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4월 16일에는 비가 왔다. 2년 전에도, 1년 전에도, 어제도 왔다. 사람들은 하늘도 슬퍼하나 보다, 하늘도 기억하나 보다고 말했다.

작년 4월에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정부가 더 날카롭게 대치했다. 특별법을 무력하게 하는 정부의 시행령을 반대하며 부모님들은 삭발을 했다. 아이들 영정 사진을 안산 분향소에서 꺼내 상복을 입고 광화문까지 도보 행진을 했다. 1주기 때 유가족들은 시행령 폐기와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고, 이것이 성사되지 않는다면 추모식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유가족들의 바람은 그때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틀 후 벌어진 1주기 행사 때 유가족·시민과 경찰은 광화문에서 전면 충돌했다. 경찰은 시민은 물론 유가족까지 연행해 갔다.

올해 4월 16일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416가족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오전 10시부터 안산 합동 분향소 앞에서 '세월호 참사 2년 기억식'을 열었다. 일기예보에는 오후 늦게부터 비가 온다고 나와 있었다. 416합창단 리허설을 준비 중인 시찬이 아빠가 말했다.

"이번에는 우리가 준비하니까 애들도 아는 거야. 우리 애들이 비를 막아 주고 있는 거야."

행사가 시작되기 1시간 전부터 시민과 국회의원 등이 속속 도착해 희생자들의 영정 앞에 분향했다. 3,000여 명이 모였다. 세월호특조위 이석태 위원장과 위원들, 이준식 교육부장관,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남경필 경기도지사, 제종길 안산시장, 새누리당 원유철 비대위원장, 정의당 심상정 대표,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 김광진 의원, 표창원·박주민·손혜원 당선인 등이 참석했다. 그간 썰렁했던 합동 분향소가 모처럼 북적댔다.

찬호 아빠 전명선 운영위원장은 오늘 행사가 결코 '추모식'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전 위원장은 "저희 가족들은 아직도 2014년 4월 16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봄이 왔건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내일도 4월 16일이라는 참담한 현실이 그대로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억식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304명의 귀중한 생명은 5,000만 우리 국민 모두의 생명, 국민 모두의 안전과 똑같은 것임을 잊지 않고 언제나 함께하겠다. 우리 아이들의 희생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도록 함께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단원고 희생자 박예슬 양의 동생 박예진 양이 언니에게 쓴 편지를 낭독했다. "전화를 하면 받을 것만 같은 언니"라고 부르며 예슬 양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읽어 나가던 예진 양은 편지를 다 읽고 나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지난 2년 동안 세월호 유가족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정치인들은 뜨끔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눈을 가린 정부와 제 목소리를 듣고 계신 모든 분들께 말을 전합니다.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억울하게 떠나보낸 우리의 가족들을 위해 진상 규명, 교실 존치 등 힘을 모아 싸웠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싸울 것이며, 우리 모두가 끝이라고 외칠 수 있는 날까지 이 여정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중략)

세월호라는 뼈아픈 참사는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하던 우리들을 알게 됐고 믿었던 국가와 정치인들의 무능함, 무관심을 비로소 알게 해 줬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기존에 있는 어른들의 세상과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우리 언니, 오빠들이 고통에 허우적대고 있을 때 진도 체육관을 방문하셨지요. 꼭 살리겠다며 부모님들의 손을 잡으셨을 때 마주친 두 눈을 기억합니다. 가장 믿었고 우리에게 힘내라고 말할 줄 알았던 정부가 어쩌다 우리에게 등 돌린 적이 됐을까요."

안산시립합창단과 가수 조관우의 공연, 성우 김상현의 시 낭송, 416합창단의 공연이 있었다. 416합창단이 추모곡 '어느 별이 되었을까', '잊지 않을게'를 부를 때 참석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공동선언문을 낭독한 후 기억식은 마무리됐다. 단원고 교복을 입은 학생 2명과 시민·종교 단체에서 나온 10명이 나란히 섰다. 이들은 각각 교육, 정치, 언론 등 사회 전반에 호소했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히 수학여행 중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 한국 사회 모든 영역의 적폐가 만든 사건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1주기 때와는 다르게 좀 더 안정된 모습이었지만, 가족들에게 4월 16일은 보내기 힘든 날이다. 평소 분향소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던 예은 엄마는 이날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몸을 가누기 힘들어 보였다. 다른 유가족들이 예은 엄마를 안아 주며 같이 울었다.

