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보며 핵 발전의 위험을 깨달은 최현범 목사는 탈핵 운동에 뛰어들었다.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계를 교회가 보호해야 한다고 최 목사는 말했다. ⓒ뉴스앤조이 송인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6월 16일 원자력발전소 고리 1호기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수원은 고리 1호기가 전체 전력 산업에서 차지하는 발전 비중이 0.5% 수준에 지나지 않아 경제 이득을 볼 수 없다고 판단해 폐로를 결정했다. 고리 1호기는 1978년에 시작한 한국 최초 상업용 원전이다. 원전의 유통기한이라 할 수 있는 설계 수명은 보통 30년이지만, 고리 1호기는 2007년에 10년 연장했고 현재까지 가동해 왔다.

한수원은 고리 1호기의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리 1호기의 안전 문제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후 끊임없이 도마에 올랐다. 지진과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전을 덮쳤을 당시, 총 10개의 원전 중 가장 나이가 많은 1호기부터 2·3·4호기가 순차로 폭발하거나 방사능을 누출했다. 이것들은 모두 고리 1호기처럼 30년 이상 가동한 원전들이었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여러 분야의 교수 90명이 모여 만든 탈핵에너지교수모임은 2012년 3월 31일 긴급 토론회를 개최, 고리 1호기는 원자로를 안전하게 냉각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후쿠시마처럼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방사능 누출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후쿠시마 사고는 고리 원전과 지리적으로 일본에 가까운 부산 시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일부 활동가와 환경 단체 중심으로 진행되던 고리 1호기 폐로 운동은 올해 2월 '고리1호기폐쇄범시민운동본부'가 출범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120개 단체가 참여한 운동 본부는 고리 1호기 폐로를 위한 100만 서명운동에 나섰고, 3월에는 시민대회를, 4월에는 산업통상자원부를 방문해 항의 시위를 했다. 서병수 부산시장을 비롯한 시의회도 시민단체의 활동을 도왔다.

기독교계도 폐로 운동에 동참했다. 한국 YWCA연합회는 지난 2014년 3월부터 '탈핵 불(火)의 날 캠페인'을 매주 화요일에 벌이고 있는데, 부산 YWCA 역시 2014년 7월부터 매월 1회씩 부산 도심을 돌며 해당 캠페인을 펼쳤다. 또 YWCA는 '고리 1호기 폐쇄 10만 서명운동'을 통해 받은 전국 8만 8,000여 명의 서명을 서병수 시장에게 전달했다. 부산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은 부산중앙교회에서 탈핵 포럼을 개최하고, 지역 교회 목회자들과 사역자 인식 개선에 나섰다. 6월 8일에는 부산 기윤실 이름으로 고리 1호기 폐로를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중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부산중앙교회 최현범 담임목사다. 부산 기윤실 상임대표이기도 한 최 목사는 부산 기독교계의 고리 1호기 폐로 운동을 맨 앞에서 이끌었다. 그는 주변 교회의 요청이 있으면 새벽에라도 달려가 '탈핵 설교'를 했고, 집회가 있으면 동료 목회자들을 데리고 현장으로 갔다. 평일에는 사회운동가 같은 모습이지만, 주일에 설교를 할 때는 복음을 선포하는 목사 그 자체였다. 부산이 방사능의 위협에서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사람, 최현범 목사를 만났다.

▲ 6월 12일, 최현범 목사(앞 줄 가운데)가 상임 대표로 있는 부산 기윤실은 시민들과 함께 부산 시청에서 고리 1호기 폐로를 촉구하는 시위를 했다. 이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고리 1호기 폐로를 결정했다. (사진 제공 최현범 목사)

부산에 밀집한 원전, 후쿠시마 사고로 위험 깨달아

한수원이 고리 1호기 폐로를 결정한 16일 늦은 오후, 기자는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 도심 곳곳에서 고리 1호기 폐로를 축하하는 플래카드를 볼 수 있었다. 약속 장소인 부산중앙교회에서 최 목사를 만났다. 최 목사는 마침 목양실에 있던 청년과 형 동생처럼 인사를 주고받았다. 소탈한 모습이었다. 그는 인터뷰를 앞두고 서재에서 탈핵에 관한 소책자 두 권을 들고 왔다.

최현범 목사는 탈핵을 위해 많은 활동을 했다. 작년 12월에는 부산 YWCA가 주최한 원전 문제를 다룬 대담에 부산 기윤실을 대표해서 참석했고, 연초에는 부산중앙교회 제직 세미나에 핵 문제 전문가를 초청했다. 그는 YWCA의 10만 서명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설교 초청을 받은 곳마다 가서 서명을 권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고리 1호기 폐쇄를 논하기 위해 모였던 12일에는 시민들과 함께 부산시청 앞에서 기윤실을 대표해 폐로를 촉구하는 시위를 했다.

최현범 목사가 탈핵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최 목사는 2011년에 있었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말했다. 당시 사건이 자신의 안일하던 생각을 깨트렸다고 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습니다. 부산중앙교회에 부임한 지 8년 되던 해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했습니다. 부산에 고리 원전이 있지 않습니까. 그동안 별 위기의식 없이 지냈는데, 뉴스에서 후쿠시마 방사능 누출을 연일 보도하는 걸 보니 이게 남 일 같지 않은 겁니다. 후쿠시마 사건을 계기로 부산이 방사능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93년 8개 환경 단체가 모여 만든 환경운동연합은 2012년 고리 원전에서 방사능이 대량으로 누출됐을 때를 가정해 모의실험을 진행했다. 바람이 부산으로 부는 경우, 340만여 명이 밀집해 있는 부산 도심은 90분 만에 오염된다. 만일 시민들이 제때 피난을 떠나지 않는다면, 4만 8,000명은 급성 사망, 85만 명은 암으로 서서히 죽어 간다. 살아남은 17만 명은 평생을 장애로 고통받아야 한다. 이 장애는 2세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원자력발전의 위험은 크다. 원자력발전을 하게 되면 핵연료의 찌꺼기가 나온다. 이를 '사용 후 핵연료'라고 부른다. 그중 '우라늄 238' 같은 물질은 44억 7,000만 년이나 방사능을 내뿜는다. 방사능 피폭을 막으려면 이것들을 처리할 시설이 필요한데 현재까지 세계 어느 나라도 이 시설을 마련하지 못한 실정이다.

