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인 150여명은 체감온도 영하 2도에 가까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희생자와 가족들을 기억하기 위해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성탄 전야인 12월 24일 밤, 서울의 거리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기 위해 나온 인파로 가득했다. 발 디딜 틈 없는 청계천을 지나 광화문광장에 들어서자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성탄절 광장 문화제에 참여한 기타리스트 김수로헌 씨의 기타 연주였다.

올해 처음 시작된 성탄절 광장 문화제는 세월호 유가족과 세월호 광장에 있는 자원봉사자,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커피를 제공한 '천막카페'가 기획했다. 천막카페는 많은 사람을 분노하게 했던 세월호 청문회 이후, 실의에 빠졌을지 모를 세월호 유가족 및 미수습자 가족을 위로하는 작은 음악회를 기획했다 '희망의 바람이 분다'가 주제로 한 문화제에 교계 여러 단체도 함께 참여했다.

저녁 7시, 바람이 불기 시작해 체감 온도는 영하 2도에 가까웠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모자·장갑·목도리 등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광화문광장으로 속속 도착했다. 이순신 장군상 앞에 150여 명이 문화제를 즐기기 위해 모였다. 문화제는 양민철 목사(구리 희망찬교회)의 사회로 시작됐다. 색소폰·핸드벨 연주와 김응교 교수(숙명여대)의 시 낭송,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운동을 하는 고등학생과 세월호 유가족의 발언이 이어졌다.

▲ '예은이 아빠' 유경근 씨는 청문회 이후 세월호 가족들이 더 힘을 내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날 발언대에 선 사람은 '예은이 아빠' 유경근 씨(4·16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다. 단상에 오른 유경근 씨는 안산에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을 전하고 싶다며 자신의 휴대폰으로 현장 사진을 찍었다. 이후 힘찬 목소리로 발언을 시작했다.

"진심으로 감사하는 말씀 외에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 자리에 많은 분이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참석하신 여러분은 6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세월호 참사를 마치 내 일, 내 가족이 겪은 일처럼 함께해 주셨습니다. 마음이 많이 무거우시죠. 어떤 순간에는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뒤로 밀어 놓고 싶을 때도 있으셨을 겁니다. 그럴수록 회피하거나 외면하지 마십시다. 즐겁게 정면 돌파하면서 서로 믿고 격려하고 신뢰하면서 가다 보면, 다 함께 꿈꾸는 안전한 세상, 안전한 사회가 오리라 확신합니다.

가족들은 근래 들어 '웃자. 서로 격려하자. 즐겁게 가자'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이미 오랜 시간 투쟁하신 밀양 할매들, 광주 5·18 어머니들에게 배웠습니다. 그분들을 만났는데 '웃어라. 노래해라. 그래야 오래간다. 오래가야 이긴다'는 말씀을 제일 먼저 하시더라고요.

청문회 이후, 가족들은 생각하는 것보다 사기충천해있습니다. 지난 청문회는 많은 사람이 분노하셨고 만족스럽지도 않았습니다. 많은 분이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특별법을 제정해 달라고 서명해 주셨는데요. 이번에 수사권과 기소권 없는 청문회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그렇지만 저희 가족들은 실망하는 대신 '봐라, 국민들이 외쳤던 것이 맞지 않느냐. 수사권이 없으니까 청문회가 이 꼴이 난 것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어 더 힘을 얻었습니다. 청문회가 끝나고 난 후, 어떤 어머니가 '청문회 사흘만 더 하면 안 돼?'라고 하시더군요. 청문회가 의미 없었고 쓸모없었다고 생각했으면, 사흘 더 하면 좋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겠지요.

가족들은 청문회 내내 답답하고 힘들었지만 '조금 더 하면 진실을 밝힐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습니다.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해서 열심히 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가족들은 이번 청문회를 통해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됐고, 내년에도 계속 그렇게 해 나갈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분노만 하실 필요 없습니다. 조금만 더 함께하면 진실을 숨기고 감추기 위해 마지막 발악을 하는 저들의 죄가 드러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추운 날씨에 또 성탄절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문화제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은 평소에도 세월호 참사에 관심이 있었다. 서울에 사는 송시온 씨는 페이스북에서 세월호 광장 문화제를 알리는 글을 보고 참석했다. 그는 "세월호에 관심은 계속 있었는데, 요즘 행동보다는 생각만 하고 있는 것 같아 광장에 나왔다. 예수님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와 우리를 기억해 주셨다. (성탄절에는) 우리도 서로를 기억해 줘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지인들과 함께 광장을 찾은 송아현 씨는 "교회 건물을 예쁘게 꾸미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인들이 아기 예수가 탄생하신 마구간과 같은 곳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광화문에서 이런 모임이 있을 때마다 최대한 참석하려고 한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시는 분들을 보면서 절망 가운데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몸짓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광화문광장에 처음 나온 60대의 어르신도 있었다. 김갑순 권사는 양민철 목사가 목회하는 희망찬교회 교인이다. 그는 "직접 광장에 나와 보니까 좀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고난받는 사람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인데, 성탄절을 맞아 고통 받고 있는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아파하고 있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왔다.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좀 더 많은 사람이 와서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 문화제 마지막 순서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촛불을 나눠 주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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