'하나님의 뜻 거스른다' 비난 들으면서도

기억식에는 전국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몰렸다. 이 중에는 경북 포항에서 올라온 한동대학교 학생들도 있었다. 한동대 학생 38명은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버스 하나를 대절해 새벽 5시에 출발했다.

기억식이 진행되는 동안 학생들은 무대 뒤 쪽 한산한 공원에서 창현 엄마와 동혁 아빠의 이야기를 잠깐 들었다. 창현 엄마 최순화 씨는 "세상에서는 유명한 목사라고 하지만, 정작 자식을 잃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모르더라. 상처받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가까이 있어야, 이렇게 찾아와 주셔야 알 수 있다. 그런 분들이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과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동혁 아빠 김영래 씨는 동혁이가 모태 신앙에 교회도 열심히 다녔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굳건히 믿는 아이였다. 온 가족이 서울의 한 대형 교회에 다녔는데, 그 담임목사는 참사 후 세월호의 ㅅ 자도 꺼내지 않았다고 했다. 신앙적인 회의도 들었고, 온 가족이 나란히 예배드리던 모습이 자꾸 생각나 한동안 교회를 다니지 못했다는 동혁 아빠는, 그래도 이렇게 찾아와 주는 기독교인들이 있어서 힘이 된다고 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한동인 모임'을 제안한 최경준 씨(26)는 "약속을 지키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 9월과 2015년 4월 두 차례에 걸쳐 한동대에서 유가족 간담회를 주선했다. 창현 엄마가 두 번째 간담회에서 "내년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그때도 나와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학생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한동대 학생들은 세월호 참사 1주기 때에는 학교 내에 노란 리본 공작소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누었고, 2주기 때에는 학교 강의실에 '기억방'을 만들고 세월호 다큐멘터리를 상영했다. 보수적인 학교 분위기에서 간혹 '감사할 줄 모른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거다'는 등의 비난도 들었지만, 오히려 많은 교수와 학생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었다고 했다. 최경준 씨는 4월이 지난 후가 더 중요하다며, 유가족 간담회 등 세월호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광화문 1만 2,000 인파

저녁 7시 광화문에서는 세월호 참사 2주기 '기억, 약속, 행동 문화제'가 열렸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에도 광화문광장은 발 디딜 틈 없을 정도의 인파가 몰렸다. 양옆 세종문화회관과 KT빌딩 앞에도 사람들이 가득 찼다.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에도 오전부터 사람들이 계속 다녀갔다. 이순신 장군상 앞에서 세종대왕상을 넘어 해치마당까지 분향 행렬이 이어졌다.

예은 아빠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정치인들에게 "약속을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 이번 20대 국회의원 당선인 중 112명에게 세월호 참사 4대 정책 과제에 대한 약속을 받았다며, 꼭 그 약속을 지켜 달라고 부탁했다. 국민에게는 감사를 전하며 "세월호의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우리의 곁에 있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때 우리의 옆에서 함께 증인이 되어 줄 수 있겠습니까!"라고 외쳐 물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큰 함성으로 대답했다.

방송 3사는 세월호특조위의 청문회도 보도하지 않고, 일부 종편과 보수 신문은 오히려 세월호 가족을 모함했다. 이제 그만하라는 분위기 속에서 세월호는 점점 잊히는 듯했다. 그러나 2주기에 모인 기억의 행렬은, 세월호 참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중에도 사람들은 서로의 모습을 보며 힘을 얻었다. 416연대는 전국에서 열린 2주기 행사가 100개가 넘고, 해외에서도 30여 개가 열렸다고 했다.

대한민국 헌법과 인권 선언을 함께 낭독하며 '기억, 약속, 행동 문화제'는 마무리됐다. 단원고 희생자 남지현 양의 언니 남서현 씨가 단상에 섰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헌법 제34조 6항)

"정부는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재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구조하고 이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구조에 있어서 어떤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된다." (조난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 선언 5항 구조의 의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 1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