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단원고등학교가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을 제적하는 절차가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5월 11일 오후 5시경, 유가족들이 농성 중인 단원고 현관에 경기도교육청·안산회복지원단 장학사 5명과 단원고 교감이 찾아왔다. 사과와 해명을 하려고 가족들 앞에 섰지만, 가족들에게는 변명으로 들릴 뿐이었다.

▲ 11일 오후 5시경 단원고 교감(마이크 잡고 있는 사람)과 장학사들이 찾아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교감과 장학사들 설명에 따르면, 학교는 전산 처리를 마감하기 위해 교육부에 문의했다. 현 나이스(NEIS) 시스템은 한 학년 학적 전체를 일괄적으로 처리하게 되어 있다. 희생 학생들을 빼고 생존 학생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문의했지만, 교육부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교육청에도 문의했지만 원론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학적 처리는 학교장의 권한이며, 관련 서류를 받아 처리하라는 내용이었다. 미수습 학생들 학적 처리는 민법을 따르라고 했다.

현행법상 의무 교육이 아닌 고등학교에서 학생이 사망하면 제적 처리하게 되어 있다. 처리를 하기 전에 반드시 관련 서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학교는 세월호 가족에게 서류를 문의하지도 않았다. 가족 중에는 아직 희생자 학생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도 많다. 학교는 가족들과 아무런 논의 없이 희생 학생들을 제적하고 미수습 학생들은 유급 처리했다.

▲ 유가족들은 이들에게 질문을 쏟아 냈다. 왜 가족과 한마디 협의 없이 아이들을 제적했는지 답답함을 풀 수 없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가족들은 왜 우리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느냐고,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리지 않은 채 교실 문제를 협의한 것은 유가족을 기망한 게 아니냐고 물었다. 교감과 장학사들은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미처 말씀을 못 드렸다. 죄송하다"고 했다. 유가족들 분노는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교감을 향해서는 10일 밤 벌어졌던 재학생 부모와 유가족 간 충돌에 대한 질문이 쇄도했다. 재학생 학부모 총회 자리에 같이 있었으면서 왜 그들을 말리지 않았는지, 학교가 유가족과 재학생 부모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 아닌지 물었다. 교감은 "거기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되물었다.

▲ "그렇게 하라고 했어도 당신들이 교육자라면 그러면 안 되지!" 한 어머니가 장학사들 앞에서 오열하며 외쳤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한 유가족 엄마는 뛰쳐나가 교감·장학사들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물었다. "아무리 그렇게 하라고 했어도, 당신들이 교육자라면 그러면 안 되지!", "우리 아이 길 가다 교통사고 나서 죽은 거 아니다. 수학여행 가다 죽은 거다. 가기 싫어도 학교가 전화해서, 안전하게 다녀올 거라고 해서 보냈다." 엄마는 오열했다.

결국 유가족들은 교감과 장학사를 가족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불러들여 앉혔다. 가족들과 장학사들은 밤늦게까지 얘기했다.

▲ 교감과 장학사들은 농성장 안으로 들어와 앉을 수밖에 없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교장 "나는 몰랐다"

한편 행방을 알 수 없었던 정광윤 교장은 행정실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족들이 행정실 구석방에 있는 교장을 발견하고, 나와서 제적 처리와 동의 없이 교실을 치우려 한 일에 대해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도, 직접 나가서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교장은 "전명선 위원장과 얘기하겠다"며 입을 닫았다. 유가족과 기자들의 거듭된 요구에도 눈을 감고 연필을 세워 미간을 문지르며 가만히 있었다. 전 위원장은 교장과 독대하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교장은 30~40분이 지난 후, 저녁 7시 30분경 현관으로 나와 유가족 앞에 섰다.

▲ 교장은 행정실 안쪽에 있었다. 유가족들의 요구에도 다리를 꼬고 눈을 감고 연필로 미간을 문지르고 있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교장은 처음부터 충돌 없이 잘 협의하면서 가려고 했다며 입을 뗐다. 그동안 교육청, 416가족협의회와 잘 얘기해 왔는데 이런 일이 생겨 안타깝다고 했다. 5월 초까지 협상을 거듭해 5월 9일 교실을 철거하기로 최종 합의했다고 말했다. 재학생 부모들은 1일부터 철거하자고 요구했지만, 자신은 유가족과 합의한 대로 9일에 해야 한다고 맞섰다고 주장했다.

8일에 이삿짐센터가 온 것은, 9일에 교실을 완전히 빼기 위해서 6~8일에 유품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학사 일정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으며, 이는 5월 초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을 만나 논의한 내용이라고 했다.

유가족들은 아이들 책걸상과 유품이 훼손되지 않도록 옮기는 걸로 합의했는데, 어제 재학생 부모들이 강제로 철거를 시도해 훼손된 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교장은 "재학생 부모들과의 충돌은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고만 말했다.