한국은 사용 후 핵연료를 각 발전소 임시 저장고에 보관하고 있다. 한국의 각 발전소들은 2012년 12월 기준으로 전체 1만 8,536톤을 저장하고 있고, 이는 한계 용량 2만 6,555톤 중 70%에 달하는 수치다. 고리 원전 같은 경우 현재 약 600톤의 여유 공간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며, 내년에는 더 이상 사용 후 핵연료를 저장할 수 없는 것으로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예상한다.

▲ 부산중앙교회 교인들은 자발적으로 탈핵 운동에 동참했다. 사진은 반핵부산시민대책위가 주최했던 '고리 1호기 D-100 카운트다운 캠페인'에 참석한 교인들의 모습이다. (사진 제공 최현범 목사)

교인 80%가 원전 폐로 서명운동 동참..."교인들 강요하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

대다수 기독인들은 한국 사회의 문제를 교회의 책임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런데 최현범 목사는 탈핵 운동이 교회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그는 교회가 환경 문제를 대할 때 창조 질서의 보존이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기독인들이 교회와 세상을 나누어 생각하던 경향이 있었습니다. 세상을 침몰하는 타이타닉호로 생각하고 미련을 갖지 않는 거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을 때 그분은 세상의 왕이 되셨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타이타닉호의 선장이 되신 것입니다. 이제는 기독인들이 선장을 좇아 더 나은 세상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든 이 세상의 창조 질서를 보존하고 회복하는 게 중요합니다."

교회가 세상의 창조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탈핵 운동을 해야 한다는 최 목사의 말을 들으니, 지난 6월 6일에 있었던 3개 종교 좌담회가 생각났다. 당시 참석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들은 사회운동의 현장에 힘을 실어 주는 것만으로 종교의 역할은 충분하냐고 서로에게 물었다. (관련 기사: [좌담] 개신교·불교·가톨릭의 '썰전', "너희 종교엔 희망이 있니") 탈핵 문제를 위해 현장에 뛰어들고, 이런 행동이 창조 질서의 보존이라고 말한 최 목사는 이들의 고민을 듣고 어떻게 생각할까.

"신학생 시절 전두환 정권에 맞서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위를 한 적이 있습니다. 민주화를 열성으로 부르짖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우리는 거리에 나가 시위를 했습니다. 결국 우리의 요구 조건이 받아들여져서 대통령 직선제(6·29 선언)는 이루어졌습니다만, 저와 제 신학생 친구들은 이런 운동이 신앙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고민했습니다. 더 좋은 사회와 나은 세상을 만드는 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지, 목회자가 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저는 이 일을 두고 10년 이상을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제가 얻은 답은 이렇습니다. 목회자는 세상과 성서를 연결해야 합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성서를 이해하고, 성서의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해야 합니다. 이 둘을 연결해 주는 '다리'가 목회자에게 없으면, 그 목회자는 불의한 사회에 의분을 느껴도 설교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예언자처럼 멋있게 사회를 비판하는 설교를 해도 교인들은 단박에 알아차립니다. '아, 저건 목사님 개인의 정치적 소견이다.' 목회자 안에서 세상과 성서가 연결될 때, 그제야 목사는 사회를 향한 예언자적 선포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최 목사에게 사회참여와 신앙의 조화를 꿈꾸는 후배 목회자들을 위한 권면을 부탁했다. 그는 조급해하지 말고 인내하며 조금씩 변화하는 교인들의 발걸음에 속도를 맞춰 주라고 했다. 자신은 사회문제가 급하고 심각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신념을 교인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노하우를 하나 알려 줬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회 현안은 잠시 미뤄두었다가, 교인들이 받아들일 때가 오면 이야기하라는 것이다. 이런 시간들이 쌓이면 교인들은 알아서 합리적인 신앙관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고 했다.

그는 부산중앙교회의 예를 들었다. 최 목사가 처음 부임하던 2003년만 하더라도 부산중앙교회는 사회참여를 적극적으로 하는 교회가 아니었지만, 올해 들어 교회는 달라졌다. YWCA가 고리 1호기 폐로를 위한 10만 서명 운동을 할 때 부산중앙교회에서는 총 749명이 서명을 했다. 이는 전체 교인의 80%에 달하는 인원이다. 반핵부산시민대책위가 고리 1호기 폐쇄 캠페인을 했을 때도, 교인들은 소그룹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이번 고리 1호기 폐로 운동은 교인들에게도 소중한 경험이 되었을 것이라고 최 목사는 말했다. 신앙인으로서 사회참여를 했고, 그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왔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교인들은 자신감을 갖게 된다고 했다. 이는 또 다른 사회참여로 이어지는 원동력이 된다고 최 목사는 말했다.

최현범 목사의 탈핵 운동은 고리 1호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앞으로 진행될 탈핵 운동의 초점은, 시민들의 탈핵 의식 증진과, 수명을 마친 원전이 폐로 절차를 밟도록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향후 10년 이내 설계 수명이 끝나는 원전은 월성 1호기(경주, 2022년), 고리 2·3·4호기(부산, 2023·2024·2025년), 한빛 1호기(영광, 2025년)다. 최 목사는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지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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