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족은 그 힘겨운 애도의 과정을 도저히 마무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부르짖고 있습니다. '제발 숨 좀 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왜 그들은 숨쉬기조차 힘든 것일까요. 2년이 지나도록 진실 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기 자녀가, 자기 가족이 왜 죽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숨을 쉴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억울한 울부짖음이 지금도 생생하게 들리고 있는데. 그들의 피가 호소하고 있는데. 어찌 그들을 가슴에 묻으란 말입니까! 아, 우리는 실로 비정하고 잔인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 기독교세월호원탁회의 '기독인 집중 기도와 행동의 날'은 기자회견으로 시작했다. "어찌 그들을 가슴에 묻으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박득훈 목사(사진 아래). ⓒ뉴스앤조이 구권효 기자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박득훈 목사(새맘교회)의 목소리가 광화문광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양옆 8차선을 달리는 자동차 소음도 그 순간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눈부신 햇살 아래 일대는 숙연해졌다. 4월 11일 오후 3시 4분(3:04)에 시작한 기독교세월호원탁회의 기자회견 분위기는 무거웠다. 원탁회의는 이날을 '세월호 기독인 집중 기도와 행동의 날'로 정하고, 7시간 동안 광화문광장을 떠나지 않았다.

기자회견을 시작할 때만 해도 자리가 듬성듬성했는데 사람들이 하나둘 합류했다. 20대 청년부터 60~70대 목회자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였다. 행사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주최 측이 준비한 노란색 스톨을 걸쳤다. 이순신 장군상 앞에 300여 명이 간이 의자를 놓고 앉았다.

▲ 기독교인 300여 명이 노란색 스톨을 걸치고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종소리와 함께 세월호 희생자 304인을 추모하는 기도회가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해 더욱 힘쓰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여전히 악인들이 떵떵거리는 현실을 탄원하는 기도를 올렸다. 설교 본문은 기독인에게 익숙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였다. 예수님은 묻는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 그리고 말씀하신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박철 목사가 '기억하고 공감하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저는 아직도 휴대폰으로 오후 4시 16분 알람을 맞춰 놓습니다. 잊지 않기로 한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한 유족분이 그런 말을 하십니다. 세월호의 참상과 아픔을 국민들이 잊는 게 가장 두렵다고.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냥 잊지 않는 게 아니라, 2014년 4월 16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똑똑히 기억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그리스도인들은 공감 능력을 확대해야 합니다. 이 땅의 아픔과 슬픔에 공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생명의 약탈과 죽임은 그 생명을 만드신 하나님의 슬픔이고 고통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고통에 동참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삶에 파묻히지 말고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아픔을 당하는 유족들의 입장이 되어 보십시오.

▲ 박철 목사가 '기억하고 공감하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여러분은 '단장'(斷腸)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창자가 뚝뚝 끊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유족들은 지금 단장의 심정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가 민중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입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단장의 심정, 공명의 끝은 십자가였습니다. 예수 사랑의 끝은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는 공명의 끝이었고 사랑의 완성이었습니다.

슬픈 4월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불의가 정의를 비웃고, 권력이 약자를 조롱하고, 억울함이 여전히 신원되지 않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만은 없습니다. 정의가 불의를 이기고, 약자가 권력에 정당하게 맞서고, 억울한 부모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서 진실이 드러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더욱 용감하게 하늘을 향해 귀를 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함께 손을 굳게 잡고 서야 할 것입니다."

▲ 기도회는 성찬으로 마무리됐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내 마음속에 마귀가 들어온 거 같다"

기도회 후에는 '7인 7분 진실 발언대'가 진행됐다. 세월호 유가족 다영 아빠 김현동 씨와 세월호를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집사, 대학생 등 7명이 나와 각자 주제에 맞춰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발언대에 선 김현동 씨는 유가족의 심정과 진실 규명이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을 설명했다.

"이제 다시 봄이 왔습니다. 안산에도 벚꽃 개나리꽃 목련꽃 등 많은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꽃이 피면 마음도 설레고, 꽃구경 어디로 갈까 고민하면서 희망에 부풀어 있을 텐데…. 이제 봄이 싫습니다. 봄이 오는 게 두렵고 꽃이 피는 게 두렵습니다. 꽃을 보면 즐겁고 가슴이 부푸는 것이 아니라, 지켜 주지 못한 죄책감을 느끼고, 왠지 몸과 마음이 차가워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오히려 더 분노스럽고 슬픈 마음입니다. 이게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죠. 세월호 유가족들이 왜 이렇게 봄을 싫어하고 꽃을 싫어할까요. 아마 저희들 마음속에 마귀가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사람이 아니죠. 누가 우리 세월호 유가족들을 꽃을 보고도 욕하는 악마로 만들었습니까! 저희에게 지난 2년은 악마가 되어 가는 그런 세월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6분 17초면 전원을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구조의 책임이 있는 대한민국 국가, 담당 기관인 해경은 승객을 구조할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선장 선원과 함께 공모해 배 안에 있던 증거물을 가져오려고 했습니다. 304명이 희생됐다면 당연히 그 진실을 낱낱이 밝히고, 피해 가족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전국에 생방송으로 304명이 희생되는 모습을 지켜봤던 국민에게, 다시는 이런 참사가 나오지 않도록 철저하게 재발 방지책을 만들겠다고 약속해야 할 것입니다.