▲ 교장은 결국 7시 30분경 현관으로 나와 유가족 앞에 섰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그는 희생 학생들이 제적 처리된 것은 몰랐다고 했다. 자신은 올해 3월 2일 부임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인수인계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며 항의했지만, 교장은 제적 부분에 대해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교장은 앞으로도 다시 잘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가족들의 항의는 멈추지 않았다. 교장과 교감은 유가족 앞에 서서 1시간 정도 질문과 해명을 반복했다. 교장은 밤 9시경 행정실로 다시 들어갔다.

▲ 교장과 교감의 해명으로도 유가족들은 답답함을 풀지 못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유가족 "교실 못 뺀다"

세월호 가족들은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교실 존치 문제를 다룰 때, 학교와 교육청은 가족들이 양보하지 않으면 여론이 등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진보로 분류되는 이재정 교육감도 소용없었다. 가족들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교실 문제는 양보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가족들은 교육이라는 좀 더 큰 관점에서 교실 존치 문제를 봐 주기 바랐지만, 재학생 부모와 학교, 교육청은 그 요청을 외면했다. 눈물을 삼키며 교실을 빼기로 합의했는데 하루 만에 이 사달이 난 것이다. 가족들에게 양보를 요구하면서 가족들 몰래 아이들을 제적한 것이다. 유가족들은 이제 "절대 교실 못 뺀다"고 말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아이들을 제적 처리할 때 재임했던 추교영 교장과 경기도교육청 이재정 교육감의 직접적인 사과와 해명을 듣기를 바라고 있다. 오늘도 유가족들은 단원고 현관에서 밤을 지새운다.

▲ 저녁이 되자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이재정 교육감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었다. 가족들은 현관에서 다시 노숙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입장서] 단원고 기억 교실 난입 사태에 대한 입장서

1. 세월호 안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의 미수습자가 있습니다. 그중 4명의 학생과 2명의 선생님들이 아직 단원고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하루빨리 이분들이 돌아오시기를 기도합니다. 

2. 416안전교육 시설 건립을 위한 협약에서 기억 교실의 모든 물품은 가족협의회와 학교가 협의하에 이전한다고 합의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5월 10일 오후 10시 30분경 일부 재학생 부모와 몇 명의 일반인들이 무단으로 교실에 들어가 기억 교실의 유품을 빼내려고 한 바 있습니다. '생존자들의 물품을 옮기겠다'는 명분으로 생존 학생들의 책상을 복도로 빼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함께하겠다'는 마음을 담은 각종 기억 물품을 훼손하기도 했습니다. 이 일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올바른 교육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 온 시민들과 유가족들의 마음을 찢는 것이며, 폭력적으로 기억을 지우려는 행위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3. 우리는 경기도 교육청과 단원고가 이런 도발에 대하여 입장을 분명히 밝히기를 요구하며, 이러한 시도가 재발할 것에 대비하여 기억 교실에 대하여 11일 아침 시설 보호 요청을 할 것을 도교육청에 요구하며, 경찰에 시설 보호를 요청합니다.

4. 5월 10일 밤 기억 교실의 유품을 강제로 빼내는 과정에서 이것을 말리는 유가족의 몸을 밀치거나 카메라를 빼앗는 등의 폭행을 가한 사람에 대하여 현재 고발 조치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현재 확보된 자료에 근거하여 분명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5. 일부 재학생 부모와 일반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었는지 단원고 학교 당국은 분명하게 밝히고 관련자를 징계해야 할 것입니다.

6. 416가족협의회는 기억 교실의 유품이 함부로 훼손되는 일을 막기 위하여 단원고 기억 교실을 지킬 것입니다. 이와 같은 도발이 또 벌어질 경우 그 이후 벌어지는 모든 책임은 그것을 막지 못한 도교육청과 단원고, 그리고 그러한 도발을 벌인 이들에게 있음을 분명히 밝히는 바입니다.

7. 또한, 416가족협의회는 아래 미수습자 가족들의 요구 사항을 관철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입니다.

<미수습자 가족들의 요구 사항>

3월경 미수습자 가족들은 이재정 교육감에게 교실 존치 문제와 관련하여 면담 요청을 하였으나 대표성이 없다고 거절당하였다.

그 이후 4월에도 수차례 미수습자 가족들의 거듭된 면담 요청과 교실 존치 요청에도 안산시 교육감 및 교육 지원청 관계자들은 앞서와 같은 이유를 들어 면담을 거절하였고, 이재정 교육감은 교실 존치 문제는 학교장의 권한이므로 학교장이 결정할 사항이라고 책임을 미루기만 했다.

단원고도 마찬가지의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였다.

미수습자 수습 시까지 존치 교실에 자리를 유지해 달라는 2차례 요청에도 단원고는 지금까지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아무런 회신을 하지 않았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7월 말 세월호가 인양되고 아이들이 수습된 후에, 아이들이 원래 앉던 자리에 한 번이라도 앉아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2016년 5월 11일
416가족협의회/4.16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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