단 들어야 하고, 자발적인 마음으로 저 사람들이 뭐가 불편한지 내가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인식했으면 좋겠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려 주자면, 여자들은 3m 정도는 괜찮은데 2m 안에 낯선 남자가 들어왔을 때 긴장감을 느끼는 거 같다. 소위 '쩍벌남'도 저 여자랑 허벅지 부딪히고 싶어서 벌리고 앉아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옆에 앉은 여자가 불편할 거라고 생각 안 하고 자기 편한 대로 벌리고 가는 거다. 그런데 붙이고 앉아 있는 여자는 얼마나 짜증나나.

그 사람이 변태여서 나한테 붙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본인이 불편하지 않으니까, 내가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다. 여자는 신체 접촉을 싫어 하는데 버스나 지하철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서 움츠리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저 여자한테 몸이 닿는 게 스스로 불쾌하지 않다고 저 여자도 불쾌하지 않은 건 아니다.

박진영 / 그래도 지금 젊은 남성들은 인식이 있어서 조심을 하려고 하는데 중년 남성들은 좀 더 들으려고 해야 한다. 회사에서 강남역 사건 이야기를 하는데 누가 "이게 다 박근혜 때문이야"고 하는 거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다 남자였는데, 이 얘기를 더 하고 싶지 않고 그냥 차단하고 싶어한다고 느꼈다.

그 사람들은 다 새누리당 지지자에 내가 박 대통령 싫어하는 줄 아니까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한테 그 사건을 투사하면 얘가 입 닥치고 있겠구나라는 걸 전략적으로 아는 거다. 많은 남자가 여성의 생각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장애인, 성 소수자, 외국인을 내가 원하는 대로 도와주고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말을 먼저 들어 보는 것, 그 사람이 정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경험을 하는지 먼저 좀 들었으면 좋겠다.

   
▲ 사건 발생 후,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피해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하나씩 붙기 시작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가 기독교 내 성희롱 피해 사례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교회 또는 기독교 단체에서 겪은 일을 자유롭게 기술하시면 됩니다. 나의 이야기가 모여 우리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적어 주신 내용은 향후 종합 기사에 반영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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