▲ 다영 아빠 김현동 씨는 봄이 되면 더 힘들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국가는 없었습니다. 최소한의 양심도 없고, 최소한의 자신들 약속도 지키지 않는 국가의 모습, 야만적인 모습만 보여 주었습니다. 수많은 의혹만 남아 있는 과정이었습니다. 심지어 유가족과 국민이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할 때, 저들은 '그건 법체계에 안 맞고 특검으로 하면 되지 않겠느냐' 하면서 특검을 특별법에 명시했습니다. 심지어 새누리당은 자기 몫의 후보를 추천할 때 유가족이 수긍할 때까지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던 저들이, 특조위가 법에 명시된 특검을 요구하니 이제 나 몰라라 합니다.

또한 특별법에 의한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이 1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아직 특별 조사 기간이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정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특별법에는 특조위가 구성되고 1년, 필요할 때 연장 6개월, 보고서 쓰는 기간 3개월, 이렇게 돼 있습니다. 조사 활동 기간 1년, 그 1년이 언제부터인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국회에서 특별법 개정을 통해 정해 주어야 하는데, 저들은 1년이 다 되도록 특별법을 개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특조위 조사 활동의 핵심, 청문회라든가 특검이라든가 기타 진상 규명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진상조사국장이 아직까지도 임명되지 않았고 파견되지 않은 것이 현 상황입니다. 아직도 청와대에는 진상조사국장 임명 결재 서류가 있습니다. 저들은 임명도 하고 있지 않고, 여러 모양으로 특별 조사 활동을 지연하고 방해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두려운지, 무엇을 덮고 숨기려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마음을 표시해 달라"

저녁 7시, 세종대왕상 앞으로 자리를 옮겨 추모와 약속 문화제를 열었다. 기타리스트 김수로헌, 피아니스트 신은경, 가수 전경옥, 중창단 새하늘과새땅, 해금 연주자 한서영, 바리톤 김태선, 길가는밴드의 공연이 차례로 이어졌다.

중간에 예은 아빠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짧게 발언했다. 날카롭고 냉철하며 때로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던 유 위원장은 이례적으로 기독교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몇 번이고 표시했다.

▲ 예은 아빠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광장에 모인 기독교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지금처럼 끝까지 함께해 달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사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저희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많이 전하고 계십니다. 아무래도 교계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보여 준 모습들 가운데, 간혹 부족한 모습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자성하는 의미에서 저희에게 미안하다고 하시는 것 같은데요. 그런 모습에 대해 우리 크리스천 유가족들도 여러 가지 아픈 소리도 했고, 권면의 소리도 했고, 호소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만일 저희 크리스천 가족들 가운데, 신앙을 버리고 교회를 버렸다면 그런 얘기를 할 이유조차 없겠죠. 여전히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그 안에서 새로운 힘과 희망과 용기와 미래를 받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2년 동안 변함없이 저희 가족들 곁을 기도로 눈물로 위로의 손길로 함께해 주신 여러분들을 보면서, 저희 가족들이 더욱 강하게 신앙을 붙잡고 나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한 번 저희들을 신앙의 힘으로 붙들어 주신 크리스천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2년이 지나 사람들이 다 잊었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오히려 작년보다 더 많은 분이 기억하고 행동하고 계십니다. 해외에도 2주기 행사가 더 늘었고, 국내는 제가 아는 것만 50개쯤 되고, 정확하게 집계가 안 되는 수준입니다. 아마 2주기가 지나고 나서 세어 봐야 할 정도로 많은 곳에서 함께 하고 계십니다.

바로 이것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언젠가 반드시 밝혀집니다. 그 진실은 반드시 드러납니다. 저희들뿐 아니라 여기 계신 모든 크리스천께서도 확신하실 것이고, 그 때문에 지금도 힘을 잃지 않고 함께 기도하며 행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진실이 드러나고 밝혀졌을 때,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과 제가 그 증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진실이 밝혀졌을 때, 그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증인이 되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존재해야만 그 진실이 드러났을 때 의미를 알 수 있고, 그 의미를 알아야만 그 진실을 통해 이 사회를 안전한 사회, 모든 이들의 생명이 존중받고 모든 사람의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고 행동하고 진실을 알고 싶다고 하는 그 뜨거운 마음을 드러내서 표시해 주십시오. 리본으로, 팔찌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그 진실이 드러났을 때 함께 증인이 될 것이라는 마음을 표시해 주십시오. 2주기를 앞두고 리본, 배지 달고 다니시는 분이 정말 많이 늘었습니다. 같은 마음으로 그렇게 표시하고 다니실 겁니다. 내가 표시할 때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안도감과 연대감을 느끼며 함께 마음을 모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저희는 변함없이 끝까지 이 길에서, 가장 앞에서 중심을 잡으며 나아갈 것입니다. 진실이 드러나는 그날까지 우리가 함께 가리라는 약속과 다짐과 격려를 나누는 2주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 참가자들은 밤 9시가 넘어서까지 일정을 함께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7시간의 집중 기도와 행동은 생명평화마당 공동대표 이정배 교수의 결단과 파송의 메시지로 마무리됐다.

"세월호가 인양될 때까지, 미수습자 가족이 유족이 되는 순간까지, 그리고 죽은 자식과 부모들이 맘 편히 이별하는 그때까지, 우리는 이들의 ''이 되고 '이웃'으로 머물 것을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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